Old Partner

from text 2009/02/16 06:17
두 주째 토요일마다 치과 진료를 받고 있다. 스물다섯 군 복무 때 어이없이 다친 앞니 두 개와 잘못된 생활 습관이 오늘에 이르게 하였을 것이다. 루시드 폴의 음성을 가진, 드물게 신뢰할 만한 스타일의 젊은 담당 의사는 육 개월, 또는 그 이상의 치료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주엔 공들인 치석 제거, 이번 주엔 발치 세 개. 0124님 동료들 보기에도 그렇고, 폴의 부름에 나 역시 신뢰로 적극 응답할 작정이다.

지난주 진료 후엔 워낭소리를 보았다. 소가 나오고 농촌 풍경이 주로 보일 모양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티켓에 찍힌 'Old Partner'에 눈길이 가더니, 보는 내내 그 영문 제목이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시골 사람들과 풍경도 내내 함께 하였다. 가장 좋았던 지점은 단 한 번 노인이 제 몫을 벗어나는 오랜 파트너의 면상을 모질게 후려치는 장면이었다. 그 한 장면으로 모든 리얼리티가 살고 다큐멘터리는 완성되는 듯 보였다. 어릴 적 시골 풍경도 온전히 되살아나는 듯 했다. 최근 6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는데 반가운 일면 남이 하는 걸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이 동네 풍토엔 역시 살짝 질리기도 한다. 서편제를 본 그 많은 사람들은 보고난 후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문득 다시 궁금하다.

돌이켜보면 특정한 이념이나 사람, 드물게 생업에 연관된 어떤 것들이 삶을 꾸리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되었으나, 그 중심엔 늘 술이 있었던 듯. 언젠가부터 그걸 축으로 전체 얼개도 짜고 일정도 잡았다. 과음과 폭음을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절제된 삶, 그게 가져다 줄 세상이 짐짓 두렵기만 하다. 꼬박 스물세 해 이어온 녀석들, 한 녀석은 영영 멀어질지도 모르겠다만, 다시 만났을 때 놀라거나 놀리지는 말아다오. 내가 어떻게 사랑하고 너에게만은 최선을 다했는지 잘 알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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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발표회

from photo/D50 2009/02/07 07:56
어제 있었던 유치원 발표회. 50미리 단렌즈를 챙기지 않은 후회와 아쉬움이 있었다. 녀석(들)의 한 해를 대견해 하고 보람과 즐거움을 나누기에는 많이 부족하였고, 유치원에 대한 마음처럼 내내 여러 애증이 교차하는 기분이었다. 살아갈 많은 날들이 쉽거나 힘들지만은 않을 테지만, 뭐든 마음껏 할 수 있는 날도 많지 않을 터, 더러 견디기 어려운 날에라도 힘과 위안이 될 수 있게 풀어주고 함께 더 뛰어놀 일이다.

M6 스물아홉 번째 롤

from photo/M6 2009/02/02 05:19
ISO 100짜릴 갖고 어두운 실내에서 용케 찍혔다 싶다. 롯데시네마에서 서연이와 0124님은 맘마미아를, 나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본 날부터(오래되긴 했나 보다. 벼랑 위의 포뇨를 함께 본 날인 줄 알았더니, 핀잔 듣고 수정했다. 포뇨 본 날 갔다는 와인 앤 스피릿은 더욱 기억이 없었다. 잭콕까지 먹어 놓고는) 어제, 봄날 같았던 휴일 한낮까지. 그 사이 어느 밤에는 혼자 적벽대전 1, 2를 달아서 보았고, 다시 홍어 삼합과 오징어 통찜의 내장에 맛을 들여 틈나면 순례하고 있으며, 생업은 바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았다. 책과 음악은 멀리하였으며, 두 주째 토요일 오후에는 이 치료하는 서연이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손아귀의 힘을 느낄 때마다 아비의 심정으로 늙어간다. 늙기는 하는데 여덟 점으로 내려앉은 녀석의 바둑을 닮아 그런지 어째 전체 판을 읽는 수는 줄어만 간다. 독사에게 발목을 내미는 어린 왕자의 시린 마음이 그립기도 한 것이다. 이 새벽, 어느 별에서는 피지 않은 꽃망울이 지고, 어느 별은 궤도를 슬쩍 틀어 전부를 바꾸고야 만다.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미쯔비시 수퍼mx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