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from text 2008/10/29 22:30
가슴에 이리 뜨거운 걸 안고 나는 못 살겠다. 너는 괜찮으냐. 빨갛게 떨어지던 나뭇잎이 문득, 묻더라. 다시, 가을이다. 시월도 다 가고, 봄 생각으로 가득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새.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

M6 스물일곱 번째 롤

from photo/M6 2008/10/14 01:59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시골 외가에 다녀왔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다 돌아가시고 이제는 빈집을 막내 외삼촌이 텃밭 가꿔 가끔 들르시는 곳이다. 어린 시절 기억이 많은데다 무척 오랜만이라 가기로 한 열흘쯤 전부터 괜스레 설레고 들뜨곤 했다. 마을도 집도 바뀐 데가 많아 그 시절 같지 않았지만, 늘 그랬듯, 곳곳에 지나간 자국들이 도사리고 있다 튀어나오곤 했다.

서연이 녀석은 하루 전 금요일 유치원에서 고구마밭 체험 행사를 갔다 왔는데, 이번엔 1박2일 시골 체험이라 일러두었더니, 주워섬기기를, 호박 따기 체험, 고추 따기 체험, 땅콩 캐기 체험, 잠자리 잡기 체험, 많이 먹기 체험, 어쩌고 해가며 기대한 대로 마음껏 뛰고 신나게 놀았다. 이웃 친척 어른 집에 일찍 어머니를 여읜 일곱 살 민식이가(서연이에게는 아저씨뻘이다. 마을에 아이라고는 혼자밖에 없어 애처로웠다) 좋은 동무가 되어 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것저것 녀석 깊은 곳에 스민 게 많았으리라.

해질 무렵의 순간적인 정적과 긴 산그늘, 그 서늘한 기운, 그리고 겨울 해처럼 가늘고 따사로운 아침 햇볕은 나기도 전에 있었던 어떤 기억을 다시 깨운 듯 낯설지만 낯익은 것이었다. 하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운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간을 잊게 하고 일상을 멈추게도 했다. 돌아왔을 때는 다른 세상에서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가슴 밑바닥부터 시리고 서늘하던 그 기운, 일찍 불 꺼진 집집처럼 삭고 소멸하는 것이 애가 저리더니, 며칠 또는 평생 그게 반복되다보면 죽음도 이별도 대수롭잖게 여기게 될까 하는. 죽음도 이별도 애초에 대수롭잖은 게 아닐까 하는.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프로이미지100

M6 스물여섯 번째 롤

from photo/M6 2008/10/06 22:54
근 석 달 열흘 만에 M6에 필름을 넣어보았다. 지난 금요일 앞산에 바람 쐬러 갔을 때, 그리고 다음 날 신천에서. 더위도 더위였고 맨날 똑같은 사진만 찍는 것 같아 좀 다른 걸 찍어보자 하던 것이, 맴맴 그 자리다.

신천에 간 날, 중동교 계단을 내려 신천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송국에서 접근해와 서연이를 잠깐 촬영하고 인터뷰한 게 오늘 저녁 대구MBC '생방송 전국시대'에 방영되었다(내 뒤통수와 한쪽 어깨도 잠깐 찬조 출연하였다). 6미리로 스케치만 하듯 한 거라 나오기나 할까 했던 것이 내 눈으로 보기엔 썩 잘 나왔다. 사는 동네와 함께 이름까지 자막으로 떠 더 그럴듯해 보였다. 녀석의 말은 딱 한 마디, 물고기가 땅 위에 있는 게 신기해요.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코닥 포트라160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