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늠해보건대

from text 2011/07/28 07:18
매미는 몇 년을 땅 속에서 번데기로 살다가 성숙한 매미로 변신하여서는 고작 며칠을 산 뒤 교접하고 알을 낳고 죽는다고 한다. 찬란하거나 허무한 일생으로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이고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매미를 대단하게 여기고 번데기로 사는 기간을 얕잡아보는 데서 오는 것일 뿐, 그 일생을 뉘라서 알 수 있겠나.

의도적으로 자의식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평이든 예술이든 할 수 있을 터이다. 부족한 자의식을 부러 끌어올려서는 될 일도 안 되고 말고.

역사가 알려주는 바, 땅을 가진 농사꾼은 전쟁이나 혁명에 몸을 던지려 하지 않는단다(한겨레21 863호, 이제훈). 쥐뿔 가진 것도 없으면서 꽤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다. 다만 현대인이 저마다 가진 병리학들은 동시대 인간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예측도 가소롭게 만들고 만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를 증명하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다음은 윤구병의 흙을 밟으며 살다에서 한 대목.

현대인아, 너는 왜 뛰면서 생각하느냐? 어느 주인이 너를 그렇게 몰아대느냐? 어떤 무서운 괴물이 네 뒤를 쫓고 있느냐? 너는 바로 멸망을 향해서 뛰고, 죽음을 향해서 뛰는 것이 아니냐? 어차피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것이 사람의 숙명이면, 게으르게 건들거리면서 그 문턱에 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 때 아닌 씨앗을 뿌려 쭉정이만 있는 낟알을 거두는 것보다 때에 맞는 씨를 뿌려 영근 낟알을 거두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 현대인아, 밤이다. 부지런 그만 피우고, 우리 풀숲에 누워 별을 헤아리자. 그리고 올빼미가 깃을 펴기를 기다리자.

* 5월부터 바둑을 다시 시작한 서연이의 그간 대회 참가 성적을 기록해 둔다. 산다는 게 바둑돌만큼이나 착점할 자리는 많겠지만 제대로 길을 찾기란 그래서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이냐. 아비를 붙들어 매는 것만 해도 수를 내고 있는 것이려니, 이번에도 아비는 기분 좋게 지고 말았구나.

5월 15일, 영남이공대학 천마체육관, 제3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 2학년부 4강
5월 29일, 경주 위덕대학교 체육관, 제1회 위덕대학교 총장배 학생 바둑대회 2학년부 우승
7월 23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3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2학년부 우승
7월 24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1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저학년부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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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짱 2

from photo/D50 2011/05/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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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 꽃 피는

from text 2011/05/17 06:16
작은 패배가 다른 패배를 부른다. 작은 패배들이 모여 큰 패배를 이룬다. 패배는 또한 승리를 부른다. 작은 패배들이 모여 큰 승리를 이룬다.

아이야,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것은 이따위 죽은 말들이 아니었다. 고작 그 작은 코에서 나는 코피를 닦아주고 휴지로 입구를 막아 그걸 멎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 손길은 불 꺼진 어둠 속에서도 너를 선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저 마이너스 구 디옵터를 바라보는 도수로도 밝힐 수 없는 것을 밝히고 싶었다.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네가 그 작은 승부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걸 보았다. 만회하고 뒤집히고 다시 뒤집는 걸 감전된 몸뚱이로 꼼짝없이 지켜보았다. 두 번의 긴 승부를 마치고 곧장 세 번째 승부를 가릴 때 나는 상기된 얼굴을 식히러 잠시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낙관적이던 초반 형세는 그새 돌이킬 수 없는 형국이 되어 있었고, 내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아이야, 내가 너를 만난 건 내가 나를 만난 것보다 오래 되었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너에게 사랑을 배우고 사랑의 실체를 알았다. 사랑하는 아이야, 내가 너를 안 건 네가 나를 안 것에 미치지 못한다. 애써 가여운 나를 위로하지 마라. 너를 내가 닮고 싶구나.

아까시 꽃 피는 더운 거리를 횡단하던, 너도 나도 누군지 모르는 시절이 문득 그립다, 사랑하는 작은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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