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from text 2010/04/28 06:36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 금태섭의 디케의 눈, 박정석의 바닷가의 모든 날들을 달아서 읽었다. 셋 다 기대한 것과는 다소 달랐으나 주변을 돌아보고 성찰하기에 충분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누군가 잘못 윤색한 것처럼 단조로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풍부한 사례들이 정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가슴 밑바닥을 건들며 태만과 안주를 요동치게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책장을 덮은 게 언제라고 그새 나와 내 가족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민도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경쟁(만)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뒤처지고 덜떨어졌는지는 디케의 눈에도 잘 나와 있다. 최근 접하는 그의 글들에 못 미치는 글발이 아쉽지만, 여기에도 인상적인 대목이 더러 있었다. 콘크리트 더미와 팍팍한 삶에 마음이 유순해진 걸까. 바닷가의 모든 날들도 읽을만한 대목들만 좋게 보았다.

지난주 송아지로부터 공룡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근 이십여 년 만인데 반가운 마음에 대뜸 전화 통화부터 하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무언가가 통통 튀어다녔다. 늑대, 달구, 둘리, 마왕, 삐삐, 얼룩말, 오리, 그 시절엔 어찌 그리 동물들과 특이한 생명체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이른 시간 안에 공룡이 넉넉하게 근거지를 틀고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를 방문할 수 있기를.

브라보

from photo/D50 2010/04/26 01:27
2010년 4월 25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바우어관에서 열린 제3회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우승을 하였다. 녀석이 속한 1조부터 9조까지 36명이 참가한 가운데 예선 리그전을 거쳐 본선 토너먼트까지 힘든 관문을 거친 것이다. 대진 운이 따랐겠지만, 졸인 내 마음을 훌쩍 넘어서는 기쁨이 있었다. 모처럼 찾은 교정은 휑하던 태를 완전히 벗고 짙은 서양수수꽃다리 향내만큼이나 독한 기억도 잊게 하였다. 한학촌과 박물관 옆 가로수길을 잠시 걸었다. 한 주를 지친 해가 저물 무렵, 흥에 겨운 육신은 저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차까지 내달리고 말았지만, 마음은 내내 거기 서성거렸다. 녀석, 장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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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별, 바람

from text 2010/04/18 23:26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기발하고 기지로 가득 찬 문장들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그야말로 거대하고 중대한 농담 덩어리이다. 울적하거나 쓸쓸하고, 때로 사는 일이 한없이 허무하거나 어이없을 때, 지루한 나날에,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들춰보기 좋은 책이다(특히 우울증에 걸린 로봇, 마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200쪽이 넘는 합본호를 사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까지 700여 쪽을 단숨에(여러 번 나누어 읽었음에도, 그렇게 느껴진다) 읽었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와 대체로 무해함은 남겨둘 생각이다. 보험처럼 넣어뒀다 언제든 필요할 때 써먹을 작정인 것이다. 사실 잘 알 순 없지만 줄곧 번역이 참 매끄럽고 좋다는 드문 느낌도 받았다.

박범신의 에세이집 산다는 것은이 좋았다. 오래전 연작소설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보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였다가 이번에 또, 다시 보게 되었다. 늙는다는 것과 나의 삶에 대한 위안도 얻었다. 책장을 덮고, 조금 전, 흰 소가 끄는 수레를 꺼내 잠시 뒤적거린다는 것이 한 편을 다 읽고 말았다. 이번 에세이집과 여러모로 맥이 통하고 있었다. 서른에 읽었을 때는 무엇을 보았는지 좋게 본 기억만 있었는데, 이제 마흔이 넘어 다시 읽으니 폐부를 찌르는 듯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읽고 둔 책들이라도 간혹 꺼내볼 일이다.

그저께는 출항 일정이 잡힌 준탱이 녀석을 붙들고 밤새 술을 마셨더니, 깨고 보니 오늘인 듯 여태 멍멍하다. 요즘 들어 몸이 하는 말에 부쩍 귀를 기울이면서도 복명은 고사하고 복창도 아직 멀었단 말인가 싶으면서도 핑계거리도 줄었는데 어쩌나 하마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