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2

from text 2010/10/25 19:19
어제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제28회 덕영배 아마대왕전 어린이 부문 예선 겸 2010 어린이 바둑 큰잔치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1위를 차지하며 이번 주 토요일 덕영치과병원에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하였다. 8강이 겨루는 이번 본선에서 우승을 한다면 지난 4월 25일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대구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2학년부터는 우승을 하면 통상 상급 단증을 주니 내년에는 아마도 유단자부에서 자주 대회를 치를 터이다.

월간 바둑을 보다 보면 대구의 바둑 교육에 대해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거기 실린 자료로만 보자면 대구의 바둑교실 수는 타 시도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나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은 65개교, 경기도는 112개교, 대전이 57개교, 부산이 46개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인천, 전라남도, 강원도가 각 2개교씩 운영하고 있어 별나게 유난을 떨 일은 아니겠지만 경상북도와 더불어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어째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바람보다 잘 흔들리는 아비를 굳게 잡아준 두 아들에게는 미움보다 큰 빚을 졌다.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바다.

* 좀 전 셔츠를 다리다 주머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종이 뭉치를 발견하였다. 부피를 보아도 그렇고 셔츠 주머니에 있은 걸로 봐도 그렇고 간단한 메모나 어디 술집 전표이거나 할 터인데 도통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나마 궁금하지도 않더니 문득 이렇게 늙어가나, 움켜쥘 어떤 것들도 그저 이렇게 가버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디오에서는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이 경음악으로 구슬프게 흘러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게도 많은 빚을 졌다. 아, 그리고 당신에게도. 물론 되갚을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누군가는 그저 받아먹기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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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from text 2010/10/16 11:43
전시륜의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재미있게 읽었다. 늙어서 꼭 다시 펼쳐보아야지 하면서, 옛날에는 좋았겠다 그랬다. 전시륜보다 멋진 여자들이 넘쳤다. 스무 살 무렵 들은 선배들 이야기가 있다.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때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도 있는데 그럴 때면 상대가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꼭 돌려놓아 주곤 했다는 얘기다. 그 세대는 그랬단다. 그게 통하는 예의였단다. 삼사년 된 일이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에 같이 들어가던 이가 내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아 주거나 나란히 신발장에 넣어주던 일이 있었다. 그 손매가 마음만큼이나 예뻤다. 그 마음을 통째로 가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한세상 살다가는 것이 무에 그리 잘나고 지랄난다고 속 쓰고 애태우는지 모를 일이다. 갈데없는 영혼들은 스스로 제 몸을 갈 데까지 밀고 가기도 한다. 찬 바람은 거짓말 같던 여름을 밀어내고 가뭇없이 가버린 것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게 주저앉아 울던 어떤 것들은 떨어져 꽃잎이 되기도 하였고, 가만히 토닥이는 손길에 놀라 달아나기도 하였다.

새벽 네 시, 돌아오는 길목들은 죄다 낯설었다. 내가 제 모습으로 세상을 보는지 세상이 비로소 제 모양을 드러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랜만에 가이아가 뒤척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풰스튀봘에게 경배를.

꿈, 가을

from text 2010/09/26 17:05
꿈을 꾸었다. 외딴 변기에 갇힌 꿈. 사타구니를 휘감아 흐르는 물뱀의 서늘함과 미끈함이 오랜 친구 같았다. 가을빛이 이리 시리건만 거기, 물 밖 꿈들은 대체로 안녕한지, 다시 피었다 지기도 하는지, 묻는 말에 거품만 부글거렸다. 대답할 길이 없었다.

가을이다. 결코 정을 나눌 생각은 없지만 최악의 인간상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게 되었다. 수확이라면 이른 수확이다. 피폐한 중에 최성각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를 읽고 몇 권의 책을 주문하였으며, 마루 밑 아리에티, 슈퍼 배드, 무적자, 해결사 등을 보았다. 사진이야 찍거나 말거나 작고 예쁜 디지털 바디가 소원이더니 후지필름이 포토키나 2010에서 발표한 파인픽스 X100 때문에 모처럼 가슴 두근거리며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내년 3월은 되어야 출시될 모양이니 그전에 나올 여러 모델들과 비교하며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여전히 사는 건 녹록치 않고 간밤 꿈에 낮으로 시달리기도 하지만, 가을빛을 보니, 세상은 참으로 지내볼 만한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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