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동말동

from text 2011/08/25 14:37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과 조세래의 승부를 인터넷 헌책방에서 구해 읽었다. 설국이 아니라 명인을 대표작으로 꼽는 이들이 있다던데 백번 공감이다. 승부는 완독한 거의 최초의 무협소설이랄까 대중소설이랄까, 덕분에 며칠 재미있게 보냈다. 완간되지는 않았지만 호타 유미 글, 오바타 타케시 그림의 히카루의 바둑도 재미있게 읽었다. 다 바둑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그전에 읽은 것으로는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와 흙을 밟으며 살다,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재닛 에바노비치의 원 포 더 머니가 기억에 남는다. 이대로 살 수 없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건 아닌가 간혹 돌아보게 된다. 이대로 잘 살 수 있도록 몰아도 될동말동한데 말이다. 이른 가을에다 늘 흐리고 비가 오니 내 세상을 만난 듯 새 세상을 본 듯 힘이 솟기도 한다. 며칠 전 술을 마시러 간 들안길 한 모퉁이(도레미, 그때 생각이 문득 났더랬다)에서는 동쪽 하늘을 온통 가르는 큰 무지개를 보았다. 미리 앉아 있던 사람을 끌어내 무지개를 보여주었고, 함께 술집으로 돌아왔다. 전작이 있었는지 무지개는 일찍 곯아떨어졌고, 어디에 있었더라, 내 몸에서는 짙은 무엇이 빠져나갔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from photo/etc 2011/08/17 14:42
대한생명배 입상자들의 기념사진. 바둑뉴스에서 퍼왔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저 자리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14, 15일엔 원주의 오크밸리에 다녀왔다. 서율이를 낳고부터는 어디 다닌 기억이 별로 없는 게 참 오랜만의 나들이였다. 직장 후배의 주선으로 차편이나 숙소 걱정 없이 온통 초록 속에 잠길 수 있었다. 그리고 달팽이가 한 마리 더 늘었다. 원주에 다녀오기 전, 같은 화단 깊은 곳에 뒹구는 걸 서연이가 발견한 것이다. 이제는 저나 나나 오며가며 그 화단을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 더는 없는 것 같고, 아마 세 마리를 누가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제 엄마와 함께 지은 이 녀석의 이름은 날라리를 따서 달라리란다. 이제껏 놀고 농땡이 피우다 꼴찌로 느지막이 들어와서 그렇대나 어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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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중이

from text 2011/08/09 11:33
별일이 다 있다. 엊저녁 서연이랑 배드민턴을 치고 들어오는 길에 달범이를 만난 자리 부근에서 똑같은 종류의 달팽이를 본 것이다. 덩치가 약간 더 큰 이 녀석은 그간 먹을 게 마땅찮았는지 레종 담뱃갑을 물어뜯고 있었다. 안 됐기도 하고 망설이다가 서연이에게, 아빠는 한 마리 더 키울 생각이 없다, 다만 네가 꼭 키우겠다면 네가 들고 들어가자, 그러면 번식은 않는 걸로 하고 한번 키워보겠다 했더니, 한참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마음을 내어 냉큼 들고 오는 게 아닌가. 안 그래도 데려왔을 터이지만 꼼짝없이 짝을 지어줄 핑계가 생긴 것이다. 달걀껍질 부순 것에다가 상추, 배추를 한 장씩 넣어주었더니 잘 먹고 원기를 회복한 듯, 아침에 보니 잔뜩 움츠리던 어제와 달리 손길에 큰 거부감이 없다. 서연이에게 이번에도 이름을 지어주라 했더니 대뜸 달중이란다. 높지도 말고 낮지도 말고 중간으로 하라는 말이라니, 녀석, 어느 책 어느 대목에서 그 비슷한 걸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감도 그렇고 딱 좋다. 녀석은 오늘부터 3박 4일 서울, 분당으로 바둑대회 참석 겸 견학 겸 다녀온다. 어미아비와 떨어져 처음으로 긴 시간을 보내는 것, 견문도 넓히고 속도 채우는 시간이 되기를. 잘 다녀오려무나.

* 오늘(8월 10일)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11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녀석은 저학년부에 출전하여 4강을 차지하였다. 예선은 통과하겠지, 그것도 대진 운이 따라야 할 텐데, 4강까지는 갔으면 좋겠는데, 했던 것이 승전보를 전해 올 때마다 욕심이 늘어, 결과가 나오고 나니 처음 바람은 잊고 졸였던 마음만큼이나 많이 아쉬웠다. 비록 학년부이지만 전국에서 모인 64명이 겨룬 본선, 잘했다, 반상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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