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from text 2010/08/18 21:39
비가 달라졌다. 기후가 바뀐 것이든(TV, 에어컨, 차 없이 잘(?) 살고 있으나 이참에 에어컨은 장만할 생각이다. 올해도 여러 번 망설이다 그냥 지나가지만 내년에 다시 오락가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적어둔다) 원래 그런 것이었든 지금껏 알고 좋아하던 그 비는 아닌 게 분명하다. 가벼운 인두염인 줄 알았더니 며칠째 열이 내리지 않아 소아병원에 입원한 서율이를 두고 집으로 오던 길, 우산을 들고도 시장 네거리 마트 앞에 서서 비를 피하며 그 생각을 하였다. 늦은 밤, 저녁을 굶은 속에 들이키는 깡통 맥주는 저 혼자 출렁거렸고 포도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길대로 흐르기를 거부하였다. 모퉁이를 돌아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제멋대로 내달렸다.

지난 일요일 서연이와 오션스를 보았을 때, 그게 다 존재가 외롭고 슬퍼서 그런 거라 했었다. 바다 생물들이 떼를 지어 어떤 형상을 만들고 무리지어 내달리거나 거대한 몸체를 솟구치며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술을 먹고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거나 어두운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몰래 울음을 토해내는 모습을 닮아 있다. 그렇게 취하고 소리 지르며 울거나 알아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거기 있는 것이다. 스크린 너머, 짐승의 젖은 눈망울 속에는 비리고 날 선 우리의 욕망과 거울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는 또 다른 초상이 교차하고 있었다.

몽골 여행 전후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을 읽었다. 진작 이 흥미롭고 감미로운 책을 제목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읽다 발견하고 할끔할끔 핥아 읽었다. 무엇이든 탐독하던 한때처럼 밑줄 그을 일이 많았다. 다 밑줄을 칠 순 없는 노릇이라 아껴가며 읽는 맛이 더했다. 이 사유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 일일 것인가. 자라온 지난날과 그에 비추어 앞날을 반추하는 것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가 스스로와 세상을 더 끔찍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모래언덕처럼

from text 2010/08/12 18:13
지난주 월요일, 몽골에서 돌아온 날 저녁, 사무실 회식을 시작으로 수요일과 금요일 늦게까지 많은 술을 마셨고, 어제, 그제, 그끄제 내리 사흘 또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가졌다. 고비 사막에서의 첫날, 몽골인 가이드 어기의 재담과 몽골 사람들의 유목민풍 노래에 취하고 급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와 몽골 보드카에 취한 이후 넓거나 깊어진 것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돌아온 게 이제야 납득이 되고 실감이 간다. 사람은 얼마나 관대할 수 있고 어디까지 추할 수 있을까. 울림 큰 가락을 타고 언제 뜨거웠냐는 듯 곳곳에서 식은 바람이 모여드는데 나는 홀로 모래언덕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세상엔 하현을 향하는 달만 멀쩡하였고, 눈이 마주치자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은 이광구가 엮은 조훈현과의 대화에서 조훈현.

편한 대로 이해하세요.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착하다는 것과 승부에서 마음이 여리다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착한 사람은 승부끼가 없고 나쁜 사람이라야 승부에 강하다는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승부에서는 더 지독해지고 더 처절한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은 아니고 저도 어디선가 읽은 얘기인데, 저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자니 좀 쑥스럽습니다만, 승부는 말하자면 결단의 연속인데, 결단이란 요컨대 '선의의 의지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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