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더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술이라도 끊어 볼 일이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다른 생각만 하였다. 펄펄 날아다니던 것들은 그날 그것이 아니었다. 묵은 사진이 이야기하는 것이 묵은 시절에 대한 게 아닌 것처럼, 지나간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다. 낙엽은 재빨리 움츠리라는 명령,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대 목소리, 어린 체구가 하늘 건너듯 건넌 도랑물 소리보다 멀다.
결혼한 처제의 배려 덕에 일없이 호텔 인터불고 엑스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서연이와 사우나에서 바둑 한 판을 두고(요즘은 간혹 둘 때면 한 번 이겼다 한 번 졌다 내가 두 점을 놓고 막상막하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객실 TV로 한참 시간을 때우고는 0124님, 율이와 함께 동보성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아침은 예그리나에서 조식 뷔페. 분답기 한이 없는 녀석들, 밥이고 잠이고 알량한 휴식이고 아직은 사치인 걸까. 무기력한 손끝에 겨우 찍은 사진들에서 몇 컷.
제28회 덕영배 전국 아마 대왕전 및 어린이 초청전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연이가 1학년부 우승을 하였다. 애들은 애들이라 금방 맞붙어 겨루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울려 장난도 치고, 몇 번 본 녀석들끼리는 바둑을 두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승부를 일찌감치 결정짓기도 하였다. 곁에서 자식들의 한 수 한 수에 마음을 졸이는 못난 부모, 오늘은 나를 여러 번 돌아보았다. 선물로 찜질방에서 실컷 먹고 놀고 나오는 길, 밤공기가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