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에게

from text 2012/08/14 15:06
병영집체교육이란 게 있었다. 1988년 늦은 봄이었을 게다. 어느 밤, 동기생 한 명이 뭔가에 잘못 걸려 내무반장의 지시로 원산폭격을 하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그가 부른 건 막 우리들 사이에 유행을 타기 시작하던 '직녀에게'였다. 곡조도 가사도 부르는 이의 음색과 제대로 맞아떨어져 내무반은 일순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고, 내무반장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사태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에 노둣돌을 놓아
그대 손짓하는 연인아 은하수 건너
오작교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 딛고 다시 만날 우리들
연인아 연인아 이별은 끝나야 한다 슬픔은 끝나야 한다 우리는 만나야 한다

어쩌다 한가인의 소주 광고를 보았다. 그립던 이미지와, 꼭 한 번 해보고 싶다던 게 떠올랐다. 밤새 얘기며 술이나 노래를 나누는. 철마다 한 번쯤 볼 수 있다면 좋았을까. 아니 좋은 계절을 정해 한두 해에 한 번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장악하지 못한 채 사태는 흘러간다. 맡길 뿐이다.

풍문

from text 2012/07/11 17:15
더위가 결정되었다. 소식을 들은 아내는 존재와 무를 덮고 소리없이 웃는다. 어느 저녁, 무심한 영혼은 정갈히 손톱을 다듬고 술을 마시러 나간다. 짐승이 사냥에 나서기 전에 발톱을 갈듯 잘 갈무리한 손톱을 전장에 내어놓는 것이다. 분지는 습도로 충만하고 술잔에는 저마다 가속도가 붙는다. 서로 침범하던 무리 일부는 상대의 영역에서 소리내어 운다. 풍문은 풍문에 그치고, 어떤 가슴은 그 자리에 거꾸러진다.

유월, 다시 둥지를 틀었다. 낯익은 곳이면서 낯설다. 장마 한가운데 모처럼 자판을 마주하고 있자니 묵은 것들이 눅눅하게 올라온다. 사무실 바닥에는 며칠 슬픈 가락처럼 검정왕개미가 잔뜩 출몰하였다.

별똥 떨어지듯

from text 2012/05/14 17:45
무엇이 그렇게 바빴나 모르겠다. 무엇이 이렇게 몰아붙였는지 모르겠다. 틈이 나면 민들레 달인 데 의지해 쫓기듯 술을 먹고는 제정신을 잊고 살았다. 얼굴은 밤하늘처럼 검게 쪼그라들었고 자라는 거라곤 미리 자리잡은 검버섯 밖에 없었다. 별똥 떨어지듯, 물론, 한 번뿐이다. 그렇다고 어느 곳에선가 다시 태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지금 생을 보내는 걸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룻저녁 평생을 살 듯 마셔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똥무더기에 냅다 몸을 던져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지난 5월 8일에는 엄청난 우박을 보았다. 용천사 쪽에서 오르는 비슬산 중턱 토담마을에서였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폭죽처럼 손가락 마디만한 우박들이 쏟아졌다. 산이 조난되고 곧장 다른 세상이 닥칠 것만 같았다.

근자에, 저나 나나 지루한 세태에 식물 대 좀비처럼 버닝한 건 스머프 빌리지와 타이니 팜이다. 타이니 팜에 관심이 더해가면서 잘 가꾸지 못한다는 이유로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스머프 빌리지를 지운 서연이는 한참을 울고 말았다고 한다(시든 작물을 보고 녀석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해를 넘겨 같이 꾸미던 것을 지운 마음은 어떤 것일까). 혼자 버닝 중인 건 다음 연재 웹툰 미생이다. 허영만 이후 만화를 이렇게 열심히 보게 될 줄 몰랐다.

다음은 그간 기록 못한 서연이의 대회 참가 일지.

12월 11일, 서구청소년수련관, 서구청소년수련관 개관 10주년 기념 청소년 바둑대회 유단자부 4강
12월 18일, 덕영치과병원, 제29회 덕영배 아마대왕전 어린이 부문 유단자부 우승
12월 30일, 서울 K-바둑 스튜디오, 제1회 K-바둑배 어린이 최강전 최강부 첫 경기 탈락
4월 15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0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6조 16위(2승 3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