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에 해당되는 글 5건

  1. 지리산 2008/03/30
  2. 휴일, 비 오는 우방랜드 2008/03/24
  3. 자유 앞에서 2 2008/03/20
  4. M6 스물한 번째 롤 2008/03/03
  5. M6 스무 번째 롤 2008/03/02

지리산

from text 2008/03/30 01:28
1박2일 지리산에 다녀왔다. 금요일 낮에 중산리에 도착하여 마음씨 넉넉한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물소리 바람소리)에 짐을 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는 법계사까지 올랐다. 흙길이 거의 없이 돌과 계단 투성인데다 연신 오르막이라 꽤 힘들었다. 겨우내 잘 걷지 않고 근래 마음은 마음대로 지친데다 몸은 몸대로 혹사시켰는지 일찍 다리가 아프고 호흡이 가빠 애를 먹었다.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꽤 많이 보이던 진달래는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다.

오르는 길 내내 경상대 사대부고 1학년 남녀 학생들을 마주쳤는데, 대부분 어찌나 인사성 바르고 활기차고 밝은지 우리 일행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아침에 출발하여 천왕봉까지 오르고 내려온다는 이들은 1년에 한 번 소풍을 이렇게 온다니 인솔하는 선생님들도 그렇게 듬직하고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법계사는 삼층석탑 외엔 근래에 지은 것들이라 볼만한 게 없었다.

내려오자마자 목마른 차에 다섯 명이서 동동주 두 되 맛있게 나눠먹은 게 어설프게 취하는 듯 하더니 펜션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소주 열두 병 먹고는 모두들 일찍 취하고 말았다. 모처럼 반주 없이 노래도 한 곡씩들 불렀다. 맑은 날이었는데 어째 별 한 점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남은 삼겹살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일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예담참숯굴랜드에 들러 숯가마에서 기분 좋게 땀도 내고, 예쁘게 내리는 비도 맞았다. 대구로 다시 돌아가는 게 이리 싫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산을 오르내리며 땀과 함께 털어버린 어떤 것들이 번잡한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악착같이 따라붙고 있었던 것일까, 앞산 어부이씨에서 잡어회와 생아구탕에 곁들이는 반주가 달았다.
모처럼의 휴일이었다. 금요일 밤부터 잔뜩 취해 토요일은 간데없고, 겨우 몸을 추슬러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우방랜드로 나들이 갔다 왔다. 0124님이 어느 사이트에서 신청한 세 식구 연간 회원권을 111,000원에 교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나선 것이다. 놀이기구를 많이 타지 못해 서연이는 아쉬워하였지만, 조용해서 좋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 개나리와 산수유 노란 물결 틈에 혼자 핀 진달래가 예뻤다.

* 휴일 이틀, 0124님이 중앙도서관에서 빌려놓은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The Romantic Movement)'를 읽었다. 수많은 앨리스와 에릭들, 뒤바뀐(또는 알 수 없는) 운명들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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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앞에서

from text 2008/03/20 16:04
하마터면 계절도 참꽃도 모르고 지나갈 뻔 했지. 아침에 보니 일찍 핀 목련은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드문드문 개나리도 피었고 연둣빛 잎새를 단 나무도 눈에 띄었다. 문득 매캐하던 서울 하늘이 떠오른다. 근 한 달여 절반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맑은 날을 본 기억이 없다. 며칠, 그 하늘처럼, 심란한 와중에 신경이 날카로웠나 보다. 마침 가까이 있다 찔린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우리 시대의 자유는 결국 '경제로부터의 자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차하면 길을 내면 된다는 거야 역시 술자리 허언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어느 쪽이든 한 발 내디디면 모양 다른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마치(어쩌면) 당당한 나락이냐, 안온한 나락이냐의 갈림길 같다. 모르거나 막혔을 땐 주저앉아 쉬거나 기다리는 법을 터득해왔건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티끌 같은 가벼움에 몸을 맡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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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 스물한 번째 롤

from photo/M6 2008/03/03 00:21
이 초라한 블로그가 나에게 가져다 준 게 적지 않다. 작은 허세일망정 지키게 하였으며,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활을 반추하게 해 주었다. 살다보면 생기기 마련인 크고 작은 매듭마다 잊지 않고 새길 수 있게 하였으며, 서연이의 소중한 성장 과정을 간직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그보다 더한 것들도 주었다.

한동안 이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 말이 그대로 거짓이 되든, 사는 모양이 거짓을 증거하든 할 거라는 예감에 눌린다. 스스로를 배반하는 걸 언제,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을까. 스스로가 이기든, 배반이 이기든, 멋지게 타협하든, 죽도 밥도 절도 다 떨어지든 할 테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후지 오토오토400

M6 스무 번째 롤

from photo/M6 2008/03/02 23:53
신상에 제법 큰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아마 더 있을 것 같다. 진득하니 뭔 일을 못하는 놈이 딱 때가 된 게지, 하다가도 이게 영 엉뚱한 데로 접어드는 건 아닌가, 한다. 자꾸만 어디서 본 듯한 이미지 같지만, 두 번째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

* Leica M6, summicron 50mm 3rd, 코닥 프로이미지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