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에 해당되는 글 6건

  1. M6 스물두 번째 롤 1 2008/04/28
  2. 웨딩드레스 2008/04/22
  3. 남이섬 2008/04/20
  4.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2008/04/10
  5. 불꽃놀이 2008/04/07
  6. 더하고 빼기 2008/04/05

M6 스물두 번째 롤

from photo/M6 2008/04/28 22:43
지난 목요일, 처음인 듯 평일에 둘이 시간을 맞춘 날, 서둘러 CGV에서 테이큰과 버킷 리스트를 보고 이이팔기념중앙공원에서 여유있는 하오의 공기를 즐긴 후 서연이를 데리고 렌스시에서 도다리를 먹었다. 그리고 어제는 앞산에 올랐다가 영대네거리까지 걸어 내려와 솥뚜껑삼겹살, 피쉬앤그릴, 노래방까지 내달렸다. 등산하고 나서 먹는 소주 섞은 맥주 맛은 참 일품이라 아니 할 수 없다(물론 몇 잔까지 그렇다. 그 다음부터 먹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서, 누가 먹는 건지 모른다). 그 바람에 다음날 못 견딜지라도(그래, 이제 좀 살살 사귀어보자고, 친구).

당신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 말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노래를 부를 때나, 혼자 밥을 먹을 때나, 차창에 비친 얼굴에 문득 눈물이 맺힐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차창에 비친 햇살에 언뜻 눈물이 흐를 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 생각에
폭음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거리를 헤매는
독한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이이팔기념중앙공원에서 혼자 한참을 노래 부르더니 문득 울어버린 여자가 있었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노래를 부르고는 나비처럼 어디론가 가버렸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 때문이었다면, 그 사람은 그 여자가 자기를 생각하며 노래 부르고 울었다는 걸 과연 알고 있을까. 알 수 있을까.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포트라160vc

웨딩드레스

from text 2008/04/22 11:50
인생은 생방송, 생일, 나의 20년, 청춘 브라보, 기타부기, 사랑해봤으면, 당신은 모르실거야, 웨딩드레스, 여자의 일생,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배신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는 게 뭔지, 타타타, 내 인생은 나의 것, 인생, 산 팔자 물 팔자. 어젯밤 1069회 가요무대에서 '인생이란'을 주제로 들려준 노래들이다. 생일, 나의 20년을 들으며 문득 아득해지더니, 웨딩드레스를 들으면서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한상일이라고 처음 보는 멋진 노신사가 마치 가곡처럼, 또는 읊조리듯 불렀는데, 나에게는 홍민이 부를 때보다 호소력이 훨씬 컸다. 오늘 검색을 통해 한상일, 홍민, 이은미, 임웅균 버전을 만날 수 있었다. 각자의 음색이 잘 살아있어 다 좋았지만, 모두 어제 한상일의 것만큼 좋진 않았다. 그간 홍민이 부르는 것만 보았던지라 원래 홍민의 노래인 줄 알았더니, 이희우 작사, 정풍송 작곡에 한상일의 노래였다. 정인엽 감독의 초기작 '먼데서 온 여자'의 주제가로 불렸다고 한다. 1970년 2월 발표).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 지나간 여러 청춘들이 하나둘 떠오르더니(노래방 문화가 없던 시절, 술자리에서 한 사람씩 날것으로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좋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사는 게 뭔지, 타타타,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소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소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 향기였다오
우리를 울렸던 비바람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눈보라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소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 향기였다오

언젠가 적당히 늙은 어느 날, 이 노래를 멋지게 부를 날이 있을까. 곱게 늙어가서, 한 십여 년 연습하면.

남이섬

from photo/D50 2008/04/20 23:50
어제, 0124님과 서연이는 춘천 남이섬에, 나는 단체로 산행을 갔다 왔다. 그 맑은 날에 몇 장 빼곤 죄다 ISO 1600에 맞춰진 상태로 찍어 노이즈가 자글자글했다. 고르고 고른 사진들. 산행은 월드컵 경기장 뒤편에서(해발 598미터의 대덕산이었다) 범물동 진밭골 입구로 넘어오는 코스였는데, 여름처럼 더웠으나,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어 있어 반가웠다. 골안골식당에서 삼겹살에 소주, 맥주 잔뜩 말아먹고, 송학구이, 노래방까지 냅다 내달렸더니, 이제야 정신이 조금 든다.

남들은 한 번 들어오기도 어려운 공장(?), 두 번이나 들어온 대단한 사람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듣곤 했는데, 결국 세 번 들어오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안온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조금은 독한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제 뭔갈 저지를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부류에 편입한 기분, 약간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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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from text 2008/04/10 19:26
최근 만난 글. 신경림의 시 '낙타' 전문과 서준식의 옥중서한 중 1985년 10월 26일자 편지 중에서. 무슨 덧붙일 말이 있겠는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관찰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관찰하면서도 그 인간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깊은 사색 없이 단순 소박하기는 쉽다. 그러나 깊이 사색하면서 단순 소박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을 기만하면서 낙천적이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을 기만하지 않으면서 낙천적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지 않고 포용하기는 쉽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를 증오하면서 그에게 애정을 보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외롭지 않은 자가 온화하기는 쉽다. 그러나 속절없는 고립 속에서 괴팍해지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적개심과 원한을 가슴에 가득 품고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개심과 원한 없이 사랑하면서 악과 부정과 비열을 증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모두'가 아니면 '없음'을, 빛나는 영광이 아니면 파멸을 원했던 나의 오만한 마음은, 이리하여 지금 '없음'과 파멸의 심연을 바로 눈앞에 보며 쓰러져 있다.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뿐만 아니라, 악과 부정과 비열에 대한 증오에 대한 증오까지도 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고 나의 목소리를 쉬게 했다. 나의 마음을 비틀어 놓았다.

* 이번에도 내가 표를 준 사람은 당선 문턱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아니 아예 의미 있는 수치를 기록하지 못하였다. 면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지역구는 애초 진지하게 기권을 생각하였으나, 나머지 한 표를 조용히 행사하려고 빗길에 아이를 데리고 나선 김에 보탠 것인데, 막상 전체 결과를 대하고 보니, 잘 갈라섰다던 마음이 저도 모르게 갈라서지 않았더라면 하는 데로 향하며 더욱 참담하였다(2.94%라니, 그럴 상태가 아니긴 했지만, 주위에라도 좀 적극적으로 알렸어야 했을 것 아닌가 후회스러웠다. 어쩌면 기대보다 높은 수치였는지 모르지만, 그쪽보다 서울 지역 득표율이 높았다는 걸 애써 위안 삼을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뜻밖의 성과들도 있었지만, 아깝고 안타까운 부분들이 많았다. 누굴 탓하겠는가.

불꽃놀이

from photo/D50 2008/04/07 00:43
벌써 봄은 다 가버린 듯, 반팔 소매로도 낮엔 더웠다. 두류공원부터 일대 벚꽃이 한창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사람에 치이고 그저 지칠 게 뻔했지만 '닌텐도DS'와 '불꽃놀이'에 현혹되어 또 우방랜드를 찾았다. 어디서 알았는지 요즘 닌텐도DS 노래를 부르는 녀석에게 (저도 대충 가격을 알기에)산타 할아버지를 둘러대어 연말까지 잘 미루어두었는데, 마침 이곳 영타운에서 세시부터 하는 빙고게임 타이틀이 닌텐도DS라 행여 하는 마음도 들고, 가까이에서 (개장 13주년 기념)불꽃놀이를 볼 욕심도 났던 것이다.

직장 동료 결혼식에 들른 0124님과 서연이를 입구에서 만나 곧장 영타운에 자리 잡고는 시끄러운 음악과 따가운 봄볕 속에 버텼으나, 짐작대로 셋 다 빙고 근처에도 못 가고 말았다. 그래도 긴 줄과 부실한 먹을거리에 지친 끝에 여덟시에 맞은 불꽃놀이는 감동적이었다. 불꽃이 터지는 바로 아래에서 맞는 불꽃들이 이렇게 장관일 줄 몰랐다. 마치 깊은 산 속, 그믐날 쏟아지는 별들이 그대로 눈 속으로 부서져 내리는 듯, 서연이와 나는 앉은 채로 그 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비교적 작은 규모일 테지만, 그만큼 가까이에서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불꽃 터지는 소리에 맞춰 저도 모르게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도 쿵쾅대고 울렁이는 가슴을 어찌할 줄 몰라, 마치고도 바로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방금 담배 생각에 잠깐 나가 제법 많이 내리는 비를 보니 기온으로는 몰라도 꽃으로는 다 간 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산에 올라 무리진 선홍빛 진달래를 만나면 늦봄을 즐길 수 있으려나. 봄나들이 한번 제대로 못하고 지나가나 했더니, 불꽃놀이 한번으로 올봄이 이리 빛나는가 한다.

더하고 빼기

from text 2008/04/05 15:22
어제, 뭘 좀 검색하다 만난 구절, 생텍쥐페리가 했다는 꽤 유명한 말인 모양인데, 여태 몰랐을꼬. 뭔가, 콱, 와 닿았다. 삶이든 관계든 그러할 테지.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그저껜 연일 술에 술을 더하다 결막하출혈이라고 왼쪽눈 실핏줄이 터졌다. 어제 찾아간 안과 의사 말이, 피로하면 그럴 수 있는데 가만 놔두면 일주일 정도 가고 처방해 주는 안약을 넣으면 한 오일 간단다. 안약을 받으러 간 아래층 약국 약사는 '음식물과는 관계 없지요' 하는 물음에 잠깐 눈을 반짝이더니 '술 마시면 핏기 안 가셔요' 하며 슬쩍 차림을 훑어봤더랬다. 저녁엔 괜히 야구장을 찾아 오연승을 달리던 삼성 라이온즈의 연승을 끊고, 밤 늦게 두산오거리 간바지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놈 핑계로 김치전골, 계란말이에 소주 넉넉하게 먹었다(지리산부터 시작해, 요 며칠, 이 팀, 가창에서 점심 먹고, 저녁엔 강구항에서 대게 먹고, 갈비살 점심에, 툭하면 사우나, 하루 건너 하루 쉬며, 누구 말마따나 여유로움 작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