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ext 2008/05/15 15:11
산을 찾아, 골도 깊은 산을 찾아
죄 없는 꽃을 꺾던 순간
먹물처럼 발끝에서 달아난 검은 그림자
제 모양을 일구는 사이
발밑이 하얗게 무너진 자리에
흑백으로 세상을 재구성하던 날, 저무는 산을 찾아
죄 많은 꽃을 꺾던 그 순간
격발된 유황처럼 달아오르던 몸뚱이, 숨길 곳 없어
산을 찾아, 숨을 것 많은 산을 찾아
꽃을 꺾던 순간, 내 멱을 따던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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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2

from photo/D50 2008/05/13 22:23
한 번 타자에게 존재하였던 자는, 그 타자가 완전히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여생 동안 자기의 존재에 의해 감염되어 있다. 그는 자기 존재의 하나의 끊임없는 가능성으로서 자기의 대타존재의 차원을 계속해서 파악할 것이다. 그는 타자에 의해 소유된 자기의 모습을 탈취하여 회수할 수 없다. 타자에 의해 소유된 자기의 모습에 대해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희망까지도 그는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해된 타자가 나에 대해 그 자신이 소유했던 모습의 열쇠를 무덤까지 가지고 가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타자에게 존재했던 모습은 타자의 죽음에 의해 영원히 응고되어 있는 것이다.

장 폴 사르트르. 변광배의 '시선과 타자'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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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1

from photo/D50 2008/05/13 22:13
긴 연휴, 토요일과 일요일 0124님은 직장 체육대회로 충북 괴산에 갔다 오고, 어제, 오늘은 함께 포항엘 갔다 왔다. 바다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낮아 겨울바다를 연상케 했다. 동대구역, 포항역, 죽도시장, 과메기회식당, 삼식이, 북부해수욕장, 엔비치, 굴개굴개 청개구리, 오뎅사께, 불꽃놀이, 포스코 불빛, 멍게, 해양회대게센타, 튀어 오르던 방어, 회국수, 다시 포항역. 동대구역에 도착하여 신라명과 샌드위치와 롯데리아 새우버거를 먹고 나오는데, 삽시간에 하늘이 검게 변하더니 천둥 번개에 마음 같은 비가 내렸다.

한 순간 그럴 수 없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 낯설기만 한 감정도 아니건만, 많은 것이 비어버린 듯, 아리고 아프다. 편하려 했던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 되어버릴 줄 몰랐다. 여행 내내 따라다닌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이 독한 환영은 언제쯤 나를 놓아줄 것인가.

세상이 강요하는, 그래서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두 갈래 길이 마뜩잖다. 어찌 길이 두 갈래 뿐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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