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from text 2008/05/10 23:04
사랑 때문에 빌어먹을 사랑 때문에 죽으려, 죽으려 해봤던 사람의 다음 사랑은 치열할까, 단정할까. 바람이 분다. 언제 세상이 한번 다른 세상이었던 적이 있냐고, 다른 세상을 보여 주마던 바람이, 흔들고 흔들리던 그 바람이 묻고 있다. 여전히 이 세상은 그 세상이었고, 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루이 말 감독, 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데미지' 마지막 대사. 이게 일종의 반어로 쓰일 수도 있는 줄 몰랐다).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간 사람은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 법, 그러나 어디에도 심장을 내어놓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새,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는데, 많은 게 달라졌다. 저무는 마음, 저무는 몸에 한 줄 칼날이 지난다.

* 오월 초부터 삼십도를 웃돌며 제멋대로 날뛰던 더위가 주춤하다. 그저께 밤부터 선선하던 바람이, 가을인 듯, 가슴에 실금 하나를 남겼다.
Tag // , ,

M6 스물두 번째 롤

from photo/M6 2008/04/28 22:43
지난 목요일, 처음인 듯 평일에 둘이 시간을 맞춘 날, 서둘러 CGV에서 테이큰과 버킷 리스트를 보고 이이팔기념중앙공원에서 여유있는 하오의 공기를 즐긴 후 서연이를 데리고 렌스시에서 도다리를 먹었다. 그리고 어제는 앞산에 올랐다가 영대네거리까지 걸어 내려와 솥뚜껑삼겹살, 피쉬앤그릴, 노래방까지 내달렸다. 등산하고 나서 먹는 소주 섞은 맥주 맛은 참 일품이라 아니 할 수 없다(물론 몇 잔까지 그렇다. 그 다음부터 먹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서, 누가 먹는 건지 모른다). 그 바람에 다음날 못 견딜지라도(그래, 이제 좀 살살 사귀어보자고, 친구).

당신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 말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노래를 부를 때나, 혼자 밥을 먹을 때나, 차창에 비친 얼굴에 문득 눈물이 맺힐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차창에 비친 햇살에 언뜻 눈물이 흐를 때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 생각에
폭음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거리를 헤매는
독한 사람이 있는가, 말이다.

이이팔기념중앙공원에서 혼자 한참을 노래 부르더니 문득 울어버린 여자가 있었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노래를 부르고는 나비처럼 어디론가 가버렸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 때문이었다면, 그 사람은 그 여자가 자기를 생각하며 노래 부르고 울었다는 걸 과연 알고 있을까. 알 수 있을까.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코닥 포트라160vc

웨딩드레스

from text 2008/04/22 11:50
인생은 생방송, 생일, 나의 20년, 청춘 브라보, 기타부기, 사랑해봤으면, 당신은 모르실거야, 웨딩드레스, 여자의 일생,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배신자,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는 게 뭔지, 타타타, 내 인생은 나의 것, 인생, 산 팔자 물 팔자. 어젯밤 1069회 가요무대에서 '인생이란'을 주제로 들려준 노래들이다. 생일, 나의 20년을 들으며 문득 아득해지더니, 웨딩드레스를 들으면서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한상일이라고 처음 보는 멋진 노신사가 마치 가곡처럼, 또는 읊조리듯 불렀는데, 나에게는 홍민이 부를 때보다 호소력이 훨씬 컸다. 오늘 검색을 통해 한상일, 홍민, 이은미, 임웅균 버전을 만날 수 있었다. 각자의 음색이 잘 살아있어 다 좋았지만, 모두 어제 한상일의 것만큼 좋진 않았다. 그간 홍민이 부르는 것만 보았던지라 원래 홍민의 노래인 줄 알았더니, 이희우 작사, 정풍송 작곡에 한상일의 노래였다. 정인엽 감독의 초기작 '먼데서 온 여자'의 주제가로 불렸다고 한다. 1970년 2월 발표).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에서 지나간 여러 청춘들이 하나둘 떠오르더니(노래방 문화가 없던 시절, 술자리에서 한 사람씩 날것으로 부르는 노래가 그렇게 좋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사는 게 뭔지, 타타타,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정말 아름다웠소
춤추는 웨딩드레스는 더욱 아름다웠소
우리가 울었던 지난날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가 미워한 지난날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소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 향기였다오
우리를 울렸던 비바람은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우리를 울렸던 눈보라도 이제와 생각하니 사랑이었소
당신의 웨딩드레스는 눈빛 순결이었소
잠자는 웨딩드레스는 레몬 향기였다오

언젠가 적당히 늙은 어느 날, 이 노래를 멋지게 부를 날이 있을까. 곱게 늙어가서, 한 십여 년 연습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