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식

from text 2022/02/28 11:37
많은 일들이 그렇듯 좋은 줄 몰랐던 그때가 좋았다. 돌아보면 지금도 그때가 될 것이지만 더는 젊지 않으니 어쩌랴. 마른 봄이 오는 길목에서 송창식의 잊읍시다를 느리게 느리게 불러 본다. '간밤 꾸었던 슬픈 꿈일랑 아침 햇살에 어둠 가시듯 잊어버리고, 함께 피웠던 모닥불도 함께 쌓았던 모래성도 없던 일로 해 두고,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조심조심 아주 조금씩 다시 찾자고' 천천히 천천히 불러 본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표가 난다. 잘 감출수록 잘 드러나는 법, 가는 겨울도 슬픔을 아는 것인가. 터지는 매화 꽃망울이 너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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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꿈

from text 2022/02/13 09:12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들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싱글 몰트와 함께한다. 생계는 아름다우나 인생은 슬픈 것. 황금의 물결을 따라 나비떼가 난다. 이나무, 팽나무, 좀작살나무. 바닥 없는 곳으로부터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여럿 가운데 하나여도 좋아라. 그래, 아끼기 힘든 것이 어찌 너만이랴. 아낌 없는 마음도, 아끼는 마음도 좋아라. 이 절기에 핑계가 더 필요할까. 다만 잔을 들어 가고 오는 일을 기릴 뿐.

올해도 바싹 마른 봄이 오려나, 유난히 겨울 가뭄이 길다. 그해 가을 같은 날이 올까. 오래된 나무 향에 취해 나무가 꾸는 꿈이 되었다가, 낯선 꿈이 슬퍼 오늘은 오래 울었다.

어느 저녁

from text 2022/01/12 21:43
술이 고픈 저녁, 그림자처럼 길게 몸을 끌며 지나간 이들을 생각한다. 바람이 분다. 겨울 칼바람도 느린 걸음을 재촉하지 못하고 하나둘 불을 켜는 가게들을 위협할 따름이다. 지나간 일들이 지나간 이들을 차례로 지나간다. 다만 술이 고픈 저녁, 겨울 해는 짧아 어째 설움이 긴 것인가. 오늘 마시지 못할손 다시 마시지 못할까마는, 부질없이 마음은 바쁘고 걸음은 더욱 느리다. 지난날처럼 아무데고 혼자 들어가 술잔을 기울이지도, 다 늦은 시간에 누구를 부르지도 못할 것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지나간 이들과 지나간 길을 길게 걷다 보면 마치 여러 사람과 번갈아 술잔을 주고받은 것처럼 적당히 취기가 오르기도 한다. 가장 먼 길을 가장 길게 걷다 보면 고픈 술을 달래고 지난날처럼 훗날을 기약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쯤이면 길 끝에서 다시 바람이 불고, 시린 눈에는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저녁이 곱게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