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을 보며

from text 2022/12/22 14:10
첫눈이 온 날, 혁명 기념일에 기념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생각한다. 하얗게 변하는 세상을 보며, 성냥불처럼 꺼졌어도 화약으로 타올랐던 이들에 대해 잠시 생각한다. 첫눈이 오면 만나기로 한 사람도 생각한다. 그 사람은 이미 까맣게 잊었거나 첫눈을 핑계로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세월에 녹아 벌써 없어졌고 어쩌면 나처럼 장소와 사람이 연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겠는가. 그저 첫눈을 보며 가물가물 옛일을 생각한다. 시절이 좋아 어디서든 단 한 번을 기다리지 않고 다만 먼일을 기약한다.
Tag //

사계동행

from text 2022/12/12 08:25
사계동행 친구들과 토, 일 거제도에 다녀왔다. 이 모임에서 식구들 빼고 일박으로 어디 다녀온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남다른 감회들이 있었다. 덕포해수욕장에 있는 한 친구의 옛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조개찜과 구이를 안주로 술을 잔뜩 먹고 노래방에 가 노래도 불렀다. 아침은 인근에서 굴국밥, 점심은 돌아오는 길에 밀양 유천본동식당에서 잡어추어탕을 먹었다. 역사가 있는 집인 모양인데 우거지를 넣고 잡어로 추어탕처럼 끓여 낸 게 시원한 맛이 일품이었다. 오가며 해저터널과 거가대교, 짙푸른 바다가 인상에 남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든 오랜 친구들과 대화가 좋았다. 사계동행은 만나고 나면 늘 배우고 조금 더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인연이 여기에 이른 것에 감사한다. 누구의 건배사처럼 육십에도 무사히 보기를. 여전하기를.
Tag //

오늘, 문득

from text 2022/11/27 10:55
어릴 적 눈물의 고향이 그래도 생각해 보면 한 번쯤 날 미소 짓게 한 추억은 있을 거야
세상을 향해 나올 때 난 누굴 의지했나 땅거미 진 창가 별 하나 보여주던 그도 이미 떠난 사랑
너도 가고 나도 가고 이 세상은 보이는 곳 아니야 괴로워 말기 원망도 말기 아름다운 세상만 보기

세상을 향해 나가봐 넌 나를 의지하니 세월 빠르게 지나 우리의 마지막 남아있는 사랑까지
세상 다 아니고 멀지도 않은 너 하나 용서 못하겠니 외로워 않기 슬퍼도 않기 미웠었던 기억도 않기
오래전 그날처럼 초록 나무 이름 모를 꽃 하늘 구름 바람 눈부신 햇빛까지도 사로잡은 오후의 평화
눈물도 놓고 추억도 놓고 사랑했던 사람도 놓고

그래, 올겨울은 이 노래다. 2007년 발표한 심수봉의 11집 타이틀곡 오늘, 문득.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