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준비

from text 2022/03/20 20:30
반백 년을 넘게 살았으니 남은 날들 중에 지금이 가장 좋을 때요, 이제 가장 좋을 날들만 순차적으로 남은 셈이다. 쇠약해 가는 육신을 따라 어쩌면 생각은 조금 여물고 마음은 덜 부대낄지 모르겠다만.

휴일 아침,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화양연화를 다시 보았다. 잠시 비밀을 봉했던 진흙이 풀리고 풀씨와 꽃씨 같은 것들이 날아다녔다. 누구에게나 벼르던 일들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잠시 담배 한 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래, '먼지 쌓인 유리창'은 아랑곳없이 '그 시절은 지나갔다. 그 시절이 가진 모든 것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거기나 여기나 시간과 기억이 헝클어지기는 매한가지, 누구나 그 정도는 알고 있다.

* 제목은 작중 양조위의 대사 '나 좀 도와줄래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어요'에서 따온 것. 이별 연습으로 유명했던.

권주가

from text 2022/03/19 12:19
며칠 흐리고 비가 내렸다. 봄은, 봄이 오기 전은 언제나 사계절이 섞여 어제는 초여름이었다가 오늘은 초겨울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그리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젊음이었고 못 견디게 사무친 것은 네 눈빛이 아니라 피안의 손짓이었다. 바람이 불어 한겨울이더니 바람이 불어 봄이로구나. 내가 그리워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절이었고, 네가 아니라 나였다. 만개했던 매화 꽃잎이 비에 젖어 구겨진 채 바람에 날린다. 이 봄에는 꼭 꽃구경도 하란다. 산에 올라 진달래도 보고 꽃길도 걸으란다. 가고 오지 않음만 일일까. 잔도 없이 찬도 없이 무어라 무어라 자꾸만 권주가를 부른다.

봄꽃

from text 2022/03/14 08:47
부질없는 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봄, 너는
불꽃이로구나.
부질없는 것을
부질없게 만드는
너는 불꽃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