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6 서른 번째 롤

from photo/M6 2010/03/21 22:05
나나 내 가족 또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나 가능성에 대한 고려, 적어도 그 정도의 분별력을 갖는 것이 세상일을 꾸미거나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가 아닐까. 자신의 안위를 바탕으로 쉽게 타인의 삶이나 병리적 현상들을 재단하는 사람들과 세태가 갈수록 두렵다. 망가져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새삼 '거대한 기획'이 절실함을 느낀다. 설령 아무것도 멈추거나 바꿀 수 없을지라도 어떤 커다란 기획을 염두에 두고 모색하고 저지르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뭣하면 쭈그리고 앉아 비명이라도 지르고 꼬부라진 혀로 주정이라도 부릴 일이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라도 꿈틀, 살아야 하는 것을.

* Leica M6, summicron 35mm 4th, summicron 50mm 3rd, 코닥 컬러플러스200

봄눈

from text 2010/03/10 23:05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삼월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양으로 오십삼 년 만의 기록이라는데, 9.5센티미터가 넘게 쌓였다고 한다. 출근길, 730번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서 차를 돌렸고 우산이나 휴대 전화를 들고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설악산의 눈이 생각났다. 금세 세상이 이렇게 온통 하얘질 줄 누가 알았으랴. 더는 배울 줄 모르는 무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만 같았다.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과 받드는 나무들이 예뻤다.

봄눈은 봄눈이었던가. 오후의 짧은 볕에도 세상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퇴근길에는 꿈을 꾼 듯 먼 옛일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재작년 11월에 사다놓고 표지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져두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며칠 동안 읽었다. 김연수가 문득문득 떠올랐으나 그와 달리 불쾌한 구석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이었다. 특히 여섯 번째 구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소통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독법일런가. 내내 오스카와 서연이가 겹쳤고, 나는 오스카가 되었다가 서연이가 되었다가 하였다. 물론 토머스도 되었고 슈미츠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 눈길에 미끄러져 가련한 내 사랑이 부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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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from text 2010/03/07 23:40
올봄은 유난히 비가 잦은 것 같다. 늘 그랬는지도, 늘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만, 비 오는 날마다 술을 먹다가는 새로 겨울눈 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였다. 삼월 첫 토요일, 오전 내 흐리기만 하던 하늘이 막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할 즈음 사촌 여동생 결혼식에 들렀다(오전에는 갓 입학한 서연이의 하교를 기다려 집으로 데려왔다. 일학년 이반 교실에 앉은 녀석의 가늠할 길 없는 포스를 잠시 지켜볼 수 있었다). 고향집을 지키고 계시는 작은 아버지의 막내딸 결혼식인데, 얼굴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마을 분들도 오시고 몇 년 만에야 가끔 뵙는 일가 어른들도 오셨다. 다른 집 대소사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한번씩 이 같은 일을 치를 때면 가족이란 게 뭔지, 가족사란 게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린 기분에 젖곤 한다.

0124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는 친구네 안사람이 딸, 아들 대동하여 놀러온다기에 불편할까 하여 다시 집을 나섰다. 우산을 챙기지 않고 서둘러 나선 길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정처가 없던 차 마침 신호에 걸린 노선버스에 냉큼 올라타고는 얼마 전 서연이와 하치 이야기를 볼 때 예고편을 보았던 밀크나 볼까 하고 시내 극장가로 나갔으나 걸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개봉한 줄 몰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상영하고 있어 잘 되었다 하였는데 붐비기도 하고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3D로 보았을 때의 감흥도 그렇고 3D가 시간대도 좋았으나 혼자 시커먼 안경을 덧쓰고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쑥스러워 두어 시간 남은 2D 표를 끊어두고는 저녁으로 스테프 핫도그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었다. 좀 걷고 싶었으나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갈피 없는 마음도 제멋대로 서성이어 이놈의 것, 상영관 입구 딱딱한 의자에 꽁꽁 동여매고는 나도 의자처럼 내처 앉아 있었다.

디즈니를 만난 팀 버튼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도 보았으나, 그래도 팀 버튼은 팀 버튼이었다. 조니 뎁도 어쨌든 조니 뎁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돌아가는 앨리스를 보는 그의 눈빛, 아주 잠깐 스치는 그 표정이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게다. 대부분의 그럴듯한 잠언들은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가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박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는지 아직 이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걸었던 건 늘 나의 전부였다. 걸 때마다 이겼냐고? 걸 때마다 졌으되 그들은 나의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다. 전부를 걸어도 나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의 전부를 알았는가. 글쎄, 어쨌든, 버릇처럼 전부를 거는 버릇은 덕분에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나의 일부도 모르고 아무것도 걸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 오늘은 모처럼 서연이와 바둑 두 판을 두었다. 두 점을 접어주고 있었는데, 맞바둑까지 두 판 모두 만방으로 지고 말았다. 기력이 한참 정체되어 있더니 부쩍 는 표가 났다. 이제 두 점, 석 점 내가 흑돌을 늘어놓을 일만 남았다.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와 서숙의 산문집 따뜻한 뿌리를 읽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을 볼 때면 전망이네, 과학이네, 자연이네, 뭐네, 이것저것 다 떠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진다. 필경사 바틀비에서는 바틀비의 단 이 한 문장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