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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상수훈 2007/08/17
  2. 여름잠 2007/08/16
  3. 화려한 휴가 2 2007/08/07
  4. 그렇지 2007/07/29
  5. 나는 새처럼 2007/07/27
  6. 팔불출 3 2007/07/25
  7. 술친구 2007/07/21
  8. 내 취향에 가장 근접한 종족? 1 2007/07/03
  9. 모기의 선물 2 2007/06/26
  10. 블로그 개설 일주년 4 2007/06/13
  11. 옛날 이야기 2007/05/28
  12. 고진감래 2007/05/26
  13. 달팽이, 안녕 2007/05/14
  14. 가나다라 2007/05/10
  15. 팔공산 2 2007/04/22
  16. 주절주절 2007/04/17

산상수훈

from text 2007/08/17 13:35
올려놓고 틈틈이 봐야겠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 그리고 20장 1절부터 16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여름잠

from text 2007/08/16 16:31
장마대신 우기(雨期)라는 용어를 쓰자는 말을 들으니 밀림, 원숭이, 바나나, 세렝게티 초원 뭐 이런 게 두서없이 떠오르면서 눅눅하고 더운 기운을 지울 수가 없다. 오늘 낮 업무 보러 잠시 나갔다 왔는데 참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가본 적 없는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어디 가서 여름잠이라도 실컷 자고 왔으면 딱 좋겠다 생각했다. 이게 다 이것대로 즐기면 좋을 텐데 아직 수양이 많이 부족한가 보다.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그중에서 한 대목을 재인용해 본다. 이춘풍이 아내에게 이르는 말로 원 출처는 古典國文小說選.

자네 내 말 들어보소. 사환 대실이는 술 한 잔을 못 먹어도 돈 한푼을 못 모으고, 이각동이는 오십이 다 되도록 주색을 몰랐어도 남의 집 사환을 못 면하고, 탑골 북동이는 투전 골패 몰랐어도 수천 금을 다 없애고 굶어 죽었으니, 일로 볼작시면 주색잡기 하다가도 못사는 이 별로 없네. 자네 차차 내 말 잠깐 들어보소. 술 잘 먹는 이태백도 노자작(鸕鶿酌) 앵무배(鸚鵡杯)로 백년 삼만 육천일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杯)에 매일 장취하였어도 한림학사(翰林學士) 다 지내고, 자골전 일손이는 주색잡기하였어도 나중에 잘 되어서 일품 벼슬하였으니, 일로 볼지라도 주색잡기 좋아하기 남아의 상사(常事)로다. 나도 이리 노닐다가 일품 벼슬하고 이름을 후세에 전하리라.

화려한 휴가

from text 2007/08/07 17:13
어제 짧은 휴가를 즐기기 위해 아카데미극장에서 화려한 휴가와 다이하드를 보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형석이랑 진탕 마셨다. 녀석 덕에 아주 마음에 드는 바를 하나 알았다. 화려한 휴가는 머꼬의 평도 있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자료 사진들을 곁들여 좀 더 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그리고 따로 노는 안성기와 그 배역에 대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도 있었지만 썩 괜찮았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마 가장 많이 울컥하며 본 영화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설 수 없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뭐 이런 걸 적어넣은 기억이 난다. 율리시즈의 시선, 파업전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대부, 동사서독, 박하사탕 등등을 적은 것 같다. 단 한 편만 골라야 한다면 단연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율리시즈의 시선을 꼽겠다(율리시즈의 시선에 대해 이 블로그에 써둔 글이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못 찾겠다. 태그가 붙어있는 걸 보니 어둠 속의 댄서 이야기하면서 썼던 것 같은데 글꼴 가지고 이리저리 만지다 날아간 모양이다). 예전 무지개극장에서 마지막 프로를 대여섯명의 관객이 함께 봤다. 파리 텍사스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만든 빔 벤더스 감독은 이십세기에 영화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영화일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안개 속의 풍경과 그 아름다운 비올라 선율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선율을 떠올릴 때면 산타페스토리 앞에 붙은 작은 쿠키집 이츠야미에서 쿠키 구워 팔던 때가 항상 같이 떠오른다. 그때 만나던 그 사람들도. 잔뜩 흐린 날이면 그 선율을 타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또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하나 추가해둔다.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지

from text 2007/07/29 09:11
그렇지, 그렇고 말고. 어제 술자리 대화중 문득 떠오른 '高者는 先勝 以後 求戰하나, 下者는 先戰 以後 求勝한다'는 조남철 기사 이야기.

그리고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뭐, 주당의 단수(段數), 당대의 주당으로 통한 시인 조지훈이 술을 마시는 격조, 품격, 스타일, 주량 등을 따져서 밝혀 놓았다는 주도의 18단계.

  1.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 술을 마시긴 마시나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까워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술을 먹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 술의 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眈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 술로 인해 다른 술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열반주(涅槃酒) 9단

나는 새처럼

from text 2007/07/27 10:00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제 문득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 역시 여러 잣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한다. 살다보면 부득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거짓으로 치장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기대는 잣대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다르다면 뭐 그리 신뢰할 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조차 때와 기분에 따라 다른 잣대를 갖다대는 사람에 대해서야 더 일러 무엇 하겠는가. 이런 사람과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댄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겠는데, 어제는 대놓고 ‘말이야 좋은 말입니다만’ 하고는 피식 웃어주고 말았다. 눈동자에서는 나도 모르게 불이 조금 일었을 텐데 눈치나 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잘난 척 하기 좋아하고 눈치도 빠르던데 말이다.

그리고 또 어떤 유형이 있을까? 대체로 말이 많은 사람 중에 쓸만한 사람이 없다. 드물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재치와 유머를 갖추고 예를 아는 수다쟁이라면 환영할 일이겠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친해진 경우가 아니라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과장되었거나 아예 지어낸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날카로운 직관력에서 뿜어져나오는 경구와 유머가 빠져있다. 즉흥적으로 다시 남지 않을 이야기들을 그렇게 쉴 새 없이 뱉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상습적으로 핑계를 달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잘 이해할 수 없는 경우인데 고칠 수 있을 것 같거나 정이 가는 경우에는 다 표나니까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곤 한다. 왜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설령 자기만 안다고 한들 자기는 알지 않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자기가 알지 않는가 말이다. 나는 새처럼 가볍지만 서늘한 눈빛을 가진 사람이 그립다. 진짜가 없다. 매무새 예쁜 사람이 그립다. 한때 참 고왔을 사람이 역시 곱게 늙는 법이다. 이제 알았다.

* 어제는 또 뭐가 그리 아쉽고 허전한지 애꿎은 술만 잔뜩 죽였더랬다.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더운 탓이다. 이상하게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씨앤, 코요테어글리, 녹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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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

from text 2007/07/25 09:09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은 누굴까? 내가 보기에는 아직 다듬어지기 전의 서연이가 그렇다. 아비들끼리는 당연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객관의 눈을 견지한다는 나로서도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는 매력이 있다.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나 이 녀석을 보는 순간 확실히 알았다.

자라길 그렇게 자랐는지 남에게 보이는데 익숙해져 버린 나로서는 최근에야 자기만족이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게 되었는데, 팔불출이라 욕먹을 일이겠지만 지향하는 바가 눈앞에 떡하니 펼쳐져 있으니 더욱 그럴 밖에. 지난 번 파마를 했을 때도 그랬지만 요즘 조금 머릴 길러보는 것도(옛날 생각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이 녀석 때문이었다. 그런데 잔뜩 취해서 들어와 자고 일어나 덥다고 짧게 자른 이 녀석 머릴 보자니 그렇게 시원하고 깔끔해 보일 수가 없는 게 이발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어렵다. 그런다고 이 녀석처럼 멋있어질리는 만무하겠지만 말이다. 요즘 한번씩 보자면 나도 모르게 말투도 이 녀석을 따라하는 게 열렬한 팬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뭔가 좀 부끄럽지만 덜 깬 핑계로다가 올려본다. 뭐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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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친구

from text 2007/07/21 13:48
술친구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거의 유일하게 여자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인데, 대학 동기생이지만 나보다 한 살이 많던가 그랬다. 이 친구는 서점에서 그냥 책을 들고 나오는 방면엔 선수였다. 그렇게 들고 나온 책을 몇 권 받기도 했다. 주로 동성로 뒷골목 지하 깡통 맥주집에서 쥐포를 뜯으며 술을 마셨는데, 그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게 분명한 깡통 쌓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었다. 마시다 보면 내가 먼저 쓰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친구는 인간의 소통불가능성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잘 동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그 친구 덕에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과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를 알았고, 빌린 그 책은 그 친구가 결혼할 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라며 돌려주지 않았다. 아주 특이한 글씨체를 가진 친구였다. 일이학년 때 종종 어울리다가 어설픈 '사랑과 혁명'에 빠져 오래 보지 못하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친구가 결혼하기까지 한동안 만났다. 언젠가 길을 걷다 우연히 아기를 안고 가는 걸 보고 잠시 얘기 나눈 게 마지막이다. 그게 벌써 한 십여 년 되었다.

그리고 정호와 준탱이를 빼놓을 수 없다. 서너 살씩 적은 후배들이지만 참 많은 정을 쌓았다. 이들은 지금 너무 멀리 있다. 하나는 부천에서 바쁘게 살고 있고 하나는 (지금은 잠시 들어와 있지만) 대양을 떠돌고 있다. 떨어져 있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 함께 살고 있는 친구들이다. 언제나 그랬듯 다시 계전 앞 돌계단에서 함께 쓰러져 자고 싶다. 다리뼈 하나씩만 남기고 뼈째 통닭을 다 뜯어먹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핑계로 술잔을 나누고 싶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숨은 열정을 확인하고 싶다.

나이가 들고 오랜 시간 술친구는 마달이었다. 그리고 후에 형석이가 합류하였다. 0124님처럼 지금도 만나는 술친구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닮은 구석이 없어 나랑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인연은 그랬다. 차곡차곡 술자리와 술병들을 쌓다보면 저릿하게 느껴오는 동질감이 있다. 섣부르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친구란 많지 않은 법이다. 다 다르고 하나만 비슷하여도 되는 그 하나를 가진 놈들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어제, 동해 바다를 잠시 보고 왔다. 간간이 비가 뿌리는 가운데 바람에 일렁이는 바다에는 갈매기 몇 마리만 바빴다. 깊이 숨겨놓은 풍광인 듯 일행 몰래 나만 본 듯한 느낌을 간직하고 왔더랬는데, 돌아오고 나서도 좋은 술친구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그 바다, 그 갈매기처럼 계속 마음이 울렁이고 바빴더랬다.

* 아, 다 쓰고 보니 하맹이 빠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후까지 줄기차게 같이 마셔댄 친구이자 진정한 박카스의 세계로 접어든 친구인데, 친구들끼리 몰래 간 이차, 삼차 자리를 귀신같이 찾아온다던지 파계를 앞둔 비구니 스님이랑 같이 술을 마신 이야기, 암자에 공부하러 가서는 처음에 술을 말리며 이 친구의 등을 두드려주던 스님이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등을 내밀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전해온다. 내가 한번씩 잠시 동안 술을 끊겠다면 준탱이는 제가 좋아서 찾고 위로받을 때는 언제고 몸 좀 그렇다고 멀리 해서야 되겠냐며 일침을 놓곤 했지만, 정작 이 친구 앞에서 제가 술을 좀 사리다가는 '슬픈 생각을 해 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어야 했다.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외상이 깔렸고 낡고 찌그러진 그 집들에서는 항상 그 친구가 들고 간 심수봉 언니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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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취향, 과격하게 창의적인 아방가르드 취향

극히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열정적이고 자유분방한,
시대를 뛰어넘은 콘텐트를 선호하는 취향

http://idsolution.birdryoo.com/index.php

처음 나온 결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길래 아니다를 고르고 다시 테스트하였으나 같은 결과가 나왔다. 으레 그렇겠지만 더 자세한 내용을 보니 그런 것 같기도. 강유원의 Kommentar를 보고 한 번 해 봤다. 아, 그리고 오늘 낮에 김규항의 블로그에 갔다가 마르크스주의학교에서 태맹이형 이름을 만났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이 글을 올리고 방금 트래픽 초과에 걸렸더랬다. 리퍼러 로그에 걸리지 않는 방문자가 오늘 좀 많다 싶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는 무슨 공격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사진이 많아지니 용량도 많이 잡아먹겠다 싶기도 해서 갑절쯤 용량을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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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선물

from text 2007/06/26 01:27

아직도 여전히 즐거움을 마음껏 드러내기엔 조심스럽고 두려운 구석이 있다. 거창하게 세상이나 누가 아픈데 외면하는 것 같아 그런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표낼 만한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고 그럴 일이 잘 없었을 뿐 아니라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 즐거움을 즐길 줄 몰랐던 탓이 큰 것 같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그랬겠지만 이십대의 팔팔 끓던 시절이 그립고 될 수만 있다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공상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감을 갖고 세상을 제대로 살피며 즐기게 되었다는 그래서 다시 그 어지럽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끔찍할 것 같다는 누군가의 전언은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조금씩 이해가 되고 이제야말로 산다는 것에 솔직해지고 뭔가 알 것도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인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인지 몸으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들 걸어갔을 생각을 하면 어째 숙연해지는 게 역시 세상은 함부로 나댈 일이 아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부쩍 느끼던 터였다. 당장 술자리가 마냥 즐겁다기 보다 걱정이 앞서고 마시고 난 다음의 증상이 좀 심상찮다. 그러게 몸이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아는 것이고 아파야 더 잘 알 수 있는 건 틀림없는가 보다.

0124님이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매일 한 시간 일찍 마칠 뿐더러 한 주에 두 번씩 하던 야근도 한 번으로 줄었다. 출퇴근 거리도 확 줄었으며 연봉도 조금 올랐다. 서류 전형에 면접까지 거치는 동안 내색 한 번 않아 합격 통지를 받은 날에야 알았다. 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그 쪽에서는 제일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델 찾아서 좋고 무엇보다 시간이 좋아 좋다. 업무도 상당히 비중있는 걸 맡은 모양이다. 생각할수록 잘 된 일이다. 근래 가장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바꾸려다 안 되어 차츰 영역을 줄여 바꾸려 노력하나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뒤늦게 나를 바꿨으면 주변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텐데 하고 탄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허나 단언컨대 다시 태어나도 다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습성을 바꾸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곰곰 생각해보고 다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진짜 곰곰히 생각해 보고 지금부터 앞으로 다르게 살 일이다. 사랑은 참 지속하기 어려운 감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다른 많은 것들처럼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살을 맞대고 살다보면 말이야 쉽지만 그게 또 어려운 일인데, 한 동안 별 이유도 없이 서로 예민해져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곤두세우곤 했던 일이 바람 잦듯 잦고 나니 이렇게 평안하고 따뜻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간단한 곳에 실마리가 있고 누구나 아는 곳에 해답이 있는데 말이다. 늘상 그렇듯 또 모르는 일이기는 하나 크게 하나 배웠다.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년 정도 쓴 휴대전화기가 몇 번 시름시름하더니 영 가고 말았다. 남들 다 하는 번호이동은 하기 싫고 기기변경을 하자니 돈이 아까워 주변에 중고품이라도 없나 수소문하던 차에 한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늘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고운 분으로부터 새 물건을 거저 받게 되었다. 운영하는 대리점이 멀어 퀵서비스로 받았는데 직접 보고 골랐으면 돈이 꽤 들더라도 이걸 선택하지 않았겠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선불 퀵서비스로 악세사리까지 꼼꼼히 챙겨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기기를 만지는 손이 다 떨렸더랬다. 아무 기능 필요 없고 그저 작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 자세히 만져보니 카메라 기능까지 숨어 있어 한 번 더 놀랐다. 순수한 호의에 기분이 들떠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어떻게 갚나 즐거운 고민이다.

* 자다 말고 모기한테 대여섯 군데 물리고는 잠이 깨었다. 다시 잠 드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눈 속에 깊이 박혀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스무살이 좀 지났을 때일 것이다. 적지 않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예전 제일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사이 육교 위에서 우산도 없이 엎드려 구걸을 하는 한 아이에게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비를 맞으며 걸어오다 그 아이를 일으켜세우곤 손에 바지 앞주머니에서 꺼낸 시퍼런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던 모습이다. 그는 아이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돈을 받지 않자 거칠게 주머니에 찔러주고는 아이의 등을 잠시 떠밀며 밥이라도 사 먹으라 욕지기를 뱉듯 뱉어내곤 몇 번 비틀거리며 육교 아래로 사라졌다.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아이의 생생한 눈동자도 잊을 수 없다.

블로그 개설 일주년

from text 2007/06/13 14:54
블로그를 개설한 지 어언 일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스무살 언저리 때만 해도 마흔이라면 아저씨도 그런 아저씨가 없었는데 이제 그 나이에 이르니 나는 왜 이리 어리나 하는 생각만 든다. 서른 즈음에는 딱히 그리 서러운 것도 없으면서 표나게 서러워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인식하곤 했던 것 같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0124님께 특별히 더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은 상대적으로 덤덤한 게 그나마 나이 먹은 태는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스무살이 되기 전 한 때 결코 스무살이 되지 않을 거라 큰 소리치던 시절도 있었다. 때때로 어울리던 여학생들 중에는 철석같은 믿음으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 아련한 일이다. 조금 전 일주년 기념과 마흔에 이른 심신에 대한 위로를 핑계로 오십미리 즈미크론 렌즈 하나 질렀다. 사실 엊저녁 공셔터 좀 날리다가 갑자기 계시를 받아 질러놓고는 좋은 핑계거릴 찾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십주년 기념으로 나온 놈을 사고 싶었지만 여러 형편을 고려하여 삼세대로 질렀다.

블로그를 왜 운영하는 걸까. 사진을 왜 찍는 걸까 하는 물음처럼 세태나 타인에 대해서는 그럴 듯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 아직 어리고, 미혹하며, 살아가는 중이니까 뭐, 천천히 걸어가 볼란다.

옛날 이야기

from text 2007/05/28 22: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구봉명파출소네거리 근처에, 박땡땡 어린이, 밥 많이 먹고 치카치카 잘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이 대목은 필요에 따라 때때로 바뀐다) 착한 어린이랑 김땡땡 어머니랑 박땡땡 아버지랑(때에 따라서 양동생이랑 오리 두 마리랑 거북이 두 마리랑 방귀대장 뿡뿡이랑 미피랑 등등 이어지기도 하는데) 살았어요. 어느 날, 박서연 어린이 착한 어린이는 하며 밤이면 자기 전에 서연이랑 나란히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이나 며칠 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때때로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깊은 숲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어요 하고 되나마나 진짜 옛날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꼭 내가 하기 좋아서 한다기 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 긴 이야기의 경우 미리 못을 박고 한 가지 이야기만 하기도 하지만, 짧은 이야기의 경우 서너 가지를 해야만 한다. 피곤할 땐 때로 곤욕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짜릿한 교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땐 대체로 나도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이 녀석 근황 이야길 좀 하자면, 아직 한글이나 숫자에 대해 집에서나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지만 약간 더듬거리나마 처음 보는 책도 대부분 읽어내고 십삼 더하기 이십사 정도 되는 덧셈도 크게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전부터 한번씩 낱말이나 문장을 재미있게 비트는 걸 보고 언어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 내심 좋아하였는데, 어린이집 담당 선생님의 의견은 좀 달랐다. 물론 새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서연이를 오래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때 제 어미와 시간이 맞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그 어린 여선생님과 학부모 면담이라고 마주앉았는데, 생각과 달리 한 시간이 아쉬운게 끝나고나니 꼭 내가 무슨 정신상담이라도 받은 듯 마음이 맑고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선생님 의견으로는 언어가 아니라 숫자 개념이 또래 보다 좀 빠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숫제 언어 쪽은 뒤쪽이라는 듯이. 어쨌든 이 녀석이 아는 척 하기 좋아하고 일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내성적이며 어린애 같은 밝음이 다소 부족한 게 걸리긴 하지만, 딱 이 녀석이 아니라면 누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고슴도치라 놀려도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고등학교 일학년 때까지 참 내성적인 아이였다. 밖에서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였으며 소심했고 조용했다. 이학년 때부터 의도적인 일탈을 하며 여러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낯을 가리고 어디 도드라지는 걸 싫어하는 건 여전하다(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무리에서 가장 앞서길 바라는 편이지만). 십대 후반의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술, 친구, 가족, 염세, 반항, 하야로비, 실존주의 뭐 이런 것들이다. 이십대 전반을 생각하면 역시 술, 그리고 공동체, 노천문학, 햇살, 철없던 사랑 뭐 그런게 떠오른다. 내친 김에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전반까지 생각해보면 술, 이별, 아픔, 망각, 웅크림, 두려움 그런게 떠오른다.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뭐가 떠오를까. 위선, 아이, 현실, 갈 곳 없음 뭐 그런게 떠오를까. 어젯밤 문득 서연이에게 옛날 이야길 들려주다 늘상 반복하는 이 이야기의 앞머리를 써 보잔 생각을 했는데 갈데없이 되어버렸다.

* 나흘간의 연휴가 후딱 지나갔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밀양 정도는 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사흘 내리 술을 먹는 바람에 낮시간 동안은 운신을 못하고 누워 보냈다. 세 술자리 모두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였던지라 아쉬울 건 없고, 덕분에 바리에떼와 고향길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일전에도 느낀 바지만 고종석의 글들은 대체로 시각도 바르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을 뿐아니라 특히 글솜씨가 빼어나 잘 읽힌다. 어렵거나 힘든 문장이 아닌데도 앞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드는 힘도 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흔쾌히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데, 그래서 어딘지 한 구석 불편하곤 한데, 이틀째 술 먹은 다음날 아침 마치 밤새 고민한 듯 일어나자마자 뱅뱅 돈 문장이 거기에 닿아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명을 찾아서를 감명 깊게 본 나로서는 복거일의 이후 행보가 얼마나 마뜩잖았는지 모른다. 이 책도 다른 이의 글에서 고종석의 그에 대한 애정과 평(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고 궁금하여 산 것이기도 한데, 어떻든 복거일은 김훈에 많이 닿아 있고 고종석은 그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건강해 보인다. B급 좌파 김규항에 비하자면 거칠게 표현하여 김규항의 글들은 읽는 내내 긴장하고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공감하고 따를 수밖에 없게 하는 반면, 고종석의 글들은 편하게 공감하며 읽지만 어딘가 불편한 구석을 남기는 것이다. 아니다. 거꾸로 이렇게 표현해도 맞는 말이 된다. 김규항의 글은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고 함께 하지만 나중에 그 실천에 대한 고민과 엄격함에 이르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고, 고종석의 글은 읽는 동안 일견 불편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딘가 위안 받는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러나 한 주에 한 번 일용할 양식에 감사한다고 일용한 죄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고종석처럼 자리하기란 우리 사회에서 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하기도 한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 자세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안전하게 스스로와 주변을 유지하며 메스를 덜 들이댄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그걸 잘 인지하고 있으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 크게 나무랄 일이야 아니지만, 예컨대 바리에떼에서 다음의 글들이 주는 울림은 내 마음자락과 크게 공명하지만 한편 공허하다. 맥락은 물론 다르지만 말하자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백만배는 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죽이는 것이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제언 역시 실천적 관점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서 한발짝 떨어진 듯 보여 안타깝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의 세련되고 단아해 뵈는 글들은 이 책에 실린 일부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적 언급에 이르면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형식에서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은 어쩌면 뛰어난 소설가 복거일, 잡문가 김훈이 다른 언설을 할 때 형편없어지는 모습을 닮아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에 마음이 쏠린 적이 없다. 집단에 대한 내 공포가 생래적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자본론을 끝까지 읽어낼 끈기와 지성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80년대 들어 '불법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들을 들춰보기는 했다. 물론 마음이 쏠리지 않았다. 그것은 날림번역이 낳은 거친 문장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한 방향으로 치닫는 집단적 열정이 낳을 수 있는 파멸적 결과가 두려웠고, 인간의 이타심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그러나 나를 공산주의로부터 밀쳐낸 더 중요한 이유는 단 한 번뿐인 생애에 대한 존중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기독교 신자였다면, 그러니까 영혼의 불멸이나 다음 세상을 믿었다면, 공산주의에 쏠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종교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영혼의 불멸도 다음 세상도 믿지 않는다. 즉 내 죽음은 내게 우주의 소멸이다. 물론 타인의 죽음도 그들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인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 그렇다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중략) 세계화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세계화, 밑으로부터의 세계화일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의 공산주의가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진정한 국제주의를 새롭게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국제주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느슨하지만 질긴 연대를 통해 구축될 것이다.

고진감래

from text 2007/05/26 08:08
그래서 결국 누구 편이냐 하는 거다. 내가 낸데도 아니고 나는 내 편이랄 수는 없지 않냐는 말이다. 어차피 혼자 살 게 아닌 바에야.

달팽이, 안녕

from text 2007/05/14 13:43
팔 개월 가량 함께 했던 달팽이가 죽었다. 며칠 제대로 살피지 못하다 어제 아침에 들여다 보았더니 기척이 없었다. 그 놈의 특성상 무슨 대단한 정서적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닥 크게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았지만 미안하고 어딘가 한 구석이 허전하다.

오후에는 서연이랑 우방랜드에 갔다 왔다. 하루종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두시쯤부터 여덟시까지 둘이서만 있었는데, 나는 코끼리, 하늘 자동차, 춤추는 비행기, 어린이 바이킹에다 코인 놀이기구 등을 타고 자연생태공원까지 일대를 다 돌아다녔다. 제 엄마가 오고부터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되어 어린이 자이로드롭과 탔던 놀이기구들을 다시 타고 혼자 타기 어려운 회전목마, 풍선타기, 후룸라이드를 탔다.

집 근처에서 늦게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면서도 말했지만, 사실 늘보 기질이 다분한 내게 물론 더 나은 시간을 위해서라지만 일요일까지 제 시간으로 할애하여 자기 일에 집중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들놈과 충분히 가까울 수 있어 이런 복도 있구나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없어지는 환영에 사로잡히곤 했다. 허나 어젠 이제 익숙해져 버린 건지 서연이 웃음에 단단히 중독된 건지 견딜만 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긴 시간 몹쓸 죄를 지었다. 달팽이의 안녕을 기원한다.

가나다라

from text 2007/05/10 23:02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송창식의 가나다라를 들었다. 어쩌다 보니 서연이에게 맨 처음 가르쳐준 노래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녀석이 동성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가나다라마바사아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여러 사람 즐겁게 한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역시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노래는 너무너무 짧고
일이삼사오륙칠팔구하고십이요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너무 많은데 이내 두 팔이 너무 모자라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노를 저어 나아가라 가자 가자 가자 가슴 한번 다시 펴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알고 싶은 진리는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머리가 너무너무 작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좇고 싶은 인물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다리가 너무너무 짧고
갑자을축병인정묘무진기사경오신미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잡고 싶은 순간은 너무너무 많은데 가는 세월은 너무 빠르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뱅글 뱅글 뱅글 다시 보면 다시 그 자리

중건천 중곤지 수뢰둔 산수몽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늘 보고 땅 보고 여기저기 보아도 세상만사는 너무너무 깊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크게 웃자고


무료하다, 요즘. 뭔가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끝내고 따분한 일상을 맞는 기분이긴 한데, 한꺼번에 끝낸 일도 없고 일상은 어째 낯설기만 하다.

서연이를 재울 때나 딱히 놀이거리가 없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녀석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이 될 때가 있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죽음이나 떠남 같은 이야기에는 전혀 동요가 없지만, 자신의 먼 미래나 좀 지난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아득한 느낌을 받는가 보다.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구나 하는 게 전해지면서 가녀린 짐승을 안고 있는 듯 그 감정에 전이되어 나도 꽤 아득해지곤 한다.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에 있는 벌레를 모르고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었다(딴 얘기지만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이제 벌레 먹은 과일이나 과일에서 나온 벌레를 보기란 목사나 장로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우리끼리 살겠다고 바둥치는 건 내가 내 혼자 살겠다고 바둥대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도 틀림없이 동물인지라 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섬세하기까지 한 동물이라 그 다채로운 결들에 있어서랴.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놈들을 얼마간 경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갈 도리야 옛 사람들이 이미 마르고 닳도록 설해 놓았지만, 때로 우리는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대책 없이 주저앉곤 한다. 개도 안 물어갈 현실 앞에.

오늘 돌아다니다 만난 한 구절,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음을 얻을 수 있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시중에서 흔히 쓰는 의미나 출전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아옹다옹거리는 세상사를 빗대는 것 같아 오히려 장자연하게 와닿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 한 백만년만에 책 몇 권 주문하였다. 윤중호의 고향길, 움베르토 에코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고종석의 바리에떼. 얼마동안 읽을 지 모르겠다.

팔공산

from text 2007/04/22 14:10
어제 한 모임에서 영천 신령에 있는 수도사로부터 팔공산 동봉엘 올랐다가 수태골로 내려왔다. 다섯 시간 정도 걸었다. 중턱부터는 아직 겨울산이었다. 그늘진 곳이 많아 그런가 키 큰 진달래(참꽃)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아직 피지 않은 게 더 많았다. 내려오는 길에 어릴 적 생각하며 꽃잎 하나 따서 먹어보았는데 달콤쌉싸름한 맛은 그대로였다. 대구은행 연수원 근처 식당에서 오리고기에 술을 잔뜩 먹고 돌아와서는 다른 모임 자리로 가 또 그만큼을 먹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뿐한 게 맑은 공기와 오래 걷는 등산이 좋긴 좋은가 보다. 의식이나 행동이나 술이나 과잉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잘 되지 않는 게 또 사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려올 때는 여전히 무릎이 아팠다.

주절주절

from text 2007/04/17 14:10
즐겨찾기를 즐겨 찾다 보면, 이라고 말하다 보면 즐겨 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서며 그 말의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한다. 어쨌든 즐겨 찾다 보면 때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글들도 만나게 된다.

최근 들어 다시 대화를 하거나 또는 사이트 항해를 하다가 문득문득 눈물이 날 뻔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꿈속에서는 가끔 울기도 하는 모양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그 효용이 아니라 차이와 기호를 소비한다. 라이카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딱 그만큼은 자유롭기도 하다. 아날로그의 효용에서 그러하다.

사진을 찍다보면 인화물이든 파일이든 결과물이 남기도 하지만 찍은 그 순간이 머리나 가슴에 그냥 각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은 종종 뜬금없이 출몰하기도 해서 오래오래 함께 가곤 한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천당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이런 델 가진 않을 것 같다. 뉘라서 그리 한단 말인가. 오늘 잠시 이야기하던 중 뱉은 말이기도 한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고 나중에 개입하려 든다면 당당히 따질 일이지 그게 그저 받아들일 일이겠는가.

어릴 적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까지 누가 물어보거나 어디 써낼 때는 으레 그렇게 답하곤 했다. 어려서 읽은 우주와 우주 개발 이라는 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커서 뭐가 될래, 또는 넌 꿈이 뭐냐는 식의 질문은 가히 폭력에 가깝지만 가끔 곱씹어보곤 한다. 넌 도대체 꿈이 뭐냐.

술 먹고 난 다음날이면 먹을 때처럼 괜히 기분도 좋고 머리 속으로 하냥 주절주절 거리기도 한다. 그 힘을 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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