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2건

  1. 다시, 사랑 2007/10/19
  2. 사랑 5 2007/10/13
  3. Leaving Las Vegas 2007/10/12
  4. 2007/10/10
  5. 도레미 2 2007/10/08
  6. 낮달 2007/10/06
  7. 여행 2007/10/02
  8.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2007/09/30
  9. 금언 2 2007/09/30
  10. 화두 2007/09/26
  11. 바람, 비 2007/09/23
  12. 반야심경 2007/09/19
  13. 가을 2007/09/16
  14. 민들레처럼 2007/09/15
  15. 즐거운 고민 2007/09/08
  16. 어떤 어부 이야기 2007/08/31

다시, 사랑

from text 2007/10/19 13:24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그저 뒷모습이 보였을 뿐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아무런 약속은 없어도 서로가 기다려지겠지요 행여 소식이 들려올까 마음이 묶이겠지요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날까 한번쯤 절망도 하겠지만 화초를 키우듯 설레이며 그 날을 기다리겠죠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모든 것 그대로 간직해요 다시 우리가 만나는 날엔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해바라기의 '지금은 헤어져도'가 며칠째 머릿속에 뱅뱅 돈다. 방배동 카페에서는 비틀즈의 미셸과 함께 일부러 신청해 듣기도 했다. 계속 소리 내어 흥얼거리다보면 다음 세상도 틀림없이 있을 것 같고, 벌어먹고 사는 일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충만한 기분이 불안하다. 문득, 김수영의 '사랑'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

from text 2007/10/13 08:46
아껴야겠다. 시간이나 사람은 몰라도, 술은.

* 오래된 퀴즈 하나. 'O끼고 O하는 게 사랑이다'의 O에 들어갈 말은? 알고 나면 당연한 것 같지만 맞히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정답은 아, 위. 그러게 이제야 이들을 더 사랑하려 할 따름인 게다. 마치 섬광이 일듯 '술을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긍정적 사고의 힘인가, 평화가 흐르고 힘이 불끈 솟는다. 기특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 벤을 기리며 오랜만에 잭콕을 먹고, 그리운 소주를 먹었다. 잘 가, 벤.

Leaving Las Vegas

from text 2007/10/12 01:53
술자리 내내, 모처럼 밤길을 걸어 집에 오는 내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나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혼자 벤을 생각하며, 벤과 대화하며 술을 먹었다. 그를 생각하면 더 큰 잔에 술을 붓고, 더 자주 잔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羑里에서처럼 빤히 내다뵈는 걸 받아들이는 육조의 심정이었을까, 이제 그렇게 다 버리고만 싶었던 것일까, 종내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의 가르침을 그저 따라간 것 뿐일까, 얼마 전 술 마실 적 심정으로 미루어 대꾸할 뿐, 더 오래 잔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한 생애에 주어진 사랑과 '행복'은 유한할 터,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I'm Ben. I'm Sera. Sarah, with an 'H'? With an 'E', S-E-R-A, Sera.

from text 2007/10/10 10:11
저명인사 가운데, 대부분의 글들을 꼬박꼬박 읽는 개인 홈페이지 내지는 블로그가 있다. 김규항, 강유원, 우석훈이 그들이다(강유원의 글들에서는 조금 멀어졌다). 김규항과 강유원의 책은 웹에서 대부분 읽은 내용인 줄 알면서도 몇 권 샀고, 우석훈의 책은 몇 번이나 살까말까 망설이면서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살떨리는 강의록과 댓글들을 보고나니 몇 권 주문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제, 최성각의 달려라 냇물아,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를 주문하였고,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정민의 책 읽는 소리,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선물 받았다(책 선물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요즘 다시 책 읽는 재미에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다. 역시 오래 전 사다놓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읽고 있는 중인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는 한참 윗길이다.

* 우선 골고루 골라 주문하였다. 88만원 세대, 도마 위에 오른 밥상,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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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

from text 2007/10/08 23:56
바람을 느낄 때면 코끝이 영 간질간질한 게 가을 내음이 한창이다. 오후 네 시, 손님 만날 일이 있어 아리아나 호텔에 갔다가 오 분도 안 되어 일을 끝내고는 서연이 마칠 시간이 남아 조금 걸었다. 호텔 뒤편으로 골목을 이리저리 밟히는 대로 걷다보니 들안길 네거리였다. 이 시간에 걷는 길이 주는 낯설고 오래된 느낌을 잠시 즐길 수 있었다.

피아노학원에는 그래도 약간 일찍 도착하여서 이 녀석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며칠째 '도레미'만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녀석이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게 이리 물기 차오르는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평화롭고 착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잠시, 데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기 가르치는 분들은 어린이집 교사들과 달라서 애들 대하는 모습이 거칠고 어설퍼 보여 마음이 언짢았다.

오늘처럼 한 주에 한 번 0124님이 야근을 하는 월요일은 하루가 길다. 피아노학원엘 다니고부터는 이 녀석을 데리고 오자마자 부엌으로 가 마른 그릇들을 수납하고, 가져 온 식판과 수저, 아침에 밀린 밥솥과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데, 이 날은 여기에다 밥과 후식을 챙겨 먹이고 같이 노는 것까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잠시 자취를 할 때나 가끔 설거지를 할 때마다 느끼던 대로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내고 헹군 그릇들을 가지런히 정돈할 때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진다. 묵은 찌끼가 쓸려가면서 자꾸만 멈추려는 육체를 자극한다. 오늘은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일 못하는 놈이 표낸다고 아침에 스탬프 잉크를 쏟아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던 것이 설거지를 마치고 났더니 손톱 밑을 빼곤 깨끗해졌다.

나이가 든 걸까. 갈수록 아깝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아진다(조심하고 주저하는 일이 많아졌다). 앞을 내다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전하지 못한 소식과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무겁다. 한때 가슴에 새겼던 말, 김남조의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이 문득문득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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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from text 2007/10/06 10:16
때때로 글을 쓰다보면 스스로 제어가 안 될 때가 있다. 앞에 쓴 글이 제 힘으로 저를 밀고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는 조바심이랄까 안타까움이랄까 무언가에 쫒기는 듯 서둘러 마무리를 짓게 된다. 그러고 나면 무언가 나도 알 수 없는 말들의 조합이 드러나는데, 갖은 해석을 갖다 붙이며 혼자 만족하기도 한다. 만들다 만 색종이들이 어지럽다. 가을, 산다는 일이 셀로판지 부서지듯 시리다. 오늘도 어김없이 부러진 호미 같은 낮달이 떴다.

어떤 대화. "잠깐 왔다 가는 세상 무에 그리 가릴 게 있는가." "그래도 가릴 건 가려야지." "그러게 가릴 거만 가리면 되지, 무얼 그리 가리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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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from text 2007/10/02 23:41
서연이가 어제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닌다. 학원에서 배우는 피아노란 게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내가 워낙 음치인데다 수영을 못하는 탓에 음악과 수영만은 일찍 접하고 익혔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고(더 바란다면 체계적인 교양을 쌓았으면 싶다. 어릴 때 생활로 접하지 않은 예술적 감성은 후에 공부로 채워지지 않는다. 물론 공부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독학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게 한탄스러울 때가 있다), 작년 삼월부터 저녁마다 서연이를 봐주신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시기도 하여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저녁에 좀 편하게 내 시간을 보내거나(술 먹은 다음날 아예 혼자 편히 쉰 게 얼마더냐)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저녁밥을 먹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닌데)덕분에 술도 좀 줄고 몸무게도 좀 줄려나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오래 전(1995년일 것이다) 봄의 초입에 정호, 준탱이와 함께 떠난 여행이다. 고창 선운사, 다산초당, 완도, 땅끝, 남해, 진주, 양산 통도사 등지로 돌아다녔다. 술자리마다 떠나고 싶다, 가고 싶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읊어대곤 하다가 어느 날 저녁 정호가 작정을 하고 나서는 바람에 지도 하나 들고 엉겁결에 나선 여행이었다. 정호와 준탱이 번갈아가며 밤에 운전을 하고 낮이면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선운사 입구로부터 선운사까지, 그리고 남해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한번은 이듬해 정초, 지금은 서울에서 노무사를 하고 있는 문배형과 둘이서 태안반도(만리포, 안면도), 변산반도(채석강, 내소사), 선운사, 마이산(탑사, 은수사) 등지로 다닌 것이다. 제천역에서 철도인간으로 근무하던 문배형이 백수로 귀환하는 걸 기념하는 여행이었는데, 혼자 기차를 타고 제천에 도착하는 날부터 눈, 비가 섞여 내리더니 여행 내내 흐리고 눈, 비가 내렸다. 장안평에서 중고 프라이드를 사자마자 내처 떠난 여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형수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두 분 신혼여행 때는 마침 제주도 출장이 겹쳐 형수 잠든 사이 둘이서 술 퍼먹고 논 적이 있다. 형이 들어갔을 때는 형수 혼자 뭔 신혼여행이 이러냐며 맥주 마시며 울고 계시더라고 들었다). 만리포 가는 길에서의 짙은 안개, 온통 눈에 덮인 변산반도, 눈 내리는 채석강, 내소사의 설선정, 눈길을 헤치며 한참을 달린 막다른 국도, 밤에 둘러본 탑사와 은수사의 진기로움이 기억에 남는다.

내일은 이종사촌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 예과(?) 4년 마치고 그의 언니 수학 가르친다고 몇 달 같이 생활한 적도 있는데, 외할아버지 장례 때 보니 생판 몰라볼 숙녀가 되어 있었다. 숙명여대 근처에 집이 있어 자주 그쪽으로 산책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0124님은 절친한 친구 수경씨(TBC에서 리포터와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우리 함 들어가는 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주었었다. 지금은 GS홈쇼핑의 잘 나가는 쇼호스트이다. 축하해요, 수경씨)의 결혼식이 겹쳐 서연이와 전주엘 가고, 먼 길에 자동차가 싫어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과 따로 혼자 기차표를 끊어두었다. 혼자서는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서울 처음 가는 촌놈인 양,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양 조금 설렌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역사서나 역사를 다룬 드라마 등을 볼 때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었는지 가슴이 서늘할 때가 많다. 대지를 어머니라 생각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지 아니 한 인디언들의 삶에 대해 떠올릴 때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자라는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죽음의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초월한 것에 기댈수록, 가면 갈수록 갈 데가 없을밖에. 다음은, 1854년, 두아미쉬-수쿠아미쉬족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 이윤갑 선생님께서 예전 한국사회경제사 강의 중 복사하여 나눠주셨을 때 처음 보았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 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물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날들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는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 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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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

from text 2007/09/30 22:07
어느 날, 한 여인이 간디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간디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그 여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걸어왔는데, 간디에게 아들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쉬지 않고 설탕을 먹는답니다. 아이에게 설탕이 몸에 좋지 않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도대체 제 말을 듣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들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아이에게 설탕 좀 그만 먹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간디는 그 아이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 어머니에게 열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때는 여름인데다 그 여인의 집은 아주 멀었기 때문에 여인은 크게 실망하면서 돌아갔다. 열흘 뒤, 그 여인은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설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설탕을 그만 먹으라고 말했다. 그 여인은 간디에게 고마워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간단히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되는데 왜 지난 번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건가요? 왜 다시 오라고 하신 거죠?" 그러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저도 지난 번까지는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참 사람 좋은 김용락 선생의 어떤 글에서 처음 읽은 건데, 사실 여부는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知行合一', '言行一致'와 함께 항상 마음에 짓누르듯이 새기게 된다.

어제, 그제,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크게 꾸밈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오래 전 사다놓고 이제야 읽기 시작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어느 현처가 긴 편지의 말미에 덧붙인 유명한 양해의 일절이란다. 예쁘다.

화두

from text 2007/09/26 11:20
떠남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는 떠나는 것만 보인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아기를 가진 사람만 보이는 것처럼. 좋은 글, 좋은 책은 매번 다르게 읽힌다. 좋은 사람도 그렇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거다. 가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줄을 일찍 알았던 탓. 푸른 깨꽃이 다 내 편인 줄 알았던 거다. 누구한테도 이길 수 있게 되고부터 누구에게나 지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제, 가고 나면 빈 들판에 잡풀만 무성할밖에.

* 추석날 밤, 막내 처고모 내외, 0124님, 처제, 사촌 처제와 그 부군될 사람과 오래 술을 먹었다. 청주, 막걸리, 소주, 복분자주까지 섞어 먹었더니 몸도 마음도 제 자리를 못 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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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비

from text 2007/09/23 01:58
자제할려고 많이 노력하면서도 꽤 먹었다. 바람이 불고 난데없이 비도 또 그렇게 내렸다. 서연이와 함께 심신수련장으로, 고산골로, 신천으로 걸어다니고, 늦게 마달일 만났다. 석일이형 가게에서 일차하면서 예의없는 오래 전 친구 하나와 예의바른 젊은 학교 선생님 하나를 마주치면서부터 수상쩍더니, 이차에서 상당히 먹고 말았다. 2GETHER 4EVER, 사람들이 꽤 괜찮은 집이었다. 조곤조곤 옛 이야기(불타던 고교 시절)를 나누다가 어디 이야기한 적도 없고 잊고 있던 걸 하나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찻집에 가면 디제이가 신청곡도 받아주고 사연들도 읊어주던 때였다. 곰 일레븐 이야길 들으면서 혼자 생각나던 백과다방, 아무렇게나 써갈기던 습작시들을 김소월의 시라며 사연에 넣어주면 목소리 좋은 디제이가 배경음악을 멋들어지게 깔아가며 낭송해주곤 했다. 굳이 그 장난을 쳐댄 놈이랑 키득거리며 담배나 죽이던 시절, 그립다. 그 다방으로 전화가 가장 많이 오는 이름 일위에 오르기도 했더랬다.

'그날 이후부터'라는 카페가 있었다. 한네의 이별, 조각배 같은 노래들을 날로 들을 수 있는 집이었다. 그 불타던 시절부터 여러 추억이 서린 곳이다.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정이 무서운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을 게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버린 원규형, 카페 주인 성진이형과 누님, 잔정은 마달이 나보다 더하다.

사람이 가장 즐겁고 흥분하고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건 언제일까. 살아있다는 걸 실감하는 그 때는 언제일까. 그래서 가장 괴로울 때는 언제일까.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할 때, 그걸 온전히 손에 넣기 전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 살려면 높은 슬기와 변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라이카의 세계에는 궁극이 없다(순환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게다). 그래서 열에 들떠 오랜 시간 알아보고 매복하고 지른 다음에도 그 열이 식지 않는다. 다 가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간접 추천으로 이기호의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보았다. 심상대의 묵호를 아는가,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멀리는 정건영의 골패가 떠올랐다. 이야기꾼으로 손색이 없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의 한 대목.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들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 이야기의 운명 또한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 모자는 어느 곳 어느 땅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마음이 가는 걸 막을 수 있을까. 그럴 필요가 있을까. 몸을 취하던 마달과 정확하게 갈라지던 지점.

* 오늘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화려한 휴가는 결국 실패작일 수밖에 없다. 애정과는 별도로 한계를 너무 많이 내보였다. 일이십년내 누가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대한 비평에서 미묘하게 갈라지던 사람들, 그 자리들이 일이십년 후 어떤 모양으로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냉정하고 날카로운 게 미덕이던 시절, 가장 냉정하고 날카롭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투항하였더랬다.

반야심경

from text 2007/09/19 09:13
관자재 보살이 크고 깊고 넓은 지혜로 바라밀을 행할 때, 오온이 다 비었음을 비추어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 사리자야, 보이는 것이 빈 것과 다르지 않으니 보이는 것이 곧 빈 것이요, 빈 것이 곧 보이는 것이니라. 믿음과 생각과 행함과 앎 또한 이와 같으니라. 사리자야, 이 모든 법의 비어있는 실상은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빈 저 가운데는 보이는 것 없고 받음, 생각, 행함, 앎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향과 맛과 닿음과 법도 없으며, 보는 경계와 아는 경계도 없고 밝음이 없음도 없고 밝음 없음이 다해 사라짐까지도 없으며, 늙어 죽음도 없고 늙어 죽음이 다해 사라짐까지도 없으며, 苦와 集과 滅과 道도 없고 또한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얻음이 없으니 보리살타가 지혜로 저 언덕에 건너갈 때 마음이 걸림이 없고 마음이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고 뒤바뀌는 꿈 생각을 여의어 마침내 열반에 이르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아누다라와 삼약삼보리를 얻나니 반야바라밀다를 알라. 이는 크게 신통한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더 이상 없는 주문이며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주문이라 능히 모든 쓰라림을 없애주어 진실하고 헛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거니 -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높이 가자 더 높이 가자)

윤후명의 '약속없는 세대'에서. 산상수훈만 올려놓았더니 이가 하나 빠진 것도 같고, 비는(空) 게 밟히기도 하고. 백과사전에서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 아제 모지 사바하'를 '도달한 때, 도달한 때, 피안에 도달한 때,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때 깨달음이 있나니, 축복하소서'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른 책에서이지만 윤후명의 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전언 하나, '사랑은 시간을 잊게 하지만, 시간 또한 사랑의 아픔을 잊게 한다'. 한때 동의할 수 없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방점이 어디에 찍히느냐가 다를 뿐.

덧니가 매력적인 사람이 있다. 덧니밖에 기억이 안 나는 사람도 있을 게다. 사람이 워낙 끌리고 매력적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쁜 건 예쁜 거다. 몸이나 마음에 오랫동안 가꿔왔던 걸 단번에 날려버리는 심사야 헤아리기 어렵지만(덧난 것도 이미 제 것이 아닌가), 그에 얽힌 안타까운 기억과 애정은 어쩌누.

가을

from text 2007/09/16 18:28
가을인 게다 그래서 그런 게다 늙은 거미는 가만히 바람에 흔들리는 줄을 지켜본다 목으로 넘어간 밥으로 다시 줄을 지었지 한때 수사자처럼 어슬렁거리며 바람이 시작되는 곳 어드메냐 헤맸던 기억 줄줄이 연 빗방울마다 지나온 세상 종내 이렇게 심장이 빨리 뛰다가는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발없는 그리움에 새카맣게 말라버린 옹달샘으로 천천히 줄을 내려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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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처럼

from text 2007/09/15 09:48
네가 벌써 자동차를 갖게 되었으니
친구들이 부러워할 만도 하다
운전을 배울 때는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을
네가 대견스러웠다
면허증은 무엇이나 따두는 것이
좋다고 나도 여러 번 말했었지
이제 너는 차를 몰고 달려가는구나
철따라 달라지는 가로수를 보지 못하고
길가의 과일 장수나 생선 장수를 보지 못하고
아픈 애기를 업고 뛰어가는 여인을 보지 못하고
교통 순경과 신호등을 살피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구나
너의 눈은 빨라지고
너의 마음은 더욱 바빠졌다
앞으로 기름값이 또 오르고
매연이 눈앞을 가려도
너는 차를 두고
걸어다니려 하지 않을 테지
걷거나 뛰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남들이 보내는 젊은 나이를 너는
시속 60km 이상으로 지나가고 있구나
네가 차를 몰고 달려가는 것을 보면
너무 가볍게 멀어져 가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김광규의 '젊은 손수 운전자에게' 라는 시이다. 내용 중에 생각나는 대목만 두서없이 검색해본 탓에 몇 번 찾아도 못 찾겠더니 아침에 불현듯 제목이 떠올라 찾았다. 운전하지 않는 핑계거리에 들어맞아 공감하고 있었는데, 어제 들은 말마따나 그래도 놓치는 것만큼이나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어디 자동차뿐이겠느냐. 가지 않은 길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일탈의 욕망은 그래서 어디에나 꿈틀대는 법.

민들레 달인 걸 며칠째 먹고 있는데, 그래서 그런가, 같이 한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많이 마신 것 치고는 몸이 가뿐하다. 그리 좋은 몸 상태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마실수록 술 욕심이 나던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준탱이가 또 멀리 간다. 육지를 벗어나 그렇게 떠돌아다니는 심정이 나로서는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고 제 몫이 있겠지만 그를 보면 어깨가 절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세월이 살같이 간다는데 술자리를 하다보면 종종 그렇지만 시작부터 중반까지 가는 시간과 후반에 이르러 가는 시간의 속도는 다르다. 그만큼 안타깝게 부여잡고 싶은 시간들을 두고 나는 또 어찌 갈꼬.

즐거운 고민

from text 2007/09/08 16:56
어제는 난생 처음 활짝 갠 날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을 다 했는데, 늦게까지 한 잔 하다가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를 보고는 우선 드는 마음이 또 반갑고 좋았다.

연말에 가면 이것저것 다 떠나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을 지지할 테다 굳게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여전히 고민이 좀 될 것 같다. 문국현이 제대로 뜬다면 여러 사람 고민에 빠뜨리는 걸까, 여러 사람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걸까. 너와 나는 지금 어느 쪽에 속해 있는가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 서연이와 이발하고 어린이회관과 수성못으로 놀러가기로 철석같이 약속해 놓고는 술병을 핑계로 겨우겨우 달래어 다 내일로 미루었다. 이미 내일은 앞산공원에 가기로 했었으니 일정이 빡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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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부 이야기

from text 2007/08/31 15:08
오래 전 어디에선가 본 이 이야기가 며칠째 떠올라 찾아보았으나, 분명 메모를 해둔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해서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고 꽤 여러 버전이 돌아다닌다는 것과 생각보다 이런 이야기에 발끈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았다. 애초 보았던 글은 내용이나 형식에서 훨씬 짧고 간결하였고 그래서 더 와닿았던 것 같은데, 어쨌든 찾은 것 중엔 제일 나아보인다.

어제는 어머니 생신이셨다. 서연이 때문에 케이크 사러 갔다가 초가 몇 개 필요하냔 말에 늘 나신 연도만 기억하고 있다가 연세를 셈해 보고는 조금 놀랐다. 잠시 가슴 한 곳에 구멍이 난 듯 바람이 지나가는 기분이었다. 공주식당에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걸로 식구들 모두 푸짐하게 먹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어머니.


멕시코로 휴가를 온 한 미국인 사업가가 해변 마을을 거닐다 부두에서 한 어부를 발견했다. 어부는 갓 잡아 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사업가는 어부에게 얼마 동안 작업해 그렇게 많은 고기를 잡았는지 물었다. "글쎄요. 몇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좀더 작업하지 않았나요?" 어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 이만큼만 해도 제 가족이 먹고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죠. 더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사업가적 기질이 발동한 미국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당신은 남는 시간에는 뭘 하고 지냅니까?" "남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놀거나, 친구들과 술도 한 잔 기울이곤 하죠. 전 이 생활에 만족한답니다."

사업가는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 하버드에서 MBA 과정을 마친 사업가입니다. 자, 한번 봅시다. 당신은 고기 잡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조업시간을 늘리면 고기를 더 많이 잡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좀 더 큰 배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지나면 여러 대의 배를 소유하게 되고 선주가 되어 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면 아마 통조림 사업에도 뛰어들 수 있을 겁니다. 사업이 확장되면 아마도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맨해튼에 저택을 짓고 성공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겠지요."

어부는 곰곰이 생각한 뒤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사업가는 한참 동안 계산기를 두드렸다. "15년이나 20년 뒤면 가능하겠군요." "그런데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죠?" 사업가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도 백만장자가 되겠지요." "백만장자라구요? 그리고 나서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당신이 원한다면 퇴직을 해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겠지요. 당신과 당신 가족들만을 위한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겁니다. 작은 해변에 그림 같은 별장을 짓고, 당신의 노후를 만끽할 수 있다는 얘기죠." "감사합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제 생각에 저는 그 15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전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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