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봄이 오면 2007/11/04
  2.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이에요 2007/11/03
  3. 화두 2 2007/10/31
  4. 두 번째 생일 2007/10/29
  5. 휴일 일기 2007/10/28
  6. 2007/10/25
  7. 산행 2007/10/21
  8. 다시, 사랑 2007/10/19
  9. 사랑 5 2007/10/13
  10. Leaving Las Vegas 2007/10/12
  11. 2007/10/10
  12. 도레미 2 2007/10/08
  13. 낮달 2007/10/06
  14. 여행 2007/10/02
  15.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다 2007/09/30
  16. 금언 2 2007/09/30

봄이 오면

from text 2007/11/04 18:49
겨울은 길고 그 겨울이 잉태하는 봄은 그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에 달렸겠지요. 알 수 없는 것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늘 피는 꽃이라고 또 피라는 법이 있을까? 늘 돌아오는 봄이라지만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걸요. 소식 들었나요? 어느 동네에선 햇살 가득한 봄날 속으로 고운 할머니 하늘거리며 한 고개 넘어가실 때에 나비들이 나풀나풀 등 떠밀어 드린대요. 잘 사셨다고, 잘 가시라고.
오늘 아침 이야길 들으니, 서연이 녀석, 피아노학원에서 높은음자리, 낮은음자리를 익히고 진도가 꽤 빠른 모양이다.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전부터 배우고 있던 몇몇 아이들의 진도를 넘어섰다니 말이다.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아마도 이 녀석 바이러스에 감염된 선생님들이 거칠고 어설픈 모양을 버리고 친절하고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착각한대도 할 수 없다.

그저께 아침에는 글씨 쓰는 일에 재미 붙인 녀석의 노트를 들춰보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나는 가을에 피는 꽃이에요', 놀라는 마음 한편 밀려오는 어떤 감동을 느끼며 한참 되읽고 되읽었다. 그리고 다른 장을 펼쳐보는데, 거기에는 '나는 봄에 피는 꽃이에요', '나는 겨울에 만드는 거예요'가 써있지 않은가. 이런, 알고 보니 우리가 즐겨하는 수수께끼 놀이를 옮겨놓은 것이었다. 허나, 착각도 이런 착각이라면 평생을 하고 싶달밖에.

현실이라는 것에 반쯤만 발을 딛고 무언가에 취해 일생을 보낸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워낙에 현실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반쪽 살다 가는 삶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결국 마지막 갈 때 웃으며 즐거웠다고 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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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2

from text 2007/10/31 17:44
모든 열병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지나온 길에 발자국 하나를 더할 것이냐, 길을 지울 것이냐는 온전한 자신의 몫. 난생 처음 누군가에게 답을 구하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서산을 바라본다. 더딘 걸음에 그림자가 길다.

두 번째 생일

from text 2007/10/29 14:05
음력과 양력이 일치하는 생일, 기억에는 두 번째 맞는 생일이다. 내가 태어난 게 누군가에게 고마운 일일 수 있을까. 손끝에서 타는 담배를 보며 소멸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덩어리로 떨어지던 재가 바람에 폴폴 날아다녔다.

그게 얼마나 큰지 나는 몰랐다. 내가 아는 세상만 알 뿐, 그게 전부인 줄 알았다. 하긴, 한번은 올 줄 알았던 지도 모른다. 그만큼은 나도 기다렸으니까. 이제, 때를 기다리며 잔뜩 웅크린 벌레처럼, 터질지언정, 그저 꿈틀거리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누군들 알 수 있을까. 그렇게 한 세월 가고 나면, 터져서 붉게 물든 서산이 무엇을 노래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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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일기

from text 2007/10/28 23:34
토요일, 맑은 가을날, 월드컵 경기장 뒤편 산을 올랐다. 여러 인연들이 모인 모임, 더러는 빠지고 더러는 그대로였으나, 빠진 자리가 커보였다. 다들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산을 세 시간 걸려 완주했다. 0124님, 서연이, 웃음 고운 그 분, 그 분의 초등학교 동기, 이렇게 서연이의 발걸음에 맞춰 후미에 올랐는데, 산 위에는 삼십 여분 늦게 도착하였으나 아래에는 길을 잘못 든 일행들보다 오히려 일찍 도착하였다. 가파른 길도 꽤 있었는데, 그러고도 이 녀석은 힘이 남아도는지 펄펄 날아다녔다.

별 특색 없이 밋밋한 산 같으면서도 큰 산을 모양 그대로 줄여놓은 것처럼 오르내리는 재미가 있었다. 무언가는 비우고 무언가는 채운 느낌, 알 수 없는 호흡을 갖고 돌아왔다.


새벽에 깨었다가는(위의 글을 쓰고) 아침에 잠이 들고, 다시 낮잠도 곤히 잔 일요일, CGV 대구 5관에서 제8회 대구단편영화제 중 초청작2를 보았다.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 다리들, 열정 가득한 이들, Muscle Man, 프랑스 중위의 여자, 진영이.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햇살" 후배 백승빈 군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제6회 미쟝센단편영화제 공포판타지부문 최우수작품상 수상작이다. 녀석의 이미지와 중첩되는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강렬했다. 2006년 4월 한국에 온 일본 락큰롤 밴드 '기타 울프'에 대한 다큐멘터리, 락큰롤에 있어 중요한 것 세가지가 신선했다. 그 세가지는 그들에 따르면 가오, 근성, 액션.

영화 시작 시간과 0124님을 기다리는 동안, 영화관 입구인 6층 난간에 턱을 괴고 5층 매표소에 떠다니는 사람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문득 각양각색의 발랄한 물결 속에 나 혼자만 괴리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한 듯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아 잠시 침잠하는 동안 뜬금없이 세상은 참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저 아무렇게나 내팽개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어떻게든 한번 부여잡고 싶은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는 "햇살" 후배 몇 명과 잠시 이야기 나누다가 언뜻 돌아가는 한 뒤태에 놀라 마음이 서성이기도 했다.

from text 2007/10/25 03:31
자다 깨는 일이 잦다. 그럴 때면 이런 저런 꿈도 꾸고 길도 헤맨다. 짧은 글도 짓고 모르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방 본 나무, 그 나무에 핀 꽃은 낯설었다. 낯가림이 있는 내가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낯선 길에 핀 낯선 꽃. 좌우도 사방도 대칭이 아니었다. 잠깐 손을 내밀어, 흔들다, 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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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from text 2007/10/21 12:55
단체로 산행을 했다. 헐티재에서 대견봉을 올라 유가사로 내려오는 길, 험한 오르막이 없어 걷기 좋았다. 정상까지 겨울이었다가 내려오면서 다시 가을을 만났다. 그 가을이 반가워 여러 노래를 불렀다. 일행을 두고 600번 버스를 타고 오래 혼자 돌아왔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먼 여행을 다녀온 듯 잠이 달았다. 비슷하구나, 비슷한 게 많구나, 생각했다. 술만이 아니라 아끼기 어려운 게 또 있구나, 생각했다.

다시, 사랑

from text 2007/10/19 13:24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그저 뒷모습이 보였을 뿐 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아무런 약속은 없어도 서로가 기다려지겠지요 행여 소식이 들려올까 마음이 묶이겠지요
어쩌면 영원히 못 만날까 한번쯤 절망도 하겠지만 화초를 키우듯 설레이며 그 날을 기다리겠죠
우리가 지금은 헤어져도 모든 것 그대로 간직해요 다시 우리가 만나는 날엔 헤어지지 않을 테니까

해바라기의 '지금은 헤어져도'가 며칠째 머릿속에 뱅뱅 돈다. 방배동 카페에서는 비틀즈의 미셸과 함께 일부러 신청해 듣기도 했다. 계속 소리 내어 흥얼거리다보면 다음 세상도 틀림없이 있을 것 같고, 벌어먹고 사는 일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충만한 기분이 불안하다. 문득, 김수영의 '사랑'이 떠오른다.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

from text 2007/10/13 08:46
아껴야겠다. 시간이나 사람은 몰라도, 술은.

* 오래된 퀴즈 하나. 'O끼고 O하는 게 사랑이다'의 O에 들어갈 말은? 알고 나면 당연한 것 같지만 맞히는 사람을 아직 못 봤다. 정답은 아, 위. 그러게 이제야 이들을 더 사랑하려 할 따름인 게다. 마치 섬광이 일듯 '술을 아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긍정적 사고의 힘인가, 평화가 흐르고 힘이 불끈 솟는다. 기특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 벤을 기리며 오랜만에 잭콕을 먹고, 그리운 소주를 먹었다. 잘 가, 벤.

Leaving Las Vegas

from text 2007/10/12 01:53
술자리 내내, 모처럼 밤길을 걸어 집에 오는 내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나지 않았다. 무리 속에서 혼자 벤을 생각하며, 벤과 대화하며 술을 먹었다. 그를 생각하면 더 큰 잔에 술을 붓고, 더 자주 잔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잘 들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바빴다.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羑里에서처럼 빤히 내다뵈는 걸 받아들이는 육조의 심정이었을까, 이제 그렇게 다 버리고만 싶었던 것일까, 종내 갈 수밖에 없는 시간의 가르침을 그저 따라간 것 뿐일까, 얼마 전 술 마실 적 심정으로 미루어 대꾸할 뿐, 더 오래 잔을 나누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그렇게 한 생애에 주어진 사랑과 '행복'은 유한할 터, 이제 어디로 간단 말인가.

I'm Ben. I'm Sera. Sarah, with an 'H'? With an 'E', S-E-R-A, Sera.

from text 2007/10/10 10:11
저명인사 가운데, 대부분의 글들을 꼬박꼬박 읽는 개인 홈페이지 내지는 블로그가 있다. 김규항, 강유원, 우석훈이 그들이다(강유원의 글들에서는 조금 멀어졌다). 김규항과 강유원의 책은 웹에서 대부분 읽은 내용인 줄 알면서도 몇 권 샀고, 우석훈의 책은 몇 번이나 살까말까 망설이면서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살떨리는 강의록과 댓글들을 보고나니 몇 권 주문하지 않을 수 없겠다.

어제, 최성각의 달려라 냇물아, 백가흠의 조대리의 트렁크를 주문하였고, 안 그래도 보고 싶던 정민의 책 읽는 소리,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선물 받았다(책 선물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요즘 다시 책 읽는 재미에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다. 역시 오래 전 사다놓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을 읽고 있는 중인데,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는 한참 윗길이다.

* 우선 골고루 골라 주문하였다. 88만원 세대, 도마 위에 오른 밥상,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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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

from text 2007/10/08 23:56
바람을 느낄 때면 코끝이 영 간질간질한 게 가을 내음이 한창이다. 오후 네 시, 손님 만날 일이 있어 아리아나 호텔에 갔다가 오 분도 안 되어 일을 끝내고는 서연이 마칠 시간이 남아 조금 걸었다. 호텔 뒤편으로 골목을 이리저리 밟히는 대로 걷다보니 들안길 네거리였다. 이 시간에 걷는 길이 주는 낯설고 오래된 느낌을 잠시 즐길 수 있었다.

피아노학원에는 그래도 약간 일찍 도착하여서 이 녀석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며칠째 '도레미'만 배우고 있는 모양이다. 녀석이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본다는 게 이리 물기 차오르는 일인지 몰랐다. 그러나 평화롭고 착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잠시, 데리러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여기 가르치는 분들은 어린이집 교사들과 달라서 애들 대하는 모습이 거칠고 어설퍼 보여 마음이 언짢았다.

오늘처럼 한 주에 한 번 0124님이 야근을 하는 월요일은 하루가 길다. 피아노학원엘 다니고부터는 이 녀석을 데리고 오자마자 부엌으로 가 마른 그릇들을 수납하고, 가져 온 식판과 수저, 아침에 밀린 밥솥과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데, 이 날은 여기에다 밥과 후식을 챙겨 먹이고 같이 노는 것까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잠시 자취를 할 때나 가끔 설거지를 할 때마다 느끼던 대로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내고 헹군 그릇들을 가지런히 정돈할 때면 마음도 덩달아 깨끗해진다. 묵은 찌끼가 쓸려가면서 자꾸만 멈추려는 육체를 자극한다. 오늘은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일 못하는 놈이 표낸다고 아침에 스탬프 잉크를 쏟아 손이 엉망이 되었는데,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던 것이 설거지를 마치고 났더니 손톱 밑을 빼곤 깨끗해졌다.

나이가 든 걸까. 갈수록 아깝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아진다(조심하고 주저하는 일이 많아졌다). 앞을 내다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전하지 못한 소식과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무겁다. 한때 가슴에 새겼던 말, 김남조의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이 문득문득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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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from text 2007/10/06 10:16
때때로 글을 쓰다보면 스스로 제어가 안 될 때가 있다. 앞에 쓴 글이 제 힘으로 저를 밀고나가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는 조바심이랄까 안타까움이랄까 무언가에 쫒기는 듯 서둘러 마무리를 짓게 된다. 그러고 나면 무언가 나도 알 수 없는 말들의 조합이 드러나는데, 갖은 해석을 갖다 붙이며 혼자 만족하기도 한다. 만들다 만 색종이들이 어지럽다. 가을, 산다는 일이 셀로판지 부서지듯 시리다. 오늘도 어김없이 부러진 호미 같은 낮달이 떴다.

어떤 대화. "잠깐 왔다 가는 세상 무에 그리 가릴 게 있는가." "그래도 가릴 건 가려야지." "그러게 가릴 거만 가리면 되지, 무얼 그리 가리냔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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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from text 2007/10/02 23:41
서연이가 어제부터 피아노학원에 다닌다. 학원에서 배우는 피아노란 게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나, 내가 워낙 음치인데다 수영을 못하는 탓에 음악과 수영만은 일찍 접하고 익혔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고(더 바란다면 체계적인 교양을 쌓았으면 싶다. 어릴 때 생활로 접하지 않은 예술적 감성은 후에 공부로 채워지지 않는다. 물론 공부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독학의 흔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게 한탄스러울 때가 있다), 작년 삼월부터 저녁마다 서연이를 봐주신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시기도 하여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저녁에 좀 편하게 내 시간을 보내거나(술 먹은 다음날 아예 혼자 편히 쉰 게 얼마더냐)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맛있는 저녁밥을 먹기는 힘들게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바래다주고 데려오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닌데)덕분에 술도 좀 줄고 몸무게도 좀 줄려나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 있다. 오래 전(1995년일 것이다) 봄의 초입에 정호, 준탱이와 함께 떠난 여행이다. 고창 선운사, 다산초당, 완도, 땅끝, 남해, 진주, 양산 통도사 등지로 돌아다녔다. 술자리마다 떠나고 싶다, 가고 싶다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읊어대곤 하다가 어느 날 저녁 정호가 작정을 하고 나서는 바람에 지도 하나 들고 엉겁결에 나선 여행이었다. 정호와 준탱이 번갈아가며 밤에 운전을 하고 낮이면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선운사 입구로부터 선운사까지, 그리고 남해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또 한번은 이듬해 정초, 지금은 서울에서 노무사를 하고 있는 문배형과 둘이서 태안반도(만리포, 안면도), 변산반도(채석강, 내소사), 선운사, 마이산(탑사, 은수사) 등지로 다닌 것이다. 제천역에서 철도인간으로 근무하던 문배형이 백수로 귀환하는 걸 기념하는 여행이었는데, 혼자 기차를 타고 제천에 도착하는 날부터 눈, 비가 섞여 내리더니 여행 내내 흐리고 눈, 비가 내렸다. 장안평에서 중고 프라이드를 사자마자 내처 떠난 여행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형수한테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다(두 분 신혼여행 때는 마침 제주도 출장이 겹쳐 형수 잠든 사이 둘이서 술 퍼먹고 논 적이 있다. 형이 들어갔을 때는 형수 혼자 뭔 신혼여행이 이러냐며 맥주 마시며 울고 계시더라고 들었다). 만리포 가는 길에서의 짙은 안개, 온통 눈에 덮인 변산반도, 눈 내리는 채석강, 내소사의 설선정, 눈길을 헤치며 한참을 달린 막다른 국도, 밤에 둘러본 탑사와 은수사의 진기로움이 기억에 남는다.

내일은 이종사촌 여동생이 결혼을 한다. 예과(?) 4년 마치고 그의 언니 수학 가르친다고 몇 달 같이 생활한 적도 있는데, 외할아버지 장례 때 보니 생판 몰라볼 숙녀가 되어 있었다. 숙명여대 근처에 집이 있어 자주 그쪽으로 산책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0124님은 절친한 친구 수경씨(TBC에서 리포터와 라디오 DJ를 하던 시절, 우리 함 들어가는 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주었었다. 지금은 GS홈쇼핑의 잘 나가는 쇼호스트이다. 축하해요, 수경씨)의 결혼식이 겹쳐 서연이와 전주엘 가고, 먼 길에 자동차가 싫어 아버지, 어머니, 친척들과 따로 혼자 기차표를 끊어두었다. 혼자서는 오랜만의 나들이라 그런지 서울 처음 가는 촌놈인 양,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 양 조금 설렌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역사서나 역사를 다룬 드라마 등을 볼 때면 옛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목숨을 초개같이 여길 수 있었는지 가슴이 서늘할 때가 많다. 대지를 어머니라 생각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하지 아니 한 인디언들의 삶에 대해 떠올릴 때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나 자라는 환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결국 죽음의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초월한 것에 기댈수록, 가면 갈수록 갈 데가 없을밖에. 다음은, 1854년, 두아미쉬-수쿠아미쉬족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문. 이윤갑 선생님께서 예전 한국사회경제사 강의 중 복사하여 나눠주셨을 때 처음 보았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내왔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안개가 달아나듯이 홍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덩어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욕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 소리나 한밤중 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 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으므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물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날들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 많은 날이 남아있지도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멸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는 간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전화선)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의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 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한 가지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을. 이 땅은 그에게 소중한 것이다. 백인들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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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언

from text 2007/09/30 22:07
어느 날, 한 여인이 간디를 만나기 위해 멀리서 간디가 있는 곳까지 찾아왔다. 그 여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걸어왔는데, 간디에게 아들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쉬지 않고 설탕을 먹는답니다. 아이에게 설탕이 몸에 좋지 않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도대체 제 말을 듣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은 들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아이에게 설탕 좀 그만 먹으라고 말씀해 주세요." 간디는 그 아이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더니, 그 어머니에게 열흘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때는 여름인데다 그 여인의 집은 아주 멀었기 때문에 여인은 크게 실망하면서 돌아갔다. 열흘 뒤, 그 여인은 아들과 함께 다시 간디를 찾아왔다. 간디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설탕이 몸에 좋지 않으니 설탕을 그만 먹으라고 말했다. 그 여인은 간디에게 고마워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렇게 간단히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되는데 왜 지난 번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건가요? 왜 다시 오라고 하신 거죠?" 그러자 간디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저도 지난 번까지는 설탕을 먹고 있었거든요."

참 사람 좋은 김용락 선생의 어떤 글에서 처음 읽은 건데, 사실 여부는 의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일화는 '知行合一', '言行一致'와 함께 항상 마음에 짓누르듯이 새기게 된다.

어제, 그제,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크게 꾸밈 없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오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오늘은 시간이 없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오래 전 사다놓고 이제야 읽기 시작한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어느 현처가 긴 편지의 말미에 덧붙인 유명한 양해의 일절이란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