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75건

  1. 사계 2008/09/04
  2. 어린 시절 2008/09/03
  3. 조증이 오래가면 2008/08/13
  4. 여름, 0731-0805 2008/08/05
  5. 대화 1 2008/07/31
  6. 가족 2008/07/30
  7. 설마 2008/07/29
  8. 우정 2008/07/28
  9. 작곡 2008/07/25
  10. 라이카 2008/07/15
  11. 이야기 둘 2008/07/08
  12. 기도 2 2008/07/01
  13. 마른장마 2008/06/27
  14. 다만 그땐 2008/06/25
  15. 장마 2008/06/18
  16. 세상을 대신하여 2008/06/09

사계

from text 2008/09/04 00:11
흔치 않은 성씨였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N이라고 해두자. 그 무렵 나는 한 문장만 빼도 바스러지는 촘촘하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소설이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시를 쓰고 싶어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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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from text 2008/09/03 22:24
어린 시절, 방학은 늘 시골 외가에서 보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날 또는 그 이튿날 어머니와 함께 가서 개학 전날이나 전전날 돌아오곤 했다. 초등학교 육년을 내내 그렇게 보냈다. 나를 데려다놓은 그날이나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떠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어귀 구판장 앞에서 동구 밖으로 멀어지는 어머니는 그 긴 길 위에서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기억이 맞다면 열두 번을 한결같이 그렇게 가셨다. 먹먹한 마음도 잠시, 곧 산으로 들로 개울로 못으로 잘도 돌아다니며 놀았지만, 사는 동안 문득문득 그 뒷모습은 가슴 서늘하게 출몰하곤 한다. 데리러오셨을 때면 저도 모르게 수다스럽고 들뜨던 어린 내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그런 내 모습을 낯설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정직하게 제 살 깎아먹는 법을 그때 배웠다.

대저 얼마 못 가는 마음들이, 그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떤 마음을 이루기도 한다. 이 녀석 오줌인들 못 먹을까 보냐 하다가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태산을 짓기도 하는 것이다. 더러는 색채가 없는 채색화, 먹을 쓰지 않은 수묵화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살뜰한 휴식, 그 끝에서.

* 어제 저녁 조금 늦게 일을 마치고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정영태의 우주관측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바람이 좋아 일부러 멀리 돌아 집까지 걸었다. 날이 좋아지니 다시 산이 그립다. (우주관측을 서점에서 출판사에 주문하는 사이 이원규의 지리산 편지를 다른 서점에 주문하였다. 처음 사는 원규형 책.)

조증이 오래가면

from text 2008/08/13 14:07
어제와 오늘 김곰치의 책 블로그를 들여다보았다.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마흔에 만나기로 했다던 그녀가 이 책 '빛'의 정연경의 모델인가, 일종의 헌사인가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다음은 와 닿은 구절들 중 일부. 링크는 작가의 일기 중 인상적이었던 조증. 둥시의 '언어 없는 생활'과 함께 주문하였다.

남녀가 처음 만나 8초면 '저 사람과 연애할 수 있다 없다' 판단을 한대요. 4촌가 8촌가. 지율 스님에게 그 얘기 했더니, 웃기지 말래요. 보는 순간 안대요, '앗, 내 남자, 내 여자' 하고요. 왜냐하면 워낙 억겁의 어떤 전생의 연이 있기 때문에…. 제발 좀 만나자마자 그날 바로 사고치는 연애 하라고.

찬란한 여성을 보면, 스무 살에 봤는데 아직도 이따금 떠오르거든요. 아, 왜 그리 찬란했을까….

근데 분노라는 게,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사람이 분노할 때 인식이 굉장히 정확해진대요. 복잡하게 몇 달 고민하던 것을 분노의 감정이 왔을 때 한칼에 인식을 끝내버리고 결행한다는 거예요.

* 스물네 시간 만에 책이 도착하였다. 다음은 이경의 작품 해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 중에서 책 뒤표지에 실린 부분.

남녀는 함께 문어를 먹고 있으나 이들이 먹는 것은 동일한 문어가 아니다. 남자는 생명이었던 문어를 먹고 여자는 음식인 문어를 먹는다. 음식이라는 여자의 판단 배후에는 다른 생명체를 먹을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한 기독교의 교리가 있고 생명으로 보는 '나'의 배후에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이 자리한다. 다른 하느님은 이처럼 늦은 밤 남녀가 마주 앉은 술집의 술상 위에까지 좌정해 차이를 압박한다. 때문에 이 장면은 실오라기 하나 벗지 않았으나 간음에 값하는 배신의 현장이 될 수 있다.

* 술병 다스리며 이틀에 걸쳐 완독하였다. 남자와 여자 이야기도 예수 이야기도, 때때로 내가 말을 하는 듯,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술술 읽혔다. 정영태와 톨스토이를 찾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팝콘 사건' 직후 조경태가 만난, 톨스토이 관련 삽화 한 토막.

조국, 러시아, '땅의 사람들'을 끈질기게 사랑하셨던 톨스토이 선생님, 세상의 모든 출판사가 인세 지불 없이 당신 책을 마음대로 출판하여도 된다는 선언을 하셨고, 선생님 마누라 소피아는 그 결정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소피아를 보고 '아아, 이 여자가 나를 모른다!' 하고 팔십 노구를 이끌고 가출을 감행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그 가출 여행 중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인근에서 몰려온 농민들…… 백작님이 갑자기 위독해져 우리 마을 기차역 객사에 누워 계시단 급보를 들었던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이러셨다죠. 왜 이리 시끄러워. 러시아 농민은 이렇게 요란하게 죽지 않아.
사람들의 임종 면회를 허용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소피아만큼은 '그 여자 얼굴은 다시는 안 본다!' 하고 거절하셨다니, 하하하, 참 귀여우신 선생님!

여름, 0731-0805

from text 2008/08/05 18:08
재미있는 모양이다.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게 많아서야 어디 제대로 하직인들 할 수 있겠느냐.

오랜만에 집을 못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도 집 앞 네거리 같고 저기도 집 앞 네거리 같더니 집 앞 네거린 낯설기만 하였다. 발음이 꼬여 말도 말 같지 않았다.

일부런 듯 종일 TV를 보는데 문득 42인치 LCD TV가 괴롭히다. 욕 조금, 눈물 조금, 옛 생각 조금 하다 발로 밟아 끄다. 이만한 것에도 이럴진대, 못난 놈, 하다 TV를 끊을 생각을 하다.

이대로 사육, 당해도 좋단 생각, 잠시.

지난겨울 한때처럼, 그 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이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프거나 다친 자국은 몸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다 아물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엔 흔적도 없어도, 자칫 깊고 오랜 상처가 반복될까, 저도 모르게 짧고 얕게 지날 길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담장 너머 보란 듯이 매달린 석류를 보았다. 그리워 그리워 꽃 진 자리에 그리다 그리다 맺힌 암반 덩어리.

인연이 아니면 인연이 아닌 것, 세상도 저도 나도, 길이 다르면,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헛먹었을지라도 나이가 가르쳐준 것, 먹은 태는 낼 줄 아는 거다. 시시한 세상, 이라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여줄 거고, 저도 이 여름도 결국 또 언제 그랬느냐 할 거다. 갈 길도 멀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주춤거리고 헤매는 시간이 밉지만은 않다.

* 준탱이 돌아왔다. 온산항에 잠시 정박하고 있다 모레쯤 입성할 모양이다. 일 년여 만이다. 그래도, 시간, 참.

오늘 늦냐길래 잠깐 야근하고 아직 임잔 없지만 간단히 소주 한 잔 할까 한댔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랑 놀란다. 젠장,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혼자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에 있을까.

대화

from text 2008/07/31 23:31
엊저녁, 0124님은 여전히 교육으로 늦는데다, 비도 오고 마음도 그렇고, 서연이랑 둘이 간단히 저녁 챙겨먹고는 집 근처 자주 가는 일본식 꼬치 전문점으로 가볍게 나들이하였다. 단둘이 술집에 간 건 처음이다. 상 아래로 다리를 넣을 수 있는, 늘 앉는 자리에 마주 앉았더니, 언제나 정겨운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께서 몇 분 더 오시는지 묻는다. 답니다 했더니, 조금 놀라는 눈빛으로, 혼자 오셨어요? 하는데, 이 녀석이 대뜸, 저도 있어요 소리치는 바람에 주변 손님들의 이목을 끌고 여럿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술자리가 되리란 예감을 하며 같이 안주를 고르고 소주 한 병 주문하여, 서로의 잔에 저는 술을 따르고 나는 물을 부어 심심찮게 건배하며 대작하였다.

흔히 갖는 술자리와 달리 진지한 대화부터 시작하였다. 아빠는 서연이한테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밥을 먹을 때나 이렇게 식당에 앉아있을 때 가만히 앉아서 먹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짐짓 심각한 얼굴로 알았단다, 그렇게 하겠단다. 서연이도 아빠한테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 했더니, 담배는 피우지 말고 술은 조금만 마셨으면 좋겠단다. 잠시 실랑이하다 담배는 줄이고 술은 덜 먹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는 묵찌빠, 가위바위보, (제멋대로)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중간말잇기, 끝말잇기를 거쳐 녀석의 미래에 대해 잠시 들을 수 있었다.

뜬금없이 이천이십일년에는 서연이 몇 살이에요? 그럼 이천삼십삼년에는요? 이천사십이년에는요? 등등 묻고는, 답해주는 나이에 따라 고등학교 삼학년이네, 어른이네, 아빠 나이랑 똑같네, 어쩌네 하더니,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원별애랑 결혼한단다. 저희들끼리는 결혼을 약속한 이현지라는 단짝이 있는 줄 아는 터라, 현지는? 했더니, 이현지는 나중에 저를 안 좋아할 지도 모르는데, 원별애는 나중에도 저를 좋아할 거란다. 그래서 원별애랑 결혼할 거란다. 아빠 나이랑 똑같네 할 때에는, 서연이도 그때 아빠한테 서연이가 있는 것처럼 아기 있겠네 했더니, 원별애가 낳으면요? 하고는 실실 웃는다.

다음날 오마시던 빙부께서 들르셔서, 술과 안주를 삼분의 일 가량 남기고, 아쉬움을 두고,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선선했다. 열대야 탓도 있겠지만 한동안 또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는 일이 잦더니 모처럼 깊이 잤다. 가게에서 나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뭔가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녀석과 대작하는 동안 받은 교감과 유대의 느낌을 되새기며, 나누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간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자유에 집착하여 그 소실을 그리 염려하고 언짢아하였던가 돌아볼 수 있었다.

* 말하는 김에, 오늘 아침 녀석과의 출근길에서의 대화.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오늘은 누가 데리러 올 거예요? 묻는다. 아빠가 데리러 갈 거라 했더니, 일 있으면요? 하고 되묻는다. 오늘은 일 없으니 아빠가 데리러 갈게 해도, 갑자기 일 생기면요? 그럼 어떡해요? 집요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댁에 가 있으면 되지 했더니, 그러니까요, 지금 슈퍼 가요, 헤헤 웃으며 손을 잡아끈다. 과자든 사탕이든 빙과류든 딱 하나만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정해놓고 사주는데, 혹여 하는 생각에 저녁까지 못 기다린단 심산 거다.

하나 더. 조금 전, 제 어미가 왔을 때 둘의 대화. 방학이라 유치원 도시락 반찬으로 고민인 어미가, 장 봐서 월요일엔 김밥 싸줄까? 하는 말에, 그럼 김하고 밥하고 재료하고 싸주세요, 서연이가 싸서 먹을게요, 천연스레 대꾸한다. 제 어미 음식 솜씨를 교묘히 타박하는 건지, 말 비틀기인지, 나도 따라가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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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from text 2008/07/30 13:31
늘,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지만, 생각해 보면, 온순하신 두 분 앞에 한없이 낮게 엎드리고만 싶었다. 지금껏 주고받은 말씀의 총량이 마음 맞는 친구와 하룻저녁 술자리에서 나눈 그것보다 적은 아버지, 꼿꼿하고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어머니. 나이를 먹어가며, 두 분의 성정이 내 바탕에 실핏줄처럼 스며 있는 걸 느끼는 때가 는다. 무던히도 세상에 거역하고 거부하며 나대로 작은 탑을 쌓아왔지만 다 내 것이 아니었다.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적정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걸 수시로 느껴야 한다는 것은 힘들고, 오래 못 견딜 일이다. 세세한 신경을, 많은 걸 가족을 위해 쓰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한 순간 경멸의 눈초리, 팽개쳐진 삶의 조각들이 한동안 그 자리를 대신하여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다 까마득히 날아온 소식이었다.

나를 봐도, 우리를 봐도 자신 없었다. 내 얘길 들으니 저도 자신 없다며, 그러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했을 때, 나는 이대로 가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만들어놓고 싶었다. 언제 어느 때든 예비해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간데없는 마음 하염없이 들여다보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번지는 작은 손짓의 흔들림을 느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나한테, 참, 무거운 녀석이다. 병원을 찾은 날까지 아무런 떨림 없이 짓누르기만 하더니, 쿵쾅대는 심장소리로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천천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대꾸하지 않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내 귀와 입을 열게 하였다. 무릇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을라고, 여전히 녀석은 나에게 무겁지만, 그러안지 않을 수 없는 딱 그만큼의 무게를 나에게도 주었다. 먼 훗날, 내가 저의 이름을 부를 때, 함께 불릴 이름에 고이 머리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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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from text 2008/07/29 04:54
저도 내 맘 같을까, 행여
저가 내 맘만 할까

우정

from text 2008/07/28 14:26
바빠질 것 같은 예감, 견제하는 심정으로 주문한 책 몇 권이 도착하였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 김종철의 땅의 옹호, 그리고 녹색평론선집 2. 다음은 땅의 옹호 '책머리에' 중 일부. 오래 전 읽다만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녹색평론> 100호를 기하여 내놓는 이 책의 준비과정에서 나는 <간디의 물레> 이후 내 생각에 일어난 약간의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근년에 이르러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이 내게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점과 크게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리치는 우리의 삶에서 '우정'이 갖는 중심적인 의의에 대해서 나를 깨우쳐주었고,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일리치는 내게 실제로 좋은 벗들을 불러다주었다. 내가 오랜 직장이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었지만 대부분 초기회원들이 계속해서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을 통해서 나는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은 사심없는 마음, 자기희생의 정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고 일리치는 말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서 빈번히 입증되었다. 나는 이 책이 이 모임의 벗들에게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방금 찾아 읽은 프레시안에 실린 강양구 기자의 김종철 선생 인터뷰 중에서.

- <녹색평론> 외에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어떤 책이 첫 단행본인가?

<녹색평론 선집 1>을 제외하고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실질적인 첫 단행본이다. 그리고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두 번째로 펴냈다. 장일순, 권정생 두 분은 일리치, 간디와 더불어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를 말, 글과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들의 책을 낸 것은 또 다른 큰 보람이다.

- 마침 권정생의 1주기다. 고인의 생전에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스승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이런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툭하고 이런 얘기를 던지더라. 한창 퇴계 이황이야말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사상가라고 주목하던 때였다. "퇴계 집에 노비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비는 생산에 동원되지 않으니, 그 노비까지 먹여 살리려면 퇴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소작농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한 마디로 퇴계 학문의 관념성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서 얘길 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잠깐 들른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하나 더,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쳇, 가히 耳順을 지나 從心의 경지가 아닌가.

작곡

from text 2008/07/25 14:29
오늘 아침 일이다. 일어나자마자 멜로디언을 꺼내 건반을 두드리는 녀석을 달래가며 밥을 먹이려는데, 언뜻 봐도 복잡한 음표들을 잔뜩 그려놓은 공책을 보며 치고 있는 것이었다. 어딘가 있는 걸 옮겨놓은 거냐, 네가 쓴 거냐 물으니 제가 썼단다. 엊저녁 '일지매' 마지막 회 보느라 정신 팔려있을 때 공책을 펴놓고 뭔가를 열심히 쓰기에 글씨 연습하는 줄 알았더니 이걸 쓰고 있었나 보다. 볼펜으로 오선지를 긋고 음표 아래에 계이름도 군데군데 적어놓은 게 (본 적은 없지만)전문가의 습작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높고 빠른 템포의 곡으로 보였다. 어린 작곡가(?)의 즉흥연주까지 들었으나, 그리 매끄럽지 않은데다 들어도 뭘 잘 모르는 귀를 가진 탓에 별 큰 감흥은 없었다. 유치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떤 연주가 떠올라 써 본 건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연주해 본 건지 물었더니, 예쁜 음악이 생각나서 쓴 거란다. 아무렴, 창작이 아니라 어디서 들은 걸 어설프게 베껴본 것이라 하더라도 나에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이 물난리를 겪는 와중에도 홀로 쨍쨍한 폭염주의보를 발하더니 마침 내리는 단비가 반갑다. 녀석의 말 곧이곧대로, 누가 뭐래도 녀석의 첫 작곡인 거다.

* 얼마 전에는 피아노학원에서 집으로 걸어오며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일이 있다. 대뜸 '서연이도 몰라요' 하더니, 나중에는 '한마음콜 택시가 좋아도 다른 택시도 타는 거예요' 한다. 그렇지, 뭐든 하나만 그리 좋을 수 있나, 하다가, 택시 사랑이란 저와 같아야 하는가, 소리 내어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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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from text 2008/07/15 15:48
그는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고 쓰다듬고 만지고 작동시킬 수 있다. 여전히 마음대로 부릴 수야 없지만 나를 위해 나름의 충분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와 같이 처음 저도 나를 길들일 때 느꼈을 나의 배려를 잊지 않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상대를 좋아할 때는 그도 나를 좋아하기만을 바라지만, 그도 나를 좋아할 때는 그 크기와 성질을 재고, 울고 웃는다. 한 발 먼저 다가가기를 겁내지만 한 발 물러날 때는 냉큼 한 발 다가가고 만다. 우리도 그랬다. 다만 다 가질 수 없다는 분명해 보이는 사실이 더 가지려는 욕망을 적절히 제어해 주었을 뿐이다. 물론 이 독특한 거리는 저와 나를 우리일 수 있게 하지만 언제든 우리를 부정할 수밖에 없게도 한다. 어느 쪽이든 낮은 자리에 맞출 수밖에 없는 처지가 높은 교감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선 자리가 늘 불안한 것이다. 사람들은 직립보행 이후 많은 걸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의심과 질투와 질병을 얻었다. 마주보는 사랑을 하고부터 사랑을 마주볼 수 없게 되었다. 태초처럼 가늘게 반응한 이래 때때로 그와 내가 서로에게 감응하던 반짝이는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그때 저와 나는 저와 나의 도덕으로 충분하였다. 하지만 언제든 손끝을 놓아버리거나 손끝에서 달아나는 꿈을 지속적으로 꾼다는 건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낡고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골병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해석에 실눈을 치뜨다 이어지는 길이 이어지는 길이 아님을 알았다. 늘 그랬듯,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게나, 앙상한 이름으로만 남지는 않을, 나의 특별한 친구.

이야기 둘

from text 2008/07/08 16:28
오래 전 어디서 본 이야기 하나. 학동들이 모여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데없이 맹구, 나는 쓸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을 몰라. 기가 막힌 학동들, 그럼 한번 써봐. 그러자 맹구, 붓을 들더니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그 한가운데 점을 하나 찍는 것이었다. 의아한 학동들, 그게 뭔데? 맹구 왈, 난 쓸 줄은 아는데 읽을 줄은 몰라.

그렇다. 읽는 건 읽고 싶은 놈들 몫이고, 뜻이야 있든 없든 그런 거야 알든 모르든, 사는 건 사는 놈들 몫인 거다. 커다란 동그라미 한가운데 콱 박히는 삶(이든 뭐든)을 써내려가는 놈 보고, 너 뭐야? 하지 말라는 거다.

역시 어디서 본 이야기 하나 더. 대한민국에 남녀혼탕이 문을 열었다. 남.녀.혼.탕. 대문짝만하게 내건 간판을 보고 남자들이 개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탕 안엔 남자들만 우글거릴 뿐, 여자는 한 명도 없었다. 열 받은 손님들이 주인에게 따졌다. 남녀혼탕이라더니 이게 뭐요? 주인 왈, 여자 손님이 안 오는 걸 나더러 어쩌라는 거요?

그렇다. 그건 주인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안 오는 걸 어쩌란 말이냐. 강태공이 낚던 세월도, 기다린다는 때도, 아니 오면 그 뿐, 누굴 탓한단 말이냐.

* 점심 먹고 시시덕거리다 문득 떠올라 주변에 내놓은 이야기들. 어떤 걸로도 이 무시무시한 더위가 싹 가시기야 하랴마는, 잠시 웃고 잠시 느끼는 가운데, 온몸으로 뚫고 나가든 슬쩍 비껴가든, 한 세상 지나가고 말 테지, 뭐 그런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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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2

from text 2008/07/01 09:50
아아저들은저들이지은죄를알지못하고우리는우리가죄지은줄알지못하나이다이제도저제도저희가저희를용서한줄모르는것처럼우리도우리가새가슴부여안고버팅기는줄영원히모를것을믿사옵나이다해가돋고별이지는것이정하신이치이듯이언젠가는저희도가고다시오지않을것을아옵고저가나를모르는것처럼나도저를알지못할것을아옵나이다어제도오늘도부재중인우리는우리의부재를더는슬퍼하지아니하옵나니바라지않고건네지않아도별이돋고해가지는것과마찬가지로우리를모른척하옵소서이제도저제도나라와권세와영광이저희에게있다일컬어지고있으며저는저가일컫는것이망령된것임을알지못하나이다보시는바들으시는바와같이저가달리구하는것이없으니새가슴이라도부여안고올곧이부재하는저를죄없다하지아니하지마옵소서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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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장마

from text 2008/06/27 00:25
누구나 제 몫이 있다더니, 마감 전에는 알 수 있는 건가. 마른장마 지나는 동안, 나 스스로 나와 세상의 어떤 가능성을 닫은 느낌, 돌이킬 수 없는 한 걸음을 천천히 내딛는 느낌이다. 이미 강제된 느낌. 세상은 그러나 또 그때, 그에 맞는 얼굴을 보여줄 게다. 제 본성대로 썩은 손짓이라도 하고야말 테니. 그때, 어디로 갈지는 역시 그때밖에는 모르는 것이지만. 세상에 축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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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땐

from text 2008/06/25 14:49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겠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말하자면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도 원치 않는다 하여 접시 물에 코를 빠뜨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은 그만큼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충분히 악의적인 것이다. 해서 말인데, 술과 안주 앞에 맹세를 놓듯이, 두 손 두 발 놓고,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잔 거다. 물론 사태의 결말을 책임질 순 없다. 다만 그땐 손짓이 보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세상이든 누구든, 저도 돌아앉게 마련이니.

* 별처럼 찾아온 거다. 고운 꽃처럼 다가온 거다. 부여안지 않을 수 없는 거다. 안고 가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게 명령이다. 그때 명령의 정체다. 손짓마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 조금 전, 노태맹의 '푸른 염소를 부르다', 권여선의 '분홍 리본의 시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슬라보예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이 왔다. 올해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를 보고 마음 동해 주문한 책들. 거기 여러 잠언들이 있었지만, 하나만. 고통은 무례를 용서하게 만드는 법이다.

다음은 태맹이형의 시집 뒤에 실린 인상적인 '시인의 산문' 중 한 구절. 내가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가장 강렬하게 사랑한 이 것. 조사 하나를 들고 밤새 문장 한 구석에 꿰어 맞추기하던 날들. 입 안에 얼음이 씹힌다. 고맙다, 덕분에 많이 고통스러웠다. 젠장.

그리고 시 한 편.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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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from text 2008/06/18 16:21
허공에 대고서라도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도
떨리는 손, 시커먼 얼굴을 달래가며 술을 마시는 것도
다리로 다리를 끌며 꾸역꾸역 산을 오르는 것도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는 것도
추억은 추억일 뿐
거리를 헤매며 못내 지난 기억의 갈피를 뒤지는 것도
날이 밝고서야 잠이 드는 것도
다 저를 위한 것이다 스스로 위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맹세만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생을 지나다 마주친 그 사람
비슷한 부류일지라도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고 되뇐들
빗속에 땀 흘려 애써 고단한 몸을 만든들
낯선 가슴, 먼 얼굴로 내일 일일랑은 내일 만난들
긴 장마에 땅이 하늘로 일어나든, 하늘이 땅으로 내려앉든
각자는 각자일 뿐, 시간의 더께에 손끝 하나 덧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렴, 엄살 부려본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고말고

* 어제, 서연이가 아파 유치원 마치고는 피아노학원도 쉬고 같이 동네 의원에 들렀다 집으로 갔다. 저녁 먹고 잠시 놀다 피곤하여 혼자 먼저 누웠더니 슬그머니 들어와 옆에 누우며 속삭이는 말이 예뻤다. 새로 가슴이 뛰는 듯 벅찼다. 그 청유형의 은근한 억양과 뉘앙스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빠, 사랑해. 내일 아침에도 같이 손잡고, 유치원에 가자. 일찍 일어나서 밥 먹고 약 먹고. 아빠, 사랑해. 내일도 같이 유치원에 가자. 아빠도, 잘 자. 그러고는 한번도 보채지 않고 잠이 들었다. 0124님은 월요일 야근에다 오늘부터 또 석 달 가량 수요일과 목요일, 밤늦게까지 교육이다. 긴 하루가 늘었다.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은 듯 하더니 밤새 장마가 시작되었다. 한순간 무너질지라도 쌓을 땐 열심히 쌓을 수밖에 없을 터, 어쨌든 당분간 근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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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대신하여

from text 2008/06/09 16:27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올 때 사람으로 나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들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일 테지요. 인연이 있어 만나고 소식을 안다는 것은 그래서 얼마나 가슴 저린 일일는지요. 나고는 가고 오고는 가는 게 세상일이라지만, 잠시 머무는 모양이 이리 안타까운 까닭이기도 하겠지요. 오늘은 지나간 한때처럼 오래오래 당신을 생각합니다.

올해 여름은 사계절을 몇 번이나 겪고도 여태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마음처럼, 사나운 봄도 길어진 걸까요. 지난 밤 꿈에는 헤매는 길목마다 화사한 봄꽃들이 피어 새봄이 온 줄 알았습니다. 전하는 말을 들으면, 나무는 겉으로 드러난 제 키만큼 보이지 않는 사방으로 뿌리를 뻗고 있다고 합니다. 지탱하는 힘이란 이와 같겠지요. 어느 뿌리엔가는 남몰래 꽃도 맺고 열매도 피울 겁니다.

유월, 오늘, 햇살이 곱습니다. 유치원 아이들, 여고생들의 재잘대는 소리가 유난히 정겹습니다. 강물은 바다를 잊지 않는다던가요. 저무는 어느 길목에서 언뜻 아지랑이처럼 번지다 사라지는 미소를 본다면, 그때 가여움인가 하소서. 하기야 먼저 돌아누운들 저도 같이 돌아눕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어쩐지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에, 까무룩, 손만 모으고 맙니다. 나고, 살아 곁에 있는 것, 세상을 대신하여, 이만,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