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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기의 선물 2 2007/06/26
  2. 블로그 개설 일주년 4 2007/06/13
  3. 옛날 이야기 2007/05/28
  4. 고진감래 2007/05/26
  5. 달팽이, 안녕 2007/05/14
  6. 가나다라 2007/05/10
  7. 팔공산 2 2007/04/22
  8. 주절주절 2007/04/17
  9.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3 2007/04/10
  10. 아름다운 나라 2007/04/05
  11. 무엇을 할 것인가 2007/04/04
  12. 이름 4 2007/03/28
  13. 그대가 준 잔을 내가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소 2007/03/21
  14. 기도 2007/03/12
  15. 딜레마 2007/02/21
  16. 좋은 생각 9 2007/02/08

모기의 선물

from text 2007/06/26 01:27

아직도 여전히 즐거움을 마음껏 드러내기엔 조심스럽고 두려운 구석이 있다. 거창하게 세상이나 누가 아픈데 외면하는 것 같아 그런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표낼 만한 이유를 찾기도 어려웠고 그럴 일이 잘 없었을 뿐 아니라 있어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 즐거움을 즐길 줄 몰랐던 탓이 큰 것 같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그랬겠지만 이십대의 팔팔 끓던 시절이 그립고 될 수만 있다면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공상을 많이 했었다. 나이가 들수록 안정감을 갖고 세상을 제대로 살피며 즐기게 되었다는 그래서 다시 그 어지럽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끔찍할 것 같다는 누군가의 전언은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조금씩 이해가 되고 이제야말로 산다는 것에 솔직해지고 뭔가 알 것도 같은 기분에 자주 휩싸인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인지 몸으로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들 걸어갔을 생각을 하면 어째 숙연해지는 게 역시 세상은 함부로 나댈 일이 아니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부쩍 느끼던 터였다. 당장 술자리가 마냥 즐겁다기 보다 걱정이 앞서고 마시고 난 다음의 증상이 좀 심상찮다. 그러게 몸이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아는 것이고 아파야 더 잘 알 수 있는 건 틀림없는가 보다.

0124님이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매일 한 시간 일찍 마칠 뿐더러 한 주에 두 번씩 하던 야근도 한 번으로 줄었다. 출퇴근 거리도 확 줄었으며 연봉도 조금 올랐다. 서류 전형에 면접까지 거치는 동안 내색 한 번 않아 합격 통지를 받은 날에야 알았다. 일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 그 쪽에서는 제일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델 찾아서 좋고 무엇보다 시간이 좋아 좋다. 업무도 상당히 비중있는 걸 맡은 모양이다. 생각할수록 잘 된 일이다. 근래 가장 기쁘고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바꾸려다 안 되어 차츰 영역을 줄여 바꾸려 노력하나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뒤늦게 나를 바꿨으면 주변을 바꾸고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었을텐데 하고 탄식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맞는 말이다. 허나 단언컨대 다시 태어나도 다르게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습성을 바꾸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곰곰 생각해보고 다시 태어난다면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진짜 곰곰히 생각해 보고 지금부터 앞으로 다르게 살 일이다. 사랑은 참 지속하기 어려운 감정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다른 많은 것들처럼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살을 맞대고 살다보면 말이야 쉽지만 그게 또 어려운 일인데, 한 동안 별 이유도 없이 서로 예민해져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곤두세우곤 했던 일이 바람 잦듯 잦고 나니 이렇게 평안하고 따뜻할 수가 없다. 그렇게 간단한 곳에 실마리가 있고 누구나 아는 곳에 해답이 있는데 말이다. 늘상 그렇듯 또 모르는 일이기는 하나 크게 하나 배웠다.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년 정도 쓴 휴대전화기가 몇 번 시름시름하더니 영 가고 말았다. 남들 다 하는 번호이동은 하기 싫고 기기변경을 하자니 돈이 아까워 주변에 중고품이라도 없나 수소문하던 차에 한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늘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고운 분으로부터 새 물건을 거저 받게 되었다. 운영하는 대리점이 멀어 퀵서비스로 받았는데 직접 보고 골랐으면 돈이 꽤 들더라도 이걸 선택하지 않았겠나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선불 퀵서비스로 악세사리까지 꼼꼼히 챙겨준 게 얼마나 고마운지 기기를 만지는 손이 다 떨렸더랬다. 아무 기능 필요 없고 그저 작았으면 좋겠다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 자세히 만져보니 카메라 기능까지 숨어 있어 한 번 더 놀랐다. 순수한 호의에 기분이 들떠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어떻게 갚나 즐거운 고민이다.

* 자다 말고 모기한테 대여섯 군데 물리고는 잠이 깨었다. 다시 잠 드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눈 속에 깊이 박혀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스무살이 좀 지났을 때일 것이다. 적지 않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예전 제일극장과 아카데미극장 사이 육교 위에서 우산도 없이 엎드려 구걸을 하는 한 아이에게 남루한 차림의 중년 남자가 비를 맞으며 걸어오다 그 아이를 일으켜세우곤 손에 바지 앞주머니에서 꺼낸 시퍼런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던 모습이다. 그는 아이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돈을 받지 않자 거칠게 주머니에 찔러주고는 아이의 등을 잠시 떠밀며 밥이라도 사 먹으라 욕지기를 뱉듯 뱉어내곤 몇 번 비틀거리며 육교 아래로 사라졌다. 한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아이의 생생한 눈동자도 잊을 수 없다.

블로그 개설 일주년

from text 2007/06/13 14:54
블로그를 개설한 지 어언 일년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스무살 언저리 때만 해도 마흔이라면 아저씨도 그런 아저씨가 없었는데 이제 그 나이에 이르니 나는 왜 이리 어리나 하는 생각만 든다. 서른 즈음에는 딱히 그리 서러운 것도 없으면서 표나게 서러워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인식하곤 했던 것 같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0124님께 특별히 더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은 상대적으로 덤덤한 게 그나마 나이 먹은 태는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스무살이 되기 전 한 때 결코 스무살이 되지 않을 거라 큰 소리치던 시절도 있었다. 때때로 어울리던 여학생들 중에는 철석같은 믿음으로 함께 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참 아련한 일이다. 조금 전 일주년 기념과 마흔에 이른 심신에 대한 위로를 핑계로 오십미리 즈미크론 렌즈 하나 질렀다. 사실 엊저녁 공셔터 좀 날리다가 갑자기 계시를 받아 질러놓고는 좋은 핑계거릴 찾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십주년 기념으로 나온 놈을 사고 싶었지만 여러 형편을 고려하여 삼세대로 질렀다.

블로그를 왜 운영하는 걸까. 사진을 왜 찍는 걸까 하는 물음처럼 세태나 타인에 대해서는 그럴 듯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에게 물어보니 잘 모르겠다. 아직 어리고, 미혹하며, 살아가는 중이니까 뭐, 천천히 걸어가 볼란다.

옛날 이야기

from text 2007/05/28 22:34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구봉명파출소네거리 근처에, 박땡땡 어린이, 밥 많이 먹고 치카치카 잘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이 대목은 필요에 따라 때때로 바뀐다) 착한 어린이랑 김땡땡 어머니랑 박땡땡 아버지랑(때에 따라서 양동생이랑 오리 두 마리랑 거북이 두 마리랑 방귀대장 뿡뿡이랑 미피랑 등등 이어지기도 하는데) 살았어요. 어느 날, 박서연 어린이 착한 어린이는 하며 밤이면 자기 전에 서연이랑 나란히 누워 그날 있었던 일이나 며칠 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곤 한다. 때때로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깊은 숲속에 호랑이 한 마리가 살았어요 하고 되나마나 진짜 옛날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고. 꼭 내가 하기 좋아서 한다기 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려 긴 이야기의 경우 미리 못을 박고 한 가지 이야기만 하기도 하지만, 짧은 이야기의 경우 서너 가지를 해야만 한다. 피곤할 땐 때로 곤욕이기도 하지만 어떨 땐 짜릿한 교감을 하기도 한다. 그럴 땐 대체로 나도 깊은 잠을 자는 것 같다.

말 나온 김에 이 녀석 근황 이야길 좀 하자면, 아직 한글이나 숫자에 대해 집에서나 어린이집에서 제대로 가르쳐준 적이 없지만 약간 더듬거리나마 처음 보는 책도 대부분 읽어내고 십삼 더하기 이십사 정도 되는 덧셈도 크게 무리 없이 해내고 있다. 전부터 한번씩 낱말이나 문장을 재미있게 비트는 걸 보고 언어 감각이 뛰어난 것 같아 내심 좋아하였는데, 어린이집 담당 선생님의 의견은 좀 달랐다. 물론 새학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 서연이를 오래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때 제 어미와 시간이 맞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그 어린 여선생님과 학부모 면담이라고 마주앉았는데, 생각과 달리 한 시간이 아쉬운게 끝나고나니 꼭 내가 무슨 정신상담이라도 받은 듯 마음이 맑고 평화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선생님 의견으로는 언어가 아니라 숫자 개념이 또래 보다 좀 빠른 것 같다는 것이었다. 숫제 언어 쪽은 뒤쪽이라는 듯이. 어쨌든 이 녀석이 아는 척 하기 좋아하고 일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고 내성적이며 어린애 같은 밝음이 다소 부족한 게 걸리긴 하지만, 딱 이 녀석이 아니라면 누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든다. 고슴도치라 놀려도 하는 수 없는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도 고등학교 일학년 때까지 참 내성적인 아이였다. 밖에서는 누가 봐도 착한 아이였으며 소심했고 조용했다. 이학년 때부터 의도적인 일탈을 하며 여러 부류의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지금도 낯을 가리고 어디 도드라지는 걸 싫어하는 건 여전하다(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무리에서 가장 앞서길 바라는 편이지만). 십대 후반의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술, 친구, 가족, 염세, 반항, 하야로비, 실존주의 뭐 이런 것들이다. 이십대 전반을 생각하면 역시 술, 그리고 공동체, 노천문학, 햇살, 철없던 사랑 뭐 그런게 떠오른다. 내친 김에 이십대 후반부터 삼십대 전반까지 생각해보면 술, 이별, 아픔, 망각, 웅크림, 두려움 그런게 떠오른다.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뭐가 떠오를까. 위선, 아이, 현실, 갈 곳 없음 뭐 그런게 떠오를까. 어젯밤 문득 서연이에게 옛날 이야길 들려주다 늘상 반복하는 이 이야기의 앞머리를 써 보잔 생각을 했는데 갈데없이 되어버렸다.

* 나흘간의 연휴가 후딱 지나갔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밀양 정도는 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사흘 내리 술을 먹는 바람에 낮시간 동안은 운신을 못하고 누워 보냈다. 세 술자리 모두 즐겁고 의미 있는 자리였던지라 아쉬울 건 없고, 덕분에 바리에떼와 고향길을 완독할 수 있었다. 일전에도 느낀 바지만 고종석의 글들은 대체로 시각도 바르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을 뿐아니라 특히 글솜씨가 빼어나 잘 읽힌다. 어렵거나 힘든 문장이 아닌데도 앞 문장을 다시 읽게 만드는 힘도 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흔쾌히 고개 끄덕이며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데, 그래서 어딘지 한 구석 불편하곤 한데, 이틀째 술 먹은 다음날 아침 마치 밤새 고민한 듯 일어나자마자 뱅뱅 돈 문장이 거기에 닿아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명을 찾아서를 감명 깊게 본 나로서는 복거일의 이후 행보가 얼마나 마뜩잖았는지 모른다. 이 책도 다른 이의 글에서 고종석의 그에 대한 애정과 평(복거일의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 대한 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고 궁금하여 산 것이기도 한데, 어떻든 복거일은 김훈에 많이 닿아 있고 고종석은 그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건강해 보인다. B급 좌파 김규항에 비하자면 거칠게 표현하여 김규항의 글들은 읽는 내내 긴장하고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공감하고 따를 수밖에 없게 하는 반면, 고종석의 글들은 편하게 공감하며 읽지만 어딘가 불편한 구석을 남기는 것이다. 아니다. 거꾸로 이렇게 표현해도 맞는 말이 된다. 김규항의 글은 읽는 내내 깊이 공감하고 함께 하지만 나중에 그 실천에 대한 고민과 엄격함에 이르면 불편하지 않을 수 없고, 고종석의 글은 읽는 동안 일견 불편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딘가 위안 받는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러나 한 주에 한 번 일용할 양식에 감사한다고 일용한 죄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사실 고종석처럼 자리하기란 우리 사회에서 귀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하기도 한 것이다. 나부터도 그런 자세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면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건 그만큼 안전하게 스스로와 주변을 유지하며 메스를 덜 들이댄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그걸 잘 인지하고 있으며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어 크게 나무랄 일이야 아니지만, 예컨대 바리에떼에서 다음의 글들이 주는 울림은 내 마음자락과 크게 공명하지만 한편 공허하다. 맥락은 물론 다르지만 말하자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보다 백만배는 더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죽이는 것이 어이없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아름다운 제언 역시 실천적 관점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에서 한발짝 떨어진 듯 보여 안타깝다. 하나 덧붙이자면 그의 세련되고 단아해 뵈는 글들은 이 책에 실린 일부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적 언급에 이르면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형식에서마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은 어쩌면 뛰어난 소설가 복거일, 잡문가 김훈이 다른 언설을 할 때 형편없어지는 모습을 닮아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마르크스주의에 마음이 쏠린 적이 없다. 집단에 대한 내 공포가 생래적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자본론을 끝까지 읽어낼 끈기와 지성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80년대 들어 '불법적'으로 출간되기 시작한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들을 들춰보기는 했다. 물론 마음이 쏠리지 않았다. 그것은 날림번역이 낳은 거친 문장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한 방향으로 치닫는 집단적 열정이 낳을 수 있는 파멸적 결과가 두려웠고, 인간의 이타심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다. 그러나 나를 공산주의로부터 밀쳐낸 더 중요한 이유는 단 한 번뿐인 생애에 대한 존중이었던 것 같다. 차라리 내가 기독교 신자였다면, 그러니까 영혼의 불멸이나 다음 세상을 믿었다면, 공산주의에 쏠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종교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영혼의 불멸도 다음 세상도 믿지 않는다. 즉 내 죽음은 내게 우주의 소멸이다. 물론 타인의 죽음도 그들에게 마찬가지라는 것을 나는 받아들인다. 한 개인의 죽음은 그 개인에게 우주의 소멸이다. 그렇다면 집단적 정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중략) 세계화 자체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세계화, 밑으로부터의 세계화일 것이다. 그것은 20세기의 공산주의가 이루고자 했으나 이루지 못한 진정한 국제주의를 새롭게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국제주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개인들 사이의 느슨하지만 질긴 연대를 통해 구축될 것이다.

고진감래

from text 2007/05/26 08:08
그래서 결국 누구 편이냐 하는 거다. 내가 낸데도 아니고 나는 내 편이랄 수는 없지 않냐는 말이다. 어차피 혼자 살 게 아닌 바에야.

달팽이, 안녕

from text 2007/05/14 13:43
팔 개월 가량 함께 했던 달팽이가 죽었다. 며칠 제대로 살피지 못하다 어제 아침에 들여다 보았더니 기척이 없었다. 그 놈의 특성상 무슨 대단한 정서적 교감이 있었던 건 아니라서 그닥 크게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았지만 미안하고 어딘가 한 구석이 허전하다.

오후에는 서연이랑 우방랜드에 갔다 왔다. 하루종일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두시쯤부터 여덟시까지 둘이서만 있었는데, 나는 코끼리, 하늘 자동차, 춤추는 비행기, 어린이 바이킹에다 코인 놀이기구 등을 타고 자연생태공원까지 일대를 다 돌아다녔다. 제 엄마가 오고부터 길게 줄을 서지 않아도 되어 어린이 자이로드롭과 탔던 놀이기구들을 다시 타고 혼자 타기 어려운 회전목마, 풍선타기, 후룸라이드를 탔다.

집 근처에서 늦게 반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으면서도 말했지만, 사실 늘보 기질이 다분한 내게 물론 더 나은 시간을 위해서라지만 일요일까지 제 시간으로 할애하여 자기 일에 집중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들놈과 충분히 가까울 수 있어 이런 복도 있구나 생각하다가도 문득문득 내가 없어지는 환영에 사로잡히곤 했다. 허나 어젠 이제 익숙해져 버린 건지 서연이 웃음에 단단히 중독된 건지 견딜만 하단 생각을 많이 했다. 긴 시간 몹쓸 죄를 지었다. 달팽이의 안녕을 기원한다.

가나다라

from text 2007/05/10 23:02
퇴근길에 라디오에서 송창식의 가나다라를 들었다. 어쩌다 보니 서연이에게 맨 처음 가르쳐준 노래이기도 한데, 그래서 이 녀석이 동성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가나다라마바사아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여러 사람 즐겁게 한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역시 천재란 이런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노래는 너무너무 짧고
일이삼사오륙칠팔구하고십이요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고 싶은 일들은 너무 너무 많은데 이내 두 팔이 너무 모자라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노를 저어 나아가라 가자 가자 가자 가슴 한번 다시 펴고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루황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알고 싶은 진리는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머리가 너무너무 작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명선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좇고 싶은 인물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다리가 너무너무 짧고
갑자을축병인정묘무진기사경오신미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잡고 싶은 순간은 너무너무 많은데 가는 세월은 너무 빠르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어기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뱅글 뱅글 뱅글 다시 보면 다시 그 자리

중건천 중곤지 수뢰둔 산수몽 에헤헤 으헤으헤 으허허
하늘 보고 땅 보고 여기저기 보아도 세상만사는 너무너무 깊고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웃자
일엽편주에 이 마음 띄우고 허 웃음 한번 크게 웃자고


무료하다, 요즘. 뭔가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끝내고 따분한 일상을 맞는 기분이긴 한데, 한꺼번에 끝낸 일도 없고 일상은 어째 낯설기만 하다.

서연이를 재울 때나 딱히 놀이거리가 없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 녀석이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이 될 때가 있다.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죽음이나 떠남 같은 이야기에는 전혀 동요가 없지만, 자신의 먼 미래나 좀 지난 이야기를 할 때면 뭔가 아득한 느낌을 받는가 보다.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구나 하는 게 전해지면서 가녀린 짐승을 안고 있는 듯 그 감정에 전이되어 나도 꽤 아득해지곤 한다.

사과나 복숭아 같은 과일에 있는 벌레를 모르고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이 있었다(딴 얘기지만 벌레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영화도 있었지, 아마). 이제 벌레 먹은 과일이나 과일에서 나온 벌레를 보기란 목사나 장로가 천국에 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어버렸지만, 우리가 우리끼리 살겠다고 바둥치는 건 내가 내 혼자 살겠다고 바둥대는 것보다 더욱 위험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도 틀림없이 동물인지라 생명체로서의 기본적인 욕구에 해당하는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섬세하기까지 한 동물이라 그 다채로운 결들에 있어서랴.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한 놈들을 얼마간 경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아갈 도리야 옛 사람들이 이미 마르고 닳도록 설해 놓았지만, 때로 우리는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대책 없이 주저앉곤 한다. 개도 안 물어갈 현실 앞에.

오늘 돌아다니다 만난 한 구절,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음을 이룰 수 있었고, 하해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음을 얻을 수 있었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 시중에서 흔히 쓰는 의미나 출전의 본래 뜻과 관계없이 아옹다옹거리는 세상사를 빗대는 것 같아 오히려 장자연하게 와닿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 한 백만년만에 책 몇 권 주문하였다. 윤중호의 고향길, 움베르토 에코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묻지 맙시다, 고종석의 바리에떼. 얼마동안 읽을 지 모르겠다.

팔공산

from text 2007/04/22 14:10
어제 한 모임에서 영천 신령에 있는 수도사로부터 팔공산 동봉엘 올랐다가 수태골로 내려왔다. 다섯 시간 정도 걸었다. 중턱부터는 아직 겨울산이었다. 그늘진 곳이 많아 그런가 키 큰 진달래(참꽃)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는데 아직 피지 않은 게 더 많았다. 내려오는 길에 어릴 적 생각하며 꽃잎 하나 따서 먹어보았는데 달콤쌉싸름한 맛은 그대로였다. 대구은행 연수원 근처 식당에서 오리고기에 술을 잔뜩 먹고 돌아와서는 다른 모임 자리로 가 또 그만큼을 먹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가뿐한 게 맑은 공기와 오래 걷는 등산이 좋긴 좋은가 보다. 의식이나 행동이나 술이나 과잉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만, 잘 되지 않는 게 또 사람의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려올 때는 여전히 무릎이 아팠다.

주절주절

from text 2007/04/17 14:10
즐겨찾기를 즐겨 찾다 보면, 이라고 말하다 보면 즐겨 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서며 그 말의 아름다움에 빠지기도 한다. 어쨌든 즐겨 찾다 보면 때로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는 글들도 만나게 된다.

최근 들어 다시 대화를 하거나 또는 사이트 항해를 하다가 문득문득 눈물이 날 뻔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꿈속에서는 가끔 울기도 하는 모양이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그 효용이 아니라 차이와 기호를 소비한다. 라이카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딱 그만큼은 자유롭기도 하다. 아날로그의 효용에서 그러하다.

사진을 찍다보면 인화물이든 파일이든 결과물이 남기도 하지만 찍은 그 순간이 머리나 가슴에 그냥 각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장면들은 종종 뜬금없이 출몰하기도 해서 오래오래 함께 가곤 한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천당이니 극락이니 지옥이니 연옥이니 이런 델 가진 않을 것 같다. 뉘라서 그리 한단 말인가. 오늘 잠시 이야기하던 중 뱉은 말이기도 한데,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고 나중에 개입하려 든다면 당당히 따질 일이지 그게 그저 받아들일 일이겠는가.

어릴 적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까지 누가 물어보거나 어디 써낼 때는 으레 그렇게 답하곤 했다. 어려서 읽은 우주와 우주 개발 이라는 책 때문인지도 모른다. 커서 뭐가 될래, 또는 넌 꿈이 뭐냐는 식의 질문은 가히 폭력에 가깝지만 가끔 곱씹어보곤 한다. 넌 도대체 꿈이 뭐냐.

술 먹고 난 다음날이면 먹을 때처럼 괜히 기분도 좋고 머리 속으로 하냥 주절주절 거리기도 한다. 그 힘을 빌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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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from text 2007/04/10 15:10
사르트르는 일찍이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고 갈파한 바 있다. 창조주를 믿지 않는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언설이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을 무한정 확장시켜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소통과 연대에서 출발하고 귀결되는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가족 구성원 사이에도 점차 단절과 소외가 일상화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이 추구하여야 할 가치라는 것도 잊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대다수 사람에게 사는 목적을 생각할 겨를은 없어져 버렸으며 그럴 겨를이 있는 사람들은 혼자서도 잘 살아간다.

이제 동네 길거리에서 어른들이 어린 아이를 꾸짖는 모습을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골목은 사라졌고 흙은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만 하여도 버스에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들을 보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이 아니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많아졌다. 정작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회피하고 치장하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우리에게서 멀어져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자유는 소중하다. 자유를 확장하는 물질적 조건도 마찬가지로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곰곰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유가 행복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김남주는 만인을 위하여 노력할 때 나는 자유라고 이야기하였으며 니체는 무엇에 대하여 자유롭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를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최선의 것은 지금의 파괴를 가속화해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 터놓고 술 한 잔 기울일 친구가 없어 매일매일 자신을 조금씩 죽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꾸미고 거짓 대화를 하며 남을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남을 위하여 사는 게 아닌 다음에야 자신은 어떻게 위로할 수 있겠는가.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따뜻한 동화 한 편 써보려던 것이 메모만 나열한 글이 되고 말았다. 삶은 달걀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부활절을 기린다며 멀쩡한 달걀을 집단적으로 대량으로 삶아 먹고 나누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설령 무정란이라 할지라도.

지난 4월 8일은 결혼 6주년 되는 날이었다. 기념일 알리미 서비스 덕에 일주일 전부터 새기고 있었는데 막상 당일은 잊어먹고 지나가 버렸다. 항상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인데, 참한 아가씨가 오래된 친구나 후배를 만나 사귀거나 결혼한다면 꼭 하는 말이기도 한데, 서연이나 이 사람이 자는 모습을 보면 꼭 떠오르는 말인데, 참 고맙다.

아름다운 나라

from text 2007/04/05 13:47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다 아는 김구 말씀인데, 오늘따라 이렇게 와 닿을 수가 없다. 우리가 작은 약속을 지키고 신의를 생명처럼 여기며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죽음을 마주하여도 조금은 더 당당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 삶이 날카로운 사금파리처럼 다가선다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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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from text 2007/04/04 17:00
한미FTA 타결 이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오르고 그전에 비해 FTA에 대한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을 많이 앞서고 있다. 대통령이 논개처럼 한나라당이라는 적장을 껴안고 FTA라는 바다에 뛰어들어 여권 대통령을 당선시키려는 시나리오를 펼치고 있다는 우스개도 있지만, 흔쾌히 웃기에는 뒷맛이 많이 씁쓸하다. 한편에서 국민투표가 화두가 되고 있지만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 경우 찬성이 많지 않을 것이라 예견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에 부합할지라도 그럴 경우 더이상 빠져나갈 구멍은 없어 보인다. 이번 타결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다수 언론과 결단하는 리더쉽에 쉽게 열광하는 국민(!)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전술이 먹혀들지 걱정이다. 어쨌거나 이를 기회로 시민사회가 학습을 통해 더욱 성숙하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이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막막하고 먹먹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애초 정치사회적인 구체적 사안에 대한 언급을 가능한 한 피하려고 했지만, 한가하게 가족 소사나 읊기에는 돌아가는 세태가 짐짓 두려울 따름이다(어쨌든 대통령에게서 묘한 어떤 동질감을 느껴오던 터였다. 나와 다른 부류임이 분명해졌지만 역시 설익고 덜떨어진 사람이 어디 나서는 건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이다. 하물며 확신범임에랴).

체계적인 교육과 충분한 교양,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바른 역사적 안목,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구성원과 함께 미래로 나아가는 지도자를 갖기에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너무 짧고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른 죄가 너무 큰지도 모른다. 역시 구성원은 그 구성원의 수준을 뛰어넘는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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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from text 2007/03/28 16:30
좀 지난 이야기이긴 한데, 대법원 등기호적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지은 이름은 남자 아이의 경우 민준, 여자 아이의 경우 서연이라고 한다. 이 두 이름은 2004년과 2005년에도 1위를 기록하였으며, 지난해 2, 3위는 남아의 경우 민재, 지훈 순이었고, 여아는 민서, 수빈 순이었다고 한다.

서연이의 이름을 지을 때 내가 고려한 것은 우선 좀 여성적이거나 중성적인 이름일 것, 그리고 가급적 흔한 이름이 아닐 것 정도였는데, 이게 이런 결과를 만나고 보니 좀 당혹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 전에 0124님은 어디서 저와 나, 서연이의 이름을 넣어보고는 서연이 이름을 바꾸면 어떻겠냐며 고민한 적이 있는데, 그때와 달리 조금 흔들린다. 상서로울 瑞에 벼루 硯, 2003년에 지으면서 포털 사이트에 여러 번 검색해보고도 많은 이름을 만나지 않았었는데, 흔하면 어떠냐 싶으면서도 왠지 껄끄럽다. 자꾸 그리 생각해서 그런지 딱 서연이구나 싶었던 서연이가 이제는 서연이랑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든다. 작명소에서 짓던지 집안 어른이나 이름난 어른이 지어주시던지 했다면 이러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다시 우리가 머릴 맞대어 짓는단들 뾰족수가 있겠냐도 싶고, 막상 진짜 바꿀까 생각하니 뒷목을 잡아채는 무언가도 있다.

* FE와 니꼬르 수동 단렌즈들을 좋은 분들께 넘겨드렸다. 홀가분하다. 스무살 언저리에 잠시 만져보았던 수동SLR의 그 느낌을 깨워준 FE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교차한다. 시집가서 대우받고 잘 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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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맨 앞 부분부터 보지 못하고 케이블채널 MBC무비스를 통해 티브이 화면으로 봤지만 장면장면이 그림이라 꼼짝하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장쯔이에게서는 더욱 눈을 뗄 수 없었다. 펑 샤오강 감독의 야연(夜宴).

기억에 남는 전언. 가장 독한 독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가면을 쓰고 공연하는 이유에 대해 가면을 쓰지 않으면 얼굴로밖에 희로애락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대답, 그리고 마지막 즈음 독배를 들고 죽어가는 황제의 대사 '그대가 준 잔을 내가 어찌 받지 않을 수 있겠소'.

기도

from text 2007/03/12 01:08
요즘 들어 서연이 재롱이 부쩍 늘었다. 애교라고 해야 하나,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터진다. 신을 믿어본 적은 없지만 녀석을 우리 곁에 보내준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싶다. 보고 있으면 녀석에겐지 누구에겐지 모를 고맙단 말이 절로 맴돈다. 잘 살아봐야겠단 밑도 끝도 없는 각오를 다져보기도 한다. 문득 부끄럽고 낯간지러운 일들이 지나가다 뒤돌아본다. 어디서 배웠는지 어제 이 녀석이 제 어미를 기다리다 내 손을 꼭 잡고 같이 기도하자던 게 생각난다. 이제 녀석이 잠이 들고 내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도 나는 어린 마음에 난데없이 기도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제껏 나를 포함해 누굴 위해 제대로 기도란 걸 해 본 적이 없으니 이렇게 떠듬떠듬 익혀가는 것이다.

* 몇 년 전 먼저 사신 분들(노태맹 형과 장정일 시인 내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서동훈 교수)과의 술자리 대화 중 한 분의 말씀에 좌중이 모두 박수를 치며 맞장구치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옳은 말씀이었던 듯 하다. 자식들은 모두 어렸을 때 일생 몫의 효도를 다 한다는 것이며 해서 나중에 속썩인다고 이놈저놈 할 것 없다는 얘기였다. 간직하고 살아볼 만한 얘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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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from text 2007/02/21 00:00
토머스 모어가 비극적인 순교자의 삶을 살았다면, 에라스무스는 한 세대 전 지식인들이 겪었던, 그리고 다음 세대들도 겪게 될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에라스무스의 득세는, 휴머니즘 같은 관용 운동이 불관용적인 단일 진영과 마주칠 경우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격려 고무할 수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동시에 에라스무스의 몰락은, 하나의 이상(理想)으로서의 '관용'은 적대하는 두 배타적 진영이 경쟁적으로 충성을 요구하는 한 더 이상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입증해주었다. 이것은 에라스무스 이후 모든 시대에서 자유주의 정신이 직면해야 했던 딜레마이다.

- 윌리엄 L. 랭어가 엮고 박상익이 옮긴 서양사 깊이 읽기 1권 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 중 브로노프스키와 매즐리슈가 쓴 에라스무스, 시대를 초월한 지식인에서. 머꼬네에 실린 '그렇게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와 그에 달린 댓글이 걸렸더랬다.

좋은 생각

from text 2007/02/08 00:59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M6 영입을 계기로 지금 가지고 있는 바디와 렌즈군을 어떻게든 단촐하게 하고 싶었지만 방법이 잘 생각나지 않았는데 불현듯 떠올랐다. 바로 MF Nikkor 45mm 1:2.8P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D50에 50.4, 18-70, 70-300ED, FE에 50.2, 28mm 2.8, M6에 35mm cron 4th인 구성을 D50에 18-70, FE에 45mm 2.8P, M6에 35mm의 원바디 원렌즈로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를 영입하고 넷을 방출함으로써 수적으로 단촐해질 뿐만 아니라 FE의 덩치가 작고 예뻐지며, 더구나 이 녀석은 D50에서 노출 지원까지 해주니 두 몫을 해내지 않겠는가. 약간 떨어지게 되는 부분은 디지털에서 아주 빠른 50mm가 없어진다는 것과 필름에서 광각이 아쉬울 수 있다는 것인데, 광각을 그리 애용하는 편도 아니고 꼭 그리 빠른 놈이 없어도 될 것 같다. 망원은 애초에 처분할 생각이었으니 그것도 뭐 그리 아쉬울 게 없다.

이 계획의 애로점이 있다면, 이 45mm 팬케익은 D50에도 물려쓰기에 안성맞춤일 블랙이 매우 귀하다는 것인데, 어쨌거나 오래 잠복 들어가서 노려볼 수도 있겠지만, 마음 굳힌 김에 실버로라도 구해버릴까 싶다. 가격도 꽤 착한 편이다. 잘 맞아떨어지면 내일이라도 팬케익을 영입하고, 신품 지른 50.4는 시세를 살펴보고 나머지는 영입가에 준하여 방출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다. 상태는 모두 훌륭한 놈들인데 상대적으로 시세보다 센 감이 있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이미 가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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