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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는 세상과 인간의 다채로운 결에 대해 이해하기를 멀리 했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단일한 이론으로 세상과 삶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결국 사랑하지 않았거나 사랑할 줄 몰랐던 거다. 물론 지상에 사랑이란 건 애초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려나, 저도 어느 쪽이든 비집고 들 틈이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내가 다른 N들에게 느꼈던 것처럼, 소녀 취향의 감성에 질리기도 했을 것이다. (계속)
미류나무 그늘진 저 강나루 물새는 오늘따라 어디로 간 걸까
빗속 말없이 봇짐 꾸리던 내 님이 못 올 사공인 줄은 몰랐네
강물 속 붕어들아 저 물길을 조금만 막아다오
축지하듯 찬물 따라 홀홀히 멀어진 그대는 가네 가네
온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운 오늘 밤에 소리죽여 흐느끼는 그대
나는 듣고 있어 멀어지는 당신 모습 까만 점이 될 때까지
눈물 없이 견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벌써 새벽일까 닭이 우는 소리
하늘은 금세 빛을 찾아 어김없이 다가오는 아침
마지막 하늘의 빛 찰나의 시간 멈춰버린 시계의 추
봄빛 살갑게 내려쬐던 단오의 햇살
백일 동안 다시 백일 동안 나를 싣고 가는 배야
잊지 말라는 그대 소리 아직 들려 무심한 물빛 따라
'가네'와 '빛'의 노랫말. 첫 소절 듣자마자 뇌리와 가슴에 바로 박힌 노래는 '빛'의 배경을 이야기하며 슬쩍 불러 준 이 '가네'였다. 몹쓸 귀는 다른 노래들과 이 노래로 그의 노래들을 단박에 구분하여 버렸다. '가네'의 답가로 지은 게 '빛'이라며 떠나는 남자의 슬픔에 대해 잠시 이야기하였는데, 곡조에 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역시 남은(남겨진) 자의 슬픔에 대한 공감이 컸다. (멋진 녀석이었다. 옛날, 조동진 생각을 많이 했다. 그리웠다.)
존재가 의식을 배반하려는 걸 어찌 해야 할까. 의식이 존재를 배반하는 걸 용납하였던 것처럼 내버려두어야 할까. 모른 척, 그래도 좋을까.
100년도 더 된 책에 최근의 그럴듯한 담론을 뛰어넘는 전언들이 가득하였다. 사소한 비유에 이르기까지 가장 정확하고 적절한 어휘를 구사하며, 어느 때고 냉정을 잃지 않고, 특히 인간과 관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흐트러짐 없는 통찰력을 보여 주었다. 읽다 보면 그때의 러시아로부터 한 치도 나을 것 없는 세상과 인민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거장의 웅혼한 세계와 숨결도, 거인의 꼿꼿한 자태도. 오래전 읽어 조심스럽긴 하나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의 도스토예프스키보다 한두 갑절은 윗길인 듯. 다만 라스콜리니코프의 갑작스런 전향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장은 떨떠름하였다. 책장을 덮으며, 옮길만한 대목을 표시하려 붙여놓은 포스트잇(책을 읽으며 이런 걸 붙여보긴 처음이다) 몇 장은 그냥 떼어냈다. 이래저래 부질없는 짓이 아닐 수 없으므로.
* 쪼그라든 심장만 달랑, 허공에 매어달린 느낌을 아는가. 기다리던 신형철의 책이 나왔다. 몰락의 에티카. 함께 주문한 책은 존 치버의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과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바로 전에 사다놓은 박이문의 나는 읽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서점에 가서 살폈으면 이 책을 샀을까. 대체로 글은 좋고 일종의 정보도 얻었으나, 터무니없는 책값까지, 어이없었다), 이청준의 신화의 시대, 그리고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까지, 읽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빠르다. 어쨌든 세상과 막막한 관계, 거리에 대한 위안거리는 장만한 것. 가보는 거다.
지난날을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두운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을 두어 곱 지나 붉게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려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보아라
이병률의 시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전문. 이제야 읽은 '바람의 사생활'에서. 아직도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이 아름다운 생은 끝이 날까. 누가 얼른 와서 슬쩍 일러 다오. 가기 전, 술 한잔 부어줄 터이니.
* 아침, 마치 응답하듯 세찬 첫눈이 내린다. 괜스레 들뜨는 이 마음만 갖고도 한 세상 넉넉하지 않겠냐고.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어요?
아빠랑 서연이가 없었을 때 우리는 없었지요, 뭐.
아니요, 우리가 없었을 때는 우리 어디 있었냐구요?
서연이는 아빠하고 엄마하고 결혼해서 태어났고요,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결혼해서 태어났잖아요.
증조할머니, 고조할아버지 이런 것도 없었을 때는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을 때요?
네.
그때도 동물들은 있었지요.
근데요, 동물들도 없고 아무도 없었을 때는요?
그때는 아무 것도 없었지요, 뭐.
아니요, 지구도 없고 목성도 없고, 토성 이런 것도 없고, 그럴 때요?
그럼, 아무 것도 없는 거지요, 뭐.
아, 정말! 아니요, 하늘나라가 있잖아요?
하늘나라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건 알 수 없어요.
왜요?
알 수 없으니까요.
가본 사람이 있잖아요?
누구요?
죽은 사람이요.
근데 갔는지 모르잖아요.
왜요?
갔다가 다시 온 사람이 없으니까요. 하늘나라에 갔는지 그냥 없어졌는지 모르잖아요.
아, 재밌다. 근데요, 지구 위에는 하늘이 있잖아요, 그 위에는 뭐예요?
지구 위에는 우주지요, 지구도 우주의 한 부분이고요.
우주 위에는요?
우주는 그냥 우주지요, 그 위에도 다 우주고요.
우주 끝에 가면은요?
그래도 다 우주예요. 신기하지요?
네.
아빠도 신기해요.
로드의 잿빛과 맞물려 그런가, 갈수록 찬 바람은 어찌 이리 서글프기만 한지 모르겠다. 돌돌돌돌 구르는 죽은 잎들의 소리. 그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더 스산한 일인지. 다시 책을 펼치며 손에 집히는 대로 그 세계의 편린들.
저 아이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면 신은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 거야.
그래. 기억하고 싶은 건 잊고 잊어버리고 싶은 건 기억하지.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아 무릎에 올려놓고 있다. 여름 드레스의 얇은 천 너머로 스타킹 끝 부분이 느껴진다. 이 장면을 고정시켜라. 이제 어둠과 추위를 내려달라고 해라. 저주를 받아라.
어떤 사물의 마지막 예(例)가 사라지면 그와 더불어 그 범주도 사라진다. 불을 끄고 사라져버린다. 당신 주위를 돌아보라. '늘'이라는 것은 긴 시간이다. 하지만 소년은 남자가 아는 것을 알았다. '늘'이라는 것은 결코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남자는 소년이 불을 지피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의 불을 뿜는 용. 불꽃들이 위로 솟구쳐올라 별이 없는 어둠 속에서 죽었다. 죽기 전에 한 말이라고 모두 진실은 아니야. 이 행복은 그 터전이 사라졌다 해도 변함없이 진짜야.
리볼버에는 총알이 한 알만 남았다. 네가 진실과 직면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저 사람들이 널 발견하면 그래야 돼. 알았지? 쉬. 울면 안 돼. 내 말 들려? 어떻게 하는지 알지. 그걸 입 안에 넣고 위를 겨냥해. 빨리 세게 해야 돼. 알았지? 울지 말라니까. 알아들었지?
지금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들이 이 피난처를 찾아내지 못했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어서 이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위험하게도 이 횡재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에도 했던 말을 했다. 행운이란 이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남자는 거의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죽은 자들을 부러워했다.
아빠는 정말로 용감해요?
중간 정도.
지금까지 해본 가장 용감한 일이 뭐예요?
남자는 피가 섞인 가래를 길에 뱉어냈다. 오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난 거.
정말요?
아니. 귀담아 듣지 마라. 자, 가자.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
블로그 개설 이후 지금까지 쓰던 deadlink님의 coldgray 스킨을 seevaa님의 결벽증 스킨으로 바꿨다. 태터툴즈 1.0.6.1에서 텍스트큐브 1.7.6으로 갈아타면서. 문득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하여 휴일을 맞아 아침부터 손을 대 본 것인데, 결과적으로 밤 늦게까지 하루를 온전히 여기에다 바칠 수밖에 없었다. 정작 갈아타는 건 대수롭잖았으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스킨을 찾고, 전에 쓰던 플러그인(특히 zippy님의 새 글 표시 아이콘과 문제(!)의 J.Parker님의 썸네일 리스트 출력 플러그인)을 새롭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다 보낸 것이다. 새 글 표시 아이콘은 구현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만지는 동안 어찌된 일인지 사진이 들어간 거의 모든 포스트의 사진들이 두세 장씩 없어져버린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종일 삽질 끝에 어쨌든 대충 복구는 된 것 같다(전에는 요령껏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을 리스트 이미지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몽땅 첫 번째 사진으로 고정되어 버렸지만). 이 스킨도 옛 버전이지만, 종일 고생한 게 억울해서라도 새 버전에 맞는 획기적인 스킨을 만나기까지는 이대로 밀어볼까 한다. 특별히 고마운 분들이라 이렇게라도 이름자와 링크를 남겨둔다.
사이드바 랜덤 이미지 출력(아무리 해도 못하겠다), 그리고 대문 사진과 문패가 없어졌다. 대문 사진이야 아쉬울 리 없을 테고, 개설 이후 한 번 바뀐 문패글은 남겨 둔다. '하나의 잣대를 지향하며..' 그리고 '저 세상에 가면 잊을 수 있을까..'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