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저 세상에 가면 잊을 수 있을까 2008/11/09
  2. 근황 2008/10/29
  3. MP3 2 2008/09/28
  4. 체제 깊숙이 2008/09/27
  5. 먼저 가서 4 2008/09/10
  6. 득병유시 치병유시 2008/09/08
  7. 가재미 2008/09/05
  8.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2008/09/05
  9. 사계 2008/09/04
  10. 어린 시절 2008/09/03
  11. 조증이 오래가면 2008/08/13
  12. 여름, 0731-0805 2008/08/05
  13. 대화 1 2008/07/31
  14. 가족 2008/07/30
  15. 설마 2008/07/29
  16. 우정 2008/07/28

블로그 개설 이후 지금까지 쓰던 deadlink님의 coldgray 스킨을 seevaa님의 결벽증 스킨으로 바꿨다. 태터툴즈 1.0.6.1에서 텍스트큐브 1.7.6으로 갈아타면서. 문득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하여 휴일을 맞아 아침부터 손을 대 본 것인데, 결과적으로 밤 늦게까지 하루를 온전히 여기에다 바칠 수밖에 없었다. 정작 갈아타는 건 대수롭잖았으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스킨을 찾고, 전에 쓰던 플러그인(특히 zippy님의 새 글 표시 아이콘과 문제(!)의 J.Parker님의 썸네일 리스트 출력 플러그인)을 새롭게 적용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다 보낸 것이다. 새 글 표시 아이콘은 구현하지도 못한 채, 이리저리 만지는 동안 어찌된 일인지 사진이 들어간 거의 모든 포스트의 사진들이 두세 장씩 없어져버린 것이다. 식음을 전폐하고 종일 삽질 끝에 어쨌든 대충 복구는 된 것 같다(전에는 요령껏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을 리스트 이미지로 내세웠던 것과 달리 몽땅 첫 번째 사진으로 고정되어 버렸지만). 이 스킨도 옛 버전이지만, 종일 고생한 게 억울해서라도 새 버전에 맞는 획기적인 스킨을 만나기까지는 이대로 밀어볼까 한다. 특별히 고마운 분들이라 이렇게라도 이름자와 링크를 남겨둔다.

사이드바 랜덤 이미지 출력(아무리 해도 못하겠다), 그리고 대문 사진과 문패가 없어졌다. 대문 사진이야 아쉬울 리 없을 테고, 개설 이후 한 번 바뀐 문패글은 남겨 둔다. '하나의 잣대를 지향하며..' 그리고 '저 세상에 가면 잊을 수 있을까..'

근황

from text 2008/10/29 22:30
가슴에 이리 뜨거운 걸 안고 나는 못 살겠다. 너는 괜찮으냐. 빨갛게 떨어지던 나뭇잎이 문득, 묻더라. 다시, 가을이다. 시월도 다 가고, 봄 생각으로 가득할 날도 머지않았다. 그새.

지금 M6에 들어있는 코닥 포트라160vc 한 롤 빼고는 필름도 다 떨어졌고 가격도 오를 추세라 잘 찍진 않지만 필름 몇 롤 사 냉장고에 쟁여 놓았다. 비교적 싼 필름들로, 써본 것 중 대체로 마음에 든 코닥 프로이미지100 6롤, 처음 사보는 코닥 컬러플러스200 10롤, 미쯔비시 수퍼mx100 10롤.

인터넷 주문으로 산 책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로드, 밤은 노래한다, 소설의 고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일본현대 대표시선, 체호프 단편선, 친절한 복희씨, 혀. 대부분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블로그를 보다 마음 동한 책들. 그리고 서연이를 위한 노란 양동이, 삼신 할머니와 아이들, 선생님은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화요일의 두꺼비.

산 지 얼마 안 된 MP3 플레이어 YP-U4를 주변에 중고로 넘기고 YP-Q1을 주문하였다. 녀석 작고 예쁜 줄 알았더니 작기만 하고 밉상이었다. 긴 충전 시간에 터무니없이 짧은 재생시간을 가진 데다 신곡 볼 줄 모르고 그저 마음에 드는 음악 왕창 넣어놓고 듣는 나에게 컴퓨터로만 충전하는 방식은 (처음엔 장점이라 생각하였지만)어지간히 불편한 것이었다.

아파트로 가려던 계획은 지금 사는 집 계약기간 만료 후로 미루었다. 눈여겨 둔 아파트를 가계약하고 며칠 후 정식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는 주인 쪽 사정으로 취소하였는데, 여러모로 정나미가 떨어져버렸다. 이래저래 무리인 줄 알면서 밀어본 것, 가계약 후 며칠 이리저리 꾸며본 살림이 아깝지만, 어쨌든 홀가분하고 가볍다.

허리와 왼쪽 어금니가 아파 한동안 애를 먹었다. 덕분에 벼르던 산에도 가지 못하고 위 용량도 좀 줄었다. 자가 진단으로는 이게 다 술 때문이지, 한다. 천천히 즐기는 법에 대한 생각은 많은데 때맞춰 치닫는 이놈의 성질은 어찌 이리 숙지지 않을꼬.

MP3

from text 2008/09/28 23:28
일요일 아침, 쌀쌀한 날씨에 뒤늦게 보일러 불을 지피고는 거실 바닥에 혼자 등 기대고 누워 MP3를 들었다. 꽃다지의 '민들레처럼'에서, 쓴물처럼 사랑처럼 넘어오는 걸 울컥하고 삼켰다. 귀에 꽂고 음악을 들을 때면, 이도 적응이 되려나, 감정선이 말할 수 없이 예민해져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여름 수련회엘 가서 텐트에 누워 친구가 건네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로 들국화를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 세상과 단절되어 혼자 어떤 비릿한 슬픔 같은 걸 느꼈던 기억, 마구 쿵쾅거리던 가슴을 잊을 수 없다. MP3 플레이어 장만을 망설였을 때에는 장사익의 뽕짝 절창을 듣고 참을 수 없어 술을 이었던 기억도 한몫 했었다. 먹고 싶은, 먹을 수밖에 없는 얼마나 많은 핑계거리들이 생길 것인가. 어제 아침엔 새로 잠을 청하며 김윤아의 앨범 '유리가면'을 듣다 바닥 아래로 꺼져들고 말았다. 차츰 가슴이 뻑뻑하게 조여 오더니 뻐개지듯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차오르는 눈물을 거둘 뿐, 뼛조각이 해체된 듯 꼼짝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는 잠이 들어 오래 헤맸다. 오늘 낮잠에서 깼을 때도 그랬지만, 일어났을 때에는, 한세상 보내버린 듯 먹먹하면서도 지금 바깥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어딘지 맑고 살뜰한 마음이 돌았다.

* 언제 한번, 비 오는 날 차안에서 음악을 들을 때, 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랬다.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무딘 귀를 잠시 틔워주기도 하나 싶다.

* 월요일 퇴근길, 용기(?)를 내어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는 MP3를 들으며 걸었다. 단절의 느낌은 아니군, 몰입도 잘 안 되는데? 풍경을 보는 맛이 섬세한 것도 같고, 길을 건널 때, 그리고 아는 사람을 만날까, 아직까진(!) 자주 두리번거리게 되는구나, 서연이 녀석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 이리 가까웠나, 했다.

넣어놓고 두고두고 들을 음악을 고르다가는(기기 등록 이벤트로 마음껏 받아 일정 기간 동안 들을 수 있는 무료 서비스를 받았는데, 들어보고 좋으면 간직하려고 한달 백오십 곡을 구천구백원에 받을 수 있는 상품을 구매하였다) '추억 여행'을 하는 기분에 빠졌다.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어떤 장면, 어떤 공간이 얽힌 것들에 우선 손이 갔다. 양희은의 '가난한 마음'과 '내 님의 사랑은'을 찾아 들을 땐 아, 하고 금세 스무 살 시절로 날아가기도 했다. 좋은 길동무가 생겼다. 간밤엔 세상이 한번 뒤채는 걸 느낀 것도 같다.
Tag // ,

체제 깊숙이

from text 2008/09/27 01:20
이제야 가을이 왔나 했더니 겨울이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준탱은 가고 술자리 후유증과 아쉬움만 남았다. 예정된 한두 자리만 지나면 확실히 좀 줄여야겠다. 잠시 끊는 것도 좋고.

난생 처음 MP3 플레이어를 샀다. 작고 예쁜 모양에 끌린, 삼성에서 새로 나온 YP-U4.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만 봐도 그것보단 그 공기와 주변을 관찰하고 즐기는 게 낫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길을 걸을 때 음악을 들으며 세상과 자신을 차단하고 고립하는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하면서도 며칠 뭔가 지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다 저지르고 만 것이다. 누구는 그러더라. 같은 풍경이 듣는 또는 들은 음악에 따라 달리 보인다고. 음악이 아니라도 어찌 같을 수야 있으랴, 하면서도 자동차처럼 그게 또 그렇구나 했다.

큰 건 하나 지를 예정인 건, 아파트다. 역시 세내는 것이지만 지금보다 많이 비싼데다 넓이도 많이 준다. 봐둔 아파트, 봐둔 평수가 결정을 미루는 동안 나가버려 아직 구한 건 아니지만 들어가면 식구들 모두 처음 살아보는 것이다. 지금 사는 곳 계약 기간이 일년여 남았으나 0124님 흔들리는 마음에 넘어가버렸다. 계획대로라면 다음달 말이나 다다음달 초엔 옮길 모양이다(그때쯤 입주 예정인 아파트, 부동산 말로는 다음달 초 입주 점검을 하고 나면 물량이 꽤 나올 거란다). MP3도, 이사도, 결정하고 나니 어딘가 허전하고 복잡하던 마음도 조금은 달래지고 나를 둘러싼 새 환경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품게 된다(음악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알 수 없다. 그만큼 기대도 되는 것이지만, 얼마나 가까이 할런지도 모르고. 다만, TV를 없애고 잡다한 짐들도 정리하고 잡생각도 좀 떨치고 무엇보다 깔끔하고 정리된 공간에 대한 기대는 하게 된다). 그러나 체제 깊숙이 편입하는 이 씁쓸한 기분이란. 언제든 탁 놓아버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그건데, 어딘가 저당 잡히고 목매다는 이 꼼짝없는 마음이란.

내가 너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은 더는 너에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꽃은 지고 마는 것, 더는 거꾸로 다가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한곳에 포개져, 먼 훗날, 깊이 잠들 수 있기를.

* 서연이가 바둑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이 되었다. 유치원 종일반은 관두고 하원에 맞춰 동성초등학교(내가 입학했던 초등학교이다) 근처의 바둑 학원으로 갔다가 피아노 학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가족들이랑 부대끼고 자연을 호흡하며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안쓰럽다. 좋아하니 시킨다는 핑계로 어른들 욕심만 차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 전, 이 녀석이 제 엄마와 함께 프뢰벨영재창의성센터라는 데서 한국웩슬러유아지능검사라는 걸 하고 왔다. 아마도 좌뇌, 우뇌와 관계있을 성 싶은 언어성 소검사(상식, 이해, 산수, 어휘, 공통성)와 동작성 소검사(모양 맞추기, 도형, 토막 짜기, 미로, 빠진 곳 찾기)로 이루어진 건데, 각각의 점수로 언어성 지능과 동작성 지능을 산출하고 합으로 전체 지능을 산출한다고 한다. 결과를 보니 언어성 지능은 상위 0.4%, 동작성 지능은 21.2%, 전체 지능지수는 2%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언어성이 워낙 높아 비교적 평균치에 가까운 동작성을 합하여도 2% 이내에 든다는 것인데, 편차가 커 검사자의 우려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는 제 엄마가 바둑 학원엘 보낸 것인데, 잘 나가는 쪽 밀어주잔 건지 균형을 잡아보잔 건지 모르겠다. 벌써부터 바둑 용어를 구사하며 곧잘 덤비는데, 맨 처음 선생님께 들었다는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고 졌다고 속상해 하지 마라'는 거라도 잘 배웠으면 좋겠다.
Tag // , ,

먼저 가서

from text 2008/09/10 14:42
아니 누(gnu) 한마리가 공포에 질려 도망치다가도 맹수의 배 밑에 깔리고 나서는 먼산을 보듯 순박하고 담담한 눈망울을 가지게 되는 것은 왜일까. 텔레비전에서 본 다큐멘터리 화면이라 해도, 단순한 체념이 아니라, 그렇다고 마지막까지 격렬히 몸부림치는 게 아닌, 그 어떤 한없는 순종이 나는 감동적이었다.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그 눈망울을 본 것 같지 않은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지 않는가. 그 눈망울이 빤히 바라다보는 것 같지 않은가. 한참 무연히 그 눈망울을 마주보다 '한번 가보는 것이다'에 가슴 일렁였던 원규형의 시 '먼 길'이 떠올랐다. '득병유시 치병유시'에 달아두려다 새로 올린다.

돌담 위의 굴뚝새야
앞 도랑의 버들치야

강 건너
산 넘어 간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그곳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한번 가보는 것이다

저승길이 대문 밖이니
인연이 다했다고
발 동동 구르지 마라

먼저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
저 세상에
더 많지 않겠느냐
Tag // , ,

득병유시 치병유시

from text 2008/09/08 23:41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로항장곡)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조선 중기의 학자 신흠(申欽)의 채록 민담집 '야언(野言)'에 실려 있다 한다. 처음 매화만 알고 좋아했다 오동을 알고 같이 좋아했더니, 오늘 문득 떠올라 찾아보다 나머지 두 구절을 만났다. 피천득의 수필 '용돈'과 '순례'에 위 두 구절이 나오고, 김구 말년의 휘호에 아래 두 구절이 나온다는 것도. 그러다 만난 또 한 구절.

得病有時 治病有時(득병유시 치병유시) 병을 얻을 때가 있고, 병을 다스릴 때가 있다.

아하, 하고 출처를 뒤지다가 누구는 여기서 得詩有時 解詩有時(득시유시 해시유시)를 끌어내고, 누구는 得道有時 治道有時(득도유시 치도유시)를 끌어내는 걸 보았는데, 글쎄 다 그럴 듯해 보인다. 하긴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지라.

* 오늘 도착한 '지리산 편지'를 후딱 다 읽고 말았다. 좀체 한 권만 붙들고 쭉 읽질 않는데, '빛'도 그렇고, 둘 다 편지(?)라 그런가, 했다. 다음은 박규리의 시 '치자꽃 설화'. 이미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는데, 여기서 처음 보았다. 두 행 말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 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혼자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본문 중 한 대목.

그리하여 걷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길입니다.
한 시간에 겨우 십 리를 가는 길이 얼마나 눈부신 속도의 길이며, 한 시간에 차마 다 보지 못하고 가는 이 길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랑의 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참으로 아름다운 길입니다.
Tag // ,

가재미

from text 2008/09/05 12:44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의 시 '가재미' 전문. 시간을 두고 몇 번을 읽어도 '파랑 같은'에서는 울컥, 하고 만다. 별일 아니기를.
Tag // ,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from text 2008/09/05 11:40
생물체들은 서로 다르다. 새로이 번식된 생물체들은 그것들을 낳아준 모체들과 다르며, 새로 태어난 생물체들은 그것들대로 서로 다르다. 각 존재는 다른 존재와 다르다. 어떤 존재가 태어나, 사건들을 겪다가 죽는다면, 출생, 사망을 포함한 그의 사건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사건들에 직접 관계하는 사람은 본인뿐이다. 그는 혼자 태어나며, 혼자 죽을 수밖에 없다. 어떤 한 존재와 다른 존재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 가로놓여 있으며, 거기에는 단절이 있다.

사랑에 빠진 어떤 사람은 상대방을 소유하지 못할 경우 상대방을 죽일 생각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잃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이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어떤 경우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렇게 미친 듯한 열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얼핏 본 연속감에 기인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 세상에 인간적 한계를 무너뜨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직 연인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육체적 결합과 심정적 결합을 이루면 불연속적인 그들이 완전한 융합에 이르고, 그러면 그들이 연속성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죽음과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죽음을 방탕의 개념에 결부시키는 방법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시는 상이한 에로티즘의 형태가 마침내 이르는 곳, 즉 상이한 사물들이 뒤섞이는, 불명료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하여 시는 우리를 영원성에 이르게 하고, 시는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죽음을 통하여 연속성에 도달케 한다. 시는 영원이다.

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 서문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 에로티즘' 중에서. 예전에 <註釋, EROTISM>이라는 제목으로, 서문 중에서 고른 어떤 대목 하나 다음에 짧은 이야기, 다른 대목 하나 다음에 연이은 이야기, 또 다른 대목과 이어지는 이야기, 식으로 소설 쓰기를 시도한 적이 있다. 쓸만한 대목들만 골라놓고 이야긴 도입부만 겨우 끼적이고 말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발상은 괜찮았고, 돌아보면 그리운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엔 딱 죽거나 죽이고 싶었을 뿐인, 그런 때이지만.

* 잘 짜여진 다시 읽어도 좋을 괜찮은 단편이나 중편소설 하나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군더더기 없이 아름다운 수필 서너 편, 울림 있는 시 몇 편 같이 엮어서 책 한 권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그래 그런 거지 하며 웃으며 서럽잖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계

from text 2008/09/04 00:11
흔치 않은 성씨였다. 이름은 잊어버렸다. N이라고 해두자. 그 무렵 나는 한 문장만 빼도 바스러지는 촘촘하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소설이나 철학적 사유를 담은 시를 쓰고 싶어 했다. (계속)
Tag //

어린 시절

from text 2008/09/03 22:24
어린 시절, 방학은 늘 시골 외가에서 보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시작하는 날 또는 그 이튿날 어머니와 함께 가서 개학 전날이나 전전날 돌아오곤 했다. 초등학교 육년을 내내 그렇게 보냈다. 나를 데려다놓은 그날이나 하룻밤을 묵은 다음날 떠나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마을 어귀 구판장 앞에서 동구 밖으로 멀어지는 어머니는 그 긴 길 위에서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기억이 맞다면 열두 번을 한결같이 그렇게 가셨다. 먹먹한 마음도 잠시, 곧 산으로 들로 개울로 못으로 잘도 돌아다니며 놀았지만, 사는 동안 문득문득 그 뒷모습은 가슴 서늘하게 출몰하곤 한다. 데리러오셨을 때면 저도 모르게 수다스럽고 들뜨던 어린 내 모습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도 그런 내 모습을 낯설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정직하게 제 살 깎아먹는 법을 그때 배웠다.

대저 얼마 못 가는 마음들이, 그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떤 마음을 이루기도 한다. 이 녀석 오줌인들 못 먹을까 보냐 하다가도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태산을 짓기도 하는 것이다. 더러는 색채가 없는 채색화, 먹을 쓰지 않은 수묵화를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살뜰한 휴식, 그 끝에서.

* 어제 저녁 조금 늦게 일을 마치고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정영태의 우주관측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바람이 좋아 일부러 멀리 돌아 집까지 걸었다. 날이 좋아지니 다시 산이 그립다. (우주관측을 서점에서 출판사에 주문하는 사이 이원규의 지리산 편지를 다른 서점에 주문하였다. 처음 사는 원규형 책.)

조증이 오래가면

from text 2008/08/13 14:07
어제와 오늘 김곰치의 책 블로그를 들여다보았다. '발바닥, 내 발바닥'에서 마흔에 만나기로 했다던 그녀가 이 책 '빛'의 정연경의 모델인가, 일종의 헌사인가 생각했더니, 그건 아닌가 보다. 다음은 와 닿은 구절들 중 일부. 링크는 작가의 일기 중 인상적이었던 조증. 둥시의 '언어 없는 생활'과 함께 주문하였다.

남녀가 처음 만나 8초면 '저 사람과 연애할 수 있다 없다' 판단을 한대요. 4촌가 8촌가. 지율 스님에게 그 얘기 했더니, 웃기지 말래요. 보는 순간 안대요, '앗, 내 남자, 내 여자' 하고요. 왜냐하면 워낙 억겁의 어떤 전생의 연이 있기 때문에…. 제발 좀 만나자마자 그날 바로 사고치는 연애 하라고.

찬란한 여성을 보면, 스무 살에 봤는데 아직도 이따금 떠오르거든요. 아, 왜 그리 찬란했을까….

근데 분노라는 게, 언론 보도에도 나왔지만, 사람이 분노할 때 인식이 굉장히 정확해진대요. 복잡하게 몇 달 고민하던 것을 분노의 감정이 왔을 때 한칼에 인식을 끝내버리고 결행한다는 거예요.

* 스물네 시간 만에 책이 도착하였다. 다음은 이경의 작품 해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예수' 중에서 책 뒤표지에 실린 부분.

남녀는 함께 문어를 먹고 있으나 이들이 먹는 것은 동일한 문어가 아니다. 남자는 생명이었던 문어를 먹고 여자는 음식인 문어를 먹는다. 음식이라는 여자의 판단 배후에는 다른 생명체를 먹을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한 기독교의 교리가 있고 생명으로 보는 '나'의 배후에는 '모든 것의 모든 것'인 하느님이 자리한다. 다른 하느님은 이처럼 늦은 밤 남녀가 마주 앉은 술집의 술상 위에까지 좌정해 차이를 압박한다. 때문에 이 장면은 실오라기 하나 벗지 않았으나 간음에 값하는 배신의 현장이 될 수 있다.

* 술병 다스리며 이틀에 걸쳐 완독하였다. 남자와 여자 이야기도 예수 이야기도, 때때로 내가 말을 하는 듯,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술술 읽혔다. 정영태와 톨스토이를 찾아 읽지 않을 수 있을까. '팝콘 사건' 직후 조경태가 만난, 톨스토이 관련 삽화 한 토막.

조국, 러시아, '땅의 사람들'을 끈질기게 사랑하셨던 톨스토이 선생님, 세상의 모든 출판사가 인세 지불 없이 당신 책을 마음대로 출판하여도 된다는 선언을 하셨고, 선생님 마누라 소피아는 그 결정에 충격을 받았고, 그런 소피아를 보고 '아아, 이 여자가 나를 모른다!' 하고 팔십 노구를 이끌고 가출을 감행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그 가출 여행 중 임종의 자리에 누웠을 때, 인근에서 몰려온 농민들…… 백작님이 갑자기 위독해져 우리 마을 기차역 객사에 누워 계시단 급보를 들었던 거죠. 그런데 선생님은 이러셨다죠. 왜 이리 시끄러워. 러시아 농민은 이렇게 요란하게 죽지 않아.
사람들의 임종 면회를 허용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소피아만큼은 '그 여자 얼굴은 다시는 안 본다!' 하고 거절하셨다니, 하하하, 참 귀여우신 선생님!

여름, 0731-0805

from text 2008/08/05 18:08
재미있는 모양이다. 소식도 없이.

이렇게 아쉽고 안타까운 게 많아서야 어디 제대로 하직인들 할 수 있겠느냐.

오랜만에 집을 못 찾아 헤매 다녔다. 여기도 집 앞 네거리 같고 저기도 집 앞 네거리 같더니 집 앞 네거린 낯설기만 하였다. 발음이 꼬여 말도 말 같지 않았다.

일부런 듯 종일 TV를 보는데 문득 42인치 LCD TV가 괴롭히다. 욕 조금, 눈물 조금, 옛 생각 조금 하다 발로 밟아 끄다. 이만한 것에도 이럴진대, 못난 놈, 하다 TV를 끊을 생각을 하다.

이대로 사육, 당해도 좋단 생각, 잠시.

지난겨울 한때처럼, 그 길을 따라 오래 걸었다. 목덜미에 흐르는 땀이 몸의 기억에 대해 말해 주었다. 아프거나 다친 자국은 몸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 다 아물어 보이지 않아도, 마음엔 흔적도 없어도, 자칫 깊고 오랜 상처가 반복될까, 저도 모르게 짧고 얕게 지날 길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그 길 위에 담장 너머 보란 듯이 매달린 석류를 보았다. 그리워 그리워 꽃 진 자리에 그리다 그리다 맺힌 암반 덩어리.

인연이 아니면 인연이 아닌 것, 세상도 저도 나도, 길이 다르면, 그렇게 살다 가는 것.

세 번 이상 반복되면 그건 그런 거다. 어쩔 수 없는 거다. 헛먹었을지라도 나이가 가르쳐준 것, 먹은 태는 낼 줄 아는 거다. 시시한 세상, 이라지만 아쉽고 안타까운 일도 그만큼 줄여줄 거고, 저도 이 여름도 결국 또 언제 그랬느냐 할 거다. 갈 길도 멀지 않은데, 어쩐 일인지 주춤거리고 헤매는 시간이 밉지만은 않다.

* 준탱이 돌아왔다. 온산항에 잠시 정박하고 있다 모레쯤 입성할 모양이다. 일 년여 만이다. 그래도, 시간, 참.

오늘 늦냐길래 잠깐 야근하고 아직 임잔 없지만 간단히 소주 한 잔 할까 한댔더니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람이랑 놀란다. 젠장, 그런 사람은 고사하고 허공에 대고 혼자 먹게 생겼다. 어디로 갈꺼나, 어디에 있을까.

대화

from text 2008/07/31 23:31
엊저녁, 0124님은 여전히 교육으로 늦는데다, 비도 오고 마음도 그렇고, 서연이랑 둘이 간단히 저녁 챙겨먹고는 집 근처 자주 가는 일본식 꼬치 전문점으로 가볍게 나들이하였다. 단둘이 술집에 간 건 처음이다. 상 아래로 다리를 넣을 수 있는, 늘 앉는 자리에 마주 앉았더니, 언제나 정겨운 인상의 주인아주머니께서 몇 분 더 오시는지 묻는다. 답니다 했더니, 조금 놀라는 눈빛으로, 혼자 오셨어요? 하는데, 이 녀석이 대뜸, 저도 있어요 소리치는 바람에 주변 손님들의 이목을 끌고 여럿 웃음을 자아냈다. 유쾌한 술자리가 되리란 예감을 하며 같이 안주를 고르고 소주 한 병 주문하여, 서로의 잔에 저는 술을 따르고 나는 물을 부어 심심찮게 건배하며 대작하였다.

흔히 갖는 술자리와 달리 진지한 대화부터 시작하였다. 아빠는 서연이한테 바라는 게 하나 있다, 밥을 먹을 때나 이렇게 식당에 앉아있을 때 가만히 앉아서 먹었으면 좋겠다 했더니, 짐짓 심각한 얼굴로 알았단다, 그렇게 하겠단다. 서연이도 아빠한테 바라는 게 있으면 말해보라 했더니, 담배는 피우지 말고 술은 조금만 마셨으면 좋겠단다. 잠시 실랑이하다 담배는 줄이고 술은 덜 먹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그러고는 묵찌빠, 가위바위보, (제멋대로)가위바위보 하나 빼기, 중간말잇기, 끝말잇기를 거쳐 녀석의 미래에 대해 잠시 들을 수 있었다.

뜬금없이 이천이십일년에는 서연이 몇 살이에요? 그럼 이천삼십삼년에는요? 이천사십이년에는요? 등등 묻고는, 답해주는 나이에 따라 고등학교 삼학년이네, 어른이네, 아빠 나이랑 똑같네, 어쩌네 하더니,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원별애랑 결혼한단다. 저희들끼리는 결혼을 약속한 이현지라는 단짝이 있는 줄 아는 터라, 현지는? 했더니, 이현지는 나중에 저를 안 좋아할 지도 모르는데, 원별애는 나중에도 저를 좋아할 거란다. 그래서 원별애랑 결혼할 거란다. 아빠 나이랑 똑같네 할 때에는, 서연이도 그때 아빠한테 서연이가 있는 것처럼 아기 있겠네 했더니, 원별애가 낳으면요? 하고는 실실 웃는다.

다음날 오마시던 빙부께서 들르셔서, 술과 안주를 삼분의 일 가량 남기고, 아쉬움을 두고, 밖으로 나오니 밤바람이 선선했다. 열대야 탓도 있겠지만 한동안 또 잠을 설치고 새벽에 깨는 일이 잦더니 모처럼 깊이 잤다. 가게에서 나와 손을 잡고 걸을 때는 뭔가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녀석과 대작하는 동안 받은 교감과 유대의 느낌을 되새기며, 나누는 자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간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자유에 집착하여 그 소실을 그리 염려하고 언짢아하였던가 돌아볼 수 있었다.

* 말하는 김에, 오늘 아침 녀석과의 출근길에서의 대화. 택시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오늘은 누가 데리러 올 거예요? 묻는다. 아빠가 데리러 갈 거라 했더니, 일 있으면요? 하고 되묻는다. 오늘은 일 없으니 아빠가 데리러 갈게 해도, 갑자기 일 생기면요? 그럼 어떡해요? 집요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할머니 댁에 가 있으면 되지 했더니, 그러니까요, 지금 슈퍼 가요, 헤헤 웃으며 손을 잡아끈다. 과자든 사탕이든 빙과류든 딱 하나만 월요일과 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정해놓고 사주는데, 혹여 하는 생각에 저녁까지 못 기다린단 심산 거다.

하나 더. 조금 전, 제 어미가 왔을 때 둘의 대화. 방학이라 유치원 도시락 반찬으로 고민인 어미가, 장 봐서 월요일엔 김밥 싸줄까? 하는 말에, 그럼 김하고 밥하고 재료하고 싸주세요, 서연이가 싸서 먹을게요, 천연스레 대꾸한다. 제 어미 음식 솜씨를 교묘히 타박하는 건지, 말 비틀기인지, 나도 따라가려면 멀었다.
Tag // ,

가족

from text 2008/07/30 13:31
늘,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지만, 생각해 보면, 온순하신 두 분 앞에 한없이 낮게 엎드리고만 싶었다. 지금껏 주고받은 말씀의 총량이 마음 맞는 친구와 하룻저녁 술자리에서 나눈 그것보다 적은 아버지, 꼿꼿하고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어머니. 나이를 먹어가며, 두 분의 성정이 내 바탕에 실핏줄처럼 스며 있는 걸 느끼는 때가 는다. 무던히도 세상에 거역하고 거부하며 나대로 작은 탑을 쌓아왔지만 다 내 것이 아니었다.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적정한 인정과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걸 수시로 느껴야 한다는 것은 힘들고, 오래 못 견딜 일이다. 세세한 신경을, 많은 걸 가족을 위해 쓰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기본적인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 한 순간 경멸의 눈초리, 팽개쳐진 삶의 조각들이 한동안 그 자리를 대신하여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다 까마득히 날아온 소식이었다.

나를 봐도, 우리를 봐도 자신 없었다. 내 얘길 들으니 저도 자신 없다며, 그러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했을 때, 나는 이대로 가면 후회할 것만 같았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만들어놓고 싶었다. 언제 어느 때든 예비해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 간데없는 마음 하염없이 들여다보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스멀스멀 번지는 작은 손짓의 흔들림을 느꼈다. 아, 어쩌란 말이냐.

나한테, 참, 무거운 녀석이다. 병원을 찾은 날까지 아무런 떨림 없이 짓누르기만 하더니, 쿵쾅대는 심장소리로 내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천천히,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였다. 대꾸하지 않을 수 없는 작은 소리로, 내 귀와 입을 열게 하였다. 무릇 감당하지 못할 일이 있을라고, 여전히 녀석은 나에게 무겁지만, 그러안지 않을 수 없는 딱 그만큼의 무게를 나에게도 주었다. 먼 훗날, 내가 저의 이름을 부를 때, 함께 불릴 이름에 고이 머리 숙인다.
Tag // ,

설마

from text 2008/07/29 04:54
저도 내 맘 같을까, 행여
저가 내 맘만 할까

우정

from text 2008/07/28 14:26
바빠질 것 같은 예감, 견제하는 심정으로 주문한 책 몇 권이 도착하였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 김곰치의 발바닥, 내 발바닥, 김종철의 땅의 옹호, 그리고 녹색평론선집 2. 다음은 땅의 옹호 '책머리에' 중 일부. 오래 전 읽다만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녹색평론> 100호를 기하여 내놓는 이 책의 준비과정에서 나는 <간디의 물레> 이후 내 생각에 일어난 약간의 변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변화는, 간단히 말하면, 근년에 이르러 이반 일리치의 생애와 사상이 내게 갈수록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온 점과 크게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일리치는 우리의 삶에서 '우정'이 갖는 중심적인 의의에 대해서 나를 깨우쳐주었고, '우정'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해주었다.
나아가서 일리치는 내게 실제로 좋은 벗들을 불러다주었다. 내가 오랜 직장이었던 대학을 그만두고 서울로 자리를 옮긴 뒤, 나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벌써 4년이 넘었지만 대부분 초기회원들이 계속해서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을 통해서 나는 대학생활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우정'은 사심없는 마음, 자기희생의 정신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우정'이야말로 지금 세계를 황폐화하는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희망'을 제공하는 원천이 바로 '우정'이라고 일리치는 말했다. 그의 말은 실제로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서 빈번히 입증되었다. 나는 이 책이 이 모임의 벗들에게 하나의 작은 선물이 되기를 염원하면서 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방금 찾아 읽은 프레시안에 실린 강양구 기자의 김종철 선생 인터뷰 중에서.

- <녹색평론> 외에도 단행본을 내고 있다. 어떤 책이 첫 단행본인가?

<녹색평론 선집 1>을 제외하고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이 실질적인 첫 단행본이다. 그리고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두 번째로 펴냈다. 장일순, 권정생 두 분은 일리치, 간디와 더불어 <녹색평론>이 지향하는 바를 말, 글과 삶을 통해 몸소 실천한 이들이다.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들의 책을 낸 것은 또 다른 큰 보람이다.

- 마침 권정생의 1주기다. 고인의 생전에 깊은 친분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얼마나 통찰력이 있는 스승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대한민국에서 그가 '제일 무서운 양반'이라고 말하곤 했다.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이런 게 있다. 어느 날 그가 툭하고 이런 얘기를 던지더라. 한창 퇴계 이황이야말로 한국의 유일무이한 대사상가라고 주목하던 때였다. "퇴계 집에 노비가 150명이나 있었다고 합디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노비는 생산에 동원되지 않으니, 그 노비까지 먹여 살리려면 퇴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소작농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한 마디로 퇴계 학문의 관념성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를 만나서 얘길 할 때마다 이런 경험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잠깐 들른 김규항의 블로그에서 하나 더, 그건 그렇게 사는 게 '옳기 때문'이 아니라 '편안하기 때문'이다. 쳇, 가히 耳順을 지나 從心의 경지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