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지리산 2008/03/30
  2. 자유 앞에서 2 2008/03/20
  3. 몸살 2008/02/10
  4. 꽃들에게 2008/01/15
  5. 남자와 여자 5 2008/01/07
  6. 나무의 전언 2008/01/02
  7. 첫눈 2007/12/30
  8. 겨울, 비 2007/12/28
  9. 남자와 여자 4 2 2007/12/20
  10. 남자와 여자 3 2007/12/15
  11. 남자와 여자 2 2007/12/13
  12. 남자와 여자 2007/12/12
  13. 비애와 더불어 사는 삶 2007/12/03
  14. 믿음 2007/11/27
  15. 오마쥬 2007/11/23
  16. 거미 2007/11/21

지리산

from text 2008/03/30 01:28
1박2일 지리산에 다녀왔다. 금요일 낮에 중산리에 도착하여 마음씨 넉넉한 부부가 운영하는 펜션(물소리 바람소리)에 짐을 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절이라는 법계사까지 올랐다. 흙길이 거의 없이 돌과 계단 투성인데다 연신 오르막이라 꽤 힘들었다. 겨우내 잘 걷지 않고 근래 마음은 마음대로 지친데다 몸은 몸대로 혹사시켰는지 일찍 다리가 아프고 호흡이 가빠 애를 먹었다. 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꽤 많이 보이던 진달래는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다.

오르는 길 내내 경상대 사대부고 1학년 남녀 학생들을 마주쳤는데, 대부분 어찌나 인사성 바르고 활기차고 밝은지 우리 일행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아침에 출발하여 천왕봉까지 오르고 내려온다는 이들은 1년에 한 번 소풍을 이렇게 온다니 인솔하는 선생님들도 그렇게 듬직하고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법계사는 삼층석탑 외엔 근래에 지은 것들이라 볼만한 게 없었다.

내려오자마자 목마른 차에 다섯 명이서 동동주 두 되 맛있게 나눠먹은 게 어설프게 취하는 듯 하더니 펜션 마당에서 삼겹살 구워 소주 열두 병 먹고는 모두들 일찍 취하고 말았다. 모처럼 반주 없이 노래도 한 곡씩들 불렀다. 맑은 날이었는데 어째 별 한 점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남은 삼겹살을 넣어 끓인 김치찌개가 일품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예담참숯굴랜드에 들러 숯가마에서 기분 좋게 땀도 내고, 예쁘게 내리는 비도 맞았다. 대구로 다시 돌아가는 게 이리 싫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산을 오르내리며 땀과 함께 털어버린 어떤 것들이 번잡한 일상이 기다리는 곳으로 악착같이 따라붙고 있었던 것일까, 앞산 어부이씨에서 잡어회와 생아구탕에 곁들이는 반주가 달았다.

자유 앞에서

from text 2008/03/20 16:04
하마터면 계절도 참꽃도 모르고 지나갈 뻔 했지. 아침에 보니 일찍 핀 목련은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드문드문 개나리도 피었고 연둣빛 잎새를 단 나무도 눈에 띄었다. 문득 매캐하던 서울 하늘이 떠오른다. 근 한 달여 절반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맑은 날을 본 기억이 없다. 며칠, 그 하늘처럼, 심란한 와중에 신경이 날카로웠나 보다. 마침 가까이 있다 찔린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우리 시대의 자유는 결국 '경제로부터의 자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인가.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차하면 길을 내면 된다는 거야 역시 술자리 허언에 지나지 않는 걸까. 어느 쪽이든 한 발 내디디면 모양 다른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마치(어쩌면) 당당한 나락이냐, 안온한 나락이냐의 갈림길 같다. 모르거나 막혔을 땐 주저앉아 쉬거나 기다리는 법을 터득해왔건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티끌 같은 가벼움에 몸을 맡길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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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

from text 2008/02/10 13:14
지독한 목감기를 앓았다. 몸살 기운과 목감기 기운이 조금씩 있더니 차가운 술과 맥주를 마신 다음날부터 끙끙 앓았다. 목에는 다른 사람이 사는 듯 낯선 소리가 나왔고 때때로 그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 혼자 동네 의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고 처방전을 받아 나오는데 스물다섯 즈음 은행에 처음 계좌를 개설하였을 때처럼 처음 하는 일인 듯 떨리고 뿌듯한 기분까지 들었더랬다. 일월 말부터였는데 다 나은 듯 하더니 어제 오후부터 몸살 기운이 도지고 목 전체가 퉁퉁 부어 아프다. 설날 저녁 처가 식구들과 많이 마신 술이 뒤늦게 화근인가, 조금 무리하여 피곤한 걸 제때 풀어주지 않고 한 차례 더 무리하면 영락없이 앓는 나이가 된 건가, 속절없이 웃고 만다. 연휴는 길고 마흔으로 가는 통과의례가 독하다.

처고모, 처고모부들과의 설날 술자리에서 오고간 둘째를 낳아야지, 아니 하나에 정성을 다 쏟는 게 낫다는 이야기에서 뻗어간 생각의 가지들은 나를 위해 살 것인가, 자식을 위해 살 것인가, 그게 과연 둘인가를 거쳐 사랑의 속성에 대한 질문에 이르렀다. 사랑이란 무한히 샘솟는 것이어서 배우자든 자식이든 늘어나는 대로 듬뿍듬뿍 나눌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한정된 것이어서 이전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소홀해지는 것인가. 타인에게로 확장한다면 그것은 또 어떤 속성을 보여줄 것인가.

모든 걸 거는 사랑이 아름다운 진짜 사랑인가, 적당히 사랑할 줄 아는 게 현명한 진짜 사랑인가. 인생이란 것의 굴곡과 서로 간의 소통불가능성, 시간의 무시무시한 속성에 생각이 이르면 선뜻 한쪽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가 하는 말은 달리 말하면 인생에 있어서는 모든 게 정답이라는 말과 같다. 해서 살아가는 일에 대한 상반되는 두 가지 진술은 모두 진실이고 진리인 경우가 허다하다. 때때로 인생에서의 결정적인 순간과 무시로 만나는 선택의 순간에서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머리 속의 지식이나 갈고 닦은 지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몸이 반응하여 먼저 움직이거나 어쩔 수 없는 힘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그 순간까지 자신에게 누적된 모든 것, 말하자면 어린 시절 무지개색 나비를 본 일이나 아무도 몰래 잠시 하늘을 날아올랐던 일, 어느 날 밤 슬쩍 세상 한 자락을 들춰본 일까지 다 포함되어 있겠지만 말이다.

드문드문 내 반쪽이 둥둥 떠다니며 다른 세상을 구경하는 꿈을 꾼다.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이전의 나는 아니지만,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꽃들에게

from text 2008/01/15 19:44
어제, 많이는 아니지만 술을 먹고 들어왔는데 아들 녀석이 열두시가 다 되도록 자지 않고 칭얼대고 있었다. 재미있는 이야길 해 주마 하고는 겨우 옆에 눕힐 수 있었다. 토닥토닥 그 단단한 가슴을 두드리며 이야길 시작하는데, 그때서야 취기가 오르는 듯 나도 잠이 드는 듯 서로가 서로에게 잠겨들었다. 머리 한쪽에서는 어떤 슬프고 이해할 수 없는 정조가 저 혼자 떠다니기도 했다. 어째서 꽃 이야길 하게 되었을까.

봄에 피는 꽃은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단다. 그래서 화사해 보이지. 아지랑이가 막 피어오르는데 그 간지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던 거야. 진달래, 개나리, 벚꽃, 목련, 모두. 여름에 피는 꽃은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니까 더 화려할거야. 장미도 백합도 해바라기도. 우선 꽃이 보여야 하거든. 가을에 피는 꽃? 수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소박한 모양을 하고 있지. 왜 그런지는 몰라. 다들 지는데 피어날려니 그러나? 겨울에 피는 꽃은, 동백이나 매화나, 떨어지면서 더 아프거나 향기만 오래 남는 꽃들이야. 그렇게 흔적을 남기는 거지, 왔다 가는 흔적을.

속씨식물들이 자신의 생식기관을 이렇게 처연하도록 아름답게 피워 올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이제야 어제 집에 들어오자마자 목이 말라 부엌에 들어갔다가 겨울이 오고부터 부엌 가장자리에 들여놓은 여러 화분들 중 납작한 난 화분 하나가 꽃대를 대여섯 개나 밀어올린 걸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작은 봉오리에서 하얀 꽃이 활짝 필거라고, 대여섯 밤도 지나지 않아 향기가 가득할거라고 아들 녀석에게 일렀던 것도 생각난다. 밤새 꽃들에게 위안이라도 받은 듯, 아침 대기는 잠시 상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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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5

from text 2008/01/07 20:06
물빛에 비친 행성은 아름다워 보였다. 남자가 다른 세상을 사는 동안 여자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있었다. 작은 행성은 돌기를 멈추었고 세상은 잠시 정지하고야 말았다. 이윽고 누군가 낮게 토하던 한숨을 남자는 들었을까. 지키던 별들은 제집으로 갈 시간을 지켰으며, 물빛 속에 노랗게 빛나던 달은 다시 하얗게 바랬다. 새벽이 오고 있었다.

돌에 새긴 믿음이나 약속도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법, 애초에 바람에 새겼던들, 가볍게 새겼던들. 남자의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에 여자는 눈물 대신 붉은 이를 악물었다. 살아남기 위해 한사코 웅크리던 때가 있었지. 세상을 흘끔거리던 그때, 산처럼 나를 누르던 것은 나였어. 해를 받은 남자의 얼굴이 마지막 남은 황금처럼 빛났지만, 눈이 멀고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작은 행성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얼마나 있으며 할 수 없는 일이란 얼마나 있을까. 마음에 기대 몸서리치는 마음이 갈 자리란 어디에도 없는 것을. 남자는 마른 손을 들어 허공에 놓았다. 딱 죽을 것만 같던 마음도 작은 흔적으로 갈무리된다지요, 산다는 일은 그 흔적을 후벼 파고서라도 다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겠지요. 앙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것은 낯익은 여자의 언어가 아니었다. 이제야 오랜 되새김을 마칠 때가 온 것일 뿐, 오랜 되새김이 비로소 시작된 것일 뿐. 죽은 줄 알았던 해바라기들이 행성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소리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나무의 전언

from text 2008/01/02 18:58
당신이 누구든, 행복하시라, 언제 어디서든. 담배 한 대 태우다가, 언제 거기 있었나, 각자의 거리를 유지하고 칼바람 속에 꿋꿋이 저 혼자 저를 다 감당하고 있는 나무 무리를 보았다. 저 혼자 탄 담배가 필터만 남았을 즈음, 단 한마디 말을 들었다. 버리라 한 것도 같고 벼리라 한 것도 같다. 마음을 이기려 모진 걸 찬 바람에 새기면서도 청춘이라 하였건만, 미혹하는 마음은 멀어도 한참 멀었다 했는데, 사나흘 몰아치던 것들이 정점에서 일순 잦아들었다. 처음 마음이 곱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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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from text 2007/12/30 07:18
새로 공부하듯 술을 마시던 도중 만난 눈, 그 눈팔매에 기어코 말을 하고 말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싸래기처럼 왔다던 것 말고는, 호쾌한 첫눈이었다. 거리를 곰처럼 뒹굴던 사람들이 예뻤다.

* 커다란 백지에 이름 석자 써본다. 이을 말이라곤 없어도 그냥 그렇게 한 귀퉁이에 그 이름 불러본다. 거기도 여기처럼 하늘이 던지는 돌에 멍드는 가슴이 있는가. 그 팔매에 패인 시퍼런 가슴 있는가. (서른여섯 시간 후, 이천칠년 마지막 날, 다시 내린 눈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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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비

from text 2007/12/28 21:01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영원한 걸 꿈꾸고 그리워한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는 사람도 그렇다고 하면 으레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된다.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침반이나 지도, 또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길에 그만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렇게 알 수 없는 말들을 또다시 늘어놓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곤 영원히 없을 거라는, 누가 찍은 건지 알 수 없는 낙인 때문이다. 그 자국이 아직 시뻘겋게 타고 있기 때문이다. 종일 겨울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내어놓은 가슴에 남은 흔적은 지울 생각도 않고 저만치 달아나고 말았다. 자, 누굴 원망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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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 4

from text 2007/12/20 23:31
모래 위에 모래로 쌓은 탑 같은 거였어. 예뻤냐고? 술잔을 놓으며 남자가 말했다. 그때 내가 볼 수 있는 건 나를 보는 나밖에 없었어. 여자가 잔을 채웠다. 낮게 깔렸던 꽃잎처럼 잠시, 여자의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언제나 짧은 여생, 생업이든 사랑이든. 모든 별들이 나무 틈으로 집중하였으므로 노랗게 치장하던 달은 술잔 아래 숨고 말았다. 여자는 낮게 깔리는 꽃잎을 따라 천천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술잔이 놓였던 자리에 슬몃 물기가 스몄다. 나무 틈으로 비를 머금은 새떼가 가득 날아들었다. 소란한 시간이 왔군. 남자는 오랜 그리움인 양 여자의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모래를 두 숟가락이나 먹었더니 배가 불러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진흙으로만 한 공기를 거뜬히 비웠답니다. 찰진 똥을 누었더랬지요. 새처럼 지저귀며 여자는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그리움을 만졌다. 별의 나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나이보다 적은 걸요. 여자가 꿈결 같은 머리칼을 더듬는 동안 남자는 다음 세상을 보고 있었다. (계속)

남자와 여자 3

from text 2007/12/15 12:08
남자와 여자는 소리 없는 찻집에 마주앉았다. 주인도 시중꾼도 없었다. 해바라기 모양을 한 시계만이 움직이는 물체였다. 나를 닮은 딸을 낳아 당신께 드리고 싶어요. 내가 없더라도 당신을 잘 보살필 거예요. 여자가 말했다. 그 전에 나를 떠나면 당신을 죽여 버릴 거예요. 왼손 검지 손톱을 살짝 들어 바닥을 기는 이를 지그시 누르는 의지보다 간단히, 찍 소리도 없이 가볍게. 그때, 남자는 믿었을까? 이 작은 행성보다 더 작은 체구가 전하는 다짐을. 다른 별들이 돋기 시작했을 때, 함께 나무 틈에 가 숨기 전에 남자가 말했다. 오늘은 꽃잎을 띄운 맑은 술을 한 잔 하고 싶군. (계속)

남자와 여자 2

from text 2007/12/13 15:04
길을 걷다, 남자가 물었다. 여기가 어딘가? 당신의 주위를 돌고 있는 작은 행성이에요. 여자가 말했다. 당분간, 아무도 이 별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창백한 해바라기들이 남자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하얗게 바랜 저 달은 당신을 닮았군, 남자가 낮게 중얼거렸다. 해는 지레 길게 이울었지만, 어디에도 그림자는 없었다. 이 별 어디에도 이제 누군가 남겨놓은 흔적은 없어 보였다. 물론, 그런 건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계속)

남자와 여자

from text 2007/12/12 21:38
가슴이 콩콩여 가슴에 손을 얹었더니 심장, 그 바닥까지 닿았네
가만히 손 위에 올려놓고 보니 나를 응시하는 두 눈동자
물끄럼한 서슬에 희미한 웃음만 흘렸네, 꾸깃꾸깃 제자리에 넣어두었네

남자는, 그랬다. 바깥 구경 한번에 온 세상을 알아버린 듯, 제집에서 날뛰다 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그럼, 여자는? 희죽, 죽을 쑤어 제 머리를 덮어버린 것이다. 지나가는 개에게나 주라고? 아나, 받아라. (어떤 행성 이야기, 계속)

비애와 더불어 사는 삶

from text 2007/12/03 10:56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비 내린 일요일, 약에 취해 하늘거렸다. 달랠 길 없었다. 오래된 처방은 하룻밤 진통에 그쳤다. 여름 한낮, 낮술 먹고 나온 듯, 나 몰라라 말갛게 씻긴 하늘이 미워 비틀거렸다. 아프지 않기를, 나 말고는.

믿음

from text 2007/11/27 13:19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 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46절 말씀이다. 정국은 재미없고, 돌아가는 세태는 어수선하다. 다 털어내고 기본을 살필 때다. 자신의 바닥을 들여다보기 좋은 때가 아닐 수 없다. 간혹 부끄러운(또는 부끄러워 하는, 부끄러운 걸 아는) 얼굴을 만날 때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는 때로 살아남는다는 핑계로 옛 기준으로라면 도저히 들고 다닐 도리 없는 얼굴들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때, 내 전부가 온전히 가 닿던 순간, 거꾸로 전해지던 가는 떨림을 기억한다. 믿음의 방편이란 그러한 것.

오마쥬

from text 2007/11/23 08:49
망각을 먹고 사는 짐승, 그 오랜 습속, 이 세상이 그 세상이었다니, 내가 떨어진 별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이 아침, 대기는 또 왜 이런다냐.

거미

from text 2007/11/21 21:43
길었다. 은유할 길이 없었다. 지난 가을
두어 세월은 지낸 듯
늙은 몸이 감당하기 버거워
긴 호흡을 배웠다. 마디로 마디를 밟으며
나무를 건너는 동안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나무를 건너기 전의 나는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돌아보면 저만치
줄 끝에 매달린 그리움, 서러움.

그때, 지나며 보았지. 그렇게 무언가는 내려놓고, 무언가는 지고
계절을 나는 나무들, 잎보다 무성한 가지로도 가릴 수 없는 치부
나를 닮은 내 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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