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2건

  1. 보리새우 2006/12/05
  2. 방출 소감 2 2006/11/29
  3. 비슬산 2 2006/11/05
  4.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2 2006/11/04
  5. How Are We To Live? 2 2006/11/04
  6. 팔각산 11 2006/10/22
  7. 통념 2 2006/10/14
  8. 그렇다 4 2006/10/12
  9. 글꼴 2006/10/11
  10. 과연 2006/10/07
  11. 아름다운 소풍 1 2006/09/20
  12. 고양이 소야곡 2006/09/17
  13.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4 2006/09/15
  14. 달팽이의 세계 5 2006/09/14
  15. 니콘 D80 유감 7 2006/09/06
  16. 가을 일기 3 2006/08/24

보리새우

from text 2006/12/05 13:44
어제는 모처럼 0124님과 한잔 했다. 근무 체계가 이제 정상적으로 돌아온데다 다음날 오후 근무만 있어 그러는지 한잔 사겠다 하여 남구청 네거리에 새로 생긴 '천일'에서 고기 구워 한잔 했다. 서연이도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즐거워하여 2차는 내가 사마 하고는 '싱싱해물'로 가 '보리새우'에 한잔 더 했다. 안 그래도 먹고 싶었던 터에 오랜만에 먹는 보리새우 맛이 참 일품이었다. 비싸긴 하지만 한 마리를 두세번에 나눠 먹고 머리 구운 거에다 꼬리 남긴 것 추가로 구워 먹으니 한 상으로 손색이 없다.

보리새우 하면 아주 오래 전에 읽은 김윤식의 글 한 대목이 떠오른다. 어떤 평론집이었던 듯 한데, 한 시인과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보리새우를 맛있게 먹고는 주인에게 이거 한 마리 얼마요 했더니 삼천원이라 하여 비싸다 생각하는 차에 그 지인이 마담, 보리새우 스무 마리 주시오 해 깜짝 놀라는데, 그 때 이미 그들은 한 서른 마리쯤 먹어치운 후였는데, 그치가 시인에 대한 대우는 이러해야 하지 않겠나 했다는 내용이다. 삼천, 스무나 서른이 좀 미심쩍은 게 오래되어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가끔 이런 사치를 베푸는 게 즐겁다.

싱싱해물의 일하시는 누님은 진짜 누님처럼 정겹다. 생각해보니 유일하게 누님이라 부르는 사람인데, 젊으셨을 때 어머니 모습이 문득문득 묻어난다. 서연이도 재롱 부리고 잘 따랐지만, 어젠 영락없는 서연이 친척 어른이었다.

방출 소감

from text 2006/11/29 14:08
이런 카메라 어떨까? 니콘 D200 + FM (?) 정도 바디에 필름과 메모리를 동시 장착할 수 있도록 하여, 찍으면 둘 다 기록할 수 있는 그런 거 말이지. 물론 측광은 MF까지 다 지원하고(당연히 스크린도 두 종류를 지원해주고). 그럼 이런저런 고민 없이 덜 귀찮게 찍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방금 SLR클럽 장터에 내놓은 모터 드라이브 md-12를 직거래로 넘겼다. 상태 좋은 놈을 싼 값에 지난 번 'FE' 구입할 때 따라온 낡은 하마 가방과 렌즈 포우치 두 개, 흠집 있는 hs-9 후드에다 AA건전지 여덟 개 추가로 딸려 내보냈다. 시험 삼아 써 본 것 뿐이었는데, 구매자가 점검하며 셔터 눌러보는데 왜 그렇게 애잔하고 아쉬운 느낌이 드는지, 울적하기까지 했다. 소리는 왜 또 그렇게 청명한지.

같이 내놓은 70-300ED 렌즈는 문의하는 사람은 종종 있는데, 아직 구매자가 없다. 오늘 저녁까지 안 팔리면 그냥 쓰기로 마음 굳히고 글도 그렇게 올렸는데, 저녁 7시 이후에 전화달라는 쪽지가 한 통 와 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성사되면 팔고 아니면 그냥 써야겠다. 없으면 또 아쉬운 게 망원이니.

70-300ED를 문의한 사람 중 두 명에게 쪽지로 대화하다 이 블로그를 알려주며 바로 아랫글의 리플들을 읽어보기를 권했다. 상태를 묻다가 망원의 필요성과 유용성으로 이야기가 넘어가 알려주게 된 것인데, 상태를 떠나 다들 구매를 포기해버리는 것이었다. 뭐 그럴꺼라는 생각을 하면서 알려주기는 했으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보내기 아쉬워 그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딸이 없어 어디 여의는 기분이야 평생 느껴보지 못할 지 모르겠지만, 하루 만져본 md-12를 보내는 마음이 이런데 앞으로 장비 구입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가능하면 방출은 말아야겠다.


* 어제 MF 28mm 2.8 ai-s 구했다. 초점조절링이 조금 덜 묵직하고 몸체에 미세한 흉터가 있어 썩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B+급은 되는 것 같다. 0124님께 미리 말하지 못하였는데, 당분간 뭐 지를 일 없을 것이라고, 뭐 믿어달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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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from text 2006/11/05 08:52
다시 비슬산을 다녀왔다. 자발적이지도 비자발적이지도 않은 모임에서. 용연사나 유가사 쪽에서는 올라봤으나 용천사 쪽에서는 처음이었다. 용천사 조금 못 미쳐 샛길처럼 오르는 길을 탔는데, 내려오며 보니 용천사 쪽 길이 포장된 곳이 많아 잘 골랐다 싶었다. 오른 길로 되내려오는 것도 피할 수 있었고.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떠난 길이라 시간이 부족하여 정상을 밟지는 못하였으나, 오솔길처럼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길이 좋았다. 싸리나무로다가 벼르던 서연이 회초리도 하나 장만하여 왔다.

가창댐을 지나 정대로 해서 청도쪽으로 가는 길이 멋있었다. 제대로 단풍 구경한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도로에 이어지는 산들을 보며 어디서 이만한 단풍을 보기도 힘들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역시 오르면서 이거 뭐 계속할 수 있겠나 하였으면서도 능선을 탈 때 쯤에는 하매 중독된 건 아닌가 하며 시간이 아쉬웠다. 다 올랐을 때의 담배 한 대와 내려온 뒤의 술 한 잔, 이 맛을 과연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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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은 임종을 앞두고 자신이 묻힐 곳에 세울 시비를 지정했는데, 그 하나는 권정생의 시 ‘밭 한 뙈기’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시 ‘새와 산’이라고 한다. 인터넷 한겨레의 작가 권정생 "교회나 절이 없다고 세상이 더 나빠질까" 기사를 보다가 붙어있는 관련기사를 보고 알았다. 이 '밭 한 뙈기'에 보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시구가 나온다.

피터 싱어는 아래 포스트에서의 언급에 이어 고대 그리스와 유대-기독교적 전통을 중심으로 돈벌이에 대한 서구적 사고방식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참으로 오랜 기간 돈벌이를 치욕적인 행위로 여겼으며(특히 가장 본질적인 자본주의적 행위라 할 수 있는 돈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엄하게 비난받았다고 한다), 그 오랜 기간만큼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면서도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혁명적이랄 만큼 이상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신의 이웃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를 구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재산을 은밀히 취하는 것도 적법하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성경과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충동을 부쩍 느끼고 있지만, 특히 모든 기독교인들이 일독하기를 권해 마지않는 '우리들의 하느님'을 쓴 권정생이기에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라는 전언이 더욱 와 닿는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 아니었는가.

다음은 이오덕의 ‘새와 산’ 전문.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 구나!

How Are We To Live?

from text 2006/11/04 00:14
이전에는 구입할 수 있는 것에 의해 돈의 가치가 결정되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의 양이 물건의 가치를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정연교 옮김. 1996. 세종서적) 중에서. 아는 것 같지만 번번이 잊어버린다.

팔각산

from text 2006/10/22 12:54
홍어를 처음 먹을 때 그랬다. 이 놈의 걸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근데 이상하게 며칠 지나고 나니 그 곰곰한 맛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었다. 다시 먹을 때도 아 참 이거 못 먹겠다 했는데, 또 며칠 지나자 그 씹히는 맛이 생각나곤 했다. 서너번 반복하고 나자 이제 그 맛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아 간혹 먹곤 한다.

어제 영덕에 있는 팔각산을 오르내리면서 그 생각을 했다. 홍어랑 등산이랑 내겐 진배없는 것 같다고.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는 딱 포기하고 내려갈까 하는 고비가 꼭 몇 차례 있으면서 이 놈의 것이 나에게 안 맞는 것 아닌가 회의가 들곤 하는 것이다.

일봉부터 이봉, 삼봉, 해서 팔봉까지 오르내리는 길이 험하였다. 곳곳에 암벽이라 밧줄을 타는 길이 많았다. 마른 가을 단풍이라 그리 곱지는 않았지만, 가을볕과 바람이 좋았다. 낚시터횟집에서 한 잔.

팔각산 입구 화장실에 영덕 무슨 로타리클럽에서 붙여 놓은 명언이 와닿아 메모해 왔다. 속에 옥을 지닌 사람은 허술한 옷을 입는다. 출처를 찾아보니 노자 도덕경 중 피갈회옥(被褐懷玉, 거친 옷을 입고 품에 옥을 지니다, 세인들이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에서 나온 듯 한데, 숨은 뜻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통념

from text 2006/10/14 20:23
늘 우리는 우리가 가진 통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아름다운 가스펠이 노래하는 나라에 누가 더 가까운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사자들이 어린 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사막에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에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주님이 다스릴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원되리라
독사굴에 어린이가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참사랑과 기쁨의 그 나라가 이제 속히 오리라

그렇다

from text 2006/10/12 00:33
톡톡히 바보짓을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글꼴에 대해 고민한 것은 따로 한글에서 작업한 문서를 붙여넣기 하였을 때 그 글꼴이 고정되어 바로 작업한 문서와 글꼴이 어긋나고, 바로 작업하였을 때 양쪽 정렬이 되지 않아 어떻게 좀더 깔끔하게 보일 수 없나 하는 것이었는데, html 모드에서 몇개 언어만 간단히 붙이거나 바꾸면 되는 것이었다. 어디 물어보지 않고 알아낸 것이 용하긴 하지만, 이 간단한 것을 몰라 그간 바보짓 한 걸 생각하면 참 한심하다. 늘상 한글에서 따로 작업하여 한겨레결체로 고정하여 올린 것이나, 어제 말한 것처럼 올린 글 전부를 다시 작업한 것이나(오늘 보니 제대로 작업한 것도 아니었고, 엉뚱한 문제나 야기할 뿐이었다). 허탈하면서도 이제 좀 홀가분하기도 하고 그렇다. 부끄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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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꼴

from text 2006/10/11 00:35
본문 글꼴에 대해 오래 고민하다가 이 스킨의 특성대로 사용자 설정에 따라 보이도록 바꾸었다(물론 대부분 방문자에게는 바뀐 것이 없을 것이다. 한겨레결체 글꼴을 받아놓지 않은 이상은 동일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한 노가다였다. 내 눈에는 도구/인터넷 옵션의 글꼴을 ‘바탕’으로 설정하는 게 가장 좋아 보여, 누구에게나 그렇게 보이도록 했으면 하는 욕심에 스킨을 이리저리 만져보았으나, 역부족이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이다 보니 그렇겠지만, 글꼴을 강요하는 게 옳은 일일 수는 없는 것 아니냐 하는 기특한 생각도 들고 해서 생노가다를 감수하고 한겨레결체로 작업한 글들 전부를 손보았다. 가독성이 한층 나아진 것 같다. 흘러온 과정이기도 하고 해서 지금까지 작업한 것은 그냥 놔두는 것도 괜찮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으나, 이놈의 성격이 문제다.

그러나 여전히 한글에서 따로 작업하여 올리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글쓰기 메뉴에 왼쪽, 가운데, 오른쪽 정렬만 있고 양쪽 정렬이 없기 때문이다. 깔끔함에 있어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 어쨌든 뭔가 하나 해결한 듯한 뿌듯함은 있다.

그리고 에, 막걸리나 동동주에 복분자주 섞으면 딸기우유 맛 절대 안 난다. 추석날, 어쩌다보니 청주에 이어 막걸리에 복분자주까지 먹고는 다음날 운신이 어려워 꼼짝없이 푹 쉬었는데, 역시 순한 술들을 이어 마시는 일은 피할 일이라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과연

from text 2006/10/07 06:42
지금 당연한 것이 그때도 당연하였을까, 지금 당연한 것이 나중에도 당연할까.
미시적 진보가 거시적 진보를 담보할 수 있을까.

품위, 기품, 염치, 체면, 겸손 그런 게 없어지고, 생존 경쟁에 충혈된 사람들과 그 피를 빨아 배 두드리는 돼지들의 세상에서 살아갈 길이 무엇인가.

날카롭지 못하고 갈수록 무뎌진다. 반대급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지 술을 마시면 한없이 관대하다가도 밑도 없이 까칠해진다. 사람 좋은 사람이 세상을 망친다.

아름다운 소풍

from text 2006/09/20 14:45
아직 죽는다는 게 두렵다. 나든 남이든. 어릴 적, 여름 한낮에 시골 외가 마루에서 혼자 낮잠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아득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지난 일요일 오전 갑자기 의식이 흐려지셔서 입원하셨다기에 그날 오후에 가 뵈었는데, 다음날 아침 돌아가셨다. 늘 신문이나 책을 읽으시며 정정한 모습이셨는데 갑자기 그렇게 가셨다. 입관 때 장의사가 가시는 길에 노자를 보태드리라 말할 때는 슬픈 가운데에도 저승도 돈 없이는 안 되는 세상이라면 제기랄, 다들 가시지 말지, 억울하고 안타까운 생각도 들고, 사람들 말마따나 그래도 아흔셋 연세에 자식들 모두 살아있고 크게 편찮으신 데 없이 가셨다고, 편히 가시라 편히 가시라 자꾸만 되뇌기도 하였다. 천상병의 말처럼 외할아버지께 이 세상은 아름다운 소풍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그럼에도 예감할 수 있는 마지막 모습과 입관 때 마지막 얼굴을 뵌 게, 그 존재감 상실의 느낌이 자꾸만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고양이 소야곡

from text 2006/09/17 08:05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소규모아카시아밴드(김민홍, 송은지)의 짧은 공연을 보았다. 음악 쪽으로는 확실히 문외한이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고, 2집 '입술이 달빛'에 실었다는 '고양이 소야곡'과 미발표곡 '룰루랄라' 단 두 곡을 들었을 뿐이지만, 반해 버렸다. 한번에 이렇게 뻑 가는 경우는 잘 없는데, 둘이 생긴 것도 참 편안하고 맘에 든다. 고양이 소야곡은 꼭 다시 듣고 싶다.

가을이 깊어가니 겨울은 멀지 않고 살아갈 날도 많지 않으니 또 돌아보고 들여다볼 때가 아니겠는가.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열시 전부터 꼬박 네 시간 반에 걸쳐 사이드바 메뉴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스킨 수정에 성공하였으니. 전에도 몇 번 시도해 보았으나 포기하고 말았던 터.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낮에도 한참 헤매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방명록에만 적용하던 새 글 아이콘 플러그인을 사이드바에도 모두 적용시키고 나도 모르게 소릴 질러 주위를 놀라게 하였는데.

막상 성공하고 보니 수고에 비해 뭐 꼭 필요하지도 않고 그리 예뻐보이지도 않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데 안하는 거랑 하지 못해 못하는 거랑은 차이가 있지, 있고 말고.

그새 많은 공부가 되었다. 태터 가이드를 거의 훑다시피 하고, 태터 기본 스킨 소스를 한글에 복사해두고 이 스킨 소스와 일일이 대조하며 하나하나 적용하고 또 적용해가며 건진 성과이다. 알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이 시간까지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오줌과 담배도 참아가며 버틸 수 있었던 게 용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다 든다. 포기할까 하는 유혹을 마지막 시도에 이겨내었다. 이 좋은 가을밤은 감정의 과잉을 허용하고말고.

썸네일리스트 출력 및 사이드바 랜덤 이미지 출력 플러그인의 성공적 적용에 이은 두번째 숙원 사업의 해결이다. 하나 더 바란다면 블로그 제목 들어가는 난의 글자체나 크기 변경에 관한 건데, 즐기며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짧지만 단 잠을 잘 수 있겠다.

달팽이의 세계

from text 2006/09/14 05:09
냉장고에 넣어둔 지 며칠 지난 포도에서 달팽이(한자어로 蝸牛 또는 山蝸라 부른다니 멋이 담뿍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가 나왔다. 서연이가 하도 좋아하여 포도 가지를 받쳐 임시로 집을 만들어 주었다. 습성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잘 한 번 키워봐야겠다.

거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눈 깜빡할 새 하루를 보내는 우리가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노고지리의 노래도
고래의 가슴도
가늠할 수 없는 그리움이 있다
호흡을 멈추고
합장하며
가만히 응시하노라면 거기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가느다란 촉수의 떨림에 이은 아슬아슬한 곡예가 있다
맨 끝에 매달려
웅크리고 침잠하는 무서움이 있다
후학을 위해
길게 한 줄기 남겨주시는 센스가 있다

니콘 D80 유감

from text 2006/09/06 19:49
니콘에서 D80이 출시되었다. D200 출시 때도 한동안 뻔질나게 SLR클럽을 기웃거리며 지름신과 조우하였지만, 그때는 가격도 가격인데다가 크기나 무게에 있어 나랑 맞지 않다는 명목 하에 빨리 지름신과 헤어질 수 있었던 반면(밴딩 노이즈 핑계도 있었지, 아마. 수준에 과분하다는 적확한 진단도 있었고), D80은 지를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 씩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한동안 드나들지 않던 클럽 신게에 다시 도장을 찍으며, 장터에 들러 D50 시세를 알아보는 게 주요 일과가 되고 있다.

D50을 능가한다는 JPG 화질에 넓은 뷰파인더(!), 더 커진 액정, ISO 100 지원, 기계적 조작 편의성 향상, 그러면서 여전히 작은 크기와 무게,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는 것만 같다.

기어이 사지 않고 버티게 만드는 건 딱 하나, 남들이 보면 별 핑계 다 댄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스트랩 연결 고리가 D200급 이상에 쓰이는 원형에 삼각 고리가 아니라 D50처럼 편평하다는 것, 그것이다. 몇 번만 어깨에 걸고 나다니면 고르고 고른 비싼 스트랩 망가뜨려 놓는 주범이 바로 그 편평하게 고정되어 있는 고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면 조금 더 무겁더라도 마그네슘 합금 바디가 아니라는 점인데, 나는 맹세코 현재의 D80 수준에 삼각 고리 채택해주고 마그네슘 합금으로다가 바디 만들어주면 바로 질러 버리겠다. 케헴. 아니 사실 그냥 플라스틱에다가 삼각 고리만 달아주어도 질러버릴지 모른다. 물론 가격대는 지금 수준 아래에서 동결건조하고 민머리는 조금 다듬어준다면 말이다. 핑계는 내 인생, 나를 지탱케 하는 건 팔할이 핑계, 뭐 그런건, 아, 아니고,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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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일기

from text 2006/08/24 06:55
나는 어젯밤 예수의 아내와 함께 여관잠을 잤다
영등포시장 뒷골목 서울여관 숙박계에
내가 그녀의 주민등록번호를 적어넣었을 때
창 밖에는 가을비가 뿌렸다 생맥주집 이층 서울 교회의
네온사인 십자가가 더 붉게 보였다
낙엽과 사람들이 비에 젖으며 노래를 부르고
길 건너 쓰레기를 태우는 모닥불이 꺼져갔다
김밥 있어요 아저씨 오징어나 땅콩 있어요
가을비에 젖은 소년이 다가와 나에게 김밥을 팔았다
김밥을 먹으며 나는 경원극장에서 본 영화
벤허를 이야기했다 비바람이 치면서
예수가 죽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없이 먹다 남은 김밥을 먹었다
친구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릴 수 없는 나는
아무래도 예수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아 미안했다
어디선가 호르라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곧 차소리가 끊어지고 길은 길이 되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그녀가 벗어논 속치마 위로 기어갔다
가을에도 씨 뿌리는 자가 보고 싶다는
그녀의 마른 젖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불을 껐다
빈 방을 찾는 남녀들의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야윈 어깨가 가을 빗소리에 떨었다
예수는 조루증이 있어요 처음엔 고자인 줄 알았죠
뜨거운 내 손을 밀쳐내며 그녀는 속삭였다
피임을 해야 해요 인생은 짧으나 피임을 해야 해요
나는 여관 종업원을 불러 날이 새기 전에
우리는 피임을 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겠다던 종업원은 돌아오지 않고 귀뚜라미만 울었다
가을비에 떨면서 영등포경찰서로 끌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때
서울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정호승의 시 '가을 日記' 전문.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다 말다 한다. 어제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권장로님과 대화 중 '낙샘더위'라는 말,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지만 느낌이 좋다. 떨어지는 걸 샘내는 더위(이런 걸 보면 한자어는 이제 정말 우리말이랑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낙이 그냥 외로 우리말처럼 보이니 말이다). 삼월 개학처럼 학생들 개학하고 한 열흘은 덥다는 장로님 말씀에 대꾸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