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점심, 예순일곱 번째 아버지 생신 축하연을 집에서 가졌다. 장어덮밥, 연어무쌈말이, 잡채, 약밥, 갈비찜 등속을 장만하느라 0124님은 거지반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마즙과 홍어까지 준비한 줄은 몰랐다. 집에서 담근 석류주를 한잔씩 나누었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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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보뚱보의 첫돌. 음력 생일은 아직 좀 남았으나 바쁠 삼월이 부담스러워 이월 마지막 토요일로 날을 정했다. 그랜드호텔 뷔페 더 키친에서 식구들끼리 점심. 돌잡이 때 나는 돈을 집는 모습만 보았는데, 제 어미 말로는 망치를 집으려 잠깐 기우뚱하는 몸을 바로잡았더니 곧바로 돈을 집어 들었단다. 전날 과음한 숙취가 가시질 않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제 형과 달리 백일도 그렇고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남겨주어 미안하다(돌아와서야 건질 만한 사진은 고사하고 독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한 걸 알았다). 건강하게 잘 자라기를.
Tag // 생일
2010년 2월 17일, 서연이의 유치원 졸업식. 흔한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피아니스트는 돋보였고 나름 흐뭇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기실 녀석의 장래 희망은 프로 바둑 기사이다. 아주 잠깐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때가 있었나 보다. 당연한 얘기지만, 생업이 무엇이든 그 생업이 무엇이냐 보다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할 테다.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아비에게는 부끄러움만 넘친다마는, 나누고 도우며 일생을 제대로 누리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매듭 하나 짓는 날, 아비 혼자 와 혹여 섭섭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내 이름은 이스마엘이다. 몇 해 전인가 내 지갑은 거의 바닥이 나고 또 뭍에서는 무엇 하나 흥미를 느낄 만한 것도 없었으므로, 나는 얼마 동안 배를 타고 나가 넓고 넓은 바다를 한번 살펴보았으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우울한 기분을 털어 버리고 피의 순환을 돕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입가에 험상궂은 주름이 늘 때, 11월의 가랑비처럼 마음속에 축축한 비가 내릴 때, 또 문득 장의사 앞에서 길을 멈추고 길에서 만난 장례 행렬을 뒤쫓게 될 때, 특히 우울한 기분이 나를 지배하게 되어 웬만큼 강한 도덕적 자제 없이는 마구 거리로 뛰어나가 타인이 쓰고 있는 모자를 강제로 벗겨 버리고 싶어질 때, 그런 때면 더욱더 빨리 바다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탄알의 대용물이 되어 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휩쓸어 가는 물결이 어지럽게 엇갈리면서 큰 돛대 위에 마지막 가라앉아 가는 인디언의 머리 위를 덮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다만 곧게 서 있는 둥근 목재 몇 인치와 또 거의 같은 높이로 아슬아슬하게 밀려온 무서운 파도에 박자를 맞추며 얄궂게 나부끼던 기다란 깃발뿐이었다. 그 순간, 붉은 빛 팔과 뒤로 들어 올린 망치가 공중으로 밀려 올라오면서 그 깃발을 서서히 가라앉으려는 그 둥근 목재에 더욱 단단히 못 박아 놓으려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매가 별 사이의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큰 돛대 꼭대기로 다가오더니 비웃듯이 깃발을 부리로 쪼아 보기도 하며 태쉬테고를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 새가 어쩌다가 그 커다란 날개를 망치와 목재 사이에 끼워 넣자, 금세 물속의 야만인이 죽음의 숨결을 헐떡이며 그 망치를 거기에 내려치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늘 위의 새는 대천사 같은 소리를 지르며 왕자다운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그 사로잡힌 몸은 에이허브의 깃발에 싸여 그의 배의 길동무가 되어 가라앉아 갔다. 이때 작은 해조의 무리가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 위를 소리 높이 울어 대며 날고 있었다. 깊고 깊은 물가의 험한 측면에서는 슬픈 듯 흰 파도가 굽이쳐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무너졌고, 바다의 커다란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굽이치고 있었다.
허먼 멜빌의 백경(현영민 옮김, 신원문화사) 1장 어렴풋이 보이다의 첫 문단과 135장 추적, 제3일의 결말 마지막 문단. 장엄한 세계, 그 허망한 종말이 수많은 잠언들 속에 끊임없이 명멸한다. 불멸에 대한 필멸하는 욕망들의 처연한 서사시.
마지막으로 휩쓸어 가는 물결이 어지럽게 엇갈리면서 큰 돛대 위에 마지막 가라앉아 가는 인디언의 머리 위를 덮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곤 다만 곧게 서 있는 둥근 목재 몇 인치와 또 거의 같은 높이로 아슬아슬하게 밀려온 무서운 파도에 박자를 맞추며 얄궂게 나부끼던 기다란 깃발뿐이었다. 그 순간, 붉은 빛 팔과 뒤로 들어 올린 망치가 공중으로 밀려 올라오면서 그 깃발을 서서히 가라앉으려는 그 둥근 목재에 더욱 단단히 못 박아 놓으려 하고 있었다. 한 마리의 매가 별 사이의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내려와 큰 돛대 꼭대기로 다가오더니 비웃듯이 깃발을 부리로 쪼아 보기도 하며 태쉬테고를 방해하고 있었는데, 그 새가 어쩌다가 그 커다란 날개를 망치와 목재 사이에 끼워 넣자, 금세 물속의 야만인이 죽음의 숨결을 헐떡이며 그 망치를 거기에 내려치다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늘 위의 새는 대천사 같은 소리를 지르며 왕자다운 부리를 하늘로 쳐들고, 그 사로잡힌 몸은 에이허브의 깃발에 싸여 그의 배의 길동무가 되어 가라앉아 갔다. 이때 작은 해조의 무리가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심연 위를 소리 높이 울어 대며 날고 있었다. 깊고 깊은 물가의 험한 측면에서는 슬픈 듯 흰 파도가 굽이쳐 부딪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은 무너졌고, 바다의 커다란 수의는 5천 년 전에 굽이치던 것과 마찬가지로 굽이치고 있었다.
허먼 멜빌의 백경(현영민 옮김, 신원문화사) 1장 어렴풋이 보이다의 첫 문단과 135장 추적, 제3일의 결말 마지막 문단. 장엄한 세계, 그 허망한 종말이 수많은 잠언들 속에 끊임없이 명멸한다. 불멸에 대한 필멸하는 욕망들의 처연한 서사시.
Tag // 백경
어린이집에서의 첫 재롱 잔치와 두 번째 재롱 잔치 그리고 지난해 유치원 발표회에 이은 취학 전 마지막 발표회. 커가는 걸까, 사진 속 녀석의 얼굴은 갈수록 지치고 무표정해 보인다. 녀석에게도 나름의 병리학 하나쯤 들어설 때면 나는 어떤 모양으로 늙어 있을까. 화병에 옮겨 거실 한 귀퉁이에 놓아둔 연분홍 튤립이 밤새 화사하다. 기울었던 종 모양들이 일제히 천장을 향하고 있다. 나무들의 동태를 보니 바깥에서는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다. 76개월, 관계와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은 녀석에게도 세상에게도 깊은 평화를.
Tag // 유치원발표회
새해 첫날, 낮잠 자는 사이 0124님이 찍은 314일째 되던 날의 율짱. 바로 다음 놀다 넘어져 오른쪽 눈가가 찢어지는 바람에 벌써부터 큼지막한 생채기 하나 달았다. 녀석, 며칠 전부터는 서투나마 도리질을 시작하였으며 오늘은 제 스스로 처음 두 발짝을 떼기도 하였다.
* 주경철의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얼핏 예상한 방식의 글쓰기는 아니었으나 꽤 좋았다. 이솝 우화집과 아가멤논으로부터 데카메론, 주신구라, 보물섬 등을 거쳐 파리대왕과 허삼관 매혈기에 이르기까지, 마치 그 책들을 다 읽은 것처럼 인간사와 세상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연대기로써의 역사가 아닌 풍속과 문화, 특히 잔혹사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보는 것은 때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무슨 일에서나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에 앞서 두려움을 먼저 배우는 못난 심성 탓일 게다. 이전투구의 역사, 미련 많은 놈이 결국 인간을 믿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할 게고.
* 주경철의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는 얼핏 예상한 방식의 글쓰기는 아니었으나 꽤 좋았다. 이솝 우화집과 아가멤논으로부터 데카메론, 주신구라, 보물섬 등을 거쳐 파리대왕과 허삼관 매혈기에 이르기까지, 마치 그 책들을 다 읽은 것처럼 인간사와 세상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었다. 연대기로써의 역사가 아닌 풍속과 문화, 특히 잔혹사에 대한 세세한 묘사를 보는 것은 때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무슨 일에서나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에 앞서 두려움을 먼저 배우는 못난 심성 탓일 게다. 이전투구의 역사, 미련 많은 놈이 결국 인간을 믿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할 게고.
이사하고 한 달 만에 처음 사진기를 들어보았다. M6에 필름을 넣어둔 지는 반년이 훌쩍 넘었다. 낮잠 속으로는 싯누런 물고기가 귓전을 날아다녔다. 날카로운 미늘은 내 목 어딘가도 묻힌 듯 하였다. 까무룩 그때 그 잠 속으로 떨어지고만 싶었다. 그까짓 것 꾸욱 삼킨 채로 같이 날아오르고만 싶었다.
공이치기가 공이를 때리는 순간, 몹시도 엄숙한 그 무엇이 가슴을 스치면서 긴지는 삶과 죽음의 유사와 일치를 본다. 자신은 항상 저승을 바라보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다. 그곳을 향해 자진하여 온몸과 온 영혼을 맡기려고 하는 순수한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긴지는 경악한다.
이 녀석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현세에 존재하는 데 대한 망설임이 깊구나. 지나친 감수성에 휘둘려 본능의 노리갯감이 되고 있구나.
긴지는 애용하던 무기를 죽은 노인에게 인심 썼다. 만일 하늘의 처벌에 굴복하고 싶지 않거든 그걸로 한 방 먹여주시라. 아니면 저 세상에서도 허무하기만 하거든 그걸로 다시 한번 죽으시라. 총알은 아직 충분하다. 두 사람 분은 충분히 되니까 이번에는 부부가 나란히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지개란 이윽고 없어지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빛의 띠가 찬연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는 데 무지개의 참된 가치가 있다. 하늘 높이 걸려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보는 이들은 선명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에서 몇 대목. 꽤나 오랜 시간 힘들게 읽었다.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가, 물론 잘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원문에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충실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고쳐 생각하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과 같은 번역자였다. '금각사'와 달리 그 책도 꽤나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난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마루야마 겐지는 역시 집요하고 무서운 정신의 소유자란 생각을 하였다. 어쨌든, 백주 대낮의 긴지, 마코토, 하나코, 조각룡, 가면, 저승사자, 바다거북, 검은지빠귀, 그리고 울새와 큰유리새, 같으면서 다르고 하나이면서 여럿인 이들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봄 병풍까지 읽고 놔둔 '달에 울다'는 좀 쉬었다 읽어야 할 듯.
*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세대가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남자인 나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여자가 여자인 어머니로부터 또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어내리는 질긴 이야기들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마초스러움과 억지, 배타적 욕망들은 잘 배워왔겠지만 말이다. 여성성의 긍정적인 대목들을 마주하다 보면 때로는 그 부정적인 대목들을 깡그리 잊고 그 세계에 살고만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가련한 일이다.
* 첫 이발 후 동자승 같은 율짱. 뒤통수도 예쁘다. 아비나 형이 갖고 있는 제비초리도 없고 그처럼 깎아지른 절벽도 아니다.
이 녀석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현세에 존재하는 데 대한 망설임이 깊구나. 지나친 감수성에 휘둘려 본능의 노리갯감이 되고 있구나.
긴지는 애용하던 무기를 죽은 노인에게 인심 썼다. 만일 하늘의 처벌에 굴복하고 싶지 않거든 그걸로 한 방 먹여주시라. 아니면 저 세상에서도 허무하기만 하거든 그걸로 다시 한번 죽으시라. 총알은 아직 충분하다. 두 사람 분은 충분히 되니까 이번에는 부부가 나란히 목숨을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지개란 이윽고 없어지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빛의 띠가 찬연할수록 더 빨리 사라진다는 데 무지개의 참된 가치가 있다. 하늘 높이 걸려 있는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보는 이들은 선명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루야마 겐지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에서 몇 대목. 꽤나 오랜 시간 힘들게 읽었다.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가, 물론 잘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원문에 (어쩌면 지나칠 정도로)충실한 번역이 아니었을까 고쳐 생각하였다.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과 같은 번역자였다. '금각사'와 달리 그 책도 꽤나 재미없게 읽은 기억이 난다.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였고, 마루야마 겐지는 역시 집요하고 무서운 정신의 소유자란 생각을 하였다. 어쨌든, 백주 대낮의 긴지, 마코토, 하나코, 조각룡, 가면, 저승사자, 바다거북, 검은지빠귀, 그리고 울새와 큰유리새, 같으면서 다르고 하나이면서 여럿인 이들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봄 병풍까지 읽고 놔둔 '달에 울다'는 좀 쉬었다 읽어야 할 듯.
*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까지 대부분 세대가 그럴 거라 생각하지만, 남자인 나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도 알 수도 없었다. 여자가 여자인 어머니로부터 또는 시어머니로부터 이어내리는 질긴 이야기들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대신 사회나 집단으로부터 마초스러움과 억지, 배타적 욕망들은 잘 배워왔겠지만 말이다. 여성성의 긍정적인 대목들을 마주하다 보면 때로는 그 부정적인 대목들을 깡그리 잊고 그 세계에 살고만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한다. 가련한 일이다.
* 첫 이발 후 동자승 같은 율짱. 뒤통수도 예쁘다. 아비나 형이 갖고 있는 제비초리도 없고 그처럼 깎아지른 절벽도 아니다.
183일째. 거의 배밀이 없이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두 손 두 발로 버티기(엎드려뻗치기)를 여러 날 하더니 곧잘 기어 다닌다. 간밤엔 다들 잠든 사이 혼자 아빠, 아빠를 애타게 부르며 제 형과 내가 자는 방을 향해 거실 절반을 가로질러 오기도 하였다(각방자리 육 개월이 넘으니 겪는 재미인지도). 새 책장과 좌탁 구입 기념 겸.
어제, 그제 진주로 해서 남해에 다녀왔다. 15년쯤 전 남해 여행의 마지막 날 코스를 고스란히 거꾸로 되짚는 것처럼. 다만 그때는 창선삼천포대교와 어지러운 펜션들이 없었고 관광산업에 목숨을 걸었거나 돈에 미친 사람들이 적었다. 어쨌든 모처럼 일상을 벗어난 홀가분함에다 줄곧 따라다닌 비까지,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탄 일행들과 무관하게 새록새록 살아나는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촉석루, 남강장어, 창선삼천포대교, 남해스포츠파크호텔, 부성횟집, 남해별곡식당, 남해대교, 그리고 도둑게와 갯강구떼.
없는 동안 세 모자가 찍은 사진들이 예쁘다. 아비는 세 살 터울 남자 형제로 자라며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곱게 정 나누고 연대하기를 바란다.
없는 동안 세 모자가 찍은 사진들이 예쁘다. 아비는 세 살 터울 남자 형제로 자라며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곱게 정 나누고 연대하기를 바란다.
141일째. 한창 뒤집고 가끔 배밀이를 시도하며 곧잘 사람을 응시하곤 한다. 백만 불짜리 미소와 가늠할 길 없는 포커페이스를 갖고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부터 처음 주도를 단련하는 놈처럼 마셔대던 와중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게 만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풍만한 유머와 거침없는 품격, 끊임없이 출현하는 술과 담배, 독립적인 인격들과 그만한 쓸쓸함이 넘치는 매혹적인 세계였다. 작가의 이름이 생판 낯설진 않다 했더니 책꽂이 한쪽 구석에 초기작 거대한 잠(The Big Sleep)이 있었다. 책 뒷날개의 메모를 보고 기억을 더듬으니 93년 12월 친기즈 아이뜨마또프의 백년보다 긴 하루와 함께 그 옛날 술친구에게 받은 책이다. 어렴풋한 기억에 이들이 바로 서점에서 그냥 들고 나온 책들인지도 모르겠다. 들어본 적 없는 출판사의 문고판에다 간략한 역자 소개조차 없어 번역 문제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감흥 없이 읽고 그대로 그 소감을 전한 기억이 난다. 젠장, 이놈의 정신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뒤처지고 하잘것없기는 매한가진 모양이다. 어쨌든, 이런 유머를 보라.
그는 풀러사(옮긴이에 따르면 유명한 옷솔 회사란다) 직원이 관심을 보일만한 눈썹을 치켜떴다. / 빅터의 바는 너무나 조용해서 문 안에 들어설 때 기온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 분홍빛 머리의 참새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단지 참새만이 쪼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쪼고 있었다. / 염소수염을 달고 있는 남자는 나를 살짝 쳐다보더니 그보다도 더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그 말고는 미동도 없었다. 더 나은 일을 위해서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모양이었다. / 그는 짧은 빨강 머리에 무너진 허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부인이 희미하고 덧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자 거의 침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문장들도 즐비하다. 53년 작품이다.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 세상의 모든 조용한 바에는 그렇게 슬픈 남자가 한 명씩은 있다. / 그때까지 여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대부분 알았을 겁니다. 대부분이라고 해야겠죠. 여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 날개가 너덜너덜해진 벌 한 마리가 나무 창문턱을 기어 다니며 피곤한 듯 가냘픈 소리로 윙윙거렸다. 이제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없으며, 자기는 끝장났고, 너무나 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다시는 벌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 여자가 단지 어린 소녀였던 때도 한 번은 있죠. / 술꾼들은 교육이 안 돼, 친구. 그 사람들은 무너져버렸거든. / 기계에 사로잡힌 우리 시대의 인간은 전화를 사랑하고 혐오하고 두려워한다. /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갔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 나를 사랑하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거지. / 그렇지만 그때부터는 뭔가 사라지게 된다.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드는 강철 같은 정신의 1센티미터가. / 범죄는 질병이 아니에요. 단지 증상이지. /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내가 여자기 때문이고 여자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풀러사(옮긴이에 따르면 유명한 옷솔 회사란다) 직원이 관심을 보일만한 눈썹을 치켜떴다. / 빅터의 바는 너무나 조용해서 문 안에 들어설 때 기온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지경이었다. / 분홍빛 머리의 참새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단지 참새만이 쪼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쪼고 있었다. / 염소수염을 달고 있는 남자는 나를 살짝 쳐다보더니 그보다도 더 살짝 고개를 까딱했다. 그 말고는 미동도 없었다. 더 나은 일을 위해서 에너지를 비축해두는 모양이었다. / 그는 짧은 빨강 머리에 무너진 허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부인이 희미하고 덧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자 거의 침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문장들도 즐비하다. 53년 작품이다.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 / 세상의 모든 조용한 바에는 그렇게 슬픈 남자가 한 명씩은 있다. / 그때까지 여자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은 대부분 알았을 겁니다. 대부분이라고 해야겠죠. 여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 날개가 너덜너덜해진 벌 한 마리가 나무 창문턱을 기어 다니며 피곤한 듯 가냘픈 소리로 윙윙거렸다. 이제 그래봤자 아무런 소용없으며, 자기는 끝장났고, 너무나 많은 임무를 수행했지만 다시는 벌집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는 듯했다. / 여자가 단지 어린 소녀였던 때도 한 번은 있죠. / 술꾼들은 교육이 안 돼, 친구. 그 사람들은 무너져버렸거든. / 기계에 사로잡힌 우리 시대의 인간은 전화를 사랑하고 혐오하고 두려워한다. /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갔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 나를 사랑하는 것의 가장 좋은 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거지. / 그렇지만 그때부터는 뭔가 사라지게 된다. 모든 것을 다르게 만드는 강철 같은 정신의 1센티미터가. / 범죄는 질병이 아니에요. 단지 증상이지. /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내가 여자기 때문이고 여자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이유를 모른다고 말하지는 마세요. / 이별을 말하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이 부르는 떠나가는 배, 지금도 마로니에는, 달맞이꽃을 소리 높여 듣다 보면 소리 높여 따라 울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며칠, 난데없는 소나기가 반가워 한 시절 그렇게 또 견디기도 한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1년에 한 장만 건질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후대의 사진가들은 브레송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다. 1년에 한 장은 어림도 없다."
곽윤섭의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중에서. 그럴 리야, 그렇게 엄밀하고 까다로웠다면 그 이름들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이 도시의 동쪽 끄트머리에 이만한 번화가가 있다니 낯설고 여전히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제와 오래 사귄 남자 친구(최근 안정된 일자리를 구했다.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보낸 문자에 처제는 무엇보다 남자 친구가 이제 당당해질 수 있어 좋다고 답했다. 별스레 가슴 한 편이 아렸다)가 찾아와 모처럼 사진기를 들고 나선 일요일 나들이.
"마음에 드는 사진을 1년에 한 장만 건질 수 있다면 나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후대의 사진가들은 브레송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했다. "대단히 낙관적인 견해다. 1년에 한 장은 어림도 없다."
곽윤섭의 '내 사진에 힘을 주는 101가지' 중에서. 그럴 리야, 그렇게 엄밀하고 까다로웠다면 그 이름들은 지금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아무렴.
이 도시의 동쪽 끄트머리에 이만한 번화가가 있다니 낯설고 여전히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제와 오래 사귄 남자 친구(최근 안정된 일자리를 구했다.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보낸 문자에 처제는 무엇보다 남자 친구가 이제 당당해질 수 있어 좋다고 답했다. 별스레 가슴 한 편이 아렸다)가 찾아와 모처럼 사진기를 들고 나선 일요일 나들이.
Tag // 더블럭
서율 구십구일 되는 날, 백일 사진을 대신하여.
Tag // 백일
월요일 아침은 유독 더 분주하다. 아침 미팅으로 일주일에 하루 0124님이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하기 때문이다. 출산휴가 끝나고 두 번째 월요일, 요즘 율이를 봐주시는 어머니께서 일찍 데리러 오셔서 0124님과 나가고 나서였다. 오늘따라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마친 녀석을 두고 샤워를 하고 나오다가 잠깐 놀랐다. 아침에는 한동안 그런 일이 없었는데 혼자 바둑 한 판을 다 두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옷을 입고 어제 생각으로 애잔한 마음에 살짝 뒤에서 보자니 계가에는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 곳곳에 흩어지고 열 집 단위로 잘 구획되지 않는 집들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도와달란 말에 같이 계산을 해보니 백이 반상으로 두 집을 이긴 바둑이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기분이 되고 말았는데, 어제 본선에서 녀석이 흑으로 딱 두 집을(덤까지 여덟 집 반을) 졌던 때문이다. 내용이야 달랐지만 우연치고는 참, 애잔한 마음에 더해 무언가 울컥하는 게 있어 출근길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이 갔다.
* 오후에 잠시 어제 대회를 검색하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유치부 우승과 준우승자의 이름이었는데 준우승자는 어제 예선에서, 우승자는 본선에서 서연이와 맞붙은 아이들이었다. 검색 결과를 통해 좀더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은 지난 10일 열린 제15회 구미시장배 대회에서 준우승자는 우승을, 우승자는 공동 3위를 차지한 나름 실력파들이기도 했다.
* 월요일은 0124님 야근하는 날인데다 나도 일이 늦어 온 식구가 늦게 들어왔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바둑판이 그대로 있었다. 다시 계가하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어째 신통방통하여 사진 한 장 올려둔다.
* 오후에 잠시 어제 대회를 검색하다가 낯익은 이름을 보았다. 유치부 우승과 준우승자의 이름이었는데 준우승자는 어제 예선에서, 우승자는 본선에서 서연이와 맞붙은 아이들이었다. 검색 결과를 통해 좀더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은 지난 10일 열린 제15회 구미시장배 대회에서 준우승자는 우승을, 우승자는 공동 3위를 차지한 나름 실력파들이기도 했다.
* 월요일은 0124님 야근하는 날인데다 나도 일이 늦어 온 식구가 늦게 들어왔더니 다음날 아침까지 바둑판이 그대로 있었다. 다시 계가하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어째 신통방통하여 사진 한 장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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