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406건

  1. 아, 이 기분이란 2006/08/05
  2. 반란하는 일상 3 2006/08/03
  3. 거제, 괴물 2006/07/29
  4. 우리글 바로쓰기 2006/07/18
  5. 뭐랄까 2006/07/18
  6. I've seen it all 2006/07/17
  7. 스킨과 플러그인 2006/07/16
  8. 한겨레결체 2006/07/16
  9. 책 주문하다 2006/07/12
  10. 그 입장에서 2006/07/11
  11. 샐러리는 어디에 찍어 먹는 거지?! 2006/07/06
  12. 그 이익 앞에 2006/07/03
  13. 포항 죽장 하옥 1 2006/07/02
  14. 행복한 책읽기 2006/06/30
  15. 개구리 이야기 2006/06/25
  16. 추천할 만한 것?! 2006/06/20

아, 이 기분이란

from text 2006/08/05 07:23
온종일 주물럭거리다 J.Parker님의 블로그에서 받은 썸네일 리스트 출력 및 사이드바 랜덤 이미지 출력 플러그인을 설치하였다. 돌이켜보니 뭐 더 친절할 수 없는 설명과 댓글에 이어진 문답들이었는데, 백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이해하고 설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플러그인을 고르는 중요한 기준점이 그 유용성이나 깔끔함 못지않게 설치의 간편함이다. 안 그래도 설치하기 쉬운 플러그인들만 설치하고 이 플러그인에 대해서는 부러 피하고 있었던 터이다).

특히 어려웠던 대목들.. 제어값을 설정한다는 config.php 파일을 도대체 어떻게 열어서 수정한다는 말일까. 블로그설치URL/blog/category/index.php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이드바용 치환자는 어디에 넣어야 내가 원하는 곳에 나오는 거지?

차례로 하나하나 알고 적용하였을 때의 희열감이 끼욱끼욱 산에 올라 드디어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세 봉우리는 오른 기분이 아닐 수 없다. 이 기분을 이렇게나마 아니 남길 수가 없다.
Tag //

반란하는 일상

from text 2006/08/03 09:20
내가 반란이라 여기는 그것, 그것이 그녀에게는 일상이다. 반란의 날이 일상화될 때, 그것이 삶이 될 때, 그 반란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일상화되지 않은 나의 반란에 나는 치를 떤다. 그것이 내 삶을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수단이 되어주기는커녕 내 평화로운 일상을 깨는 무기가 되어 일상의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울 때, 그래서 그것이 내 저 의식의 심저를 날선 칼이 되어 찌를 때, 나는 절망한다.

공선옥의 소설 우리 생애의 꽃('피어라 수선화' 1994. 창작과비평사) 중에서, 연습 삼아 시험 삼아, 일상을 무기 삼아..


Tistory 소식 보다가, 링크에 무지개 효과를 주는 플러그인을 JustKidding님의 블로그에서, 각주 다는 플러그인(처음 만든 분은 Gofeel님이라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을 dizzle님의 블로그에서 받아 설정하였다.

저녁에 추가로 태터툴즈 홈의 플러그인 다운로드에서 Daybreaker님의 링크 새 창으로 열기 플러그인을 받아 적용한다.

거제, 괴물

from text 2006/07/29 12:14
한 모임에서 27~28일 이틀간 거제엘 다녀왔다. 고성 공룡나라휴게소, 녹차 음식, 한산도 제승당, 달아공원, 여차해수욕장, 능성어와 돔, 노래방, 해물된장찌개, 삼천포대교, 연어튀김과 참게탕, 파이어월과 음란서생, 비오는 섬진강이 기억에 남는다. 차 탄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역시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분명하다)에 시달렸다. 저녁에는 또 다른 모임에서 식구들이랑 ‘괴물’을 보고, 마달네랑 형석이네랑 뉴욕뉴욕에서 간단한 식사와 호프.

괴물은 봉준호라는 이름과 몇몇 스틸에서 연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였다. 그래서 기대와 달랐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를 연상시키는 몇몇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다시 보는 후일담이랄까. 괜히 상념에 젖기도 하였는데, 호불호를 드러내지 않고 이미지만 차용한 듯한 방식이 오히려 새롭게 다가왔다.

우리글 바로쓰기

from text 2006/07/18 16:00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였는데, 우리글 바로쓰기 2권 뒤표지에 다음과 같이 써 있다. 눈에 확 띄는 이 '입장'

우리 지식인들은 분단 반 세기 동안 '입장'이란 일본말 하나도 바로잡아 쓰지 못했고, 아직도 바로잡을 생각조차 안하면서 끊임없이 병든 말을 퍼뜨리고 우리 말을 죽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방방곡곡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병든 글에서 벗어나 말로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우리들 편임을 산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연휴 때 들춰본 고종석의 '감염된 언어'에서 이오덕에 대해 언급한 부분도 보았지만(이오덕은 민족의 언어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를 강조한다. 글말에까지 구어체를 강요하는 것은 우리말의 문체를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문제의식은 충분히 의미 있고 올바른 것으로 보지만, 결국 자신의 언어를 선택할 때는 어떡할 것인가. 문제의식을 유지하고 전제하되 이오덕에게 나아가면 어떨까.

뭐랄까

from text 2006/07/18 01:28
술을 잔뜩 먹고 들어가 김동건과 김지하가 마주 앉아 뭔가 이야기 나누는 걸 보았다. 무슨 심사가 뒤틀렸는지 냅다 감정대로 싸지르고는 아침에 이렇게 다 지우고 올린 시만 남긴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뭔가 이렇게 슬프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Tag // ,

I've seen it all

from text 2006/07/17 16:35
볼 때는 재미있게 보고 첫 손 꼽을 만큼 잘 만든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다시 보게 되지 않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파이란, 박하사탕, 올드보이 같은 영화들이다. '비극(적)'이어서일까, 어쩌다 채널 서핑 중 방영하는 걸 보게 되면 한참 고정하고 보게 되지만(끝까지 보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사다 놓은 디브이디 타이틀도 다시 보게 되지 않는다.

라스 폰 트리에의 어둠 속의 댄서도 그랬다. 디브이디 타이틀을 사서 보았는데, 그래도 구입한 디브이디 타이틀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경우일 것이다. 웬만한 시디보다 자주 재생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지만, 영화음악 골라 듣듯이 한 챕터(열세번째 챕터!)만 계속 반복하여 보고 듣곤 한다. 오늘도 연휴 마지막 날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보다가 문득 떠올라 오랜만에 디브이디 전원을 켜고 이 챕터만 반복하여 보고 들었다. 노랫말과 주인공 비요크가 직접 부른 그 애절한 노래, 그리고 그 영상(어떻게 이런 편집을 할 수 있었을까)에 푹 빠져서. 이 놈의 음치는 영상 없이는 음악이 들리지 않으니 더욱 그럴밖에.

I've seen it all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보면 이 챕터도 사실 꽤나 비극적인데, 어째 자꾸만 보고 싶은 걸까. 같이 등장하는 피터 스토메어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영화 중 하나.

스킨과 플러그인

from text 2006/07/16 16:39
이 블로그에 적용한 스킨과 플러그인에 대하여 정리해 두는 게 좋겠다. 따로 고마운 마음을 드러낼 길도 없고.

처음부터 딱 맘에 들어 적용한 스킨은 deadlink님의 블로그에서, 그리고 대문이미지를 랜덤으로 보여주는 플러그인은 eguus님 블로그에서, 방명록 새글 아이콘 표시 플러그인은 zippy님 블로그에서, 로봇 방문 횟수 제외 플러그인과 리퍼러 로그 정리 플러그인은 crizin님의 블로그에서 받아 적용하였다.

하나하나 알아가며 써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런 분들이나 태터툴즈를 함께 만들어가는 분들의 정성과 능력을 보면 참 놀랍고 고맙다.

한겨레결체

from text 2006/07/16 16:21
한겨레결체를 알고부터 업무용 문서(굴림체를 주로 쓴다)를 제외한 일반문서를 작성할 때 이 글자체를 주로 쓴다. 10포인트 이하에서 모양이 좀 덜 나고 장평이 좀 넓은 감이 있지만, 눈에 익고 나니 정도 들고 좋다.

이 블로그의 본문 글도 이 글자체로 따로 작업하여 올린다.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태터툴즈는 한글 글자체 부분이 약한 듯. 아래한글에서 작업한 문서를 붙여넣기하면 글자체가 고정되어 바로 입력하였을 때와 다른 글자체가 되어버린다.

관련기사내려받기를 링크해 둔다.

책 주문하다

from text 2006/07/12 15:58
적어놓은 책 목록을 살펴보고, 교보문고에서 에테엔느 트로크메의 '초기 기독교의 형성'과 박민규의 '카스테라', 피터 싱어의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강유원의 '몸으로 하는 공부'를 주문하였다. 인터파크에서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세 권과 함께.

베른하르트의 '옛거장들'과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는 파는 델 못 찾겠다. 못 찾으니 더 사고 싶다만.

윤구병의 책은 직접 보지 않고는 딱히 어떤 걸 집질 못하겠다.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살피다가 한 리뷰에서 '입장'이란 말은 '처지'나 '태도'로 바꿔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어제 쓴 글 전체를 도배하고 있는 말이 '입장'인데.. 곰곰 생각해보니 태도는 몰라도 처지로 바꾸는 건 괜찮을 것 같다. 그래도 미묘한 어감 차이가 걸리긴 하지만. (처지도 한자어인데, 입장이 일본식 한자어라서 그런가)
Tag // , ,

그 입장에서

from text 2006/07/11 08:55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가축, 그 짐승의 입장에서. 그 풀이나 그 나무의 입장에서. 자연의 입장에서. 지구(엘니뇨니 해수면 상승이니 뭐 그런 게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뭐 자기정화 작용 정도 아니겠느냐는 요지의 글을 어디서 봤더라)의 입장에서. 또는 우주의 입장이나 이른바 신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
Tag // ,
이런, 제기, 상대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 게 뭔 의사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뭘 가르친다는 게냐.

더랍고 질긴 노예근성과 그것의 전복적 형태, 그 다양한 변주들.

목구멍이 정말 포도청일까.
Tag //

그 이익 앞에

from text 2006/07/03 21:20
짧은 술자리였지만, 자기 계급의 이익도 지키지 못하는 놈들에 대해 신랄하게 욕하였다. 무슨 스트레스 해소라도 하듯 주절거렸다. 돌아오는 길, '장로'님 앞에서. '계급'이란 말도 '이익'이란 말도 하지 않고 쌍욕도 없었지만.

근데, 나는 비유로 들었던 것보다 더 작은 것에서도 얼마나 주춤거리며, 당당하지 못하였던가(못한가). 기껏 아무도 모르는 선거 때나 비밀 요원처럼 그 이익을 행사하고는.
Tag //

포항 죽장 하옥

from text 2006/07/02 13:30
포항 죽장 하옥엘 갔다 왔다. 어제, 자발적이지도 비자발적이지도 않은 모임에서. 말 그대로 깊은 산골 오지에 온 듯, 두 시간 정도 거리에(경상도에) 이런 비포장길과 이런 풍광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비가 산의 분위기를 더 살린 탓도 있겠지만, 자리를 같이 한 연변대학교의 한 교수는 장가계나 계림 갈 필요 없겠다 할 정도였으니.

하옥산장이란 곳에서 오리구이와 돼지바비큐에 코냑, 소주, 맥주를 섞어 마시고, 대구에서 이차로 맥주를 잔뜩 먹었더니 머리가 흔들리고 무겁다. 지난 번 금주를 깨고 술을 마시고부터는 한 주에 한번 꼴로 마시는 것 같다. 다소 양호해졌지만, 힘겹긴 매 한가지이다. 단수를 건너뛰기는 정녕 힘든 일인가.

김규항의 블로그에 트랙백 단 후 방문객들이 늘었다. 아니 방문객도 생겼다고 해야 하나. 느낌이 묘하다. 대문 사진을 디기가 찍어준 얼굴에서 국화꽃으로 바꿨다.
Tag // , ,

행복한 책읽기

from text 2006/06/30 14:18
김규항의 블로그에 갔다가 '행복한 책읽기'를 보았다. 그 도저한 상상력과 예민한 촉수에 흔들리던 날들이 떠오른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 권성우의 '비평의 매혹'과 함께 한참 푹 빠져서 읽은 기억이 난다. 누군가 행복한 책읽기는 책 읽기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꼭 등산 예찬론(등산 길잡이?) 같다고 이야기한 걸 나중에 본 일이 있지만, 참 그랬다. 지금도 한번씩 등산이 하고 싶거나, 등산을 꾸준히 해볼까 나름 심각하게 고민할 때쯤이면 이 책이 떠오른다.

김현이 갔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소롭게도 그럼 이제 나의 시는 누가 읽어주나 뇌까리고 있었다. 태맹이형에게서 김현 읽어봤나 라는 말을 들은 이후 김현의 글들을 찾아 읽으며 그 세계로 점점 빠져들던 기억이 새롭다. 그 때문에 그가 가고 난 후 목포에도 가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권성우의 비평의 매혹을, 아니 권성우를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책의 한 단락을 이루는 글의 첫머리, '그날이 오면이라는 노래를 목놓아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찾아보니 한 글자 안 틀리네)는 대목이다. 그 책을 읽으며 새로운 세대를 대표하는 평론가가 될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예전에 행복한 책읽기에서 메모해 놓은 글들.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위대한 선동가는 그것을 이용하여 우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이 축제로 변할 수 있을 때 혁명은 완성된다

마르크시즘은 철학적 개념의 히말라야 산맥이지만, 히말라야에서 뛰어노는 꼬마 토끼가 계곡의 코끼리보다 더 크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 루카치 '체험된 사유 말해진 기억'

시는 시로 읽어야 한다. 그의 시는 그의 시의 구체성 속에서 이해되어야지 그것을 낳은 논리 속에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진보주의자인 척할 때는, 사소한 것에 과격해지고, 본질적인 것에는 무관심해진다 - 김치수

남들이 다 병들어 있으면, 아프지 않더라도, 아프지 않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젊은 사람이 할 만한 일이 있다면 사랑과 혁명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도피이며 혁명은 좌절이다 - 김현 '사회와 윤리'

개구리 이야기

from text 2006/06/25 00:17
개구리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폴짝 폴짝' 잘 뛰었습니다.
어떠한 위험이 닥쳐도 '폴짝' 피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 불행인지 다행인지 개구리는 커다란 뱀에게 먹히고 말았습니다.
개구리는 몸을 삭여가며 긴 여행을 해야 했습니다.

팔이 하나쯤 없어질 때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득 빛을 찾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았습니다.

개구리는 희망을 갖고 이리 저리 살펴 보았습니다.
아, 저만치 앞에서 빛이 나는 것이었습니다.
개구리는 힘껏 뛰어뛰어 그 곳에 갔습니다 - 벌써 몸의 반은 삭아 없어졌습니다.
그것은, 빛이 나는 그것은 동료의 뼈였습니다.
개구리는 모든 희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개구리는 생각했습니다.
'이 동료는 여기까지 와서 죽었다.'
'나는 반이나 산채로 여기까지 왔다.'
'몸이 다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지 않았던가.'
그리고 개구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개구리는 힘을 내어 다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동료 개구리들을 보았습니다.
앉은 채로 몸을 삭이는 개구리…….
결국은 나갈 수 없다고 외치는 개구리…….
힘을 낭비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살자는 개구리…….
우리의 개구리는 어느 개구리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뱀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고, 동료 개구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개구리는 전혀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빛.
나아갈수록 개구리는 자신과 빛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멀리까지 와서야 개구리는 자신의 몸이 다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빛조차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아니 언제까지나 빛은 자신과 같이 존재한다는 것을…….


고등학교 이학년 겨울, 교지에 시라고 준 것이 쉬어가는 페이지에 실렸다. 독서토론회(하야로비)를 맡고 있어 청탁으로 쓴 글인데,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인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쓴 글 두 편 중 하나. 하나는 어딜 가고 없다.

제목은 개구리 이야기. 후에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세 학교 연합독서토론회(날개)를 만들었는데, 다른 학교 후배들로부터 개구리 선배로 불리는 계기가 되기도. ~읍니다를 ~습니다로 수정.

지금도 데미안이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 따위에 실리는 걸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이 작자들이 읽기나 하고 이런 짓거린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독서란 게 원체 읽는 놈(의 처지나 환경, 기반, 상태 등등) 마다 다르고, 같은 놈이 읽어도 읽을 때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그리고 괜찮은 책 치고 위험하지 않은 책이 어디에 있겠냐마는, 대상에 따라 정도는 가려야 할 게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때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하나. 神이 인간에 준 가장 큰 축복은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는 것이다.

추천할 만한 것?!

from text 2006/06/20 18:59
2001년 7월 13일, 머꼬의 부탁으로 ‘추천할 만한 한 두서너대여닐고여덟 가지 것들'이란 제목으로 계명대 영화패 "햇살"에 올린 글.


오늘은 종일 비가 내렸다. 저녁에도 비가 오면 꼭 쏘주 한 잔 해야지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은 그쳤다. 그래도 아마 먹을 것 같다. 이 글이 잘 써지면 그 핑계로다가, 잘 안 써지면 뭐 또 그 핑계로다가. 장마비가 휴일까지 계속 오락가락한다는데, 덩달아 나도 오락가락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간밤에는 피곤한 가운데에도 잠을 청하지 못해 새벽 세시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예전에 할매에게 들려주었던 바쳐야 한다에서 시작하여 동지가며 타는 목마름으로를 나직이 열창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다 울 뻔 하였으며, 천년여왕, 은하철도 구구구를 거쳐, 찔레꽃 삼절이 기억나지 않아 헤매다 잠이 들었다. 할매 말로는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들으면, 사람은 엄마 뱃속에서처럼 편안하여 잠잠조용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강해져 우울지경에 빠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단다.

가사가 멋져 여기 잠시, 모르는 분들이 많을 듯 하여, 바쳐야 한다 일이절 가사를 일부 옮긴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구차한 목숨으론 사랑을 못해
사랑은 그렇게 쉽지 않아라
두려움에 떨면은 술도 못 마셔
그렇게 마신 술에 내가 죽는다

언제 술 마시고 기회 되면 함 불러주겠다.
아, 그리고 저 찔레꽃은 붉게 피이이는 그 찔레꽃 아니고,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에, 장사익의 절창을 들으며 쓰고 있는데 가사 기억해 쓰기가 어렵다. 봄비!!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허물어지면? 질 때?

에서 도통 기억이 안 난 그 찔레꽃이다. 일이절은 예부터 전해 내려 왔고 삼절은 후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하는데 구체적 질감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고 누가 써놓은 걸 본 적이 있다.

어째 쓰다보니 영 옆길로 샌 감이 있는데, 아, 방금 이상은으로 바꿨다. 한결 쓰기는 낫군.


추천할 만한 것이라, 글쎄 무엇이 있을까, 짧은 생이지만 인생을 살 찌우는데는 단연 이 세 가지가 아닌가 한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과 깊은, 죽음 같은, 연애, 그리고 책이다. 머꼬는 내가 책을 많이 보는 줄 알고 그 쪽으로 유돌 하는 것 같았는데 글쎄 어쨌든 이 세 가지가 인간을 키우는 데는 그만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스승으로 모시지는 못하더라도 본을 받을만한 분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그를 만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사실 우리가 스승을 찾는 눈을 갖기도 지난한 일이 아니겠는가.

까지 쓰고 잠시 어머니 전활 받고 어른 계시는 댁에 우유랑 물이랑 가지러 갔다 오고, 할매 와서 같이 저녁 먹고 부치지 않은 편지 들으며 다시 시이자악!!

어쩌면 그래서 책이 그 한 자리를 차지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될 아버지와 어머니를 제외하고, 살아있으며 내가 만난 인생에 스승이 될만한 분을 꼽는다면, 새로 학교를 다니며 다시 만난 단 한 분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재학생 여러분들은 꼭 한 번 그 분의 수업을 듣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사학과 이윤갑 선생님이신데, 나는 그 분에게서 인생에 지침이 될 만한 가치 체계와 산다는 것의 적극적인 의미를 배웠고, 그리고 아름다운 한 영혼을 만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그 때는 내가 결혼을 한다면 꼭 저 분을 주례로 모셔야지 생각했었는데, 졸업 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팔십 팔년인가 구년에 국사 수업을 듣고, 구십 칠팔년에 한국현대사와 한국사회경제사를 들었다. 국사 수업이야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지만 현대사와 사회경제사의 주옥같은 강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여담인데, 다 에이뿔을 받았다. 계절학기 두 학기까지 십사학기 중 에이뿔은 그게 거의 전부이다.


살아가다 보면 한 고비를 훌쩍 뛰어넘은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어느새 커버린 키를 새삼 보게 될 때도 그렇고 쏘주 두 병을 먹고도 끄덕 없을 때도 그럴 수 있다.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짝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때가 있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려 다시 도를 닦아야 할 때가 많지만, 반복하다보면 또 훌쩍 한 단계 뛰어넘은 자신을 보게 되곤 하는 것이다. 이성 앞에서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하다가 각고의 고민과 노력 끝에 여러 이성 가운데에서 한 두어서너 사람 남기고 어떻게 반인륜적이지 않게 정리할까 고민하게 되는 수가 사람에게는 있는 것이다. 수많은 경험과 무수한 술병들과 새우깡 봉지들, 불면으로 터져버린 실핏줄들이 모두 한 몫 하였겠지만 나는 그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찌인한 연애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 그 관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총체일진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 그것만큼 확실하고 깊은 것이 없다. 오래고 깊은 연애에서 실패, 결혼으로 골인한다거나 죽을 때까지 연애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일단 실패라 한다면, 그렇다, 실패한다면 나는 거의 무한정 성장하는 것이다. 웬만한 선악과 미추에 흔들리지 않고 한 잔 술에 취하고 한 동이 술에 견뎌내는 것이다. 인생의 이면을 보고 인생의 또 다른 무엇의 존재를 알고 인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주 만물이 인간과 둘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아아, 그러나, 이것은, 그 긴 터널을 통과하여, 무사히,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죽어갔던가. 세차게 비 오는 날 술 마이 묵고 하늘 함 경건히 올려다보시라. 그렇게 죽어간 많은 별들이 얼마나 초롱이 빛나며 하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도 그렇게 사랑하고 그렇게 상처를 입으며 생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른 척 한다.


힘든 시절 나를 견디게 해 준 책들이 있다. 언젠가 어느 구석에 그 책들과 준탱이와 부천 노땅이 아니었음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책들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박인홍의 벽 앞의 어둠,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윤후명의 몇몇 소설들과 오정희의 대부분의 소설들이다. 그 때를 돌아보면 간간이 나를 지탱케 하던 시집들과 평론집들도 떠오르지만 단연 위의 소설들이 나와 함께 하였다. 반복되는 주사와 끊임없는 술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던 두 사람은 내 말벗이며 술벗이요 이즈음도 절실한 그 무엇이다.

내가 읽은 많지 않은 책들 중 단 한 권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죽음의 한 연구를 든다. 일천 구백 칠십 오년에 발표되었으며, 팔십 육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다시 발간하였다. 지금은 같은 출판사에서 상하권으로 나뉘어 새로운 판으로 나와 있다. 한 수도승의 사십일 간의 기록인데 나는 근 일년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매일매일 한 페이지든 한 문단이든, 때로는 며칠간의 기록을 읽어 나갔다. 읽을 때마다 앞부분을 다시 조금씩 읽으며 그 책에 나는 젖어들었다. 처음 조금 읽기 어려워도 꾸준히 조금씩 읽다보면 그 문체의 감칠맛에 빠지고 그 세계의 매력에 흠뻑 젖게 된다. 하루에 하루치의 기록씩 사십일을 투자하여 읽기를 권해 마지않는다. 욕심도 내지 말고 너무 더디 읽지도 말고 하루에 하루치의 분량만, 방학을 이용하여 까짓 이 한 권 함 읽어들 보시라. 사십일 동안 그저 함 다 읽고 한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함 읽으시라. 며칠 안 걸릴 것이며 처음 읽을 때와 완연히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정독을 하였는데 그 때마다 다른 세계가 펼쳐져 나는 새로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대 유리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지.
먼지처럼 가볍게 만나
부서지는 햇살처럼 살자던 그대의 소식 다시 오지 않고
유리에 가면 그대 만날 수 있을까,
봄이 오는 창가에 앉아 오늘은
대나무 쪼개어 그대 만나는 점도 쳐보았지.
유리 기억 닿는 곳마다 찔러오던 그 시퍼런 댓바람,
피는 피하자고 그대는
유리로 떠나고
들풀에 허리 묶고 우리 그때 바람에 흔들리며 울었었지.
배고픈 우리 아이들
바닷가로 몰려가 모래성 쌓고
빛나는 태양 끌어 묻어 다독다독 배불렸었고.
그대, 지금도 유리에 가면 그대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아프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아
물마른 강가에 앉아 있다던 그대와
맑은 물이 되어 만날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대는 유리를 떠나고
유리엔 우리가 살아서
오늘은 그대가 우리를 만나러 오는
시퍼런 강이 되기도 하겠지만.

철학과 선배이기도 한 노태맹의 유리에 가면이란 시인데 이 유리가 그 수도승이 수도를 하는 동네 이름이다. 이 시는 일천 구백 구십 오년에 세계사에서 유리에 가서 불탄다 라는 제목으로 간행된 시집에 실려 있다.

박상륭의 다른 책들은 그렇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속편격인 길기도 긴 칠조어론이 있는데 정히 궁금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게 나을 것이고, 소설집으로 열명길과 아겔다마가 있는데 이는 함 읽어볼 만은 하다. 역시 문지에서 나왔다. 근래에 나온 그의 책들은 대충 서점에서 뒤적이다 그냥 나왔다. 점점 형이상학으로 치닫는 그의 세계가 나는 싫다. 어렵다.

나도 새끼 갖고, 그리고 엉덩이 큰 계집의 볼기짝을 두들기며, 그렇게 살고만 싶은 것이다. 계집과 자며, 홍수처럼 사내를 쏟고, 그리고 이튿날은 보습에 묻은 녹이나 쓸어내고 싶고,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그 모든 풍족치 못한 농부들 모양, 굴비 한 마리 지겟가지에 매달고 싶을 뿐이다. 가난에 거칠어져 가시뭉터기 같은 마누라의 손바닥으로 등을 긁히고 싶은 것이고, 홍역에 죽어가는 자식놈 탓에 인색한 의원 무릎 위에 눈물도 흘리고 싶은 것이다. 목소리가 변해 가며, 마을처자들 댕기나 나꿔채다 돌아와 늦잠을 자는 아들놈이 꾀병을 앓아대는 꼴은 얼마나 흐뭇한 것이냐. 그래 그런 것은 얼마나 선하며, 좋은 것이냐. 그 아들이 마포 상복 자락에다 눈물과 황토를 담아다 아비의 관을 덮어 주는 그 황토 냄새는 또한 얼마나 좋을 것이냐. 썩을 수 있다는 건, 죽을 수 있다는 건, 흩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얼마나 좋은 일이냐.

열명길에 실린 유리장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아아 정말 얼마나 좋을 것이냐. 얼마나 좋은 일이냐.

최근에 읽었거나 읽고 있는, 나를 매혹시키고 있는 책들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 박병상의 파우스트의 선택, 김종철 선생의 간디의 물레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장일순의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격월간 녹색평론 등이다. 다들 같은 맥락의 책들인데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이다. 대부분 녹색평론사에서 나왔으며 생태학 관련 책들이다.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하여, 산다는 것에 대하여,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한층 높은 차원을 체험하게 해 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에 대하여 이보다 더 명확하고 바른 해답을 나는 아직 모르겠다.

책에서 만난 가장 큰 스승의 한 분이 바로 영남대 영문과 교수이며 녹색평론사를 이끌어가는 김종철 선생이다. 선생의 글들은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가슴을 쿵쾅 내려치는 경구로 가득차 있다. 그 뛰어난 문장 보다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것들이 그의 세계에 가득하다. 삶 또한 그러하다고 듣고 있다.


열두시가 가깝다. 혼자 기다리다 잠든 할매가 아리다. 세탁기에 든 빨래 널고 이제 자리에 들어야겠다. 모두들 아름다운 꿈들 꾸시기를 빈다. 혼자 꾸는 꿈은 꿈으로 그치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곧 현실이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비는 잠시 그치고 또 한 세월 가고 겨울이 기다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서 가자.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구로자와 아끼라의 꿈, 그 마지막 즈음 나오는 마을 풍경, 그 세계에 살고 싶다.
Tag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