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녹슬은 해방구와 강매 2021/10/04
  2. 가을밤 2021/09/12
  3. 여름을 보내며 2021/08/14
  4. 느티나무 아래에서 2021/08/09
  5. 계절이 부르는 소리 2021/07/07
  6. 불문율 2021/06/26
  7. 돌아오지 않는 자를 위하여 2021/06/25
  8. 긴 한 주 2021/06/12
  9. 당신과 나는 2021/05/20
  10. 사월이 가기 전에 2021/04/14
  11. 꽃, 새, 눈물 2021/03/27
  12. 일상으로 2021/03/25
  13. 심장에 남는 사람 2021/03/24
  14. 블로그를 다시 열며 2021/03/16
  15. 흔적은 흔적으로 2018/07/07
  16. 커피 2017/12/18

녹슬은 해방구와 강매

from text 2021/10/04 11:07
이 두 노래를 기록하고, 기억하자. 조국과 청춘의 녹슬은 해방구와 윤연선과 윤선애가 부른 김의철의 江梅. 먼저 녹슬은 해방구.

그해 철쭉은 겨울에 피었지 동지들 흘린 피로
앞서간 죽음 저편에 해방의 산마루로 피었지
그해 우린 춥지는 않았어 동지들 체온으로
산천이 추위에 떨면 투쟁의 함성 더욱 뜨겁게

산 너머 가지 위로 초승달 뜨면 멀리 고향 생각 밤을 지새고
수많은 동지들 죽어가던 밤 분노를 삼키며 울기도 했던
나의 청춘을 동지들이여 그대의 투쟁으로 다시 피워라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조국 해방의 약속을

그리고 강매. 내/네는 임의로 손을 보았다. 내 정서에는 이게 맞다. 윤연선은 나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로, 윤선애는 너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로 불렀다.

내 이름은 외로워 나비도 벌님도 볼 뉘 없어
나 홀로 강가에 피었다 사라져 갈 이름이여
너를 찾아 헤매이다 나의 외로움만 쌓이고
스러진 꽃잎을 찾으려고 등 뒤 해지는 줄 몰랐네
불러도 대답은 간데없고 휘몰아치는 강바람만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말라버린 풀그루를 지나
단 한 번 미소를 줏으려고 그래서 내 이름은 강매라네
단 한 번 그 향기 그리워 그래 내 이름은 강매라네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수줍어 고개 숙인 그대여
님의 맘 다 타버려 재 되어 사라질 날 기다렸나
어제도 오늘도 동틀 제면 너를 찾아 헤매었네
저녁 해 먼산에 걸리어 외로움에 타버렸네
불러도 대답은 간데없고 휘몰아치는 강바람만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말라버린 풀그루를 지나
단 한 번 미소를 줏으려고 그래서 네 이름은 강매라네
단 한 번 그 향기 그리워 그래 네 이름은 강매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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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from text 2021/09/12 19:08
날이 갈수록을 들으며 글렌캐런 잔에 발베니를 따르고 절인 올리브를 곁들인다. 황금을 삼키는 동안, 여러 가수의 여러 음색을 따라 시름이고 세월이고 저만치 물러난다. 가을이요, 몰락이다. 이 밤은 그래, 반복이다. 충돌로 파멸이어도, 다시 별이 별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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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보내며

from text 2021/08/14 20:56
최백호의 가을 노래들을 반복해 듣는다. 가을 바다 가을 도시와 가을의 여인이 특히 좋다. 가을에 형체가 있고 소리가 있다면 딱 최백호의 외양에 그 노래겠다. 마침 올해는 가을도 일찍 올 모양이다. 봄이 길고 여름이 늦었으니, 겨울이야 언제 온들 어떠리. 길고 짧은 하루하루, 무거운 정신으로 가볍게 살아야지. 점심으로 생선 한 마리 들어가지 않은 민물새우 매운탕을 먹었다.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이었다. 가을에 맛이 있으면 이런 맛일까 생각하였다. 다시 몸도 좀 가볍게 가질 생각을 하였고, 적응을 하는 거겠지, 다 잘 보이지 않아도 괜찮구나 생각도 하였다. 진짜 나이를 먹는 걸까. 많은 데서 위화감이 없다. 어쨌든, 잘 가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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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에서

from text 2021/08/09 16:01
가을이 행복을 만나 그렇게 울더니 겨울이 오기 전 겨울 몰래 숨었더라. 봄이 오기 전에는 겨울도 같이 봄 몰래 숨었더라. 여름에는 가을, 겨울, 봄이, 가을에는 겨울, 봄, 여름이 그렇게 서로 숨었더라. 사연일랑 계절 너머 보내리. 몸서리치게 푸른 밤, 푸르러서 좋아라.

계절이 부르는 소리

from text 2021/07/07 15:13
계절이 어쩐 일로 제자리를 찾는가 싶더니 장마는 또 기록적으로 늦게 시작하는구나. 장마 생각을 잊을 만큼 더위가 늦게 오고 봄이 길었다. 며칠 집에서 소방 관련 교육을 받고 한 주 간격으로 두 눈을 번갈아 수술 받느라 유월도 유난히 길었다. 수술 후 한동안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이나 책을 보지 말고 편히 쉬라는 말에 여태 쉬는 방법을 너무 모르고 살아왔나 생각하였다. 쉴 줄 모르고 가까운 거리는 안경 없이 잘 보이니 소소한 집안 정리나 요리, 설거지가 꽤나 재미있는 일이 되기도 하였다. 때때로 눈을 위해 멍하니 누워 있으면 누군가가 생각나고, 대책 없이 따라가다 보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소처럼 크고 선한 눈동자가 떠오르기도 하였다. 글쎄 그것 말고 뭐가 있을까. 내 어딘가에 까맣게 파인 자국이야 남았겠지. 나도 뭐 좀 파긴 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은 더디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기다릴 줄 모른다. 귀도 조금씩 먹는가. 계절이 부르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더는 나도 듣지 않고 부르지 않는다. 빗소리가 우렁차다. 연못의 물고기들아. 잘 가라. 잘 살아라.

불문율

from text 2021/06/26 17:58
우리는 누구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싸우거나 부둥켜안고 울었다. 몇 시간이고 노려보며 서로를 노리기도 하였다. 그저 지나칠 만하면 다 지나치기 전에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어느 해 질 무렵, 소복소복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도시는 모든 걸 두고 저만 어디론가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길이 까맣게 이어졌다. 먼저 떠난 도시를 뒤따르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듬처럼 푸석푸석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다. 비듬만 남은 몸뚱아리가 눈과 함께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닌가, 눈길에 미끄러져 자빠지면서 누군가 말했다. 넘어진 네온사인 하나가 잃어버린 지번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바리 호주머니 속에서 왼손과 오른손이 번갈아 울다 잠들기를 반복하였다. 바닥에 비친 네온사인에 먹색 눈물이 번졌다.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몇 시간이라도 버티고, 버틴 시간만큼 이 도시와 사람들의 안녕을 위협하리라. 대체로 그렇듯이 한 번은 꽃처럼 피었다가 사그라질 것이다. 불문율을 따라 사라지기 전에 호작질이라도 한번 제대로 하고야 말 것이다. 길 끝 저 집은 한잔 추억이 서린 곳인가, 소라가 알맞게 익는 동안 한쪽에서 고갈비가 타는 모양이다. 재에 뿌릴 물을 가져오너라. 너를 타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리니. 갈 곳 몰라 더는 헤매지 않으리니.
춤을 추는 자여 그대는 복이 있도다
노래하는 자여 먼저 노래를 멈추지 말지니
이곳과 저곳을 잇는 자가 따로 없구나
허공의 해바라기처럼
가고 오지 않은 자의 뒤를 따르리라
젓가락 장단도 없이 노래를 부르던 자여
다시 오지 않을 그날을 기억하라
춤을 추던 자의 복과
골방의 먼지와 취기와 방탕을 기억하라
낭만과 반역을
잃어버린 아이와
우리가 아닌 너와 나를 기억하라
꿈을 꾸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가고 오지 않을 자가 여기 있구나

긴 한 주

from text 2021/06/12 17:52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았다. 의식하였거나 않았거나 사는 일이 순조로울 때는 잘 갚아가는 모양이라 여겼고, 그렇지 않을 때는 갚기는커녕 또 빚을 더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심스러웠다. 빚은 빚진 이에게 갚는 것이 우선이고 마땅한 일이겠으나 이제 어떤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도 모르고, 다만 누구랄 것 없이 빚을 갚는 마음으로 대할 뿐이다. 생각할수록 별나게 나를 해코지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나는 특별한 빚을 진 게 틀림없다. 묵묵히, 천천히 갚아나갈 밖에.

나흘간 집에서 원격으로 소방안전관리자 강습교육을 받았고, 바로 이튿날인 어제 오전 진석타워에서 시험을 치르고 오후에 한쪽 눈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긴 한 주였다. 몸은 조금 가벼워졌고 어쨌든 흐리고 뿌옇던 세상이 절반은 밝아졌다.

당신과 나는

from text 2021/05/20 08:06
당신과 나는 1980년 5월 16~17일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 회의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21:00에, 당시 발효 중이던 비상계엄령을 5월 18일 00:00부터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 실시한다고 발표하기 전인 17:30경,

우리 둘은 동 회의장으로 난입한 공수부대의 체포를 피해, 23:50경까지 동 대학 교정 내 어느 건물(현재 수영장이 설치된)의 지하보일러실 귀퉁이의 좁고 추운 공간에 갖혀 지독한 공포에 시달리다 5월 18일 0시 직전에 천운으로 탈출한 경험을 공유한 사이입니다.

그날로부터 41년째인 오늘 2021년 5. 18 우리 둘은 60대 중반 중노인이 되었습니다. 난 아직도 그대의 이름, 출신 대학도 모르고 심지어 얼굴조차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키가 약 175~180센치 정도이고 마른 체형이었던 것만 떠오릅니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보시면,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진 신촌역 앞 광장에서, 나는 90도 우측으로 꺾어 도주했는데 당신은 어느 방향으로 튀었는지를 적시하여 아래 이메일 주소로 연락주길 바랍니다. 내가 당신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입니다.

한 남자의 안부를 묻고, 찾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2021년 5월 18일자 한겨레신문 생활광고에 실린 글. 두고두고 읽어도 좋을 듯하여 옮겨둔다. 다른 시기의 이야기이지만 그 옛날의 이화여자대학교도 떠오르고 그때의 사람들도 생각난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바싹 말라 여기저기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던 어떤 청춘도.

* 하루 전인 5월 17일 같은 지면에 같은 내용으로 짧고 투박한 글이 먼저 실렸고, 하루 뒤인 5월 19일 서로의 안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깊은 사연이야 알 길이 없으나 다행한 일이다. 이화여대 진입로에서 시작한 내 기억의 길은 서강대 뒷산과 서울대 강의실을 거쳐 전남대 운동장과 조선대와 연세대 학생회관, 경희대 교정까지 이어졌다. 흔적은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구나. 올해는 여름이 더디고 봄이 길다.

사월이 가기 전에

from text 2021/04/14 17:24
서리태처럼 푸른 속을 감추고, 그때
불 꺼진 화염병을 던지며 나는 울었네.
아스팔트에는 꽃이 피고
저마다 나무 한 그루쯤 하늘에 올렸지.
어디로 갔을까, 그 검정 콩들
기다리기로 한 붉은 기약들
잘 쪼개진 사금파리 같던 기억들.
낙타의 마음으로
사막 같은 길을 가리라.
사월이 가기 전에
열매와 그늘을 두듯이 모두 두고
서리태처럼 푸른 속으로 걸어가리라.
도화지를 그려
사막 같은 마음으로 낙타의 길을
두 손 모아 콩콩콩 따라가리라.

꽃, 새, 눈물

from text 2021/03/27 21:56
어쩌다 송창식의 밤눈을 듣고 곡조가 좋아 집에서는 물론이고 2차로 자주 가는 술집에서도 몇 번 청해 들었는데, 오늘 아침 꽃, 새, 눈물이란 곡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밤눈과 마찬가지로 1집 발표곡이며 둘 다 최인호의 시에 곡을 붙였단다. 같은 가수의 노래라도 유튜브에서 여러 라이브 공연을 찾아보는 재미가 또 쏠쏠한데, 송창식이야 말해 무엇하랴만, 김은영의 이 노래도 가히 일품이다. 지금껏 어떤 곡보다 제대로 반한 듯, 봄이 가고 꽃이 져도 한참을 듣겠다.

그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한 방울 떨어져서 꽃이 되었네
그 꽃이 자라서 예쁘게 피면
한 송이 꺾어다가 창가에 앉아
새처럼 노래를 부르고 싶어
지는 봄 서러워 부르고 말아
아 가누나 봄이 가누나
아 지누나 꽃이 지누나

* 2015년 1월의 어느 술자리였다. 가련한 청춘에게 세상 저편인 듯 보석처럼 날아든 문장 하나를 옮겨 둔다. 어떤 시와 노래, 어떤 곡조로도 이 문장을 이기지 못하므로. 함께 불행해도 좋겠단 생각. 그때의 나. 그때 나의 전부였던 당신. 묻어두는 일이 그리 만만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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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from text 2021/03/25 07:08
어머니 가시고부터 밑반찬을 사거나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드는 일이 늘었다. 하기 쉬워 예전부터 한 번씩 하던 카레, 김치찌개, 통조림꽁치찌개, 부대찌개, 돼지고기김치볶음을 주로 하고, 어쩌다 기분이 내키면 별식으로 감자샐러드, 김치전, 햄버거를 만들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녀석의 175에 90을 육박하는 식욕 핑계로 최근에는 생전 안 만들던 음식도 제법 만들었다. 찜닭, 애호박돼지찌개, 돼지고기가지볶음, 된장찌개에 삼겹살수육, 오삼불고기, 시래기고등어조림까지. 대식가이자 미식가인 녀석의 말을 빌리면 지금까지 계속 최고의 맛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작은 재주가 있었나, 나도 어디서 이만한 음식은 잘 먹어보지 못하였다. 동네 시장에서는 오징어나 고등어, 시래기 같은 걸 사며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의 음식 비법이랄까 주의할 점도 듣고, 때때로 중늙은이를 보는 살가운 눈빛과 홍고추 몇 개 정도는 거저 얻어오고는 한다.

지지난해를 돌아보니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던 길들만 떠오른다. 그해 다른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봄과 여름의 언덕배기 길과 가을, 겨울의 어두운 골목길과 신천, 그때의 감정과 생각들이 손에 잡힐 것 같다가도 더없이 아련하기만 하다. 지난해에는 이월에 어머니를 여의고 일상을 천천히 회복하였으며 시월에 집을 샀다. 백내장과 녹내장에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이 함께 살고 있으며 한 번 술을 마시면 사나흘은 앓는다. 어쩌랴, 온 세상이 신종 감염병으로 시름하는 중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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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남는 사람

from text 2021/03/24 11:09
지난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유튜브 순례 중 우연히 OBS 경인TV에서 2013년 2월 방영된 멜로다큐 가족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보았다. 정선 단임골에 사는 두 사람의 애틋한 모습에 빠져 2008년 3월 방영된 KBS의 인간극장 '꽃순이와 나무꾼'까지 찾아보았고, 꽃순이와 나무꾼이 잠깐 함께 부르는 노래에 반해 그 노래를 찾아 여러 버전으로 몇 날 며칠 반복해 들었다. 한동안 나도 마치 단임골 어디에 사는 것만 같았다. 심장에 남는 사람.

인생의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어진대도 헤어진대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못 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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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다시 열며

from text 2021/03/16 08:37
2019년 여름부터 닫혔던 블로그를 다시 연다. 그새 도메인이 팔려 excuser.net에서 cuser.pe.kr로 주소를 바꾸고, 쓰던 스킨을 다시 찾고 백업해 두었던 이전 포스팅을 복원하였다. 도메인 비용은 절반으로, 쓸데없이 늘렸던 호스팅 비용은 그보다 많이 줄었다. 사진은 복원이 되지 않아 사진이 있던 포스팅은 손을 좀 볼 작정이다. 어딘가에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때때로 시달렸다. 이제 공간이 다시 생겼으니 그런 생각일랑 좀 접어두어도 좋을런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또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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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은 흔적으로

from text 2018/07/07 13:58
이 블로그의 마지막 포스팅이 될 것 같다.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으나, 도메인 등록이든 웹호스팅 서비스든 더 연장하지 않을 생각이다. 흔적은 흔적으로 남을 것이로되, 때가 되면 사라질 일이다.

수조에 열대어 기르기에 빠져있다. 불멍의 지난함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물멍의 신묘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렴, 열대어도 수초도 핑계일 뿐 단지 물을 위한 수고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어린이날, 가창 네이처파크에서 선물로 받은 베타 두 마리가 시작이었다. 사계동행 식구들과 청도 일박이일 여정에도 용케 잘 살아남은 녀석들 덕에 0.5리터의 물이 50리터로 늘었다.

전봇대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날라 둥지를 짓는 까치 두 마리를 보았다. 한 마리가 집 단장을 하는 동안 한 마리는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묵상하듯 오래 내려다보고 있었다.

때때로 당신이 무척 보고 싶은 날이 있다. 꽃이 피어서도, 봄이어서도 아니다. 바람이 불어서도, 가을이어서도 아니다. 모른 척 하는 술잔 속에 얼핏 당신이 있고, 나는 모처럼 술을 아끼고 담배를 아낀다. 여태껏 한 해 한 해 특별히 다른 것 모르겠더니 올해는 모든 게 다르고 낯설다.

* ADA 60P(60*30*36), 에하임 2005+파워하우스 스몰 필터, NAS LED Light 600 Fresh, 흑사+왕사, 아누비아스 나나, 미크로소리움 프테로푸스, 에키노도루스 레니, 에키노도루스 블레헤리, 엘레오카리스 파르불라, 그리고 구피 3, 삼각 플래티 2, 미키마우스 플래티 4, 안시 롱핀 3, 블랙 몰리 2, 코리도라스 아에네우스 2, 체리 새우 12(?), 베타 2.

커피

from text 2017/12/18 18:23
노안이 찾아왔다. 가까운 것도 먼 것도 보이지 않는다. 더는 취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탄자니아나 과테말라를 앞에 두고 그리운 것들을 생각한다. 흐린 향기 속에 지나간 것인지 다가올 것인지 모를 것을 그리워한다. 느린 맥박이 뛰고, 조바심 같은 것이 익숙하게 머물다 간다. 창밖으로 계절이 지난다. 그래, 습관처럼 나는 늘 남은 계절의 흔적을 찾았지. 푸석푸석한 껍질 아래 철마다 구멍이 생겼다. 깊은 고동, 몹쓸 가슴으로 오래 너를 만난다. 너는 너의 미덕으로 시간을 멈추고 공간을 나눴다. 다시 겨울 한낮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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