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2건

  1. 매화산 2014/11/02
  2. 생일 2014/10/14
  3. 영천 유람 2014/10/06
  4. 대회 참가 일지 2014/09/22
  5. 동면을 위하여 2014/09/22
  6. 방앗간 전선 위의 참새 2014/08/14
  7. 천천히 2014/07/30
  8. 시실리 2014/06/10
  9. 1월 20일 2014/01/21
  10. 수동 길거리에 서서 2013/08/29
  11. 아님 말고 2013/08/12
  12. 그때면 2013/07/01
  13. 또박또박 2013/06/12
  14. 봄밤 2013/03/29
  15. 저편 어디로 2 2013/01/16
  16. 12월 19일 1 2012/12/22

매화산

from text 2014/11/02 18:27
어제 단체로 매화산에 올랐다. 산 아래는 단풍이 절정이었고, 산은 구름 속에 있었다. 중턱에서 만난 구름 속 풍경이 좋아 한참 머물다 혼자 내려오는 길, 구름이 내내 따라 내려왔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잎 지는 소리가 딴 세상을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 '모든 잎들이 꽃보다 아름다운 두 번째 계절', 몇 잔 술에 그걸 이해 못했을꼬. 천지사방 온통 하얀 세상은 그대로 어떤 얼굴이었다.

생일

from text 2014/10/14 17:03
단번에 무너질 줄 몰랐다. 그렇게 저릴 가슴이 남아 있는 줄 몰랐다. 겨우 지탱하고 있었던 게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한 번쯤 돌아봐 주기를 기다리며 오래도록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늘 아른거리던 것이 신기루 마냥 나타났다 사라졌다. 밤새 어느 구석에 적어 놓은 문장 하나가 맴돌았다.

일터의 웃어른께서 영면에 드셨다. 생전의 영상을 보며 몇 번이나 울컥하였다. 더 좋은 세상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시름은 다 내려놓고 편히 가셨으리라 믿는다. 서연이는 처음으로 제 용돈을 모아 향수를 선물했다. 카드에 쓴 '아버지를 응원하는 아들'에 마음이 뭉클했다. 이래저래 잊지 못할 생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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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유람

from text 2014/10/06 15:34
연휴 중 이틀을 영천 일대에서 놀다 왔다. 치산관광지 캠핑장을 0124님이 예약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잡힌 일정이었다. 예약이 그리 어렵다는데 누군가 취소한 걸 용케 잡은 모양이다. 대원이(서율이에게는 레고 삼촌 또는 뚱뚱보 삼촌)에게 숯과 토치를 빌리고, 소고기 등심에 삼겹살, 새우, 막창 등을 장만하여 가족 여행 기분을 냈다. 혼자서는 처음으로 숯불을 피워 보았는데 역시 불을 가지고 노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서연이는 계곡물에서 다슬기를 잡는 것에만 신이 났고, 서율이는 낯선 환경과 여러 먹을거리를 즐겼다. 흐린 하늘이었지만 구름 사이로 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이튿날에는 은해사와 사일온천에 들렀다가 편대장 영화식당 본점에서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은해사는 처음 가보았는데 절은 모르겠으나 울창하고 넓은 진입로가 좋았다. 주변에 오래된 참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아이들이랑 경쟁하듯 꽤 많은 도토리를 주웠다. 애들이 하도 좋아해 굳이 하룻밤 묵지 않더라도 종종 이렇게 채집할 수 있는 나들이를 하면 좋겠단 생각을 하였다. 돌아와서는 잡아온 다슬기를 키우기 위해 장독 뚜껑에다 돌멩이 몇 개를 넣어 집을 만들어 주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또 군식구가 늘었다.

대회 참가 일지

from text 2014/09/22 17:15
서연이의 올해 대회 참가 일지. 타이젬 8단에서 두 번 미끄러지고 7단에서 정진 중. 다른 길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언제까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정답 없는 고민이지만 결론이 해답일 터.

2월 23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202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2조 23위(2승 3패)
3월 21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203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2조 27위(1승 4패)
4월 13일, 고성동 시민체육관, 제6회 대구시장배 시민 바둑대회 최강자부 8강
5월 11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제3회 일요신문배 전국어린이바둑대회 최강부 예선탈락(1승 2패)
5월 18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205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3조 7위(3승 2패)
6월 22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206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2조 24위(2승 3패)
7월 13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4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국수부 1위
7월 19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6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경북최강자부 우승
8월 3~6일, 공주 백제체육관, 2014 무령왕배 세계청소년바둑축제 초등최강부 공동우승
8월 7일, 서울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 제14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국수부 2승 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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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을 위하여

from text 2014/09/22 16:12
겨울은 또 어찌 나려고, 가을이 속절없이 깊어간다. 더는 술 먹고 고꾸라지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리라, 까르르 웃는 두 아이와 성실한 아내를 시체처럼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먹는다. 꿈이 무엇이고 인연이 무엇인가. 알량한 것 하나만 품고 멀리도 왔다. 덜어낸다며 채우고 채운다며 덜기도 했겠지. 난 체는 오죽했으랴. 중독된 시간만큼 해독에 시간이 필요할까. 그러고 나면 레고 장난감처럼 산산이 부서뜨려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아이처럼 기껏 만들어놓은 걸 별일 아니라는 듯 간단히 해체하고 다른 걸 구상할 수 있을까. 지난날이 이리 어렴풋한데 분명한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밤이 깊으면 별은 더 반짝이고 새벽이 가깝다는데, 엊그제 고꾸라지기 전에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별이 제 운명을 노래하고 있었다. 땅에 발이 닿지 않는 나는 터져 나오는 노래를 억누르고 쥐며느리처럼 둥글게 몸을 말았다.

방앗간 전선 위의 참새

from text 2014/08/14 17:14
헐하고 허름한, 공중부양으로 하루를 견딘 우리가 지친 해를 위로하는 저녁, 젓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농담, 흘러간 가락에 비틀거리는 술잔, 무너지는 마음, 오지 않을 사람,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욕망, 중독처럼 피어나는 열꽃, 회한과 미련, 적막,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지처럼, 부서지는 운명처럼, 주인을 닮은 술집.

잘못 살아온 게 아닌가,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며칠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굴곡 없이 편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금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다. 새옹지마 같은 세상, 모쪼록 전화위복이 되기를.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없는 갓끈도 고쳐 매지 않기를. 종일 비가 내린 하루, 방앗간 전선 위로 간다.

천천히

from text 2014/07/30 13:33
어딘가 단절된 곳에서 한 몇 년, 적게 먹고 조금 걷고 그저 숨만 쉬다 왔으면 좋겠다. 비라도 주르륵 내리는 날이면 냉큼 무언지 모르는 것이 그리워 술이라도 찾아 힐끔거리겠지. 더러 소리 내어 울지도 모르겠다. 그 어느 어름이면 큰아이는 기리를 깨쳐 대성하여 있을까. 다른 길을 찾아 새로운 세상을 연마하고 있을까. 재롱 많은 작은아이는 어떤 사람을 만나 세상을 알아가고 있을까.

지난 주말이었다. 마른장마의 막바지, 구룡포읍 구평리 해변에서 짙은 해무와 차가운 바람을 맞는 호사를 누렸다. 해무가 맺혀 솔가지에서 물방울이 들을 정도였다. 분위기를 주체 못하고 밤새 주도삼매에 들던 중 잠시 들른 화장실에서 족히 십오 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 지네에게 오른발 발가락을 물렸다. 일행에게 잡혀 변기통으로 사라진 주황빛 지네는 불로 지지는 듯, 가시로 찌르는 듯 꼬박 두 시간을 그렇게 아프게 하더니 물린 사람을 술 마시기 전의 몸뚱이로 만들어 놓았다. 열네 명이 정오부터 다음날 오후 서너 시까지 내달린 와중에 가장 많이 마시고도 가장 멀쩡할 수 있었던 건 다 그놈 덕분이었으리라. 뒤에 생각하니 그렇게 황천으로 보낼 일은 아니었다. 바닥을 잘 살펴보지 못한 내 잘못이지 제가 먼저 해코지하기야 하였겠는가. 길을 잘못 찾아든 제 탓도 없다 할 순 없겠다만, 늦게나마 명복을 빈다.

새로운 질서가 온다고 한다. 천천히, 나는 나의 질서를 지킬 따름이다.

시실리

from text 2014/06/10 16:22
오월은 여름이더니 유월이 봄이로구나. 일박이일 일정으로 고대하던 시실리엘 다녀왔다. 0124님이 모는 차로 처음 간 나들이, 애들이 좋아하고 운전에 믿음이 가 자주 다음을 기약하여도 좋겠다 싶었다. 공룡과 탁현이형의 여전한 모습도 반갑고 좋았다. 오는 길에는 가야산 야생화 식물원과 해인사에 들렀다. 해인사에는 사람이 넘쳐 그 옛날의 정취는 간 곳 없었고, 다만 늙은 나무들만 고요히 늙고 있었다.

대양을 떠돌다 온 준탱이, 이번에는 얼굴 한번 못 봤다. 중심 잃지 않고 잘 이기길 바란다. 녀석에게도 전한 말이지만, 지나고 보면 다 지나가는 일이더라. 뭔들 그렇지 않겠나. 다음은 최근에 읽은 이수태의 어른 되기의 어려움에서 기억할만한 한 토막.

그러나 모든 진실은 그것이 진실로 옹립되는 순간에 가장 위태로운 구도에 빠진다. 하나의 진실은 더 큰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진실을 안고 있는 것만이 장벽도 될 수 있다. 악은 폐쇄된 선이고 선은 개방된 악이기 때문이다.

1월 20일

from text 2014/01/21 14:09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이 세차게 내렸다. 산골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이었다. 꾸웍, 문어의 단말마 비명을 두 번 들은 밤이었다. 알코올이 피를 묽게 만들고 뇌수를 흔들어 놓았다. 그리운 얼굴 몇이 지나갔고, 아내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모든 게 다 용서될 것 같은 날씨라고, 이걸 보라고.

응답하라 1994를 시작으로 셜록과 워킹 데드를 보고 덱스터에 빠져 있다. 잦은 좀비 놀이의 여파겠지, 건강검진에서 골감소증 진단을 받았다. 여전히 술, 담배에 햇볕을 잘 쬐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지만 처방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이제 백 일쯤 되었구나, 0124님이 모는 낡은 자동차 덕을 조금씩 보고 있다. 다음은 여름 방학에 이어 두 번째 합숙에 들어간(보고 싶구나) 서연이의 기록 못한 대회 참가 일지.

6월 29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5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4강
7월 14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유단자부 1위
8월 7일, 서울 63빌딩 별관 그랜드볼룸, 제13회 한화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8월 17일, 울진군 체육관, 제1회 울진금강송배 전국 아마바둑 대축제 전국어린이유단자부 예선탈락(1승 2패)
9월 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2013 문화체육관광부장관배 전국학생바둑대회 초등고학년부 예선탈락(2승 1패)
9월 29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7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4조 1위(5승 0패)
10월 5일, 용산 명문바둑학원,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대구대표 선발전 어린이부 2강
10월 12~13일, 문경 실내체육관, 제8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전국초등유단자부 32강
10월 23일, 인천 신흥초등학교 체육관, 제94회 전국체육대회 바둑종목 어린이부 64강
10월 26~27일, 전주 전주고등학교 강당, 제15회 이창호배 전국아마바둑 선수권대회 전국어린이부 11위(5승 2패)
11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3조 3위(4승 1패)

수동 길거리에 서서

from text 2013/08/29 15:54
내 아이는 언제 커서 어른이 될까? 가을이 왔다고, 혼자 축배를 드는 일은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타인의 입으로 듣는 옛사람의 근황이란 어떤 것일까? 지나간 상처, 지나간 노래를 되새기는 마음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 자식의 앞날을 재단하는 소갈머리, 내가 몰랐던 걸 지금 이 녀석은 알까? 소주 두어 병을 마시고, 아이를 기다리며 수동 길거리에 서서 흘렸던 생각의 파편들. 아직은 더운 바람을 맞으며, 애닯던 노래를 들으며. 수동행 택시 안에서는 낯모르는 이에게 무언가를 주절거리기도 하였다. 가을을 예감하는 밤, 지나는 거리는 낯설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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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님 말고

from text 2013/08/12 15:58
하찮다. 하찮고 하찮으니 돌도 글도 쥐도 새도 다 하찮다.

그릇이 나머질 결정하지. 아무렴. 근데 그릇은 누가 결정하지? 글쎄, 그거야 나머지가 결정하겠지. 날도 덥고 할 일도 없는데, 술이나 끊어볼까. 그래, 몇 번만 더 먹어보고, 사는 양태를 좀 바꿔보는 것도 좋겠다. 또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던가. 왼손으로 담뱃재를 자연스레 턴 것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깍지를 끼거나 균형을 맞출 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릴 때 사용하던 손. 낯설고 두려운 것에 접근할 때 어김없이 떨리던 손.

몰랐다. 돌아보니, 금 밟았다. 그러니 다시 시작하면 안 되는가.

* 며칠째 둘째 놈이 묻는 말이 있다. 맨 처음엔 난데없이 잠 많이 자면 죽어요? 묻더니, 나중엔 밥 많이 먹으면 죽어요? 묻는데, 이야기인즉슨 잠이고 밥이고 오래도록 많이 자거나 먹은 후에는 죽느냐는 거다. 난감한 질문에 성의껏 답을 하다가도, 이어서 왜 그래요? 왜 그렇게 돼 있어요? 묻는 말엔 답이 궁색하다. 엊저녁엔 잘 먹고 놀다말고 갑자기 나는 언제 죽어요? 묻는 바람에 또 애를 먹었다. 어린 철학자가 잠시 떠올랐다.

그때면

from text 2013/07/01 15:59
나이가 다 찬 어느 날엔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지하지 못하고, 싫은 걸 감당하면서, 무얼 맞는 것보단 그게 낫겠다 싶은 거다. 아마도 마지막 행사하는 시위요 위세가 되겠지. 모쪼록 다음 생에는 밑둥치 굵은 나무로 났으면 좋겠다. 보고 싶을 거다. 시원한 그늘이 있거든, 언제 서늘한 가슴이 일거든 나도 한번 슬쩍 떠올려 다오.

또박또박

from text 2013/06/12 17:01
며칠 좀 살 만한 날씨에 그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얼 하며 지내나 문득 스스로 궁금해졌다. 변함없이 한 주에 두어 번 술을 마시고 서너 번은 기절을 하며 둘째 놈 손을 잡고 또박또박 밥벌이 길을 다니고 있다. 더위가 있어 짜증이라도 낼 때 빼곤 대체로 사는 일에 흥미를 잃다보니 화나거나 놀라거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감정이 서질 않는다. 간혹 먼 데 소식을 들으면 뭐 또 그런가보다 한다.

몇 권의 책을 읽었고, 감상이나 소회가 없지는 않았으나 도무지 무엇을 긁적일 마음이 일지 않았다. 영화관에서나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많은 영화를 보았지만 꼽아보자니 무엇을 보았는지 별 기억이 없다. 애들을 위해 다운받아 본 키리쿠 시리즈와 아기기린 자라파가 개중 기억에 남는다.

사진은 아예 찍지도 않지만, 그래서 둘째를 위해서라도 디지털 하나 장만할까 몇 달째 견주기만 하고 있다. 산다면 후지 X100S나 X20이 될 듯. 그리고 차 노래를 부르는 0124님 덕에 머지않아 중고차 한 대 살지도 모르겠다. 생활에 어떤 변화가 있으려나.

근래 야구에 부쩍 관심이 많은 서연이는 타이젬 7단에서 어느 정도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에 기록 이후 올해 대회 참가 일지.

1월 27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9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0위(3승 2패)
2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0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5위(2승 3패)
3월 24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1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9위(2승 3패)
4월 21일, 영남이공대학 천마체육관, 제5회 대구시장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우승
5월 4일, 서울 한국기원, 제2회 일요신문배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유단자부 예선 탈락(1승 2패)
5월 12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93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5조 13위(3승 2패)
6월 2일, 동대구지하철역 전시장, 2013 대구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 바둑대회, 어린이최강부 우승

서율이는 유치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닐 때보다 한층 밝고 개구지다. 어록이라 할 만한 신통방통한 말들이 꽤 있는데 아쉽게도 주변에 전하고 함께 웃곤 죄다 잊어버렸다.

나무가 좋다. 하얀 하늘, 하얀 세상. 결국 돌아갈 물빛 같은 큰마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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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from text 2013/03/29 16:24
어린 시절 어느 한때처럼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부러 먼 길을 걷기도 하고 그 끄트머리 어디 쯤에서 술을 마시기도 한다. 대체로 그런 날엔 대기도 낮게 가라앉아 술맛을 돋우고, 나는 그만 술잔의 하염없는 깊이에 덩실 빠져든다. 때때로 출몰하는 그리움도 내가 그리운 것이다. 며칠 전 동쪽 하늘엔 동그란 보름달이 하얗게 낮달로 떴더니 어제는 새파란 하늘에 비행운들만 어지러웠다. 맨정신의 봄밤은 잘라도 잘리지 않는 욕망과 눌러도 눌리지 않는 서정이 두렵다. 하룻밤이 까마득하다. 그새 누군가 퍼지른 세상에는 다시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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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편 어디로

from text 2013/01/16 15:07
지지난 일요일 서연이와 함께 아이맥스 3D로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았다. 지금까지 본 어떤 3D 영화보다 자연스러웠고, 언제 이만한 영화를 보았나 싶게 좋았다. 음식남녀, 결혼피로연, 쿵후선생의 이안, 예전에 그 영화들을 보고 어딘가에 그가 있어 중국인은 행복하겠다고 적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보니 랑웅도 떠오른다. 이안의 얼굴을 모를 때 난 그가 랑웅처럼 생겼을 거라 생각했었다. 엊그저께 일요일에는 혼자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보았다. 궁리할 지점이 많아 바로 한 번 더 봤으면 싶었다. 옛날 영화관 운영 방식이었으면 그럴 수 있었겠지. 그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와 올려다보던 넓은 스크린이 생각난다. 철없고 남루한 내 모습과 돌이킬 수 없는 일들, 잘 마른 장작처럼 쪼개지던 진부한 인연들도.

어린 시절 추억으로 사다놓고 오래 방치해 두었던 완역본 셜록 홈즈 전집을 한 권씩 읽고 있다. 어린이용 추리물에 빠져드는 서연이와 같이 읽을 요량으로 집어든 것인데, 덕분에 이따금 하게 되는 나의 삶을 추리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해졌다. 담배, 코카인, 마차, 난로, 모자, 코트, 신사와 숙녀, 비와 안개가 서린 세계, 이대로 더 달려들어 저편 어디로 빠져나오면 무언가는 조금 더 달라져 있을까.

다음은 근래 탐독해 마지않는 고종석의 트위터에 조금 전 올라온 글. 김기협의 블로그와 함께 이즈음 제일 쏠리고 마음 가는 곳이다.

리처드 하인버그의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를 읽었다. JS, 이미 <녹색평론>에 세뇌된 바, 생태경제학 담론을 망상으로 보진 않는다. 이런 류의 텍스트들엔 등장인물들도 똑같다. 예컨대 도넬라 메도우스, 콜린 캠벨, 제임스 캔터, 피터 빅터 등. 그런데 어쩌잔 말이냐? 이런 식의 협박담론(진실일지라도)의 실익이 뭐냐? 이런 말을 들으면 호모사피엔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달라질 것 같은가? JS 생각으로는, 생태경제학자들의 처방을 따라도, 인류의 멸종을 그저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늦춤이 인류 자신이나 지구(생태계)를 위해 꼭 좋은 일인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냥 지금보다 자원의 배분과 부의 분배에만 신경을 더 쓰면서, 지금껏 살아온 대로 살다가, 먹을 거 다 떨어지면 멸종하자. 구질구질하게 발버둥치지 말고. 이러나 저러나 인류의 멸종 멀지 않았다. 존속하는 동안 동종끼리 되도록 사이좋게 살다가 조용히 사라지자. 인류의 탄생과 멸종이라는 거, 지구 역사에선 한 순간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백년 뒤 멸종하나 만년 뒤 멸종하나 그게 그거다.

그리고 그간 옮기지 못한 서연이의 대회 참가 일지를 기록해 둔다.

5월 20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1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6조 25위(2승 3패)
6월 17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2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6조 17위(2승 3패)
7월 15일, 계명대학교 바우어관, 제12회 대한생명배 세계어린이국수전 대구지역 예선 유단자부 16강
7월 21일, 경주 위덕대학교 체육관, 제2회 위덕대학교 총장배 학생 바둑대회 최강부 4강
8월 18일, 포항 실내체육관, 제4회 영일만사랑배 전국 바둑대회 유단자부 8강
9월 23일, 군포 흥진초등학교, 제185회 한바연 학생 바둑대회 6조 8위(3승 2패)
10월 6~7일, 문경여중 실내체육관, 제7회 문경새재배 전국 아마바둑대회 전국초등일반부 준우승
11월 10일, 포항 미르치과병원, 제8회 경북일보사장배 어린이 바둑대회 최강부 8강
11월 17일, 덕영치과병원, 제30회 덕영배 아마대왕전 어린이 부문 최강부 8강

12월 19일

from text 2012/12/22 16:16
12월 19일 저녁, 사계동행 친구들과 송년 모임이 있었다. 양과 대창을 구워 소주폭탄에 금상첨화주(금복주 위에 화랑을 더해 금상첨화라는데, 참소주에 화랑을 섞었다. 고결까지는 몰라도 맛이 괜찮았다)를 먹고, 자리를 옮겨 임페리얼과 금상첨화주를 먹었다. 자리를 옮길 즈음 대권은 결정 났고, 화나고 무엇보다 쪽팔리고 답답한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달랠 길도 없이 평소처럼 술이나 진탕 먹고 뭐라도 주절주절거리는 수밖에는 없겠구나, 이런저런 농이 흘러 다니는 사이 앞에 놓인 술잔이 바빠졌다. 겉으로 유쾌하고 속으로 허물어지다가, 괜찮아요, 괜찮아요 누군가의 말 몇 마디에 즉각적인 위로를 받았다. 나는 한없이 약하고 작았고, 낯모르는 이의 말 몇 마디가 이렇게 따뜻하구나,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처음 알았다. 다음날, 그 느낌에 대해 되새김을 하다 평소 이해하지 못했던 프리 허그, 힐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 실연 후유증마냥 텅 빈 구석은 여전히 빈 채로 있지만, 며칠 나나 세상이 조금은 달라진 건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김언수의 설계자들에서 밑줄 그었던 몇 문장.

그런데 왜 굳이 도서관이었던 것일까. 도서관은 이렇게 조용하고, 이곳에 가득 쌓인 책들은 저토록 무책임한데. / 일을 끝내고 마시는 저녁의 캔맥주가 시원함과 보상과 휴식의 느낌을 준다면, 아침의 캔맥주에는 쓸쓸함과 몽롱함과 부적절함 그리고 깊은 밤을 지나와서도 끝내고 싶지 않은 무책임에 대한 욕망이 있다. / 하지만 불행히도 인생은 침대 시트가 아니다. 과거건, 기억이건, 잘못이건, 후회건 어떤 것도 깨끗하게 빨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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