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2건

  1. 도랑물 소리 2010/11/11
  2. 바둑 2 2010/10/25
  3. 옛날 2010/10/16
  4. 꿈, 가을 2010/09/26
  5. 남자의 탄생 2010/08/18
  6. 모래언덕처럼 2010/08/12
  7. 누구든 2010/07/13
  8. 고슴도치 2010/06/22
  9. 2 2010/05/30
  10. 사람 사는 세상 2010/05/16
  11. 산다는 건 2010/05/09
  12. 소식 2010/04/28
  13. 꽃, 별, 바람 2010/04/18
  14. 이 봄 2010/04/11
  15. 봄눈 2010/03/10
  16.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2010/03/07

도랑물 소리

from text 2010/11/11 11:05
모든 게 예전 같지 않다. 더는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술이라도 끊어 볼 일이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다른 생각만 하였다. 펄펄 날아다니던 것들은 그날 그것이 아니었다. 묵은 사진이 이야기하는 것이 묵은 시절에 대한 게 아닌 것처럼, 지나간 나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다. 낙엽은 재빨리 움츠리라는 명령,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대 목소리, 어린 체구가 하늘 건너듯 건넌 도랑물 소리보다 멀다.

바둑 2

from text 2010/10/25 19:19
어제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제28회 덕영배 아마대왕전 어린이 부문 예선 겸 2010 어린이 바둑 큰잔치에서 서연이가 1학년부 1위를 차지하며 이번 주 토요일 덕영치과병원에서 열리는 본선에 진출하였다. 8강이 겨루는 이번 본선에서 우승을 한다면 지난 4월 25일 대구광역시바둑협회 초등연맹장배 학생바둑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대구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2학년부터는 우승을 하면 통상 상급 단증을 주니 내년에는 아마도 유단자부에서 자주 대회를 치를 터이다.

월간 바둑을 보다 보면 대구의 바둑 교육에 대해 아주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실상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거기 실린 자료로만 보자면 대구의 바둑교실 수는 타 시도에 비해 상당히 많은 편이나 방과후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서울은 65개교, 경기도는 112개교, 대전이 57개교, 부산이 46개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인천, 전라남도, 강원도가 각 2개교씩 운영하고 있어 별나게 유난을 떨 일은 아니겠지만 경상북도와 더불어 단 한 곳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어째 좀 씁쓸하기도 하다. 그건 그렇고 바람보다 잘 흔들리는 아비를 굳게 잡아준 두 아들에게는 미움보다 큰 빚을 졌다. 요즘 들어 부쩍 느끼는 바다.

* 좀 전 셔츠를 다리다 주머니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종이 뭉치를 발견하였다. 부피를 보아도 그렇고 셔츠 주머니에 있은 걸로 봐도 그렇고 간단한 메모나 어디 술집 전표이거나 할 터인데 도통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잠시나마 궁금하지도 않더니 문득 이렇게 늙어가나, 움켜쥘 어떤 것들도 그저 이렇게 가버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라디오에서는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이 경음악으로 구슬프게 흘러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에게도 많은 빚을 졌다. 아, 그리고 당신에게도. 물론 되갚을 생각은 없다. 누군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고 누군가는 그저 받아먹기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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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from text 2010/10/16 11:43
전시륜의 어느 무명 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을 재미있게 읽었다. 늙어서 꼭 다시 펼쳐보아야지 하면서, 옛날에는 좋았겠다 그랬다. 전시륜보다 멋진 여자들이 넘쳤다. 스무 살 무렵 들은 선배들 이야기가 있다.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때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도 있는데 그럴 때면 상대가 자신이 벗어놓은 신발을 꼭 돌려놓아 주곤 했다는 얘기다. 그 세대는 그랬단다. 그게 통하는 예의였단다. 삼사년 된 일이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자리에 같이 들어가던 이가 내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아 주거나 나란히 신발장에 넣어주던 일이 있었다. 그 손매가 마음만큼이나 예뻤다. 그 마음을 통째로 가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한세상 살다가는 것이 무에 그리 잘나고 지랄난다고 속 쓰고 애태우는지 모를 일이다. 갈데없는 영혼들은 스스로 제 몸을 갈 데까지 밀고 가기도 한다. 찬 바람은 거짓말 같던 여름을 밀어내고 가뭇없이 가버린 것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게 주저앉아 울던 어떤 것들은 떨어져 꽃잎이 되기도 하였고, 가만히 토닥이는 손길에 놀라 달아나기도 하였다.

새벽 네 시, 돌아오는 길목들은 죄다 낯설었다. 내가 제 모습으로 세상을 보는지 세상이 비로소 제 모양을 드러내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랜만에 가이아가 뒤척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 풰스튀봘에게 경배를.

꿈, 가을

from text 2010/09/26 17:05
꿈을 꾸었다. 외딴 변기에 갇힌 꿈. 사타구니를 휘감아 흐르는 물뱀의 서늘함과 미끈함이 오랜 친구 같았다. 가을빛이 이리 시리건만 거기, 물 밖 꿈들은 대체로 안녕한지, 다시 피었다 지기도 하는지, 묻는 말에 거품만 부글거렸다. 대답할 길이 없었다.

가을이다. 결코 정을 나눌 생각은 없지만 최악의 인간상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었고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게 되었다. 수확이라면 이른 수확이다. 피폐한 중에 최성각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를 읽고 몇 권의 책을 주문하였으며, 마루 밑 아리에티, 슈퍼 배드, 무적자, 해결사 등을 보았다. 사진이야 찍거나 말거나 작고 예쁜 디지털 바디가 소원이더니 후지필름이 포토키나 2010에서 발표한 파인픽스 X100 때문에 모처럼 가슴 두근거리며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내년 3월은 되어야 출시될 모양이니 그전에 나올 여러 모델들과 비교하며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하겠다. 여전히 사는 건 녹록치 않고 간밤 꿈에 낮으로 시달리기도 하지만, 가을빛을 보니, 세상은 참으로 지내볼 만한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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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탄생

from text 2010/08/18 21:39
비가 달라졌다. 기후가 바뀐 것이든(TV, 에어컨, 차 없이 잘(?) 살고 있으나 이참에 에어컨은 장만할 생각이다. 올해도 여러 번 망설이다 그냥 지나가지만 내년에 다시 오락가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적어둔다) 원래 그런 것이었든 지금껏 알고 좋아하던 그 비는 아닌 게 분명하다. 가벼운 인두염인 줄 알았더니 며칠째 열이 내리지 않아 소아병원에 입원한 서율이를 두고 집으로 오던 길, 우산을 들고도 시장 네거리 마트 앞에 서서 비를 피하며 그 생각을 하였다. 늦은 밤, 저녁을 굶은 속에 들이키는 깡통 맥주는 저 혼자 출렁거렸고 포도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길대로 흐르기를 거부하였다. 모퉁이를 돌아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제멋대로 내달렸다.

지난 일요일 서연이와 오션스를 보았을 때, 그게 다 존재가 외롭고 슬퍼서 그런 거라 했었다. 바다 생물들이 떼를 지어 어떤 형상을 만들고 무리지어 내달리거나 거대한 몸체를 솟구치며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술을 먹고 미친 듯이 노래를 부르거나 어두운 골목길에 쭈그려 앉아 몰래 울음을 토해내는 모습을 닮아 있다. 그렇게 취하고 소리 지르며 울거나 알아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 거기 있는 것이다. 스크린 너머, 짐승의 젖은 눈망울 속에는 비리고 날 선 우리의 욕망과 거울처럼 까맣게 타들어가는 또 다른 초상이 교차하고 있었다.

몽골 여행 전후 전인권의 남자의 탄생을 읽었다. 진작 이 흥미롭고 감미로운 책을 제목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읽다 발견하고 할끔할끔 핥아 읽었다. 무엇이든 탐독하던 한때처럼 밑줄 그을 일이 많았다. 다 밑줄을 칠 순 없는 노릇이라 아껴가며 읽는 맛이 더했다. 이 사유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자유를 들먹이는 것은 얼마나 가소로운 일일 것인가. 자라온 지난날과 그에 비추어 앞날을 반추하는 것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가 스스로와 세상을 더 끔찍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모래언덕처럼

from text 2010/08/12 18:13
지난주 월요일, 몽골에서 돌아온 날 저녁, 사무실 회식을 시작으로 수요일과 금요일 늦게까지 많은 술을 마셨고, 어제, 그제, 그끄제 내리 사흘 또 피할 수 없는 술자리를 가졌다. 고비 사막에서의 첫날, 몽골인 가이드 어기의 재담과 몽골 사람들의 유목민풍 노래에 취하고 급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와 몽골 보드카에 취한 이후 넓거나 깊어진 것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돌아온 게 이제야 납득이 되고 실감이 간다. 사람은 얼마나 관대할 수 있고 어디까지 추할 수 있을까. 울림 큰 가락을 타고 언제 뜨거웠냐는 듯 곳곳에서 식은 바람이 모여드는데 나는 홀로 모래언덕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세상엔 하현을 향하는 달만 멀쩡하였고, 눈이 마주치자 흐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은 이광구가 엮은 조훈현과의 대화에서 조훈현.

편한 대로 이해하세요. 그러나 일상적인 의미에서 착하다는 것과 승부에서 마음이 여리다는 것하고는 다릅니다. 착한 사람은 승부끼가 없고 나쁜 사람이라야 승부에 강하다는 그런 얘기는 아닙니다. 착한 사람이 승부에서는 더 지독해지고 더 처절한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은 아니고 저도 어디선가 읽은 얘기인데, 저도 잘 모르는 얘기를 하자니 좀 쑥스럽습니다만, 승부는 말하자면 결단의 연속인데, 결단이란 요컨대 '선의의 의지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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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from text 2010/07/13 02:07
나는 살겠다 말하거라. 혹시 죽게 되어도 그것이 내 뜻이 아니라 말하거라. 허니 편안하게 가시라 말씀드려라. 내게 그분을 살릴 힘이 없으니 그것이 한이다 말씀드려라. 그러나 내가 이제 세상을 알았다 또한 말씀드려라. 저들이 저들의 죄로 살고 죽는 것을 내가 두 눈 뜨고 다 보리라 말씀드려라.

그리되기 어려울 것이나 혹시 그럴 길이 있다면…… 무엇을 팔아서라도 목숨을 구하시라 전하거라. 그것이 내가 서찰에 쓰고자 했던 말이었음을…… 네가 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거라.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오직 한마디뿐이다. 좋은 세상에서 만났다면, 나 또한 이런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내가 그저 물 흐르는 마음으로만 살았으리라…….

김인숙의 소현 중에서, 어쩌면 책의 전체 맥락에서 가장 동떨어진 한 대목. 첫 장부터 읽는 내내 김훈이 자꾸만 떠올랐으나, 문장과 그 문장이 이룬 세계에 쭈욱 빨려들고 말았다. 갑작스런 인사이동으로 터가 바뀐 탓에 어울리잖게 영 짬이 안 나고 여유가 없더니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가, 쓸 말은 없으되 모처럼 늦은 밤에 마주하는 자판이 정겹다. 언제 그랬던가. 칠월의 밤이 좋고 가벼운 빗밑이 좋다. 그래, 가벼울 나이도 되었지. 누구든 어린 날은 충분히 무거웠고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으니.

고슴도치

from text 2010/06/22 16:51
또래보다 덩치는 배로 큰 데다 갈수록 고집도 생기고 저지레가 늘어 그간 봐주시던 어머니의 힘이 부쳐 결국 두 살배기 서율이 녀석이 지난 17일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멀지 않은 곳에 믿음직한 어린이집이 있어 다행이다. 이곳에서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날의 프로그램을 각각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려놓는데, 보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다. 보다 보면 그저 벙싯벙싯 웃기도 하고 마음이 짠해 무언가 사무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첫날, 잘 적응하는지 궁금해 전화를 한 0124님에게 보육교사는 이렇게 말했단다. 처음 잠깐 울먹이더니 잘 적응하고 있다, 참 점잖다, 수업 태도도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다. 점잖다는 거야 곧 실체를 알게 될 터이고, 수업 태도며 집중력이라니 헛웃음이 나오며 어이가 없었지만, 동영상을 보고서는 역시,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서연이를 그리 보았건만 이놈의 고슴도치는 반성할 줄을 모른다.

* 이게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저게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것들도 지나고 나면 다 그저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살아간다. 애써 찾지도 않는다. 모처럼 재미있게 읽은 책 하나.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 상식인의 훌륭한 전거를 제대로 마련해 주었다. 스스로 너나 네 정신머리는 이미 늙어버린 건 아닌지 때때로 물어볼 일이다. 아무렴.

from text 2010/05/30 01:08
보라, 결국 계절은 제자리를 찾았다. 잦은 바람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누가 뭐래도 세상은 아랑곳없다. 별 탈도 뒤탈도 없다. 흥미로운 일도 새삼스러울 일도 없다. 그렇게, 건조한 미라의 가슴을 안고 이창동의 시를 보았고 애거서 크리스티의 단편 추리소설 몇 편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죄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펄펄 끓던 시절, 나에게도 앤톨리니 같은 선생이 있었거나 그때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다. 그뿐이었다). 직장에서는 어쨌든 10년 근속상을 받았고, 이날과 몇몇 핑계거리가 있는 날엔 많은 술을 마셨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다가 그게 무언지 몰라 주춤거렸으며 버릇대로 일찍 취해갔다. 달라진 게 있다면 부끄러움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저녁으로 한두 시간씩 서연이의 바둑을 보는 게 낙이라면 낙이다. 닭 모가지를 베고 자는지 잠도 꿈도 짧아졌고 무기력함과 건망만 늘었다. 젠장, 길이 있는데 길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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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from text 2010/05/16 01:01
1박 2일 직장 연수를 떠난 0124님 덕분에 오롯이 서연이랑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이런저런 궁리 끝에 신천 둔치에서 열린 노무현 1주기 추모 콘서트엘 다녀왔다. 여러모로 잡탕의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몇 차례나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처음 마주쳤을 때 선뜻 알은체를 못하여 끝내 인사도 못 차리고는 내내 이윤갑 선생님 내외분(임에 틀림없다. 두 분의 고운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옆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언뜻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도, 아니 어떠한 순결하고 고귀한 신념이나 가치 체계도 구체적인 질감, 말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모양을 넘어설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 순서로 'Power to the People' 합창이 끝나고는 여러 핑계를 안고 집 근처 막창나루로 향했다. 그러나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섞어 먹는 동안, 토요일 밤의 고즈넉한 술집에서 한세상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빈자리엔 부자간의 정과 서로간의 투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은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한 대목. 읽지도 사지도 않았지만, 이 블로그에 하나쯤 더 올려놓아도 좋겠다. 그의 진정이 애달프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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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from text 2010/05/09 23:08
얼마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름에 비해 큰 감흥은 없었고, 고마코의 허무한 정열, '헛수고'만이 가슴에 아렸다. 요 며칠 칠곡을 오가면서는 동네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박철상의 세한도를 읽고 있는데, 집에서는 덕분에 전에 읽다가 둔 문용직의 바둑의 발견을 새로 읽게 되었다. 좀 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민병산이 번역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에 붙은 신경림의 해설에 나오는 얘기인 모양이다. 하긴 산다는 건 정말이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나의 삶만을 살 수 없다는 데 인생의 곡절과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건 더욱 바둑처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둑이란 무엇일까. 한때 신경림 시인이 '설국'을 바탕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별로 재미없다고 하였을 때의 민병산 선생 말씀대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도 어쩌면 바둑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거기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고, 아무 쓰잘데없는 것을 가지고 공연스레 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있을 수 없고……. 하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런 거니까."

소식

from text 2010/04/28 06:36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 금태섭의 디케의 눈, 박정석의 바닷가의 모든 날들을 달아서 읽었다. 셋 다 기대한 것과는 다소 달랐으나 주변을 돌아보고 성찰하기에 충분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누군가 잘못 윤색한 것처럼 단조로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풍부한 사례들이 정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가슴 밑바닥을 건들며 태만과 안주를 요동치게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책장을 덮은 게 언제라고 그새 나와 내 가족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민도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경쟁(만)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뒤처지고 덜떨어졌는지는 디케의 눈에도 잘 나와 있다. 최근 접하는 그의 글들에 못 미치는 글발이 아쉽지만, 여기에도 인상적인 대목이 더러 있었다. 콘크리트 더미와 팍팍한 삶에 마음이 유순해진 걸까. 바닷가의 모든 날들도 읽을만한 대목들만 좋게 보았다.

지난주 송아지로부터 공룡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근 이십여 년 만인데 반가운 마음에 대뜸 전화 통화부터 하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무언가가 통통 튀어다녔다. 늑대, 달구, 둘리, 마왕, 삐삐, 얼룩말, 오리, 그 시절엔 어찌 그리 동물들과 특이한 생명체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이른 시간 안에 공룡이 넉넉하게 근거지를 틀고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를 방문할 수 있기를.

꽃, 별, 바람

from text 2010/04/18 23:26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기발하고 기지로 가득 찬 문장들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그야말로 거대하고 중대한 농담 덩어리이다. 울적하거나 쓸쓸하고, 때로 사는 일이 한없이 허무하거나 어이없을 때, 지루한 나날에,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들춰보기 좋은 책이다(특히 우울증에 걸린 로봇, 마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200쪽이 넘는 합본호를 사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까지 700여 쪽을 단숨에(여러 번 나누어 읽었음에도, 그렇게 느껴진다) 읽었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와 대체로 무해함은 남겨둘 생각이다. 보험처럼 넣어뒀다 언제든 필요할 때 써먹을 작정인 것이다. 사실 잘 알 순 없지만 줄곧 번역이 참 매끄럽고 좋다는 드문 느낌도 받았다.

박범신의 에세이집 산다는 것은이 좋았다. 오래전 연작소설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보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였다가 이번에 또, 다시 보게 되었다. 늙는다는 것과 나의 삶에 대한 위안도 얻었다. 책장을 덮고, 조금 전, 흰 소가 끄는 수레를 꺼내 잠시 뒤적거린다는 것이 한 편을 다 읽고 말았다. 이번 에세이집과 여러모로 맥이 통하고 있었다. 서른에 읽었을 때는 무엇을 보았는지 좋게 본 기억만 있었는데, 이제 마흔이 넘어 다시 읽으니 폐부를 찌르는 듯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읽고 둔 책들이라도 간혹 꺼내볼 일이다.

그저께는 출항 일정이 잡힌 준탱이 녀석을 붙들고 밤새 술을 마셨더니, 깨고 보니 오늘인 듯 여태 멍멍하다. 요즘 들어 몸이 하는 말에 부쩍 귀를 기울이면서도 복명은 고사하고 복창도 아직 멀었단 말인가 싶으면서도 핑계거리도 줄었는데 어쩌나 하마 걱정이다.

이 봄

from text 2010/04/11 22:11
바랜 채 와서는 흔적 없이 기우는 이 봄, 왜 그런고 했더니, 설레지 마라 이르는 것이더라. 설렐 것 없다 굳이 타이르는 것이더라.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을지라도 멋진 문장을 만나 밑줄 하나 조심스레 긋는 것이, 다시 펼칠 일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책장을 덮으며 가슴 한쪽 여미는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더라. 천만번도 더 이지러지고 차올랐을 푸석한 꿈, 놓을 자리 어드멘가.

어제 오전 준탱이, 서연이와 함께 앞산엘 올랐다. 충혼탑으로부터 산성산 정상을 거쳐 고산골로 내려왔다. 오르는 길은 완만하였으나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내심 첫 번째 만나는 약수터쯤에서 발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흐리고 선선한 날씨에 서연이도 잘 걸어줘 모처럼 제대로 산행한 기분이 났다. 벚꽃은 개화가 늦었다지만 진달래는 이미 한창이었다. 고산골에서 족발과 닭 한 마리에다 동동주 한 되를 나눠 먹고 이른 취기를 달래며 신천을 따라 대봉교까지 걸었다. 서연이를 인계한 밤에는 동네 어귀에서 조용필의 베스트를 들으며 막창에 소맥으로 오지 않은 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 잔뜩 구겨진 달이 서둘러 지고 있었다.

봄눈

from text 2010/03/10 23:05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삼월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양으로 오십삼 년 만의 기록이라는데, 9.5센티미터가 넘게 쌓였다고 한다. 출근길, 730번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서 차를 돌렸고 우산이나 휴대 전화를 들고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설악산의 눈이 생각났다. 금세 세상이 이렇게 온통 하얘질 줄 누가 알았으랴. 더는 배울 줄 모르는 무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만 같았다.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과 받드는 나무들이 예뻤다.

봄눈은 봄눈이었던가. 오후의 짧은 볕에도 세상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퇴근길에는 꿈을 꾼 듯 먼 옛일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재작년 11월에 사다놓고 표지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져두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며칠 동안 읽었다. 김연수가 문득문득 떠올랐으나 그와 달리 불쾌한 구석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이었다. 특히 여섯 번째 구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소통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독법일런가. 내내 오스카와 서연이가 겹쳤고, 나는 오스카가 되었다가 서연이가 되었다가 하였다. 물론 토머스도 되었고 슈미츠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 눈길에 미끄러져 가련한 내 사랑이 부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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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from text 2010/03/07 23:40
올봄은 유난히 비가 잦은 것 같다. 늘 그랬는지도, 늘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만, 비 오는 날마다 술을 먹다가는 새로 겨울눈 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였다. 삼월 첫 토요일, 오전 내 흐리기만 하던 하늘이 막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할 즈음 사촌 여동생 결혼식에 들렀다(오전에는 갓 입학한 서연이의 하교를 기다려 집으로 데려왔다. 일학년 이반 교실에 앉은 녀석의 가늠할 길 없는 포스를 잠시 지켜볼 수 있었다). 고향집을 지키고 계시는 작은 아버지의 막내딸 결혼식인데, 얼굴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마을 분들도 오시고 몇 년 만에야 가끔 뵙는 일가 어른들도 오셨다. 다른 집 대소사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한번씩 이 같은 일을 치를 때면 가족이란 게 뭔지, 가족사란 게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린 기분에 젖곤 한다.

0124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는 친구네 안사람이 딸, 아들 대동하여 놀러온다기에 불편할까 하여 다시 집을 나섰다. 우산을 챙기지 않고 서둘러 나선 길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정처가 없던 차 마침 신호에 걸린 노선버스에 냉큼 올라타고는 얼마 전 서연이와 하치 이야기를 볼 때 예고편을 보았던 밀크나 볼까 하고 시내 극장가로 나갔으나 걸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개봉한 줄 몰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상영하고 있어 잘 되었다 하였는데 붐비기도 하고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3D로 보았을 때의 감흥도 그렇고 3D가 시간대도 좋았으나 혼자 시커먼 안경을 덧쓰고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쑥스러워 두어 시간 남은 2D 표를 끊어두고는 저녁으로 스테프 핫도그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었다. 좀 걷고 싶었으나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갈피 없는 마음도 제멋대로 서성이어 이놈의 것, 상영관 입구 딱딱한 의자에 꽁꽁 동여매고는 나도 의자처럼 내처 앉아 있었다.

디즈니를 만난 팀 버튼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도 보았으나, 그래도 팀 버튼은 팀 버튼이었다. 조니 뎁도 어쨌든 조니 뎁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돌아가는 앨리스를 보는 그의 눈빛, 아주 잠깐 스치는 그 표정이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게다. 대부분의 그럴듯한 잠언들은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가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박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는지 아직 이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걸었던 건 늘 나의 전부였다. 걸 때마다 이겼냐고? 걸 때마다 졌으되 그들은 나의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다. 전부를 걸어도 나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의 전부를 알았는가. 글쎄, 어쨌든, 버릇처럼 전부를 거는 버릇은 덕분에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나의 일부도 모르고 아무것도 걸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 오늘은 모처럼 서연이와 바둑 두 판을 두었다. 두 점을 접어주고 있었는데, 맞바둑까지 두 판 모두 만방으로 지고 말았다. 기력이 한참 정체되어 있더니 부쩍 는 표가 났다. 이제 두 점, 석 점 내가 흑돌을 늘어놓을 일만 남았다.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와 서숙의 산문집 따뜻한 뿌리를 읽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을 볼 때면 전망이네, 과학이네, 자연이네, 뭐네, 이것저것 다 떠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진다. 필경사 바틀비에서는 바틀비의 단 이 한 문장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