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출근길. 아빠, 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난데없는 물음에, 음, 백 살? 하고 대답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되물었다. 서연이는? 이즈음 어린 철학자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아빠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더 하지 못하고, 그저 겨울 아침 공기가 후끈한 것만 같았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워서 갑자기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 죽으면 서율이는 어떻게 해? 만약에 죽으면 어떡하냐고? 아빠도 죽을 거잖아? 했었다. 부쩍 그쪽으로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나더러 이백 살까지 살란다. 저와 나의 나이 차를 꼽아보더니 자기는 백예순여섯까지 살 거라며. 서율이도 봐야 하니 너는 더 오래 살아라 했더니 그예 콧잔등이며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이갑용의 길은 복잡하지 않다와 신현칠의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를 달아서 읽었다. 눈앞이 뿌예지고 가슴이 먹먹해 책에서 눈을 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주변이 온통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지만, 대개 한 줌의 부와 한 주먹도 안 되는 기득권에 기대 제 존재와 그 기반을 배반하는 가련함과 가상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 터럭의 안락에 기대 예의와 염치로부터 순정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외면하고 욕망의 심층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도 시대요, 유행인가. 이제 누가 있어 세계를 마음껏 재구성해 보란다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떡하니 그려낼 수나 있을까. 다음은 신현칠이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관한 책에서 보았다는 시구.
나는 신을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고통하는 형제들을 만나서 / 신도 그리스도도 형제도 보았다. /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 걸어가기 시작했다.
* 처음 사진집을 샀다. 재출간된 전몽각의 윤미네 집. 따뜻한 시선이 잔뜩 묻어나는 사진만큼이나 잔잔한 기품이 배어나는 글도 좋았다.
* 일요일 오후, 서연이와 함께 꼬마 니콜라를 보았다. 오랜만의 프랑스 영화, 제대로 킹왕짱이었다. 서연이도 벼랑 위의 포뇨 이후 가장 유쾌하게 본 듯.
그보다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워서 갑자기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 죽으면 서율이는 어떻게 해? 만약에 죽으면 어떡하냐고? 아빠도 죽을 거잖아? 했었다. 부쩍 그쪽으로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나더러 이백 살까지 살란다. 저와 나의 나이 차를 꼽아보더니 자기는 백예순여섯까지 살 거라며. 서율이도 봐야 하니 너는 더 오래 살아라 했더니 그예 콧잔등이며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이갑용의 길은 복잡하지 않다와 신현칠의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를 달아서 읽었다. 눈앞이 뿌예지고 가슴이 먹먹해 책에서 눈을 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주변이 온통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지만, 대개 한 줌의 부와 한 주먹도 안 되는 기득권에 기대 제 존재와 그 기반을 배반하는 가련함과 가상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 터럭의 안락에 기대 예의와 염치로부터 순정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외면하고 욕망의 심층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도 시대요, 유행인가. 이제 누가 있어 세계를 마음껏 재구성해 보란다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떡하니 그려낼 수나 있을까. 다음은 신현칠이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관한 책에서 보았다는 시구.
나는 신을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고통하는 형제들을 만나서 / 신도 그리스도도 형제도 보았다. /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 걸어가기 시작했다.
* 처음 사진집을 샀다. 재출간된 전몽각의 윤미네 집. 따뜻한 시선이 잔뜩 묻어나는 사진만큼이나 잔잔한 기품이 배어나는 글도 좋았다.
* 일요일 오후, 서연이와 함께 꼬마 니콜라를 보았다. 오랜만의 프랑스 영화, 제대로 킹왕짱이었다. 서연이도 벼랑 위의 포뇨 이후 가장 유쾌하게 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