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에 해당되는 글 399건

  1. 사람 사는 세상 2010/05/16
  2. 산다는 건 2010/05/09
  3. 소식 2010/04/28
  4. 꽃, 별, 바람 2010/04/18
  5. 이 봄 2010/04/11
  6. 봄눈 2010/03/10
  7.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2010/03/07
  8. 사계 4 2010/02/27
  9. 어린 철학자 2010/01/31
  10. 가감단연 2010/01/11
  11. 수선화 2010/01/01
  12. 근황 2 2009/12/22
  13. 열하일기 2009/12/10
  14. 그때는 2009/11/22
  15. 대화 3 2009/11/14
  16. 노래 2009/10/26

사람 사는 세상

from text 2010/05/16 01:01
1박 2일 직장 연수를 떠난 0124님 덕분에 오롯이 서연이랑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이런저런 궁리 끝에 신천 둔치에서 열린 노무현 1주기 추모 콘서트엘 다녀왔다. 여러모로 잡탕의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몇 차례나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처음 마주쳤을 때 선뜻 알은체를 못하여 끝내 인사도 못 차리고는 내내 이윤갑 선생님 내외분(임에 틀림없다. 두 분의 고운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옆에서 공연을 지켜보았다. 언뜻 어떤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프로파간다도, 아니 어떠한 순결하고 고귀한 신념이나 가치 체계도 구체적인 질감, 말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람 사는 모양을 넘어설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마지막 순서로 'Power to the People' 합창이 끝나고는 여러 핑계를 안고 집 근처 막창나루로 향했다. 그러나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을 섞어 먹는 동안, 토요일 밤의 고즈넉한 술집에서 한세상은 금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빈자리엔 부자간의 정과 서로간의 투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은 유시민이 정리한 노무현의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한 대목. 읽지도 사지도 않았지만, 이 블로그에 하나쯤 더 올려놓아도 좋겠다. 그의 진정이 애달프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년 정치인생을 돌아보았다. 마치 물을 가르고 달려온 것 같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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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from text 2010/05/09 23:08
얼마 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름에 비해 큰 감흥은 없었고, 고마코의 허무한 정열, '헛수고'만이 가슴에 아렸다. 요 며칠 칠곡을 오가면서는 동네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박철상의 세한도를 읽고 있는데, 집에서는 덕분에 전에 읽다가 둔 문용직의 바둑의 발견을 새로 읽게 되었다. 좀 전에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민병산이 번역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명인에 붙은 신경림의 해설에 나오는 얘기인 모양이다. 하긴 산다는 건 정말이지 그런 건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나의 삶만을 살 수 없다는 데 인생의 곡절과 어려움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산다는 건 더욱 바둑처럼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바둑이란 무엇일까. 한때 신경림 시인이 '설국'을 바탕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별로 재미없다고 하였을 때의 민병산 선생 말씀대로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도 어쩌면 바둑 같은 것인지도 모르지. 거기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고, 아무 쓰잘데없는 것을 가지고 공연스레 기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재미없는 소설이 있을 수 없고……. 하긴 산다는 것 자체가 다 그런 거니까."

소식

from text 2010/04/28 06:36
박성숙의 꼴찌도 행복한 교실, 금태섭의 디케의 눈, 박정석의 바닷가의 모든 날들을 달아서 읽었다. 셋 다 기대한 것과는 다소 달랐으나 주변을 돌아보고 성찰하기에 충분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특히 꼴찌도 행복한 교실은 누군가 잘못 윤색한 것처럼 단조로운 문체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풍부한 사례들이 정신의 깊은 곳에서부터 가슴 밑바닥을 건들며 태만과 안주를 요동치게 하였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함께 고민해봤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였다. 책장을 덮은 게 언제라고 그새 나와 내 가족이 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고민도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고 말았지만. 경쟁(만)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이 사회가 얼마나 뒤처지고 덜떨어졌는지는 디케의 눈에도 잘 나와 있다. 최근 접하는 그의 글들에 못 미치는 글발이 아쉽지만, 여기에도 인상적인 대목이 더러 있었다. 콘크리트 더미와 팍팍한 삶에 마음이 유순해진 걸까. 바닷가의 모든 날들도 읽을만한 대목들만 좋게 보았다.

지난주 송아지로부터 공룡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근 이십여 년 만인데 반가운 마음에 대뜸 전화 통화부터 하였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고, 무언가가 통통 튀어다녔다. 늑대, 달구, 둘리, 마왕, 삐삐, 얼룩말, 오리, 그 시절엔 어찌 그리 동물들과 특이한 생명체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이른 시간 안에 공룡이 넉넉하게 근거지를 틀고 있는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시실리를 방문할 수 있기를.

꽃, 별, 바람

from text 2010/04/18 23:26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기발하고 기지로 가득 찬 문장들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그야말로 거대하고 중대한 농담 덩어리이다. 울적하거나 쓸쓸하고, 때로 사는 일이 한없이 허무하거나 어이없을 때, 지루한 나날에,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시간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들춰보기 좋은 책이다(특히 우울증에 걸린 로봇, 마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200쪽이 넘는 합본호를 사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까지 700여 쪽을 단숨에(여러 번 나누어 읽었음에도, 그렇게 느껴진다) 읽었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젊은 자포드 안전하게 처리하다와 대체로 무해함은 남겨둘 생각이다. 보험처럼 넣어뒀다 언제든 필요할 때 써먹을 작정인 것이다. 사실 잘 알 순 없지만 줄곧 번역이 참 매끄럽고 좋다는 드문 느낌도 받았다.

박범신의 에세이집 산다는 것은이 좋았다. 오래전 연작소설집 흰 소가 끄는 수레를 보고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하였다가 이번에 또, 다시 보게 되었다. 늙는다는 것과 나의 삶에 대한 위안도 얻었다. 책장을 덮고, 조금 전, 흰 소가 끄는 수레를 꺼내 잠시 뒤적거린다는 것이 한 편을 다 읽고 말았다. 이번 에세이집과 여러모로 맥이 통하고 있었다. 서른에 읽었을 때는 무엇을 보았는지 좋게 본 기억만 있었는데, 이제 마흔이 넘어 다시 읽으니 폐부를 찌르는 듯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읽고 둔 책들이라도 간혹 꺼내볼 일이다.

그저께는 출항 일정이 잡힌 준탱이 녀석을 붙들고 밤새 술을 마셨더니, 깨고 보니 오늘인 듯 여태 멍멍하다. 요즘 들어 몸이 하는 말에 부쩍 귀를 기울이면서도 복명은 고사하고 복창도 아직 멀었단 말인가 싶으면서도 핑계거리도 줄었는데 어쩌나 하마 걱정이다.

이 봄

from text 2010/04/11 22:11
바랜 채 와서는 흔적 없이 기우는 이 봄, 왜 그런고 했더니, 설레지 마라 이르는 것이더라. 설렐 것 없다 굳이 타이르는 것이더라.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을지라도 멋진 문장을 만나 밑줄 하나 조심스레 긋는 것이, 다시 펼칠 일 없다 하더라도 그렇게 책장을 덮으며 가슴 한쪽 여미는 것이 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더라. 천만번도 더 이지러지고 차올랐을 푸석한 꿈, 놓을 자리 어드멘가.

어제 오전 준탱이, 서연이와 함께 앞산엘 올랐다. 충혼탑으로부터 산성산 정상을 거쳐 고산골로 내려왔다. 오르는 길은 완만하였으나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내심 첫 번째 만나는 약수터쯤에서 발을 돌리게 되지 않을까 했는데, 흐리고 선선한 날씨에 서연이도 잘 걸어줘 모처럼 제대로 산행한 기분이 났다. 벚꽃은 개화가 늦었다지만 진달래는 이미 한창이었다. 고산골에서 족발과 닭 한 마리에다 동동주 한 되를 나눠 먹고 이른 취기를 달래며 신천을 따라 대봉교까지 걸었다. 서연이를 인계한 밤에는 동네 어귀에서 조용필의 베스트를 들으며 막창에 소맥으로 오지 않은 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 잔뜩 구겨진 달이 서둘러 지고 있었다.

봄눈

from text 2010/03/10 23:05
밤새 많은 눈이 내렸다. 삼월 적설량으로는 기상관측 이래 두 번째로 많은 양으로 오십삼 년 만의 기록이라는데, 9.5센티미터가 넘게 쌓였다고 한다. 출근길, 730번 버스는 종점까지 가지 못하고 큰길에서 차를 돌렸고 우산이나 휴대 전화를 들고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설악산의 눈이 생각났다. 금세 세상이 이렇게 온통 하얘질 줄 누가 알았으랴. 더는 배울 줄 모르는 무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것만 같았다. 눈밭을 구르는 아이들과 받드는 나무들이 예뻤다.

봄눈은 봄눈이었던가. 오후의 짧은 볕에도 세상은 너무나 빨리 사라져버렸다. 퇴근길에는 꿈을 꾼 듯 먼 옛일처럼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재작년 11월에 사다놓고 표지도 구성도 마음에 안 들어 던져두었던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며칠 동안 읽었다. 김연수가 문득문득 떠올랐으나 그와 달리 불쾌한 구석은 없었다. 엄청나게 재미있고 믿을 수 없게 서정적이었다. 특히 여섯 번째 구 이야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랑은 고백이 아니라 행위일 것이다. 소통도 언어가 아니라 몸짓일지 모른다. 어쩔 수 없는 독법일런가. 내내 오스카와 서연이가 겹쳤고, 나는 오스카가 되었다가 서연이가 되었다가 하였다. 물론 토머스도 되었고 슈미츠가 되기도 하였다. 거기 눈길에 미끄러져 가련한 내 사랑이 부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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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from text 2010/03/07 23:40
올봄은 유난히 비가 잦은 것 같다. 늘 그랬는지도, 늘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만, 비 오는 날마다 술을 먹다가는 새로 겨울눈 보기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였다. 삼월 첫 토요일, 오전 내 흐리기만 하던 하늘이 막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할 즈음 사촌 여동생 결혼식에 들렀다(오전에는 갓 입학한 서연이의 하교를 기다려 집으로 데려왔다. 일학년 이반 교실에 앉은 녀석의 가늠할 길 없는 포스를 잠시 지켜볼 수 있었다). 고향집을 지키고 계시는 작은 아버지의 막내딸 결혼식인데, 얼굴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마을 분들도 오시고 몇 년 만에야 가끔 뵙는 일가 어른들도 오셨다. 다른 집 대소사에서도 종종 그렇지만 한번씩 이 같은 일을 치를 때면 가족이란 게 뭔지, 가족사란 게 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린 기분에 젖곤 한다.

0124님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는 친구네 안사람이 딸, 아들 대동하여 놀러온다기에 불편할까 하여 다시 집을 나섰다. 우산을 챙기지 않고 서둘러 나선 길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정처가 없던 차 마침 신호에 걸린 노선버스에 냉큼 올라타고는 얼마 전 서연이와 하치 이야기를 볼 때 예고편을 보았던 밀크나 볼까 하고 시내 극장가로 나갔으나 걸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개봉한 줄 몰랐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상영하고 있어 잘 되었다 하였는데 붐비기도 하고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을 3D로 보았을 때의 감흥도 그렇고 3D가 시간대도 좋았으나 혼자 시커먼 안경을 덧쓰고 앉아 있을 생각을 하니 아무래도 쑥스러워 두어 시간 남은 2D 표를 끊어두고는 저녁으로 스테프 핫도그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먹었다. 좀 걷고 싶었으나 비는 계속 오락가락하고 갈피 없는 마음도 제멋대로 서성이어 이놈의 것, 상영관 입구 딱딱한 의자에 꽁꽁 동여매고는 나도 의자처럼 내처 앉아 있었다.

디즈니를 만난 팀 버튼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이도 보았으나, 그래도 팀 버튼은 팀 버튼이었다. 조니 뎁도 어쨌든 조니 뎁이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돌아가는 앨리스를 보는 그의 눈빛, 아주 잠깐 스치는 그 표정이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도 아닐 게다. 대부분의 그럴듯한 잠언들은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다. 하나마나한 얘기가 아니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도박을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는지 아직 이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걸었던 건 늘 나의 전부였다. 걸 때마다 이겼냐고? 걸 때마다 졌으되 그들은 나의 전부를 가져가지 않았다. 전부를 걸어도 나의 전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의 전부를 알았는가. 글쎄, 어쨌든, 버릇처럼 전부를 거는 버릇은 덕분에 없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 나의 일부도 모르고 아무것도 걸 수가 없게 되고 말았다.

* 오늘은 모처럼 서연이와 바둑 두 판을 두었다. 두 점을 접어주고 있었는데, 맞바둑까지 두 판 모두 만방으로 지고 말았다. 기력이 한참 정체되어 있더니 부쩍 는 표가 났다. 이제 두 점, 석 점 내가 흑돌을 늘어놓을 일만 남았다. 허먼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와 서숙의 산문집 따뜻한 뿌리를 읽었다.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책들을 볼 때면 전망이네, 과학이네, 자연이네, 뭐네, 이것저것 다 떠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워진다. 필경사 바틀비에서는 바틀비의 단 이 한 문장이 오래 잊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사계 4

from text 2010/02/27 10:10
저 아득한 고어 너머 그를 찾아갔으나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시가 되지는 않았다. 니은자로 구부러져 너는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고, 나의 지갑엔 교통카드와 복권 세 줄, 그리고 낡은 꿈이 접혀져 있었다. 어쩌면 봄비가 그렇게 들이치는 날이었다. 피곤한 네가 잠시 몸을 뒤척일 때 천지가 놓였다 들렸다. 어째서 이것은 시가 되지 못하는가. 그때, 봄 마중 간 날 저녁으로부터의 긴 꿈. 그래, 너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것을. 채비가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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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철학자

from text 2010/01/31 00:50
며칠 전 출근길. 아빠, 아빠는 몇 살까지 살고 싶어? 난데없는 물음에, 음, 백 살? 하고 대답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되물었다. 서연이는? 이즈음 어린 철학자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아빠 죽을 때까지. 아무 말도 더 하지 못하고, 그저 겨울 아침 공기가 후끈한 것만 같았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자려고 누워서 갑자기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하여 이유를 물었더니, 엄마 죽으면 서율이는 어떻게 해? 만약에 죽으면 어떡하냐고? 아빠도 죽을 거잖아? 했었다. 부쩍 그쪽으로 생각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은 나더러 이백 살까지 살란다. 저와 나의 나이 차를 꼽아보더니 자기는 백예순여섯까지 살 거라며. 서율이도 봐야 하니 너는 더 오래 살아라 했더니 그예 콧잔등이며 눈시울이 빨갛게 부어오른다.

이갑용의 길은 복잡하지 않다와 신현칠의 변하지 않는 것을 위하여 변하고 있다를 달아서 읽었다. 눈앞이 뿌예지고 가슴이 먹먹해 책에서 눈을 뗄 수밖에 없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나를 포함하여 주변이 온통 자유로울 수 없는 일이지만, 대개 한 줌의 부와 한 주먹도 안 되는 기득권에 기대 제 존재와 그 기반을 배반하는 가련함과 가상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한 터럭의 안락에 기대 예의와 염치로부터 순정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외면하고 욕망의 심층에 무릎을 꿇고 마는 것도 시대요, 유행인가. 이제 누가 있어 세계를 마음껏 재구성해 보란다면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떡하니 그려낼 수나 있을까. 다음은 신현칠이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에 관한 책에서 보았다는 시구.

나는 신을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려고 찾았지만 / 보이지 않았다. / 나는 고통하는 형제들을 만나서 / 신도 그리스도도 형제도 보았다. / 그리고 우리들은 함께 / 걸어가기 시작했다.

* 처음 사진집을 샀다. 재출간된 전몽각의 윤미네 집. 따뜻한 시선이 잔뜩 묻어나는 사진만큼이나 잔잔한 기품이 배어나는 글도 좋았다.

* 일요일 오후, 서연이와 함께 꼬마 니콜라를 보았다. 오랜만의 프랑스 영화, 제대로 킹왕짱이었다. 서연이도 벼랑 위의 포뇨 이후 가장 유쾌하게 본 듯.

가감단연

from text 2010/01/11 20:53
지난 주말 오랜 이 치료를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이월부터였으니 꼬박 열한 달 만이다. 젠장맞을 이천구 년도 그예 저물었다.

심신이 많이 약해진 듯, 한번 시작한 미열은 오래 지속되고 약해진 심장은 작은 일에도 무턱대고 뛰고 본다. 나비처럼 팔랑대던 청춘들은 노란 불빛 앞으로 몰려가 저 먼저 부서졌다. 흔들리던 길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고 불빛은 빛나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려나, 진보의 가치나 조화로운 삶의 가능성을 더는 믿지 않든 어쨌든 우선 좀 더 정직하고 볼 일이다. 끊을 건 끊고 이을 건 이어야 할 모양이다. 그리곤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하여야겠지. 그래, 다시 태어난 것처럼. 마치 처음 의지를 시험하는 놈처럼.

*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숙취와 함께 어제 그제 죽음(과 가족)에 대한 담담한 정경과 드문 성찰을 보여주었다. 사랑 혹은 열병에 대한 아주 적절한 정의도 있었다. 둘로 이루어진 종교.

수선화

from text 2010/01/01 08:02
라일락 향기가 바람에 떠다니는 때란, 그 향기가 바람에 떠다니면서 청춘들의 후각을 자극할 때면, 그 어느 청춘인들,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으리라. 꽃향기만으로 가슴 설레는, 그 고운 청춘의 시절에, 그러나, 나는, 그리고 해금이는, 해금이의 친구들은 참으로 슬펐다. 속절없이, 속절없이, 꽃향기는 저 혼자 바람 속에 떠돌다가, 떠돌다가 사라지고 나는, 해금이는, 해금이 친구인 우리는, 저희들이 얼마나 어여쁜지도 모르고, 꽃향기 때문에 가슴 설레면 그것이 무슨 죄나 되는 줄 알고, 그럼에도 또 꽃향기가 그리워서 몸을 떨어야 했다.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작가의 말 중에서. 아홉 송이 수선화는 그대로 다들 반짝이는 별이었다. 한때나마 별이었던 사람은 푸른 하늘을 보았던 기억보다 선명하게 스스로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 남겨진 자들은 남은 과정을 갖고 있는 것. 그러게, 무슨 일에나 미학은 있는 법이니까(백경에서 이스마엘), 늦은 것도, 늦을 것도 없는 일이다.

근황 2

from text 2009/12/22 15:33
저가 봉오리를 피어난 것으로 바꾸기에 밤새 함께 울었더니, 떨어져 내릴 때는 맺혔던 자리마저 가져가누나.

준탱이 들어왔고 날은 추웠다. 마음은 늘어졌으나 몸은 바빴고(일에서는 마음만 바빴고 몸은 늘어졌던 듯) 술자리에서만 한두 대 피우던 담배는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술은 배로 늘었다. 서연이는 바둑 7급 승급 심사를 받았고 서율이 재롱은 늘었으며 비로소 나는 늙었다. 그리움은 쓸쓸한 연기처럼 재빨리 일상이 되었고, 달라진 건 없으나 모든 게 달라졌다.

살아가는 일이란 늘상 사소한 것에서부터 틀어지거나 꾸며지기 마련, 한없이 부풀다 지극히 사소해져버린 작은 몸짓은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계속 몸을 내맡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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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from text 2009/12/10 13:46
돌베개에서 펴낸 완역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었다. 덜 끝낸 숙제와 마쳐야 할 산더미 같은 일들을 두고, KBS 1FM 세상의 모든 음악이 흐르는 저녁에, 때로는 한밤중으로부터, 때로는 콧날 시큰한 새벽에, 풍류와 교양과 운치를 읽어 내렸다. 이스마엘과 퀴퀘그, 에이허브에 오래 빠져들던 사이 잠시 펼쳐나 본다던 것이 이미 시작한 여행길을 놓칠 수 없었던 것인데, 가히 민족문학사와 세계의 고전으로 치켜세울 만했다.

박지원의 모습은 유학의 뿌리가 워낙 질기고 깊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어렴풋이 갖고 있던 실학자의 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 시대에 세계를 주유하던 지식인들의 고졸한 품격은 아마도 (과학적)지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리라. 아무렴, 충분한 근대적 안목의 미비(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허나 신분제를 위시한 지배체제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없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보다 나을 것도 없는 체제에 살고 있으면서 그만한 인물과 담론이나마 찾을 길 없는 것은 행인가, 불행인가)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옛 사람의 산 같은 고담과 물 흐르듯 한 준론을 이렇게나마 엿볼 수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다만 어제도 오늘도 없을 그 같은 담론의 자리와 그 곁자리에라도 끼일 수 없는 천박한 수준과 가련한 처지를 한탄할밖에.

열하일기를 읽던 어느 일요일 한낮, FM 우리가곡에서 테너 이영화의 겨울 강(한여선 시, 임준희 작곡)을 들었다.

마른 갈꽃 흔들며 겨울이 우는 소리
홀로 찾아와 듣는 이 누구인가
푸르게 흐르는 저 강물처럼
세월도 그렇듯 흘러갔거니
쓰러진 물풀 속에 길 잃은 사랑
하얗게 언 채로 갇혀 있구나
그 어느 하루 떠나지 못한 나룻배엔
어느 나그네의 부서진 마음인가
소리 없이 눈은 내려 쌓이는데
언 하늘 마른 가슴 휘돌아
또다시 떠나는 바람의 노래
나그네 홀로, 홀로 서서 듣고 있구나

아, 누구라서 이미 세상일을 알고 짐작대로 조각할 수 있을지언정 서로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from text 2009/11/22 19:09
한강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보았다. 오랫동안 허먼 멜빌의 백경을 보는 중에 잠시 집어든 것인데 단숨에 읽고 말았다. 애틋함을 넘는 어떤 저릿함이 있었다. 영혜와 그녀, 경계에 대한 금간 얼굴들에 경의를. 다음은 책의 맨 끝부분에서 한 구절.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와 달려라, 아비는 아껴 읽게 된다. 칼자국을 읽으면서는 서늘할 정도로 아름다운 말들의 잔치에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젠장, 백경을 썼을 때 허먼 멜빌의 나이가 서른셋이었고, 김애란은 80년생이다. 어제는 "햇살" 20주년 기념 파티가 있었다. 재학생과 졸업생 육칠십 명이 한데 엉겨 난장을 이루었다. 청년들은 살아있었고 모든 지나간 세대들의 우려는 역시 기우였다. 과연, 보태주는 것도 없으면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대화 3

from text 2009/11/14 00:55
포스팅도 뜸하고, 그저께 아침 밥상에서 제 어미와 서연이의 대화 한 토막.

어제 축구 누가 이겼게요?
음, 서연이 팀?
아니.
그럼 상대편 팀?
아니.
무승부구나?
아니.
그럼?
축구 안 했어. 바람이 그렇게 불고 추운데 축구는 무슨 축구?

임플란트 2차 수술을 끝내고 실밥 푼 지 일주일도 안 되었건만 방금까지 사흘 내리 술을 먹었다. 잔뜩 흐리거나 비도 간간이 뿌리는 날들, 어지럼증에 보름째 37.2도의 열은 가시지 않았으나 술맛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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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from text 2009/10/26 23:31
뒷울타리의 산수유꽃
흙담장 아래 코딱지꽃
부황든 들판의 보리꽃
수채구멍의 지렁이꽃
누이 얼굴의 버짐꽃
빚 독촉 아버지의 시름꽃
피는 봄밤에 몰래 집 나왔었는데
이젠 다시 살구꽃 피는
고향 그리워

김용락 선생의 시 고향 전문. 어제 신천을 지나 고산골로 해서 심신수련장 입구로 걸어 나오다 전류가 흐르듯, 끄트머리 길가에 걸린 이 꽃들을 만났다. 노래도 있다면서 그 옛날 문배형이 부르던 걸 기억하며 동행한 서연이에게 첫 소절을 불러주다 말고 왈칵 울음이 쏟아져 다 부르지 못하였다. 제대로 들어보고 싶어 찾아보니 같은 제목으로 민중문화운동연합의 노래모음 10집 '누이의 서신'에 실린 것과 코딱지꽃이라는 제목으로 2절 가사까지 붙인 백창우의 것이 있다. 책장에 꽂힌 그의 두 번째 시집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를 꺼내 살펴보니 뒷날개에 고향 그 노래가 김용락의 시였다니- 운운 메모가 있고, 염무웅의 해설에 첫 시집 '푸른 별'에 실린 시의 전문이 옮겨져 있다.